우리궁궐지킴이
이사야서 제3과 / 첫째 단락 "묵상과 생활" 본문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사야서" 그룹성경공부한 내용을 여기에 올리는 것이 과연 어떠할지는
하느님의 뜻에 맡겨드립니다.
부족한 내용이지만 제가 공부한 자료를 기쁜 마음으로 올려드립니다.
"이사야서"를 공부하시는 여러 형제자매님들의 배움과 묵상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일뿐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내에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4. 4. 25 고촌 본당 이경환 라파엘
이사야서 제3과
“유다와 이스라엘에 관한 신탁 1”
첫째 단락 "묵상과 생활"
1. 주님께서는 야곱 집안의 부(富)를 꾸짖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는 과연 나쁜 것입니까?(2,6-9)
저는 이 묵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사야서 2장 6절부터 9절까지 다시 읽어 보면서, 주님께서는
왜 야곱 집안의 부(富)를 꾸짖으셨는지, 그리고 부는 과연 나쁜 것인지를 다시 되새겨보게 되었습니다.
6 당신께서는 정녕 당신의 백성 야곱 집안을 내치셨습니다.
그곳에는 동방에서 온 점쟁이들이 가득하고 필리스티아처럼
요술쟁이들이 가득하며 이방인의 자식들이 득실거립니다.
7 그들의 땅은 은과 금으로 가득하고 그들의 보화는 끝이 없습니다.
그들의 땅은 군마로 가득하고 그들의 병거는 끝이 없습니다.
8 그들의 땅은 우상으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자기들 손으로 만든 작품에,
자기들 손가락으로 만든 것에 경배합니다.
9 이렇듯 인간은 비천해지고 사람은 낮아졌습니다. 그들을 용서하지 마소서.
이 말씀을 잘 살펴보면, 야곱 집안은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물질적으로 풍성한 부(富)를 누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 집안의 땅은 은과 금, 보화가 가득하고, 군마와 병거는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은 대부호입니다. 그러나 야곱 집안에는 동방에서 온 점쟁이, 요술쟁이, 이방인의 자식들이 득실거리고, 우상으로 가득차서 자기들이 만든 우상에 경배하였습니다. 이렇듯 하느님에 대한 경배를 잊어버리고, 우상 숭배를 하여 인간은 비천해지고 낮아졌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야곱 집안의 이러한 물질적인 부를 꾸짖은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만일 그들이 하느님에 대한 경배를 최우선으로 하고, 그 다음에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였다면 하느님께서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일반적으로 내 주변의 가까운 친구가 아파트로 이사했다거나 또는 개업을 했을 경우에, 우리는 흔히 “부자되세요”, “대박나세요”라는 덕담을 주고 받기도 합니다. 이 경우에 쓰이는 부(富)는 분명히 물질적으로 풍성한 부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부가 우상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새해에 주고 받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에는 물질적인 부 이외에도 건강, 장수, 다복, 행복, 기쁨 등 다양한 부(富)나 복(福)이 포함되어 있음도 알고 있습니다.
흔히 기도하면서 “하느님께서 복 많이 주시기를 기원”하는 기복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 천주교 신앙공동체 안에서는 형제자매님들 중에 누군가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고 하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물질적인 부를 받은 것’이라는 관념이 자신도 모르게 우리들에게 형성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에 “무엇 무엇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해석되는 구절들이 있다고 하면, 이는 모두 ‘물질적인 부’로 이해하거나 해석해 버리고 마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를 우리의 신앙적인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하느님을 빙자하여’ 세상의 물질적인 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는 나쁜 ‘죄’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개인이 성실하게 노력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 반드시 죄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19,24).”고 하신 말씀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물질적인 부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는 부자에게는 더 많은 탐욕이나 이기심이 뒤따르게 되고, 그렇게 하게 되면 더욱더 많은 죄를 지을 기회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웃는 얼굴의 사람이 천국에서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고 생각해보면,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웃는 얼굴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닌가.
이제 하느님께서 자그마한 물질적인 부와 다양한 복을 내게 주셨다면 그 부와 복을 과연 누구에게,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갖고 이를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내가 지닌 자그마한 부를 어려운 가운데 있는 내 이웃을 돕고 사랑하는 작은 일들에 쓸 줄을 내가 안다고 하면, 이러한 일들은 분명히 더욱더 큰 기쁨으로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며, 주님께 늘 감사드릴 뿐입니다.
“부족한 저에게 물질적인 부와 함께 다양한 복을 내려주신 하느님께 늘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주님께서 제게 베풀어 주신 가르침을 믿고 작은 일이라도, 사랑하는 내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 5장(참조 10장)을 묵상하고 우리나라의 사회악을 살펴봅시다.
당신의 가정에서 이런 악을 변화시킬 수 있는 덕행을 적어 보십시오.
☛ 이사야서 5장(참조 10장)을 다시 읽고 묵상하며,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악과 관련하여 이를 살펴보면서 내 가정에서부터 이러한 사회악을 변화시킬 수 있는 몇 가지 덕행을 제 나름대로 나열하였습니다.
포도밭 노래
1 내 친구를 위하여 나는 노래하리라, 내 애인이 자기 포도밭을 두고 부른 노래를. 내 친구에게는 기름진 산등성이에 포도밭이 하나 있었네.
2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어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가운데에 탑을 세우고 포도 확도 만들었네. 그러고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들포도를 맺었다네.
3 자 이제, 예루살렘 주민들아, 유다 사람들아 나와 내 포도밭 사이에 시비를 가려 다오!
4 내 포도밭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느냐?
5 이제 내가 내 포도밭에 무슨 일을 하려는지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울타리를 걷어치워 뜯어 먹히게 하고 담을 허물어 짓밟히게 하리라.
6 그것을 황폐하게 내버려 두어 가지치기도 못하고 김매기도 못하게 하여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올라오게 하리라. 또 구름에게 명령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7 만군의 주님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집안이요 유다 사람들은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나무라네. 그분께서는 공정을 바라셨는데 피 흘림이 웬 말이냐? 정의를 바라셨는데 울부짖음이 웬 말이냐?
여섯 가지 재앙의 선포
8 불행하여라, 빈 터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해 가고 밭에 밭을 늘려 가는 자들! 너희만 이 땅 한가운데에서 살려 하는구나.
9 만군의 주님께서 나의 귀에다 말씀하셨다. “정녕 수많은 집들이 폐허가 되어 크고 좋은 집들에도 사는 사람이 없으리라.
10 열흘 갈이 포도밭이 포도주 한 밧밖에 내지 못하고 한 호메르의 씨앗이 곡식 한 에파밖에 내지 못하리라.”
11 불행하여라, 아침 일찍부터 독한 술을 찾아다니고 저녁 늦게까지 술로 달아오르는 자들!
12 그들은 비파와 수금, 손북과 피리 소리와 더불어 술을 마셔 대면서 주님의 업적에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주님의 손이 이루신 일에는 눈도 돌리지 않는다.
13 그러므로 나의 백성은 지각이 없어 포로로 끌려가리라. 귀족들은 굶주리고 평민들은 갈증으로 목이 타리라.
14 그리하여 저승이 목구멍을 한껏 벌리고 그 입을 한없이 열어젖히면 그들의 영화와 법석거림이, 떠들썩하게 기뻐 뛰던 자들이 그곳으로 빠져들리라.
15 인간이 비천해지고 사람이 낮아지리라. 거만한 자들의 눈도 낮아지리라.
16 그러나 만군의 주님께서는 공정으로 드높으시고 거룩하신 하느님께서는 정의로 거룩하심을 드러내시리라.
17 어린 양들은 그곳에서 제 목장인 양 풀을 뜯고 살진 새끼 염소들은 그 폐허에서 풀을 뜯어 먹으리라.
18 불행하여라, 거짓의 끈으로 죄를 끌어당기고 수레의 줄을 당기듯 죄악을 끌어당기는 자들!
19 “우리가 볼 수 있게 그분께서 당신 일을 빨리 서둘러 해 보시라지. 우리가 알 수 있게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뜻이 드러나 이루어져 보라지.” 하고 말하는 자들!
20 불행하여라, 좋은 것을 나쁘다 하고 나쁜 것을 좋다 하는 자들! 어둠을 빛으로 만들고 빛을 어둠으로 만드는 자들! 쓴 것을 단 것으로 만들고 단 것을 쓴 것으로 만드는 자들!
21 불행하여라,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들 자신을 슬기롭다 여기는 자들!
22 불행하여라, 술 마시는 데에는 용사들이요 독한 술을 섞는 데에는 대장부인 자들!
23 뇌물 때문에 죄인을 죄 없다 하고 죄 없는 이들의 권리를 빼앗는 자들!
24 그러므로 불길이 지푸라기를 삼키듯 검불이 불꽃에 스러지듯 그들의 뿌리는 썩고 그들의 꽃은 먼지처럼 날아가리라. 그들은 만군의 주님의 가르침을 업신여기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경멸하였다.
주님의 분노
25 그러므로 주님의 분노가 당신 백성 위에 타올라 당신 손을 뻗치시어 그들을 치시니 산들이 뒤흔들리고 그들의 주검들이 오물처럼 거리 한가운데에 널려 있다. 이 모든 것에도 그분의 분노는 풀리지 않아 그분의 손은 여전히 뻗쳐 있다.
아시리아인들의 침입
26 그분께서는 먼 곳의 민족에게 깃발을 올리시고 휘파람을 부시어 그들을 땅 끝에서 불러오신다. 보라, 그들이 서둘러 날쌔게 달려온다.
27 그들 가운데에는 지친 자도 없고 비틀거리는 자도 없으며 아무도 졸지 않고 잠들지 않는다. 허리띠가 풀린 자도 신발 끈이 끊어진 자도 없다.
28 그들의 화살은 날카롭고 활시위는 모두 당겨져 있다. 그들의 말발굽은 차돌과 같고 병거의 바퀴들은 폭풍과 같다.
29 그들은 암사자처럼 포효하고 힘센 사자들처럼 함성을 지른다. 으르렁거리다 먹이를 잡아채 끌어가면 아무도 빼내지 못한다.
30 그날 그들은 노호하는 바다처럼 이 백성에게 으르렁거리리라. 땅을 바라보면 암흑과 고난뿐 빛마저 구름으로 어두워지리라.
[참조 : 이사야서 제10장(10.1 ~ 10.34)]
유다의 유력가들에 대한 일곱 번째 저주
1 불행하여라, 불의한 법을 세우고 고통을 주는 규정들만 써 내려가는 자들!
2 이자들은 힘없는 이들의 소송을 기각시키고 내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들을 약탈하고 고아들을 강탈한다.
3 너희는 징벌의 날에, 멀리서 들이닥치는 폭풍의 날에 어찌하려느냐? 누구에게 도망하여 도움을 청하고 너희 재산은 어디에 갖다 놓으려느냐?
4 포로들 사이에 쭈그려 앉거나 살해된 자들 사이에 쓰러지는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에도 그분의 진노는 풀리지 않아 그분의 손은 여전히 뻗쳐 있다.
아시리아 임금에 대한 벌
5 불행하여라, 내 진노의 막대인 아시리아! 그의 손에 들린 몽둥이는 나의 분노이다.
6 나는 그를 무도한 민족에게 보내고 나를 노엽게 한 백성을 거슬러 명령을 내렸으니 약탈질을 하고 강탈질을 하며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처럼 짓밟게 하려는 것이었다.
7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러한 뜻을 마음에 품지도 않았다. 오로지 그의 마음속에는 멸망시키려는 생각과 적지 않은 수의 민족들을 파멸시키려는 생각뿐이었다.
8 사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제후들은 모두 임금이 아니냐?
9 칼노는 카르크미스처럼 되지 않았느냐? 하맛은 아르팟처럼 되고 사마리아는 다마스쿠스처럼 되지 않았느냐?
10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보다 더 많은 신상들을 차려 놓고 우상을 섬기는 이 왕국들을 내 손이 장악한 것처럼
11 사마리아와 그 신상들에게 한 것처럼 그렇게 내가 예루살렘과 그 물신들에게 하지 못하겠느냐?”
12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하실 일을 다 마치신 다음, 아시리아 임금의 오만한 마음에서 나온 소행과 그 눈에 서린 방자한 교만을 벌하실 것이다.
13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손의 힘으로 이것을 이루었다. 나는 현명한 사람이기에 내 지혜로 이루었다. 나는 민족들의 경계선을 치워 버렸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았으며 왕좌에 앉은 자들을 힘센 장사처럼 끌어내렸다.
14 내 손이 민족들의 재물을 새 둥지인 양 움켜잡고, 버려진 알들을 거두어들이듯 내가 온 세상을 거두어들였지만 날개를 치거나 입을 열거나 재잘거리는 자가 없었다.”
15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뽐낼 수 있느냐? 톱이 톱질하는 사람에게 으스댈 수 있느냐? 마치 몽둥이가 저를 들어 올리는 사람을 휘두르고 막대가 나무도 아닌 사람을 들어 올리려는 것과 같지 않으냐?
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주님께서는 그 비대한 자들에게 질병을 보내어 야위게 하시리라. 마치 불로 태우듯 그 영화를 불꽃으로 태워 버리시리라.
17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는 불길이 되시어 그의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단 하루에 태워 삼켜 버리시리라.
18 그 화려한 숲과 과수원을 그분께서는 모조리 파괴시켜 버리시리라. 그러면 그는 병자처럼 말라 가리라.
19 그 숲의 나무들 가운데 남은 것은 몇 그루 되지 않아 아이라도 그것들을 기록해 둘 수 있으리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
2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야곱 집안의 생존자들이 더 이상 자기들을 친 자에게 의지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주님께만 충실히 의지할 것이다.
21 남은 자들이 돌아올 것이다. 야곱의 남은 자들이 용맹하신 하느님께 돌아올 것이다.
22 이스라엘아, 네 백성이 설사 바다의 모래 같다 하여도, 그들 가운데 남은 자들만 돌아올 것이다. 파멸은 이미 결정된 것, 정의가 넘쳐흐를 것이다.
23 정녕 주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미 결정된 멸망을 온 세상 한가운데에서 집행하실 것이다.
아시리아를 두려워하지 마라
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온에 사는 나의 백성아, 너를 막대로 때리고 이집트처럼 너에게 몽둥이를 치켜드는 아시리아를 두려워하지 마라.
25 이제 아주 조금만 지나면 너를 향한 나의 진노는 다하고, 오히려 저들의 파괴 행위를 향하여 나의 분노를 터뜨릴 것이다.”
26 만군의 주님께서는 오렙 바위 곁에서 미디안을 치신 것처럼 아시리아에게 채찍을 휘두르시고, 바다 위에 있는 당신의 몽둥이를 이집트에서처럼 치켜드실 것이다.
27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너의 어깨에서 그의 짐이 벗겨지고 너의 목에서 그의 멍에가 사라지리라. 아시리아는 사마리아에서 올라와
침략자들의 공격과 실패
28 아얏에 이른다. 미그론을 지나 미크마스에 군수품을 맡긴다.
29 그들은 협곡을 지나면서 “우리는 게바에서 하룻밤을 묵으리라.” 한다. 라마는 떨고 사울의 기브아는 달아난다.
30 밧 갈림아, 크게 소리 질러라. 라이사야, 귀를 기울여라. 아나톳아, 대답하여라.
31 마드메나는 도망치고 게빔 주민들은 피난 간다.
32 바로 그날 아시리아는 놉에 머물면서 딸 시온 산을 향하여, 예루살렘 동산을 향하여 주먹을 휘두른다.
33 보라, 주 만군의 주님께서 무서운 힘으로 가지들을 잘라 내신다. 높이 솟아오른 것들은 잘려 나가고 드높은 것들은 거꾸러진다.
34 잡목 숲은 쇠도끼로 찍혀 넘어지고 레바논은 그 영화와 함께 쓰러진다.
➜ 이사야서 5장 7절을 읽어 보면, “만군의 주님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집안이요, 유다 사람들은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나무라네. 그분께서는 공정을 바라셨는데 피 흘림이 웬 말이냐? 정의를 바라셨는데 울부짖음이 웬 말이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공정과 정의를 바라셨는데, 당시의 이스라엘 사회는 이러한 하느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온갖 사회악을 저지르고 있어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사야서 5장을 토대로 하여 사회악을 이루는 요소를 ➀ 권력, ➁ 술주정, ➂ 땅투기, ➃ 불의, ➄ 불평등, ➅ 폭력, ➆ 갈등, ➇ 차별, ➈ 부조리, ➉ 기타 사회악 등 10가지 요소로 구분해 보았습니다. 이 10가지 사회악 요소를 오늘날 우리나라의 사회악과 관련하여 이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내 가정에서부터 이러한 사회악을 변화시킬 수 있는 몇 가지 덕행을 나열하였습니다.
요소 | 우리나라의 사회악 | 가정에서의 덕행 |
권력 | 권위주의,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 자유와 관련된 사상의 배척, 집단주의와 변질된 사상의 강조 | 가족 간의 평등, 배려, 겸손한 태도, 봉사정신 |
술주정 | 가정폭력, 음주운전, 사회질서 무시, 마약 및 낮은 인권 의식, |
가정의 덕행, 가족 간의 배려와 상호 존중 |
땅투기 | 개인 이기주의, 무비판적인 물질 중심의 가치 판단, |
준법정신과 질서 유지, 사회 연대 의식 |
불의 | 열악한 노동권과 차별적인 인식, 사회 공정성 파괴, 교통질서 및 사회질서 무시 |
정직과 신의, 인간 존중과 관용 |
불평등 | 성 역할 강요, 서열 의식, 결혼, 취업 문제 정치, 사회적인 집단주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 |
양성 평등, 능력 중시 고난 극복 의지 |
폭력 | 학교 폭력, 사회 폭력, 마약 등 조직 범죄, 폭력에 관대한 문화, 개인정보 침해 |
선행과 봉사, 평화, 공존, 정의 |
갈등 | 지역, 세대, 종교 간의 다양한 갈등, 저출산 고령화 열악한 노동 환경, 진보 개혁과 기성 세대의 보수성 |
배려, 사랑과 공경 상부상조와 사회 발전 |
차별 | 귀화, 복수국적 및 재외동포에 대한 배타성과 이중잣대, 국제 결혼 다문화 가정과 혼혈에 대한 차별 | 배려, 포용하는 태도, 행복 추구의 방법 |
부조리 | 각종 부조리 만연, 부조리한 상명 하복, 허례, 허식 사치와 분수에 맞지 않는 생활 |
이웃 간의 도리, 청렴 추구와 정화 활동 |
기타 사회악 |
무분별한 쓰레기 양산 등 환경 오염, 사교육과 학원, 높은 자살율, 취업률 하락, 보이스 피싱, | 가정에서의 생명 존종과 환경 윤리 교육 |
점수(100) | 점수( ) |
[권력] : 권력과 관련하여 현존하는 우리 사회의 나쁜 습관으로는 ‘권위주의’적인 여러 가지 행태가 아직도 남아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직장이나 가정에서도 흔히 꼰대라고 하는 서열 강요나 괴롭힘, 부조리한 상명하복의 언행,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억압적인 태도, 자유와 관련된 사상의 배척, 집단주의와 변질된 사상의 강조 등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덕행) ➜ 가족 간에 서로를 아끼고 공경하는 마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과 겸손한 태도, 도덕성과 책임을 지는 권위 등에 대하여 어릴 때부터 이를 실천하는 습관이 몸에 배이도록 하는 가정교육이 중요하겠습니다.
[술주정] : 당시의 이스라엘에는 포도 생산이 많아 술주정이 많았나 봅니다. 우리 사회도 예로부터 술꾼이 많아 골칫거리였는데, 술주정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니 당연히 안되는 일이겠지요. 이 술주정을 다른 각도에서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사회악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술.담배와 관련된 개인적인 각종 병폐, 가정폭력, 음주운전, 교통법규 위반, 사회질서 무시, 마약 및 낮은 인권 의식 등과 같은 수없이 많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덕행) ➜ 어릴 때부터 약속과 규칙을 잘 지키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가정교육이 중요하며, 다른 사람의 권익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준법정신의 실천이 강조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성당부터 금연을 실천하는 캠페인을 벌였으면 좋겠습니다.
[땅투기] : ‘땅투기’하는 사회악은 개인 이기주의에 의한 욕심과 나만 잘 사면 된다는 무비판적인 물질 중심의 가치 판단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 하겠습니다. “지금 어디에 사시나요?”, “예, 김포 고촌에 삽니다.” “어쩌다, 김포까지 멀리 나가셨네요.” 서울의 강남지역에 땅이나 아파트를 사지 않고, 바보같이 집값도 오르지 않고 그대로인 김포 고촌의 아파트에 제가 살고 있다는 것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사회풍조가 서글프기만 합니다.
(가정에서의 덕행) ➜ 어릴 때부터 가정이나 학교, 사회에서 공정하고 정직한 생활 태도를 기르고 준법정신과 질서 유지를 생활화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공익을 추구하는 생활과 사회 연대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의] : ‘불의’와 관련된 우리 사회악을 열거하면, 금융사기 보이스 피싱의 만연, 전세금 사기, 열악한 노동권과 차별적인 인식, 사회 공정성 파괴, 교통질서 및 사회질서 무시 등이 있습니다. 김포나 인천 지역에서 운전을 해보면, 확실히 교통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저 자신이나 아내도 보이싱 피싱을 당했는데, 아내는 상당한 금전적인 피해를 당해 매우 힘들었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가정에서의 덕행) ➜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정과 정의를 바라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공동체에서는 준법정신과 질서 지키기를 생활화하고, 가정교육에서부터 정직과 신의, 인간 존중과 관용의 자세를 실천하도록 힘써 나가야 하겠습니다.
[불평등] : 우리 사회의 불평등 사례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에서 얼른 떠오르는 것으로는 성 역할 강요, 서열 의식, 결혼, 취업 문제, 정치, 사회적인 집단주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 등이 있습니다.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오랜 세월 동안 남녀, 세대, 지역 간에 그리고, 출신 학교가 어디냐에 따라, 빈부 격차에 따른 불평등의 경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덕행) ➜ 양성 평등, 능력 중시의 사회구현, 고난 극복 의지 등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폭력] : 우리 사회에는 폭력과 관련돤 사회악과 범죄가 만연해 있어, 이러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하루빨리 해결해 나가야 하는 일이 정치지도자들이 해야 할 최우선적인 과제라 하겠습니다. 아직도 폭력에 대해 관대한 문화가 남아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치원부터 내 새끼, 내 아이만 ‘오냐 오냐’ 하며 귀하게만 키우다 보니 초.중.고등학교에서의 따돌림 등과 같은 학교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고, 나아가 사회 폭력과 마약 등 조직적인 범죄도 너무나 많습니다. 거기에다 보이스 피싱이나 인터넷 등 개인정보 침해 해결은 아직 요원한 것이 현실이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의 덕행) ➜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이를 실천하는 일은 민주사회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이는 남에게 미룰 일이 아니라,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보아 주는 선행을 베풀고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활동 등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그 실천 사례를 제시하고, 바르게 알려주어야 하겠습니다.
[갈등] : 우리 사회에는 지역, 세대, 종교 간의 다양한 갈등, 저출산 고령화, 열악한 노동 환경, 진보 개혁과 기성세대의 보수성 들과 관련된 사회적인 갈등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출산, 인구감소, 고령화의 문제는 국가의 존망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입니다.
(가정에서의 덕행) ➜ 배려와 존중, 사랑과 공경, 상부상조의 정신은 갈등이라는 사회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정에서의 덕행 항목이라 하겠습니다.
2007년부터 18년 동안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 우리들의 걷기 모임에서는 지역, 종교, 정치 이야기는 서로가 나누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걷기 모임이 와해되지 않고 계속되는 중요한 이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차별] : 우리 사회에는 귀화, 복수국적 및 재외동포에 대한 배타성과 이중잣대, 국제결혼 다문화 가정과 혼혈에 대한 차별 등과 관련된 사회적인 차별이 아직도 현존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혼혈에 대한 여러 가지 차별이 현존하고 있어 이에 따른 대책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가정에서의 덕행) ➜ 저출산 및 농촌 인구의 감소와 관련하여 국가, 사회적으로 무엇보다도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가정에서부터 다문화 사회를 포용하고 함께 살아가야할 공동체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지녀야 하겠으며, 나아가 우리의 삶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인식을 넓혀 나가야 하겠습니다.
[부조리] : 우리의 사회악에는 각종 부조리 만연도 상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조리한 상명 하복, 허례, 허식, 사치와 분수에 맞지 않는 생활 등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에는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강조하는 일이 많았으나, 요지음은 세계 10위 이내의 잘사는 나라가 되어서인지 물건을 아끼고 재활용하는 검소한 생활 습관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해외여행을 가보면 우리나라가 참으로
잘 사는 나라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덕행) ➜ 가정에서부터 허례, 허식적인 생활을 버리고 작은 것이라도 근검, 절약하는 생활을 실천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이익보다는 집단이나 구성원의 이익을 보다 먼저 추구하는 공동선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기타 사회악] : 그 이외에도 우리 사회에는 무분별한 쓰레기 양산 등과 같은 환경 오염 문제, 사교육과 학원 부조리, 높은 자살율과 도덕성의 상실, 취업률 하락 등 해결해 나가야 할 사회악이 있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안된다는 님비 현상으로 인해 쓰레기 하치장이나 폐기물 시설을 건설할 수도 없는 심각한 문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통난 해소 방안의 하나로 어쩌면 김포지역이 수도권 쓰레기 하치장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가정에서의 덕행) ➜ 사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입니다. 가정에서부터 환경 오염 문제를 생각하고 수돗물 아껴쓰기, 하수 처리 등 환경 오염 교육을 어릴 때부터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생활화하여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내가 한 행동에 대하여 내가 책임을 지는 것이 바로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인간다운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3. 예언자란 어떤 사람이며, 나 자신은 일상생활에서 이 예언직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습니까?
저는 이 묵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생활·교리 성구 사전(차동엽, 홍승모 신부, ‘말씀의 네트워크’, 2007) 및 이사야 해설서(박형순, ‘이사야 예언서’, 2022) 등을 찾아보면서 ‘예언자’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았습니다.
예언자를 지칭하는 표현 가운데 히브리어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나비’라 하겠습니다. 이 ‘나비(예언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율법을 가르치며 그에 따라 살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예를 들면, 모세, 미르얌, 드보라, 사무엘,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하바쿡, 에제키엘, 즈카르야 등)이기 때문에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듣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환시를 보거나 바라본 것을 이해하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의 직무는 청각적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보고 이해하는 시각적인 영역의 사항도 포함되어서 이렇게 시각적인 역할을 강조하여 예언자를 지칭한 표현이 ‘호제’와 ‘로에’라고 합니다. 예언자의 행적과 이야기보다는 그 예언자들이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시와 운문의 형식을 지닌 예언 장르에 맞게 기록한 책이 ‘예언서’입니다.
이와 같이 예언자란 어떤 사람인가를 문헌을 통해 살펴보았으나, 하느님께 받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해석하는 사람을 예언자라고 한다면, 나 역시 세례, 견진 성사도 받고 몇 년 동안 그룹성경 공부도 계속하였으니 과연 ‘나도 예언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되묻게 됩니다.
이제 나 자신은 일상생활에서 이 예언직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저의 경우, 성경공부를 하고 매일 묵상하며 기도하는 일도 과연 예언직을 수행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현재 저는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성서40주간(2회)을 시작으로 창세기, 탈출기, 마르코복음서, 요한복음서, 사도행전을 해마다 고촌성당의 자매님들과 함께 벌써 7년 동안 공부하였고, 금년에는 이사야서 그룹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항상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성경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나, 퇴임 후 나이가 들어 가면서 별로 할 일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성경공부를 하면서 큰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경공부를 하는 것도 예언직의 수행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저에게 주어진 예언직의 수행을 위해서 하느님이 전달해 주시는 말씀을 제 스스로 오감으로 수용해서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이와같은 성경공부도 나의 영성이 성장하는 하나의 방안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 이외에도 제 친구가 이메일과 카톡방을 통해 전달해 주는 신부님 강론과 글, 매일 미사의 복음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 시간이 나에게는 기도하는 시간이며,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경공부를 하면서 묵상하는 시간이 또다른 깨우침을 얻고 이 말씀 속에서 제 스스로 간혹 하느님을 만나고 대화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저에게 큰 기쁨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제가 공부하고 묵상한 내용을 몇 년 동안 저의 블로그나 카페에 올리기도 하였는데, 이것이 다른 사람이 성경공부를 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금년부터 이사야서 공부를 한 내용은 아직 인터넷에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제가 공부한 내용을 인터넷에 올리는 행동 자체가 겸손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스스로 저를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지 현재 고민 중에 있습니다.
“주님, 부족한 제가 성경공부를 통하여 주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따를 수 있는 기회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성경 안에서 주님께서 전달해 주시는 말씀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천주교 고촌교회 / 이경환 라파엘]
* 편집 : 西湖 李璟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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