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궁궐지킴이
이사야서 제2과 “머리말” / 묵상과 생활 본문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사야서" 그룹성경공부한 내용을 여기에 올리는 것이 과연 어떠할지는
하느님의 뜻에 맡겨드립니다.
부족한 내용이지만 제가 공부한 자료를 기쁜 마음으로 올려드립니다.
"이사야서"를 공부하시는 여러 형제자매님들의 배움과 묵상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일뿐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내에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4. 4. 11 고촌 본당 이경환 라파엘
제2과 묵상과 생활
성경을 ‘거룩한 계시’라 부르는 까닭은 단순히 성경의 말씀이 훗날 이스라엘 역사 안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에만 근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똑같이 적용되고 우리의 삶 안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 만일, 이사야가 우리 시대에 살았다면, 그는 1,10-17의 말씀을 나의 신앙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표현하겠습니까?
(1,10-17 말씀에 ‘나’를 대입시켜 적어 보십시오.)
☛ (1,10-17)
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11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12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 (‘나’보다는 '라파엘'을 대입시켜 보았습니다.)
10 라파엘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라파엘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11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12 라파엘아,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라파엘에게 시키더냐?
13 라파엘아,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14 나의 영은 초하룻날 행사들과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15 라파엘아,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네)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라파엘아,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16 라파엘아,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너의) 악행을 멈추고
17 라파엘아,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 이사야서 1,16-17에서는 "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라고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저는 "선행을 배우고,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는 말씀이 제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 말씀을 되새기면서 과연 나는 선행을 얼마나 베풀었는지를 되묻게 됩니다. 이를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됩니다.
우리가 사는 것 그 자체가 인간관계이지만 그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보살펴 주었는지 가늠해보기도 참으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내 자신이 쉽게 실천할수 있는 아주 작은 사례들을 떠올려봅니다. 뭐가 있을까,
이웃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도록 노력하는 일도 있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일도 있으며,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는 장소에서는 우선적으로 내가 먼저 질서를 지키는 일 등을 떠올려봅니다.
작은 일이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웃는 얼굴로 반갑게 인사하는 것"도 내가 쉽게 해볼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실천 방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아파트 엘레베이터 안에서 이웃을 만나면 내가 먼저 인사를 하기, 휴지 떨어진 것이 있으면 내가 먼저 줍기, 지하철에서 차례대로 줄을 서서 타고 내리기, 자리를 양보하기 등 이와같이 생각해 보면 내 주변의 삶 자체가 모두 실천 사례가 된다는 것을 미쳐 깨닫지 못한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이러한 것들이 공정과 정의를 지키고 실천하는 하나의 출발이 될 것입니다.
"주님, 내 삶 속에서 늘 주님을 생각하며 작은 일부터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 16-17절의 내용을 우리 삶에서 어떻게 구체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사야 예언서 1,16-17에 있는 말씀을 다시 읽어 보면서 이를 나의 삶에서 어떻게 구체화시킬 수 있을까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이사야 예언서 1,16-17에 있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는 거짓 예배, 우상 숭배, 이기심이 가득찬 탐욕, 교만, 미움과 분열 등과 같은 악행을 멈추고 고아, 과부 등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피고 선행을 베풀기를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옛날이나 지금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만,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을 보살피고 도와주는 것이 우리 천주교인으로서의 기본적인 덕행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의 신앙생활에서 거짓 예배나 우상 숭배를 피하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참된 신앙생활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나의 믿음과 마음가짐을 어떻게 갖느냐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나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피라”고 요구한 주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안의 하나로 과연 어떤 일을 어떻게 실천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되돌아봅니다.
먼저, 신체적인 장애를 지닌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국가수준의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편찬, 보급하였던 일이 떠오릅니다.
저는 젊은 시절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교육의 기본 설계도”라고 하는 국가 교육과정을 개선하고 학생들이 배우고 익혀야 할 교과서를 편찬하는 편수 업무에 종사하였던 일이 있었습니다.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사랑하는 편수관으로서의 전문적인 업무는 지금 생각해도 하느님께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참으로 보람있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미래 사회에 대비하여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어떤 인간으로 키워야 하고, 그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게 해야 하느냐 하는 목표와 내용을 설계하는 일은 우리나라 교육에서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이 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뿌듯하고 저에게 큰 기쁨을 앉겨 주었던 일은 신체적, 발달적인 장애를 지닌 맹, 농, 지체부자유, 정신지체 및 발달장애 등을 지니고 있는 특수학교 학생들을 위하여 장애 정도에 따른 수준별 교육과정을 제정하고, 장애 학생을 위한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자료를 편찬, 보급하였던 일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아직 일반 학생에 비하여 장애 학생들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부족하였고, 그들을 위한 교육환경이나 예산이 극히 열악하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우선적으로 교사가 되려는 학생들에게 특수교육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신체장애를 지닌 학생에 대한 교사들의 이해를 돕는 일이 중요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 등 교원양성대학의 교육과정에 특수교육을 필수과정으로 설정하여 학생들이 필수과목으로 이수하도록 교원양성대학의 교육과정을 먼저 개선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당시의 경제기획원 예산담당자를 직접 만나 그들을 설득하여 장애 학생을 위한 기초연구 예산과 교재 편찬 예산을 확보하였던 일,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에 출장가서 특수교육 관련 교재를 구입하여 특수학교 교육과정 연구개발기관에 제공하였던 일 등은 지금 생각하여도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이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던 이런 일들이 하느님께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참으로 보람있고 기쁜 일이었다고 생각하며 이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정년퇴임 이후에는 내 이웃을 보살피고 배려하는 자그마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실천하였던 것이 분명히 저에게는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고 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의 차원에서는 본당 신부님을 도와 6년 동안 겸손한 자세와 마음으로 성체분배 봉사활동을 한 일이 저에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2006년 정년 퇴임 이후, 사회적으로 제가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한 봉사활동 중에는 국가 유산을 해설하는 박물관 도슨트 활동, 궁궐과 왕릉을 안내하고 해설하는 지킴이 활동, 법원에서 판사를 도와 소송 당사자의 의견을 듣고 이를 조정하는 조정위원 활동 등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모두 그만 두었으나, 박물관에 나가서 해설하는 활동은 금년까지는 아직 계속하고 있습니다. “보수가 있느냐고요?” “아니오, 순수한 자원봉사활동입니다.” “보수도 없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질문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집안 일이나 자기 일은 하지도 않고 맨날 남 좋은 일만 한다고 핀잔을 받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면, 그것은 이 활동으로 제가 얻는 “기쁨”, 저에게 돌아오는 “따뜻한 느낌과 사랑”이 오히려 더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년퇴임 후 제가 수행하였던 이러한 작은 봉사활동들은 모두 나의 건강에도 보탬이 되었고, 젊은 친구들과 대화하는 기쁨도 있어 이러한 활동들이 하느님께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의 하나라고 생각하여 늘 감사드릴 뿐입니다.
“주님, 저는 남을 위해 이렇다 할 선행을 아직도 제대로 베풀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제가 교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저를 주님의 도구로 삼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3. 오늘날 우리나라를 신앙의 눈으로 어떻게 진단하겠습니까?
이 상황을 전환시킬 수 있는 길은 없습니까?(1,16-19)
저는 이 묵상 과제를 생각하면서 먼저 이사야서 1장 머리말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1장은 이사야서 1장에서 39장뿐만 아니라 이사야서 전체의 머리글로서, 이 책에 나오게 될 주요 주제들이 언급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머리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과 백성을 잘못 인도하는 지도자들, 거짓된 경신례, 우상 숭배와 사회적 불의 등 여러 가지 죄를 고발하면서도 심판 다음에는 구원이 있으리라는 것을 여러 곳에서 이미 예고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신앙의 눈으로 어떻게 진단하고, 이 상황을 전환시킬 수 있는 길은 없을까를 생각하기 위해서 1,16-19의 말씀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기꺼이 순종하면 이 땅의 좋은 소출을 먹게 되리라.
모두 다 잘 아시는 일이지만,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인 위치로 보아 동북아 지역의 변방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미국의 세력이 우리를 둘러싸고 각축하고 있는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는 남북한이 휴전 상황에서 서로가 적대적으로 총부리를 겨누며 대치하고 있는 지도 벌써 7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언제 남북통일의 평화를 이룰 수 있을지 그저 이루어질 수 없는 까마득한 꿈만 같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이념적인 편견, 지역적인 불평등, 세대적인 갈등 등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이해할 수 없는 그릇된 불신으로 서로를 미워하고 있으니, 나의 부족한 신앙의 눈으로 보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남북통일의 꿈은커녕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지역 간, 세대 간의 화합조차도 이루어 내기 어려운 현실이니 참으로 착잡한 심정입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은 38선 이북입니다. 비참한 민족상잔의 6.25전쟁(1950년 6월 25일) 이 일어난 것이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9.28인천상륙작전으로 압록강 근처까지 진격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국공산군의 참전으로 인하여 흥남철수작전을하게 되었습니다. 1950년 12월 23일, 그야말로 맨손으로 그 유명한 매러디스빅토리호를 타고 자유를 찾아 부모님과 함께 남하한지도 어언간 73년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하느님을 믿고 있을지도 모르는 많은 믿음의 북녘 동포들에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신앙의 자유가 이루어질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고 소망해 봅니다.
이제 국내 현실적인 민감한 문제로 돌아와 아직까지도 정책적인 갈등을 빚고 있는 의료 분쟁 사태를 바라볼 때도 답답한 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돌봐 주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주며,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는 것과 같은 선행을 베풀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적으로 의료 분쟁 사태에서도 고통받는 국민을 서로가 자기네들이 먼저 생각한다고 하면서 상대방의 처신을 잘못이라고 서로가 비난합니다. 과연 누가 고통받는 약자를 생각하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심장 혈관이 꽉 막힌 환자들이 있다면 의사는 스탠드를 심거나 수술을 해서 심장 근육에 피가 돌게 해주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서로가 경청(敬聽)의 미덕이 부족해서, 아니면 경청(敬聽)이 무언지 잘 몰라서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앞섭니다. 서로가 상대방을 인정하고 서로가 경청의 미덕을 발휘하는 것이 우리의 민주사회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기초, 기본인 것입니다.
그들이 민주사회의 지도자라면, 서로가 소통과 대화로 상대방의 꽉 막힌 가슴을 뚫어주어야 심장 혈관의 피가 흐르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는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의료 분쟁 사태를 바라보며, 오래된 의료 개혁을 위해서는 계획된 정책을 과감히 밀어부치는 추진력도 물론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서 이러한 의료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높은 분들께서 먼저 상대방의 의견을 낮은 자세로 경청하시고, 토론하시고, 설득하시는 폭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경청하고 기다려 주었다고 말씀하실 것으로 짐작이 가지만, 그래도 지도자로 자처하신다면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찾아 떠나는 선한 목자의 리더십을 의료 분쟁으로 인하여 상처받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에게 흔쾌히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이 지금 가장 중요한 ‘민생 회의 어젠다’이며, 이 상황을 전환시킬 수 있는 길의 하나라고 생각해 봅니다.
“주님,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이 약자에 대한 보호가 병행되는 공정한 정책으로 경청의 미덕을 발휘하면서 토론과 설득의 리더십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큰 지혜와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천주교 고촌교회 / 이경환 라파엘
* 편집 : 西湖 李璟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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