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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서 제10과 묵상과 생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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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의 2022 온라인 성경공부 "요한복음서 제10과 묵상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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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서] 제10과 묵상과 생활 1. 스승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 제자들 상호 간의 관계에 비추어서 공동체에서 우리의 관계는 어떠한지 묵상합시다. 저는 이 묵상에 대한 복음 말씀으로 요한복음서 13장 34-35절에 있는 내용을 다시 읽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젊은 시절에 종교와 관련되는 강의를 했던 많은 분들이 천주교는 사랑의 종교이고, 불교는 자비의 종교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이제 요한복음서를 다시 읽어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하는 새 계명을 주시고, 제자들에게 이를 실천하도록 가르침을 주셨음을 볼 때, 우리 가톨릭의 기본 정신은 바로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세례를 받고 성모님의 군단 레지오 마리애 ‘바다의 별’ 쁘레시디움이라는 신앙공동체에 가입하여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겸손과 배려, 섬김과 나눔이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작년까지 지난 6년 동안은 우리 신부님을 도와 성체 분배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성당에 나와 신앙 공동체 생활을 하는 가운데 내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앙생활은 따로, 사회생활은 따로 하기도 하는, 말하자면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의 분리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나의 신앙생활 패턴은 마치 주일에 성당 에 나와서만, 혹은 성당의 단체활동 중에서만 한다고 생각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다른 사람보다는 더 올바르게 살아야 할 사회생활에서는 남들 하는대로 비겁하게, 양심을 거스르며 사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 은 서로 분리된 별개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나 자신이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제대로 실천을 못해서 그렇지, 이 얼마나 값지고 고마운 일입니까? 그러니까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통해 가능 해진다고 하겠으며, 작은 일이라도 서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사하고, 내 이웃을 서로 아끼며 배려하는 작은 사랑의 삶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신앙공동체 생활에서 제 자신이 먼저 이웃을 배려하는 가운데 ‘서로’ 존중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요한복음서] 제10과 묵상과 생활 2. 당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의 발을 씻어 주고 느낌을 적으십시오. 오늘날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발을 씻기는 일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 묵상에 대한 복음 말씀으로 요한복음서 13장 1절에서 15절에 있는 내용을 다시 읽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14절에 있는 내용인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는 말씀에서 예수님의 겸손과 봉사의 의지, 그리고 섬기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벌써 50년이 넘는 결혼생활에서 아내의 발을 직접 씻겨준 일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던가를 생각해보면, 신혼 초기를 빼고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어제는 성경공부 과제를 해야 한다는 핑게로 간지러워 싫다고 하는 아내를 졸라 무릎을 꿇고 아내의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느낌이 어떠했느냐구요? 신혼 때에는 매끄럽고 보들보들하고 말랑말랑하던 자그마한 발이 이제는 거칠어지고, 뭐랄까 무지외반증으로 엄지발가락 옆 뼈가 튀어나와 아픈 것이 느껴져 내 가슴 한 켠이 멍멍해졌습니다. 아내의 발씻김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 오랜 세월 내 곁에서 묵묵히 나와 함께해준 아내가 한없이 고마웠습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밤(성목요일), 마지막 만찬을 집행하기 전의 미사 시간에 성직자들이 평신도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례 의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중 에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김으로써 가장 낮은 자리에서 ‘겸손’과 '섬기는 자세'를 보여준데서 비롯된 것으로 오늘날에는 교황님께서도 평신도의 발을 씻기는 의식 을 갖는다고 합니다. 저는 신부님께서 성주간의 목요일 미사 중에 이 세족례를 행하는 의식을 많이 보기는 하였으나, 저 자신이 신부님의 발씻김 대상이 된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만약 신부님께서 저의 발을 씻겨 주신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를 생각해 보기도 하였으나 오히려 민망함이 앞서기만 하였습니다. 가능하다고 하면, 전신자들이 발씻김 의식에 참여하여 섬기는 마음을 몸소 체득하게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혼자 해보았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존중해주기, 서로 반갑게 웃는 얼굴로 인사하기, 기쁜 마음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그런 일 자체가 어찌 보면 우리 교회의 발씻김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오늘날 가정이나 직장에서 발씻김에 해당하는 일은 무엇인가 를 생각해 보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겸손을 윗사람이 몸소 보여주는 ‘리더십’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을 통해서 ‘겸손’과 '섬김‘의 ’리더십'을 직접 보여주신 것으로 우리가 사랑받는 데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데 매진해라는 시사점을 제시해 주기도 합니다. 따라서 가정이나 직장에서 앞으로 지도자가 되어야 할 젊은이들 에게 ‘섬기는 일부터’ 체득하고 실천하도록 이끌어주는 지도자 훈련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야 그 젊은이들이 가정을 이끄는 일에서부터 직장이나 단체를 올바르게 이끄는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고, 이런 과정을 거쳐 미래의 멋지고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저 자신도 가정이나 사회, 그리고 신앙공동체에서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도록 주님께서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서] 제10과 묵상과 생활 3. 만일 당신과 함께하는 사람이 결국 당신을 배반할 것을 미리 알게 되면 당신은 그를 어떻게 대할 것 같습니까? 예수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십시오. 저는 이 묵상에 대한 복음 말씀으로 요한복음서 13장 26-27. 34-35. 37-38절에 있는 내용을 다시 읽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37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3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또는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27) 하고 말씀하셨 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에게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아마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자유 의지를 소중히 여기시고, 유다에게 자비를 베푸는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겠다던(37)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38)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아시고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다고 해서 이를 괴로워하지 말라는 측은지심의 마음, 사랑의 마음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1절)고 하신 것으로 보아 무조건 끝까지 사랑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34) 라는 새로운 계명으로 인간에게 사랑의 가르침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만일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결국 당신을 배반할 것 을 미리 알게 되면 당신은 그를 어떻게 대할 것 같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서로 사랑하여라’ 라고 하는 사랑의 계명을 다시 되새겨봅니다. 이와 함께, ‘인간관계론’, '자기관리론' 등의 저자로 유명한 미국의 데일 카네기 (Dale B.Carnegie, 1888~1955)가 한 말을 여기에 인용해 봅니다.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에서 ”절대로 비난, 비판, 불평을 하지말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는 상대방을 비난하고 싶은 것이나 비난을 싫어하는 것도 모두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비난으로는 사람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 니까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비난이 아니라, 신뢰, 즉 서로의 믿음이라 하였는 데, 신뢰가 서로 간에 충분히 쌓여 있다면 진심 어린 조언도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나를 배신하였다면 배신한 그 사람에 대해 비난하거나 무대응으로만 대처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혹시 나의 잘못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나를 배신한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기에 앞서 ‘우리의 신뢰 잔고(믿음)가 얼마 나 남아 있을까?’, ‘비난 인출(비난, 비판)을 해도 신뢰 잔고(믿음)가 여전히 남아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더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등과 같이 나에게 먼저 진지한 질문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필요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나를 배반한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하기 위해서 과연 나는 어떠한 노력을 하였는지, 그리고 그런 행동 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헤아려보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비난이나 비평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진심 어린 인정’과 ‘아낌없는 칭찬’일 것이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고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계명을 항상 실천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고촌 李璟煥 라파엘)
[기도 지향] ; 모든 지도자들을 위하여 * 주님, 저희가 '서로' 존중하고 섬기게 하소서. [일용할 양식]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13,1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3,34).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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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편집 : 西湖 李璟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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