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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만리포 - 당진 왜목마을 본문
한밤의 사진편지 제1620호 (12/4/2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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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U자걷기 제9구간 [군산 - 당진]
다섯째 날 후기 (12/4/13/금) 태안 만리포 - 당진 왜목마을 : 24Km
글, 편집, 음악 : 김태종 (한사모 편집위원장, tjongkim@paran.com ) 사진 :이창조 (한사모 홍보위원장 lc191@hanmail.net)
대한민국 U자 걷기 제 9구간 다섯째 날, 걷기 끝 날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구름이 없는 맑은 날이었다면 춘장대 와 무창포에서 보지 못했던 아침노을과 저녁노을(해넘이)의 아쉬웠던 마음을 끝날 이곳 만리포해수욕장에서는 달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만리포도 역시 아침까지 맑고 열린 하늘을 보여주지 않아 너무 아쉬웠습니다. 대천, 변산과 함께 서해안 3대 해수욕장이라는 이곳 만리포는 처음 와 보았습니다. 제가 나서 자란 고장이 순천이었기에 어렸을 때는 기차타고 어른들 따라 여수만성리해수욕장을, 전주에서 성장 할 때는 변산해수욕장을 그리고 서울에서 생활할 때는 동해안 하조대해수욕장과 망상해수욕장, 서해안 대천해수욕장을 가족과 함께 다녔기에 이곳은 처음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입소문으로 들었던 이곳의 아침과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더욱 기대했었나 봅니다.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접기로 했습니다. 흩어지는 바닷물안개 속 오늘 아침 만리포가 더 편안하고 포근해 보여서 더 좋았습니다. 지금은 햇님이 구름에 가려 기대했던 노을을 볼 수 없다하더라도 이곳 만리포의 아름다운 아침저녁노을은 구름 밖 저 너머에서 계속 빛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닷가 <수 비치케슬> 303호실에서 내려다보는 안개 낀 바다는 밝고 화사한 아침바다보다는 못하였지만 그런대로 봄 바다의 포근함을 아침 잔파도가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몇몇 회원님들은 해변을 거닐고 만리포사랑 노래비와 만리포예찬시비 만리포연가 앞에서 옛 사랑노래와 연가 시에 취한 듯 서 있기도 했습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것이 오늘 아침도 쌀쌀한 듯 했습니다. 저는 박경원의 만리포사랑을 10대 때부터 불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여름이 되고 바다를 찾아 해수욕장만 가면 만리포사랑을 불렀습니다. 만리포를 가보지 않았음에도 . . . ,
23세 때 발표한 이별의 인천항과 1957년(26세) 발표된 만리포사랑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으로 박경원은 국민가수의 반열에 올랐다고 합니다.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로 시작하는 가사는 여름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도록 했습니다.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 / 그립고 안타까워 울던 밤아 안녕히 / 희망의 꽃구름도 둥실둥실 춤춘다>
어쩐지 떠나면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고 포기할 수 없는 삶이 있음을 느끼게 하는 노래였습니다. 그 노래비 앞에서 지난 3월 26일 심장질환으로 타계(95세)한 작사자 반야월 옹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노래비가 주위경관과 조화로움을 잃은듯했고 그 옆 예찬시비 또한 어울리지 않게 보인 것은 저만의 생각이기를 바랬습니다.
아침을 먹으러 전주횟집으로 가면서 만리포연가 (시 박미라) 중 <멀어서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 마른 모래바람이 가슴을 쓸고 가는 날이면 / 만리포바다를 보러오시라> <파도소리 유난히 흑흑대는 밤이면 / 그대저린 가슴을 나도 앓는다> 는, <천 년 전에도 바다는 쪽빛이었다>는 만리포를 나이 더 들기 전 찾아오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아침을 먹는 전주횟집은 어제저녁 돼지삼겹살로 저녁을 했던 곳입니다. 바닷가 해변에서 돼지삼겹살을 구어 먹었던 것도 아마 U자 걷기 수많은 끼니 중 처음(?) 인 듯했습니다. 아침은 황태해장국이었습니다. 찬과 같이 나온 김을 잘게 찢어 국물에 넣어 말아 먹었더니 전주콩나물 밥을 먹은 듯 해 속이 시원했습니다. 음식 맛은 마음으로 먹고 느낀다 하더니 그러는 것 같았습니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아니라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고 마시면 되는데 괜히 맛을 탓하며 옆 사람의 입맛까지 망치게 하는 경우를 가끔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입맛이 전체의 입맛을 대표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찜찜함보다는 감사하며 맛있게 먹는 게 보약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전 중 함께 걷고 점심 후 떠나는 김민종 님은 "처음 참가 해 완주 하지 못하고 가게 되어 죄송하며 앞으로 한사모에 누가 되지 않는 회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소감을, 김소자 님은 “봄꽃님을 보지 못하고 떠남이 아쉽고, 함께 완주하지 못하고 떠남이 더욱 더 아쉽다”는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다른 날 보다 오늘 출발은 30분 늦습니다. 만리포에서 가까운 천리포수목원 개장시간 9시와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아침을 먹고 방에 와 뉴스속보를 듣는 순간, 이게 왠 일입니까! 7시 39분경 기어이 북한이 장거리로켓을 발사했다는 것입니다. 8시 10분 현재 성공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걸어야 합니다.
아직 새 움을 돋지 못해 갈색빛깔인 수 비치케슬 별관 앞 잔디밭에서 박찬도고문님의 칠십 중반답지 않은 힘찬 구령에 맞추어 국민보건체조를 열심히 했습니다. 체조가 끝나고 출발하려는데 웅성거림이 커졌습니다. 북한 장거리로켓발사 실패! 라는 것입니다. 무겁고 답답했던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8시 45분, 갈색잔디밭을 뒤로하고 만리포해수욕장 해변길로 들어섰습니다. 흐린 날씨가 마음을 무겁게 했으나 걷기에는 좋은 날씨였습니다. 하나가 좋으면 하나가 아쉽고 둘이 좋으면 하나의 염려가 생긴다 했으니 아쉬움은 접어버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며 걷기로 했습니다.
고운모래로 빚어진 은빛백사장을 뒤로하고 천리포로 향하는 도로에 올라선 순간, 중간대열이 흩어지면서 밝은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강아지 두 마리 백구가 어미 곁에 서서 짖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습니다. 너무 귀엽고 예쁜 강아지였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일찍 어디가십니까? 저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데려가 주세요.’ 하듯 꼬리치며 달려오는데 어미가 못 가게 말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사진 찍고 만져보느라 대열이 흐트러진 것이었습니다. 상쾌한 아침 출발이었습니다.
천리포수목원 밀러가든에 들어섰습니다. 9시 5분 두 반으로 나누어 입장했습니다. 첫 반은 수목원 해설사 이다연 님이 다른 반은 임현옥 님이 인도하며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임현옥 님이 인도하는 반이었습니다.
이곳 수목원을 만든 이는 1979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미국 출신의 민병갈(본명 칼 페리스 밀러 : 1921 - 2002) 씨로 45년 광복직후 24세의 미해군장교로 한국에 첫발을 디딘 이후 57년간 한국에 살면서 필생의 업으로 천리포수목원을 가꿨다고 합니다.
“전생에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 할 정도로 한국의 문화와 자연에 심취한 그는 1962년부터 부지를 매입하고 1970년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해 30년 만에 세계적 수준의 수목원을 일궈냈다는 것입니다. 이곳수목원이 보유한 식물종은 13,200여종으로 우리나라국립수목원보다 5,000종이 많다고 합니다.
약 1,000억원의 사재를 쏟아 부어 조성한 18만평(밀러가든:18,532평)규모의 천리포수목원을 가꾼 그는 이 수목원을 재단에 기부하고 2002년 4월 8일 81세를 일기로 숨졌다고 합니다. 평소 ‘숲은 나무를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며 “내가 죽으면 묘를 쓰지 말라. 묘 쓸 자리에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으라!” 했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서거 10주기를 맞는 지난 8일(일), 매장 돼있던 유해를 화장해 그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분홍색교배종 목련인 라스프베리 펀 나무 (민병갈 박사의 나무)아래 안치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제 9구간 U자걷기 출발 전날이었고 끝 날13일(금) 이곳 천리포수목원을 찾게 되어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음이 각별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뼛가루까지 사랑하는 나무들에게 바친 고인의 명복을 사순절장미가 함께 빌어주었습니다.
계절은 분명 봄이었으나 날씨는 아직 봄이 아니었습니다. 걷는 동안 내내 쌀쌀했고 꽃샘추위가 좀처럼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습니다. 봄철 다섯 번 째인 금년에도 평년보다 낮은 기온 탓에 작년처럼 봄꽃보기가 어려웠습니다.
4월 초순이면 대부분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개나리 진달래도 피고 중순무렵인 지금은 봄꽃귀부인 백목련이 하얗게 피어 옛 시간 속 아련함에 취하도록 했기에 국제목련학회가 인정한 세계최고의 목련수목원 이곳의 목련을 기대하고 왔었습니다. 400여종의 목련을 만날 수 있는 곳, 3월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비온디 목련부터 초겨울에 꽃이 피는 태산목까지 사시사철 각양각색의 목련을 감상할 수 있는 천리포수목원은 우리가 찾은 오늘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호랑가시나무 370여종류, 무궁화 250여종류, 동백나무 380여종류, 단풍나무 200여종류가 있는 이곳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철 따라 찾고 싶었습니다. 수생식물원, 수국원, 왜성침엽수원, 호랑가시나무원, 우드랜드, 마취목원, 자생식물원 등을 돌아보고 나왔습니다. 능수버들이 우리를 전송했습니다.
10시 10분, 서해안의 푸른 보석 천리포수목원을 떠납니다. 한 굽이 돌아서니 오른쪽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천리포수목원 생태교육관이 있었습니다. 아담하고 규모가 큰 아름다운 건물이었습니다.
천리포해수욕장입구로 들어섰습니다. 이곳은 원래 고기를 잡는 어항으로 막동(幕洞)이라 불러졌던 마을이었는데 만리포피서인파가 이곳까지 몰려들자 만리포(萬里浦)에 비해 해변이 짧아 천리포(千里浦)라 하였다는 것입니다. 만리포는 소원면 모항리이고 천리포는 소원면 의항리였습니다.
천리포를 지나 고갯길을 올랐습니다. 왼쪽으로 철망이 이어집니다. 오른쪽에도 철망이 이어집니다. 그 사이 고갯길을 오릅니다. 개방되지 않은 천리포수목원 관리지역입니다. 고갯길 중간산머리에서 쉬었습니다.
자연히 화제는 북한장거리로켓의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카카오톡을 열었습니다. 서울에서 지인이 ‘군산 앞바다에 떨어졌다는데 걷는 그 곳은 괜찮지요? 건투를 빕니다.’ 라는 염려를 전해 주었습니다. ‘무사! 왠지 기분이 좋음. 서울에서 뵙시다.’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송림이 이어집니다. 바다 쪽 산 쪽 모두가 초록빛깔 송림입니다. 한적한 산길입니다. 송림사이로 왼 쪽 저 아래 백리포해수욕장이 보입니다. 백리포로 들어가는 갈림길 앞에 500m라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백리포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귀를 간지럽게 울렸습니다. 자연은 그 파도소리 속에서 스스로를 찾아보도록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후미에서 정정균 님과 함께 이번 구간을 걸었습니다. 언제나 느껴 왔지만 천천히 걸을 때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느긋하게 걸으면서 빨리 걸으며 놓쳤던 들과 길가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잠깐 비추인 아침햇살 속 토해내는 풀잎의 애잔한 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평년에 비해 늦게 움트는 새싹 망울을 보고 틔움의 고통을 느꼈고 어렵게 움튼 잎 속 아름다움에서 피우기까지의 아픔을 더욱 더 느끼며 걸었습니다.
추운 꽃샘바람과 쏟아지는 빗방울 천둥우뢰 속에서 말없이 소명을 다하는 꽃잎들의 위대함에 존경하는 마음을 표하고 싶었고 어느 처지에 있던 불평불만 없는 자연의 너그러움에서 그들의 겸손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사진 : 태종. 촬영:스마트폰 <2012.4.9-4.12>]-
백리포를 감싸 도는 높은 곳 한가한 송림 길을 걸으며 걷기 때 마다 보여 지는 나 아닌 나를 또 볼 수 있었습니다. 얄팍한 허울과 편견이 이어지고 허례허식으로 뭉쳐진 몸과 마음을 자연은 말없이 스스로 알도록 알려주고 있었으나 이를 하나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또 다른 나를 보면서 걸었던 백리포 송림길이였습니다. 걸으니 삼거리가 나왔습니다.
방주골이라는 아주 큰 입간판 앞에서 쉬었습니다. 방주골은 백리포해수욕장의 옛 이름이고, 지금도 방주골해수욕장으로 더 소개되고 있는 송림사이 자연경관과 맑은바다, 고운모래가 일품인 해수욕장이라고 합니다.
만리포나 천리포에 비해 작은 곳이기에 백리포(百里浦)라 불러지고 천리포와 함께 소원면 의항리에 있습니다. 하늘은 흐렸습니다. 날씨는 아침보다는 풀렸습니다. 모두는 길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유머학교 허필수 교장님의 유머수업에 빠져들었습니다. <10대에서 80대까지 별칭> 30대가 장작불이면 80대는 불도 아닌 도깨비불이라나..., 등. <여자와 책> 남에게 빌려주면 틀림없이..., 등.
이어서 임병춘 님의 기타반주에 맞추어 다함께 노래 부르기가 있었습니다. <가슴아프게><고향의 봄><주제가>연습 등. 11시 30분 승차. 태안읍 남문리 소재 국일대반점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도중 이영균위원장님이 태안 서산지역의 특별한 음식 게국지를 먹으려 했으나 60여명을 수용할 식당이 없어 중국집으로 정했다는 안내를 하면서, 이 지방에서는 김장을 담글 때 게를 담아두었던 간장 또는 젓국물 그리고 소금에 살짝 저린 배추와 열무, 늙은 호박, 붉은 고추, 쪽파, 파, 마늘을 투가리에 넣어 찌개로 지져먹는 음식이 게국지라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국일대반점(국일반점태안점)은 내부에 홍등 등 소품을 오밀조밀하게 꾸며 중국 소도시 음식점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짜장면과 짬뽕을 반반 시켰기에 짜장면을 좋아하는 회원이 많아 일부는 좋아하는 짜장면을 양보하고 짬뽕을 먹는 배려를 베푸는 회원님도 있었습니다. 저는 원래 짬뽕을 좋아 해서 짬뽕을 먹었는데 해물이 든 내용물도 좋았고 맵싸하고 칼칼하며 시원한 맛도 좋아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항상 걷기 때 마다 한 끼는 중국음식이었기에 다른 맛을 즐기는 또 다른 재미가 있어 좋았습니다.
한옥의 기둥에 걸어 놓은 장식물 주련(柱聯)처럼 이집 창에 한시구절이 여러개 써 있었습니다. 그 중 회원님 간 오고간 이야기가 있었던 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번 쯤 되새겨 볼 글인 듯 했습니다. 오류가 있으면 바로 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君子之交淡若水 (군자지교담약수) : 군자의 사귐은 맑기가 물 같고 小人之交甘若水 (소인지교감약수) : 소인의 사귐은 달기가 단술과 같다. <출처:장자(山木편)> -[군자는 물과 같이 아무런 정이 없는 것 같은 정을 나누고, 소인은 달콤한 정을 나누어 마치 간이라도 빼어줄 듯 한다]- 近水樓臺先得月 (근수루대선득월) : 물가 누각에서 먼저 달을 보고 向陽花木而位春 (향양화목이위춘) : 양지쪽 꽃과 나무가 먼저 봄을 맞는다. <출처:송나라 유문표(淸夜彔)> -[낙하산 인사와 관련된 비유 어구 = 위치나 관계가 가까운 사람이 더 많은 덕을 본다.]-
1시 25분, 어제 저녁 사우나를 했던 곳 건너편에서 승차 한 후,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 삼길포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삼길포항은 국가어항이며 서산에서 가장 큰 포구로 우럭과 노래미가 많이 잡혀 매년 우럭축제가 열리는 곳입니다. 2시 15분, 삼길포항에서 걷기를 준비했습니다.
이게 웬 일입니까. 바람이 몹시 부는 것뿐만 아니라 기온이 급강하한 듯 매서운 칼바람이었습니다. 몸이 떨렸습니다. 그래도 가야합니다.
흐린 날이고 추웠기에 모두는 우의를 내어 입었습니다.
2시 25분, 걸었습니다. 대호방조제 둑길을 걸어야 합니다. 아래 길로 가는 것은 대형차량들의 질주로 피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배수갑문을 지나자마자 방조제둑방으로 올랐습니다. 세찬 칼바람이 몸을 뒤뚱거리게 했습니다.
방조제둑방길을 걷는다는 것은 바다한가운데를 걷는 것과 같았습니다. 몰아치는 바닷바람을 그대로 받으며 걷는 것입니다. 맞바람은 숨쉬기가 거북했습니다. 선두도 중간대열도 후미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무언으로 끌고 무언에 따르는 오직 따름만 있을 뿐입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묵묵히 앞만 보고 걷는 것입니다. 70노인들이 온몸으로 세찬 바람을 맞고 품고 안으며 그냥 걷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바보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보다 선배님들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걸음걸이는 저보다 훨씬 가볍게 보였습니다. 정말 바보들의 행진이었습니다. 후미에 서서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오려다 왠지 눈물이 먼저 났습니다. 울컥 가슴이 메어왔습니다. 바로 이것이 한사모의 품격이요, 위엄이며 모두가 지켜 나가야 할 한사모의 권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이런 한사모의 일원임이 자랑스러웠고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저에게 주어지고 있음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출발해서 걷는 동안 목디스크의 재발로 저려오는 팔의 아픔과 고통으로 두 손을 머리에 얹고 걸었던 5일 간인데 머리에 얹었던 두 팔을 내렸다가 다시 올린 후 가까워지는 도비도의 전망대를 바라보며 한사모의 위엄과 권위에 취해 걷고 또 걸었습니다.
제방 아랫길을 달리는 대형화물차가 둑방 위를 걷는 우리에게 격려의 경적을 울려주었습니다. 혹시 미친 사람들이 아닐까 하면서 울린 경적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계획보다 빨리 도비도휴식지점에 도착했습니다. 대호방조제의 반을 걸어온 것입니다. 대호방조제는 5년간(1981년~1985년) 공사 끝에 완공된 서산시 대산면 화곡리에서 당진군 석문면 교호리까지 이어진 2개소의 배수갑문이 있는 7.8Km의 방조제입니다. 쉬고 있는 동안 노련한 김영신사무국장님이 따뜻한 음료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싹쓸이해서 사가지고 왔으나 물량이 부족해 두 사람이 하나를 나누어 먹는 그 따뜻하고 따스했던 그 시간이 이제는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3시 20분 출발입니다. 배수갑문 뒤 무지개다리를 건너 당진화력발전소를 바라보며 방조제둑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빗방울이 들듯 해 마음이 조렸습니다. 시작처럼 말이 없었습니다. 방조제가 끝나는 지점에 당진전력문화홍보관이 있었습니다.
4시 30분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당진화력발전소는 환경친화경영으로 환경보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건설된 최첨단 핵심발전소로 현재 1-8호기가 4,000MW 설비용량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있으며 건설을 추진중인 8.9호기가 준공되면 설비용량 6,000MW로 세계적인 화력발전소가 된다고 합니다. 지역주민을 위해 발전소공원화로 당진군민의 숙원을 해소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5시 출발입니다. 좌측 한 줄로 종점 왜목마을을 향해 걷습니다. 팔을 뒤로 돌려 목에 걸치고 걸으며 이렇게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여러 회원님과 함께 걷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더욱 더 절실히 알게 되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내 몸이 보람된 몸으로 마음은 성취의 행복감으로 정화 되어 감을 어렴풋이 느끼며 자랑스러웠습니다.
종점 왜목마을 상징 견우직녀다리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대호방조제를 걸으며 보지 못했던 서해안의 저녁노을과 석양을 내일 아침 이곳 해오름이 그 아쉬움을 달래주기를 기대 해보았습니다.
5시 30분, 윤종영고문님이 견우직녀다리 위에서 제 9구간 완주를 축하하고 회원님의 건강과 임진각까지의 걷기 염원을 담아 만세 삼창을 하였습니다.
-“만세!”- 모두는 “만 만세!” -“만세!”- “만 만세!” -“만세!”- “만 만세!” 선창하고 제창했습니다.
반별로 축배를 높이 들었습니다. 축배구호도 각각이었습니다. 끝 날의 이 기쁨은 머리에 남는 기억이 아닌 마음에 남는 추억도 아닌 그리움이 되어 오래오래 가슴에 새기어지고 또 새기어질 것입니다.
왜목하우스모텔에 짐을 풀고 6시, 식당 태공수산 2층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녁메뉴는 생선회정식이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김영신사무국장님이 가져온 죠니워커골드(1리터)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 주었습니다.
허필수 회장님의 ‘우리는 간다! 임진각까지!’ 건배제의로 시작된 끝날 저녁은 1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즐겁고 유쾌한 만찬이었습니다.
소주처럼 맑은 영혼의 이야기들이 오갔고 막걸리처럼 텁텁한 사랑이야기도 오갔습니다. 맥주처럼 풍부하고 넉넉한 마음이야기에 황금빛깔 고급위스키가 어울리며 너그러움을 이야기하였더니 뽕주의 느긋함도 내내 이야기 되었습니다.
끝날 뒤풀이가 이창조 님의 동무생각 독창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한사모의 영원한 테너입니다. 이어서 이번 9구간 걷기 앞 뒤에서 이끌고 밀어준 회원님을 총괄지휘한 이영균위원장님이 소개했습니다. 황금철 님, 이경환 님, 정정균 님 그리고 동분서주한 이창조 님 그리고 본인과 저였습니다. 따라주신 회원님께 감사드리고 동요 ‘송아지’를 선사했습니다. 할미꽃하모니카앙상블 4조의 연주가 있었습니다. 이영례 님, 소정자 님, 오기진 님, 양정옥 님, 박정임 님 다섯분이 임병춘 님의 기타와 함께 ‘기러기’와 ‘허공’을 연주했습니다. 저녁마다 들었지만 6개원전의 할미꽃하모니카앙상블이 아니었습니다. 5일 동안 내내 전 연주를 기타로 뒷받침해준 임병춘 님께 많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제 8구간 걷기 때 발족된 ‘한구멍’ (한없이 나눔을 구하는 멍청이 모임) 이사장 이흥주 님과 사무총장 권영춘 님이 5개 부분에 걸친 시상을 해주었습니다.
처음 참가한 임병춘 님, 이정수 님, 김민종 님에게 신인희망상을 주었습니다.
김민종 님은 오후에 서울로 가셨기에 임병춘 님과 이정수 님의 소감이 있었는데 두 분 다 달변에 '늦게 참가하였음이 후회스럽다는 아쉬움과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한사모회원이 될 것'임을 선언했습니다. 두 분 모두 할미꽃하모니카앙상블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이어서 회원님 짐들을 정리하느라 매일 젖 먹던 힘까지 쏟은 화물팀에게 포터봉사상을 주었습니다. 이석용(반장)님, 이달희 님, 김재관 님, 박해평 님, 김창석 님 모두가 자원하여 봉사한 분들이었습니다. 답례로 동요 ‘자전거’를 불렀습니다.
하루 세 번 회원님을 위해 고생한 급식팀에게 배려봉사상을 주었습니다. 박정임(반장)님, 오기진 님, 이영례 님, 손귀연 님, 최경숙 님 이었습니다. 답례로 동요 ‘학교종’을 불렀습니다.
매일 저녁 연주를 해준 할미꽃하모니카앙상블 단원(20명) 모두에게 창조미래상을 주었습니다. 답례는 매일 저녁 연주로 대체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잉꼬부부상이 수여됐습니다. 출발 때 두 분이 연주했던 이영례 님의 ‘섬집아기’ 하모니카 반주에 맞추어 이규석 님이 개사한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개사된 가사내용은 첫날 후기에 있습니다.>
이날 수여된 5개부분의 상 시상품은 맛동산 과 오예스 등 스낵류였는데 시상품이 개봉될 때 마다 그 내용물에 박장대소였습니다.
끝으로 이번 구간 결산보고를 한구멍 사무총장 권영춘 님이 해주었습니다. 지난 가을은 3구좌(1구좌 1,000원)였는데 이번 봄은 21구좌(1구좌 1,000원)였고 금년 가을에도 변함없는 후원을 부탁한다 하였습니다. 이흥주 이사장님, 권영춘 사무총장님 감사합니다.
제 9구간 마침 마무리 인사로 함대표님은 “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따지지 말자” 는 당부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이어 임병춘 님의 기타반주로 ‘옛 시인의 노래’ 까지 불러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어 다함께 노래 부르기와 한사모의 주제가를 부르고 허필수회장님의 선창에 따라 만남을 모두가 합창한 뒤 걷기 끝날 뒤풀이를 마쳤습니다.
걷는 동안 매일 했던 뒤풀이에서 저의 부족한 진행에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을 통제하며 자제해 주신 회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훌륭한 사진을 제공해 주신 이창조 홍보위원장님과 함수곤 대표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왜목하우스모텔 506호실에 돌아와 홀가분한 마음으로 누어 저리고 아픈 팔을 주무르며 임진각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어보려고 깊은 잠을 청했습니다.
눈물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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