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궁궐지킴이

서천 춘장대해수욕장 - 보령 대천해수욕장 본문

아름다운 우리나라

서천 춘장대해수욕장 - 보령 대천해수욕장

불꽃緝熙 2012. 4. 19. 22:25

 

 

 

 

한밤의 사진편지    제1617호  (12/4/20/금)    

 

   

   함수곤의 블로그 '한밤의 사진편지'로 가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blog.daum.net/ham60/> 

<맨 아래 '표시하기' 클릭하면 '음악' 흐릅니다.> 

 

 

대한민국 U자 걷기 제 9구간( 군산-당진)

 

둘째 날 이야기(2012. 4.10.화)

(서천 춘장대 - 보령 대천. 27km)

 

 

 

글 : 김 영 자 레아(한사모 회원, 수필가 leayoung@hanmail.net)

사진 : 이 창 조 (홍보위원장 lc191@hanmail.net)

 

 

 

 

2012년 4월10일 화요일

대한민국 U자 걷기 제9구간 둘째 날 아침이었습니다.

 

낮 부터 약간의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맞을 듯

하늘이 낮게 내려 앉아 있었습니다.

 

식당으로 가기 위해 팬션을 나서는 회원들의 모습은

흐린 날씨와 상관 없다는 듯 밝았습니다.

 

이젠 비가와도 바람이 불어도,

그 것들로 인한 불편쯤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들입니다.

 

달인이 따로 없으며 도보꾼이란 명칭이 어색치 않습니다.

'산에 바다에 팬션'은 목조 건물이었습니다.

 

앞 마당은 넓은 잔디 밭이었으며 전면이 바다였습니다.

그 건물 아래 위층에 반 별로 나뉘어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아침 식사는 전날 저녁 식사를 했던 '동양 회 타운' 이었습니다.

된장찌개와 꽁치조림, 갓김치, 나물등

하루의 여독을 풀어주기에 적당한 메뉴였습니다.

 

답사팀의 노고가 감지되던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박찬도님의 힘찬 구령에 맞추어 준비 운동을 했습니다.

 

호명 되어지는 반 순서대로

질서 정연하게 걸어 달라는 이영균님의 당부 말을 들은 후

둘째 날의 출발을 서둘렀습니다.

 

06:00시 기상, 07:00시 식사, 08:00시 출발의 시간이 정확했습니다.

어느 한 사람도 이 공동체의 룰에 순명을 마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날은 서천 춘장대에서 보령의 대천해수욕장까지

총 27km를 오전 13km와 오후 14km로 나누어 걸어야 했습니다.

 

오전 8시 춘장대 해수욕장을 출발 607번 부사로 - 부사 방조제 -

장안해수욕장 - 무성골 삼거리 - 이청 삼거리 - 독산로 - 독산 사거리 - 동호식당 까지

약 3시간 30분.

 

점심 식사후 13:00 동호 식당을 출발

첫 삼거리에서 독산 해수욕장 - 독산로 -무창포 비체펠리스에서 좌회전 -

열린바다 1길 - 무창포 해수욕장 - 열린바다 2길 - 노을언덕, 죽도관광지 -

또 다시 남포방조제 윗길 - 남포교 - 대천해수욕장 -무창포 비체펠리스 까지

오후14km 약 3시간 40분.

 

 

솔 숲과 논 밭을 낀 607번 부사로를 걸어

드디어 부사 방조제에 도착했습니다.

 

서해 바다를 양 옆으로 3km의 방조제가

흐릿한 하늘과 맞 닿아 바다를 품안에 안듯

둥그렇게 뻗어 있었습니다.

 

하루, 반을 걸어 새만금을 완주했던 우리들이었습니다.

비록 1시간 거리의 방조제 일지라도

인간 앞에서의 그 거대함은 새만금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땅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리와 만, 그리고 길이 있습니다.

그 것들 앞에서 인간은

위대하기도 나약하기도 한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방파제 위를 걷는 우리들 시야엔

회색 빛갈의 하늘과 바다, 거센 바람이 불었으며

파도에 흔들리는 부표들과 섬 처럼 떠 있는 산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곧 빗방울이 떨어질듯 하늘이 무겁게 내려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삼삼오오 무리지어 걸어가는 방파제 위로

거리의 악사 김창석님의 하모니카 선율이 바람에 흩날렸습니다.

 

그 에 맞춰 <내고향 남쪽바다>가 합창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또한 영국의 혼례와 장례 문화에 대한 정인자님과의 대화가

'무작정 좋기만 하다' 며 즐거워 하던 이영례님의 이야기가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함께 방파제 위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명 연주가 아닌들, 아름다운 화음이 아닌들

또한 얼굴 붉히는 농짓거리인들,..

하늘과 바람과 바다가 어우러져 하늘을 떠도는 그 하모니를

어찌 아름답다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오전 9:00 방파제 위에서의 첫번 휴식 시간입니다.

각 조별 사진 촬영으로 발자취를 남겨야 합니다.

 

비록 바람에 흩 날려 흐터러진 모습일지라도

모두들 아름답습니다.

행복이 무르익어갑니다.

 

 

 

방파제 아래 좌측 2차선 부사로 위에 보령시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우측으론 드넓은 서해가 하늘과 맞닿아 있었으며

곧 빗방울이 떨어질듯 했습니다.

 

그러나 철썩거리며 부딪쳐오는 잔잔한 파도소리가

저물어 가는 우리들의 정서를 흔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파도소리는 노년의 황혼을 젊은 소녀의 가슴으로 만들어준다'

순간의 모든 정서를 놓치지 않으려 기록에 여념이 없는

필자에게 다가와 했던 김태종님의 귓속 말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도 그랬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비록 장수 시대라 할지라도 앞이 멀지 않은 우리들입니다.

이젠 비울 마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저 허허 실실 즐거워해야 할 일만 남았습니다.

 

기분이 들 뜬 들 대수롭지 않습니다.

절대 수위를 넘지 않으리란 내공을 우리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쉼터였던 부사 방조제를 출발

장안 해수욕장 앞을 거쳐 무성골 삼거리를 지나고 있습니다.

잠시 후 좌회전해야 합니다.

 

드디어 예측했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옷,우산을 들고 또 다시 부사로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양 옆의 길 가에 뼈대만 앙상한 백일홍이 심어져 있었으며

대나무 숲과 솔숲, 흙을 뒤 엎어 놓은 텅 빈 밭

파아란 마늘 잎이 생기를 찾은듯 했습니다.

 

또한 보라 빛갈의 별 꽃 무리와 마른 억새가

촉촉히 젖어 들고 있었습니다.

 

 

생동감 넘치는 대지가 말끔합니다.

정겹고 싱그럽습니다.

 

 

이청 삼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10시 10분 두번째 쉼터였습니다.

 

곧 독산로를 걸어 황교 보건 진료소 앞을 지나

독산 사거리까지 약 4km를 걸어야 합니다.

둘 째 날 오전의 몸은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기능이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오후 쯤이래야 비로서 정상으로 돌아올것입니다.

그러매도 회원들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이젠 완전한 도보꾼의 체질이 된듯했습니다.

 

독산 사거리에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한

'동호 식당'으로 가기 위해 뻐스를 탔습니다.

예정보다 30여분 일찍 도착 한 시간이었으나

끊임없이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1시 이전에 도착할 듯했습니다.

세번째 쉼터는 그곳이 되리란 짐작이었습니다.

 

 

독산사거리에서 2km 떨어져있는 동호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시계가 11:1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버스를 내려서자 드넓은 갯벌과 그 갯벌 너머 아득히

바다가 우리들 앞에 펼쳐졌습니다.

 

비를 맞으며 조개를 잡는 여인들도 간간 보였습니다.

동호식당은 독산 삼거리의 막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길에서 내려 앉은 허름한 이 집이

독산해수욕장과 독산 삼거리의 끝에 맡 닿아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절묘한 위치의 이 집 앞에서

포구인가? 곶 인가? 를 놓고 의문스러워 했습니다.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던 우리들은 남은 30여분을 기다려야했습니다.

식사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비를 피해 세개의 방으로 나뉘어 들어 앉았습니다.

한 개의 방에 여자들이 빼꼭이 들어찼으며

남은 두 방은 남자들 차지였습니다.

 

바닷가의 편안한 쉼터를

지나쳐 버릴 우리가 아니었습니다.

 

임병춘님의 기타 반주에 힘을 얻은 여인들의 끼가 때를 만난 듯

합창소리가 갯벌을 흔들며 바다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트롯,동요,팝,...

장르를 넘나드는 님들의 예지는 젊음이 무색할 정도였으며

참으로 못말리는 그 들이었습니다.

 

 

옆 방에선

김동식 고문님과 김태종,김성기님들의

경주 김씨와 청주 김씨의 내력에 대한 갑론이 항창이었으며,

 

또 다른 방에선

남자들의 짙은 외설과 농짓거리가 담긴 구수한 입담이 한창이었습니다.

 

허술하기 짝 없는 처마에선 끊임없이 빗물이 흘러 내렸으며

방에서 쏟아져 나오던 웃음소리와 노래소리가

굿은 빗속으로 흘러 들었습니다.

 

또한 닭이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가 허기를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처마 끝에서 바라보는 갯벌은

여전히 회색 빛갈의 하늘과 맞 닿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는 곳 그칠 것이며

또다시 태양은 떠오를 것입니다.

우리네 삶이 그래왔듯,...

 

 

기다리던 점심 시간이었습니다.

'9구간 완수하자'

이흥주 고문님의 건배로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넓고 화려한 식당이 아닐지라도

토종 닭 도리탕으로 유명하다는 말이 무색치 않았습니다.

 

고추무침과 조개젖, 굴 무침,꼬막 등의 반찬에서

식당 주인의 손맛과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좋은 먹거리와 편안한 쉼터 넉넉한 인심만한 행운이 또 있을까요.

 

그 행운을 마련해 주신

'동호식당' 사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구간의 봉사팀들이 커피를 준비 하느라 바쁩니다.

닭고기를 먹은 후의 커피 한잔이 얼마나 달콤한지요,..^^

 

회원들의 불편을 돕느라 애쓰시는 님들

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편안히 앉아 먹고 마시며 걷고 있습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출발전, 답사팀이 선정한 좋은 길 코스가 오후의 일정이며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은 해변 길이기에 더욱 좋은 길이라는

이경환님의 말을 듣고 우리는 오후 1시에 출발했습니다.

 

여전히 비는 오락가락 하고 있었습니다.

 

 

동호식당을 출발,

열린 바다로와 독산로를 걸어

1시 30분 무창포 해수욕장에 도착했습니다.

 

저녁 숙소인 '비체펠리스'가

그 위용을 자랑하며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그 앞을 지나쳐 걷고 또 걸어 저녁에 다시 돌아와야 할

그 건물 앞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오후 첫 쉼터였던 '비체펠리스' 앞에서

10분간 쉰 후 또 다시 출발이었습니다.

 

또 다시 열린바다 1길과 2길,

그리고 남포방조제와 노을 언덕을 걸어

무창포에 위치한 저녁 숙소로 돌아올 예정이었습니다.

 

 

2시경 우리는 무창포를 지나 대천해수욕장으로 들어섰습니다.

드넓은 모래사장과 갯벌,저 멀리 등대와 방파제

그리고 그 초입에 굽은 돌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시 도도하고 강해 보였던 동해에 비해

어머니의 품 같은 바다가 서해 임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스치듯 지나치곤 했던 바다 속의 돌담이

고기를 잡기 위한 그 물망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그 돌담은 '독살'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밀물과 함께 따라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에 빠져 나가지 못하게 돌을 쌓아 놓은 그물 망 대용이었습니다.

 

어리석은 물고기가 신나게 밀려 들어 왔다가

꼼짝 못하고 갇히게 되는 그 '독살'.

인간은 참으로 지헤롭기도, 영악하기도 합니다.

 

무궁한 세월에서 터득 되어 졌을

그 어촌의 문화가 존경스럽기도 했습니다.

 

 

해변의 풍경들 앞에서 사진이 빠질 수 없었습니다.

모래 언덕에 모여 포즈를 취했습니다.

 

 

사진 촬영 후 횟집이 즐비한 해변 길로 들어섰습니다.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코끗을 스쳤습니다.

 

뒤에 쳐저있던 필자의 귀에

등대횟집 앞에서 왁자한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느새 알고 반갑게 달려 나온 횟집 주방장과 젊은 접대 여인이

일행 속으로 춤을 추며 끼어 들고있었습니다.

 

덩달아 함께 즐거워 하며 맞장구 치던 회원들과 어우러지며

터져 나오던 낭자한 웃음 소리였습니다.

 

이 집에서 저녁과 아침을 먹기로 예약되어 있었습니다.

답사팀이 그 여인의 몸짓과 해맑은 웃음에 넘어가지 않았을까,..

 

막연히 생각했던 사실을

김영신 사무국장님의 고백으로 뒤에 알았습니다.

 

어쨋던 웃음과 농 지거리를 길바닥에 깔며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던

그 날의 그 한 때가 리얼리즘 화가의 그림 한 점 인냥 기억에 남을 듯 했습니다.

 

 

해변 길을 걸어 노을 언덕으로 들어섰습니다.

'쩐의 전쟁' 영화 촬영지란 표시와

제법 깔끔한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비에 젖긴 했으나

잠시의 쉼터 구실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오후 3시 10분 세번째 쉼터인 죽도 관광지였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쉬고 남포방조제를 향해 떠나야 합니다.

 

 

세번째 쉼터인 죽도관광지를 출발 남포 방조제 윗길을 걸었습니다.

 

방조제 전체의 길이가 3.2km였으나 우리는 2.4km 지점에서 내려와

남포교를 건너 오늘의 종착점 한화콘도 앞에 도착 예정이었습니다.

 

몸이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불던 방파제 였으나

입구엔 요트경기장 표지석과 돌로 만든 인어공주 상

그리고 표지석에 새겨진 윤선도(1587-1671)의

'오우가' 글귀가 우리를 맞고 있었습니다.

 

풍랑에 온 몸을 맏긴 하얀 요트 들이

닷을 달고 바다에 떠 있었으며

씨멘트로 만든 방파제가 즐비했습니다.

 

그 방조제 위를 걸으며 바라보던 바다 위를

탁한 목소리로 내지르던 어느 록커의 <바람과 나>

노래 한 소절이 흩 날리는듯했습니다.

오후 4시경 우리는 그 곳을 내려왔습니다.

 

 

남포방조제를 내려와

대천 해수욕장으로 직진 갓배 교차로에서

좌측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멀리 마을이 보였으며 그 뒤로 오르막 길 양 옆으로 소나무 숲 이 정겨웠습니다.

그 사이에 제법 규모있게 마을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 마을을 거쳐 소나무 숲 길 양옆으로

충남대학교 임해 수련원과 서울 특별시 학생 교육원, 대천 임해 교육원

대천 경찰관 수련원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 고개마루에 올라서니 대천 해수욕장이었습니다.

 

 

 

오후 5:00  우리들은

그 곳에 위치한 한화콘도 앞에서 버스에 올라

10여분 후, 오늘의 숙소인 비체펠리스에 도착했습니다.

 

로비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정겹고 기분좋았습니다.

하얀 순면 이부자리와 넓고 정갈하며 전면이 모두 바다를 볼 수 있는

서해안 최고의 명품 콘도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며

 

필자에겐 특별히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별로 나뉘어 객실 키를 받은 후

싸우나, 식당의 순으로 이동했습니다.

 

 

품격을 갖춘 숙소에 여장을 풀었으며

그 건물 사우나에서 비에 젖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그런 후 저녁 7시, 또 다시 '등대 횟집'에 도착했습니다.

'대한민국 U자 걷기 참가 회원일동 환영'이라 쓴 현수막이

한쪽 벽 면을 찾이 하고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반 별로 앉은 식탁엔 이미 커다란 접시에 담긴 생선회와

갖가지의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으며

권영춘님이 가져온 뽕주가 나와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의 건배 제의는 김동식 고문님 차례였습니다.

"한사모 아자자

아자자 한사모"

 

고문님과 우리들이 서로 주고 받는 건배사가 우렁찼습니다.

술 잔을 부딛는 소리가 시끌벅적 했습니다.

 

생선회 외에 아구간,산낙지,생선탕수 등

즉석에서 한 가지씩 만들어 써빙 되던 음식들과 함께

우리들은 뽕주를 권하며 저녁의 한 때가 무르익어갔습니다.

 

 

포만감으로 느긋해질 무렵

허필수 개그 교실이 열렸습니다.

 

'벌거벗은 아내'

'김삿갓과 처녀 뱃사공'

'의리가 좋은 친구들'

'암탉이 울면 알이나 낳지

숫탉이 울면 날만 새드라

가는 말이 거칠어야 오는 말이 곱다.

개천이 오염되어 마꾸라지도 안나온다.

콩으로 메주를 쑤어도 안 믿는다.

메주를 쑤어 봤어야 알지'

 

현대인들의 맹점을 꼬집는 해학과 위트로

폭소로 식당이 떠나 갈 듯했습니다.

 

소화제가 따로 없습니다

'공존의 아름다움을 추구할떄 각자의 삶이 빛난다'

 

허필수 교장 선생님

피로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개그로

우리를 웃기시는 님을 두고 한 말 아닐런지요

고맙습니다.

 

 

좋은 음식과,분위기에 취해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습니다.

마지막 프로그램인 하모니카 연주에 앞서,

 

오늘의 숙소를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엄명애 님과

과일과 맥주 등을 매 구간마다 잊지않고 보내주시는 성태제 님께

박수로 고마움을 표시 하자는 김영신님의 말씀에 이어

 

김태종님의 사회로

할미꽃 하모니카 앙상블 연주시간으로 들어갔습니다.

 

 

둘째 날 저녁은 여자 1반 차례였습니다.

 

<가슴아프게>와 <오빠생각>을

하모니카 A 마이너와 옥타브, 트레물러 연주했으며

앵콜 송으로 <섬집아기>가 연주되었습니다.

 

임병춘님의 키타 반주와 함께 연주 되었던

앙상블의 하모니가 놀라웠습니다.

 

'1%의 가능성이라 해도 꿈을 갖어라' 했던 어느 문호의 말이 적중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온 우리의 할미꽃 앙상블이었음을

이 저녁 거듭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평생을 살아온 우리들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삶의 기쁨이

가치 있는 삶을 만든다는 것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할미꽃 앙상블의 빛나는 발전에

혼신의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이유였습니다.

님들 그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곧 이어

한구멍(한없이 나눔을 구하는 멍청이들의 모임)이사장

이흥주 고문님의 노래 <갈대의 순정>이 이어졌습니다.

 

70 중반을 넘어선 님의 목소리가 젊은이 못지 않았습니다.

몇몇 고문님들과 함께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어 주셨던 님의 노래에

우리들은 온 마음으로 어우러지며 둘째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임병춘님의 기타반주와

김민종님의 하모니카 독주<선구자>가 연주되었습니다.

 

할미꽃 하모니카 앙상블의 남자 단원들 활약과 실력에

거듭 놀랐으며 김민종님의 독주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생은 혼자 가는 길이며 혼자 걸어 깨달아야 할 고독한 길이라 했습니다.

또한 함께 걸어가는 것이며 함께 피는 안개꽃 이라고도 했습니다.

 

할미꽃 앙상블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던

임병춘님과 키타 연주가 곳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한사모를 위해 앞으로 많은 기여를 해주실 두 분께

우리들은 큰 박수를 보내며 화답을 했습니다.

 

 

저녁 9시였습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일정을 끝내야 합니다.

 

이영균 운영위원장의

하루를 마무리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공짜로 머리를 깎아 주는 이발소 주인에게

꽃장수는 꽃다발과 편지를 보내왔으며, 빵장수는 빵을 보냈으나,

 

국회의원을 공짜로 깎아주었더니 다음 날 아침,

놀랍게도 열두명의 국회의원이 이발소 문앞에 줄을 서있더라는 유머에

우리는 그만 폭소를 터뜨리며 뒤로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아기 기져귀와 국회의원은 자주 갈아야 한다' 했던

이영균 운영위원장의 말이 기억납니다.'

 

"이번 제9구간의 백미 안면도가 다음 날의 일정이다.

배를 탈 예정이었으나

간만의 차와 시 차 관계로 못타게 되었다.

안면도 최 남단 까지 2시간 정도 버스로 이동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날의 일정을 1시간 당겨서 출발할 예정이다."

 

이영균님의 준비 사항과 인사를 끝으로

둘째 날의 모든 일정을 끝냈습니다.

선두와 후미에서 애쓰셨던 대표님과 운영위원님들

그리고 모든 봉사자님들 고맙습니다.

 

 


비발디 / 사계 중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