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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제9과 "배움"-[1] 본문
사도행전 제9과 “차례로 거쳐 가면서”
- 바오로의 3차 선교 여행과 체포 -
1. 아폴로의 선교(18,24-28)
2. 에페소에서 선교하는 바오로(19,1-20)
3. 에페소에서 일어난 소동(19,21-40)
4. 예루살렘을 향하여(20,1-16)
5. 바오로의 작별 이야기(20,17-38)
6. 바오로의 운명에 대한 예언(21,1-14)
7. 예루살렘 지도자들과 만난 바오로(21,15-26)
8.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오로(21,27-40)
9. 그 도시에서 한 바오로의 연설(22,1-29)
사도행전 제9과 "배움"-[1]
1) 바오로의 1-3차 선교여행(13,4-14,28: 15,36-18,22; 18,23-21,16)의 동반자와 여행 경로를 성경 지도에서 찾아보며
방문한 순서대로 장소 이름을 적어 봅시다.
바오로가 많은 난관을 무릅쓰고 고통과 위험이 따르는 선교 여행을 다시 시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18,23; 15,36)
<바오로 사도의 1차 선교 여행 : AD 46-48년경>
1차 선교 여행에서 바오로는 성령께서 파견하신 바르나바와 사울과 함께 안티오키아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셀레우키아, 바르나바의 고향 키프로스의 살라미와 파포스, 팜피리아의 페르게,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이코니온, 리스트라, 데르베 등을 거치면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1차 선교 여행을 마친 바오로 일행은 아탈리아와 셀레우키아를 거쳐 안티오키아로 돌아왔습니다. 그후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2차 선교 여행 : AD 50-52년경 >
그리스도를 믿게 된 다른 민족 사람들이 율법의 규정을 지켜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로 예루살렘에서 사도 회의가 열립니다.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필수 사항 외에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한 사도 회의의 결정을 가지고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로 돌아가 2차 선교 여행을 시작합니다.
바오로는 복음을 전한 고을들을 다시 방문하려고 하는데, 마르코를 데려가는 문제로 바르나바와 갈라서게 됩니다. 바르나바는 마르코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떠났고, 바오로는 실라스와 함께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안티오키아에서 타르수스와 데르베를 거쳐 리스트라로 갔는데, 그곳에서 티모테오를 만나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를 거쳐 트로아스에서 바오로는 환시를 보고 사모트라케에서 마케도니아로 넘어가서 네아폴리스, 필리피, 암피폴리스, 아폴로니아, 테살로니카, 베로이카, 아테네, 코린토 등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에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바오로는 곳곳에 있는 유다인들의 회당에서도 복음을 선포하였지만, 하느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종교심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알렸습니다. 바오로는 아시아의 에페소로 건너갔다가 카이사리아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에 인사한 다음 안티오키아로 돌아왔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3차 선교 여행 : AD 53-58년경 >
바오로 일행은 1, 2차 선교지인 갈라티아 지방을 돌아본 후, 2차 선교여행 기간에 성령께서 막으셔서 선교활동을 펼칠 수 없었던 (사도16,6) 소아시아의 수도 에페소로 갑니다. 에페소는 2차 선교여행 말미에 잠시 들러 프리스킬라, 아퀼라 부부를 남겨두고 훗날을 기약하며 떠나온 곳이기도 합니다.(사도18,18-21)
이곳에서 27개월간 머무르며 선교활동을 펼치고 나서, 바오로 사도는 2차 선교여행지였던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방문하여 코린토에서 3개월을 지냅니다.
돌아올 때에는 유대인이 바오로를 해칠 음모를 꾸민다는 소식에, 배를 타고 시리아로 바로 가지 못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마케도니아를 거쳐 트로아스에 도착하여 일주일을 지낸 뒤, 밀레토스로 가서 에페소의 원로들을 만나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시리아의 티로, 프톨레마이스, 카이사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예루살렘에서 야고보의 권고에 따라 서원을 한 네 사람의 정결 예식에 참여하기 위해 성전에 있던 바오로는, 유다인들이 선동한 군중에 의해 폭행당하고 죽임을 당할 위험에 처했다가, 이를 전해들은 로마주둔군의 개입으로 목숨을 구하고 이들에게 체포됩니다.
<바오로 사도의 로마 선교 : AD 58-63년경 >
유다인들이 몰래 해치려는 음모를 피해 바오로는 총독이 있는 카이사리아로 호송되고, 따라온 유다인들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펠리스 총독이 있는 2년 동안 바오로는 비교적 자유로운 감옥 생활을 합니다.
총독이 바뀌자 유다인들은 바오로를 죽일 속셈으로 그를 다시 고발하며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페스투스 총독에게 청원하였으나, 결국 바오로가 황제에게 상소함에 따라 로마로의 호송길에 오릅니다.
배를 타고 로마로 가는 도중 폭풍을 만나 길을 잃고 좌초했으나 바오로의 권고와 격려로 모두 몰타라는 섬에 무사히 내리게 됩니다. 바오로는 몰타섬에서 여러 이적을 행하며 석 달을 지낸 후 다른 배를 타고 로마에 도착합니다.
로마에서 자신을 지키는 군사 한 사람과 따로 지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바오로는, 그의 소원대로 자신의 셋집에서 2년을 보내며 로마에서의 선교활동을 펼칩니다.
* 바오로가 많은 난관을 무릅쓰고 고통과 위험이 따르는 선교 여행을 다시 시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18,23; 15,36)
☛ (사도 18,23)
22 바오로는 카이사리아에 내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에 인사한 다음, 안티오키아로 내려갔다.
23 바오로는 그곳에서 얼마 동안 지낸 뒤 다시 길을 떠나,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사도 15,36) : 36 며칠 뒤에 바오로가 바르나바에게, "자,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한 모든 고을로 형제들을 찾아가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 사도 18,23; 15,36을 보면, 사도 18,23에서는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고 하였으며, 사도 15,36에서도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한 모든 고을로 형제들을 찾아가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펴봅시다.”라고 말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오로가 많은 난관을 무릅쓰고 고통과 위험이 따르는 선교 여행을 다시 시작한 이유는 갈라티아와 프리기아 지역에 세워진 기존 교회들을 돌아보며 제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바오로의 뜻은 새로운 선교지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첫 선교 여행 때 세운 교회 공동체로 다시 찾아가서 튼튼히 하자는 의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고촌 성당 : 이경환 라파엘)
* 편집 : 西湖 李璟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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