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궁궐지킴이
사도행전 제8과 묵상과 생활 본문
제가 쓴 내용이 여러분의 성경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특히, '묵상과 생활'의 경우에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정리해 보세요.
- 서호 이경환 라파엘(고촌 본당) 드림
사도행전 제8과 묵상과 생활
1) 바오로는 ‘현시’라는 특별한 체험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16,6-10). 하느님께서 나에게는 어떤 방법으로 당신의 뜻을 알려 주시는지 묵상합시다.
저는 사도 16,6-10에 있는 말씀을 읽으며, 바오로 사도가 ‘현시’라는 특별한 체험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됨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케도니아에 관한 환시를 보다(사도 16,6-10)
6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7 그리고 미시아에 이르러 비티니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8 그리하여 미시아를 지나 트로아스로 내려갔다.
9 그런데 어느 날 밤 바오로가 환시를 보았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오로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것이었다.
10 바오로가 그 환시를 보고 난 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았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저는 꿈에 누가 나타나 깨우침을 준 경험이나 하느님께서 현시하시는 것을 현실로 당장 체험한 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현시는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언제나 가까이 나타나 하느님께서 늘 보여 주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하느님의 그 계시를 미쳐 깨닫지도, 알아듣지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내 자신의 무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해가 비추어 식물이 자라고, 밤과 낮이 있어 내가 일하거나 쉬게 하는 은총도 내려주시는 이 모든 세상을 살아가는 창조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느님은 언제나 성령으로 내려오시어 내 인생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신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나는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리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저는 언제부터인지는 분명치는 않지만, 젊은 시절부터 누군가가 나를 보살피거나 도와주고 계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어떤 계획을 수립하여 일을 추진해 나갈 때, 높은 곳에 계신 분이 도와주셔서 날씨도 맑게 해주시고, 추진하는 일도 아무 탈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게 해주심을 접해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고 기도한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았으나, 높은 곳에 계신 분의 도움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바로 하느님의 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저는 가정에서 감사기도를 드리거나, 성당에 나가 성체조배를 하거나, 미사를 드릴 때 그 미사 안에서 언제나 그리스도의 현존하심을 볼 수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저 혼자 기도하거나 둘이나 셋이 모여 기도하는 곳에도 항상 함께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는 기도하고 찬양할 때 그 한가운데서 나와 함께, 또 우리와 함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며 기도하고 계신다고 배웠습니다.
특히, 성당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가 미사를 집전할 때 사제의 인격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고 계시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은 축성된 빵과 포도주 안에 현존하시며,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우리를 살찌우시며, 하느님 앞에 합당한 모습이 되도록 나와 우리를 변화시켜 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가 미사에 참여하면서 나의 죄와 잘못을 고백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한 후 거룩한 주님을 만나는 이러한 방법으로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당신의 뜻을 알려 주시고, 나 자신도 함께 거룩하게 되는 것임을 알려준다고 믿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서 늘 나와 함께 계시며, 하느님을 경배하는 미사 안에서 현존하시면서 나를 돌보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우리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가 거룩한 주님을 닮아 구원의 역사에 함께 참여하도록 초대하고 계시지만, 아직도 이를 미쳐 깨닫지 못하는 바보스런 내가 거룩하고 높으신 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언제나 저를 돌보고 계시지만, 아직도 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바보스러운 제가 거룩한 당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늘 저와 함께 계시며 현존하시는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아멘!”
2) 바오로는 선교하면서도 스스로 일을 했습니다(18,3; 20,34; 참조 2테살 3,8-12). 왜 그가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사도 18,3; 20,34에 있는 말씀을 읽으며, 바오로 사도가 선교활동을 하면서도 왜 일을 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18,3. 마침 생업이 같아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였다. 천막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생업이었다.
20,34.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2테살 3,8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9.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0.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11. 그런데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12.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시대와 장소에 따라 노동의 사회적 지위와 이해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로 육체노동을 경시하는 풍조는 아마도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일반적인 시각이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동(일)을 통하여 인류가 생존하며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지닌 빈부격차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이 스스로 일하는 노동의 댓가로 살아가는 것은 일의 보람이고, 일의 기쁨이지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닌 것입니다.
저의 경우, 제가 평생을 일한 노동 그 자체는 참으로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우리 아이들에게 가끔 이야기해 주곤 합니다. 노동이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던 그것은 상관없는 일이지요. 내가 한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그것을 남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세와 태도는 바로 그가 한 일에 대한 평생의 사랑이고 기쁨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하고 기도하라”는 성 베네딕도(480-547)의 가르침에 따라 베네딕도 수도원에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글귀가 쓰여져 있다고 합니다. 정교회 및 동방교회에서 특히 존경하는 성인 요한 크리소스토무스(349-407)는 일하는 사람은 행동에서건 말에서건 불필요한 것을 성급히 취하지 않으므로, 손으로 일해 먹고 사는 사람들을 경멸하지 말고 바로 이런 이유로 복된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사도 18,3; 20,34의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며 그들과 함께 지냈으며, 필요한 것은 두 손으로 일을 하며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였는지는 또한 2테살 3,8-12의 내용에 그 까닭이 자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다”,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고 지시하였으며,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라는 내용으로 보아 사도바오로는 그렇게 노동으로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성경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바오로 사도와 같이 바쁘게 말씀 선포에 종사하지도 않으면서도 신성한 육체노동을 피하며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는 내용은 2테살 3,10에 나타난 말씀으로,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고 묵묵히 일이나 하라"는 뜻이었으나, 훗날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 불로소득자는 먹고 살 자격도 없다"는 의미로 변형되어 자본가를 비판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요지음도 노동자나 민중의 단결을 호소하는 집회 현장이나 농성 현장, 특히 본사 앞 천막 농성 자리에서 이와 관련된 노래나 구호를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 보람있는 일을 하며 그 댓가로 얻는 기쁨을 노래하고 기도하며, 내가 한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 열성을 다해 말씀을 받아들이고 성경을 연구하여 믿게 된 베로이아 사람들(17,11-12)에 비추어 보며, 나는 믿음의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저는 사도 17,11-12에 있는 말씀을 읽으며, 열성을 다해 말씀을 받아들이고 성경을 연구하여 믿게 된 베로이아 사람들에 비추어 보며, 나는 믿음의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17,11. 그곳 유다인들은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보다 점잖아서 말씀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
12.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믿게 되었다. 지체 높은 그리스 여자들과 남자들 가운데에서도 믿게 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사도 17,11-12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베로이아 유다인들은 “말씀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고하였으며, “그들 가운데 많은 이와 지체 높은 그리스 여자들과 남자들 가운데에서도 믿게 된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믿음의 성장은 신학이나 학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의 믿음을 견고히 하기 위해서는 신학이나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성경공부를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성경공부를 할 새도 없었으며, 정년 퇴임 후 카토릭대학에 가서 신학공부나 교리공부를 하고 싶어 찾아갔으나 세례도 받고 견진도 받은 후에 다시 오라는 말씀에 그만 두고, 당시의 여러 가지 봉사활동에 매달려 보기도 하였습니다. 나지막한 언덕에 조용히 자리잡은 아름다운 고촌 성당에 찾아와 이제 세례와 견진 성사의 은총을 받고 말씀의 봉사자와 함께 주1회 그룹공부 형태로 성경을 공부하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주님의 크신 은총이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 19로 인한 중단도 있었으나, 2번의 성서 40주간을 비롯하여 해마다 창세기, 탈출기, 마르코복음서, 요한복음서, 사도행전까지 7년 동안 고촌 형제자매들의 도움으로 성경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이고,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는 몰라도 이 성경공부는 나에게 있어서 큰 기쁨이었으며,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도와주신 여러분들 덕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믿기 위하여 이해하라. 이해하기 위하여 믿어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음을 알고는 있으나, 이처럼 나 자신이 그룹 성경 공부를 하는 것은 결코 하느님을 알아야만 믿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런 형태로라도 성경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마냥 기뻐서 그리고 내가 좋아서 스스로 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권위 있는 말씀은 모두 성경 안에 있고 모든 구원은 그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성장을 위한 키 워드는 하느님의 말씀, 즉 성경을 잘 이해하는 것이며, 그보다 더 나아가 이를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을 실천한다는 것은 서로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고 베풀 때 나타나는 것이지만, 이를 실천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 하느님을 믿고 모든 나의 인생을 하느님께 의탁한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사도행전까지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함께 공부하는 고촌의 형제자매님들과 말씀의 봉사자, 그리고 성서 가족들에게 하느님께서 늘 함께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고촌 성당 _ 이경환 라파엘)
일용할 양식
“말씀을 아주 가까이 받아들이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17,11).
기도 지향
하느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성서 가족을 위하여
* 편집 : 西湖 李璟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