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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 김정희(阮堂 金正喜) 초상(肖像) 본문
◆ 올곧은 선비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는 최고의 문인화, 완당 김정희(阮堂 金正喜) 초상(肖像)
소치 허련(小癡 許鍊, 1809∼1892)의 완당 김정희(阮堂 金正喜) 초상(肖像),
조선(19世紀, 1884년), 종이·水墨淡彩 51.9×24.7cm국립중앙박물관
- 소치 허련(小癡 許鍊, 1809∼1892)의 <완당 김정희 초상(阮堂 金正喜 肖像)> 작품은 올곧은 선비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는 최고의 문인화로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완당 말년의 풍모를 그린 것으로, 얼굴 주름과 수염은 마른 붓질을 여러 번 반복하여 세밀하게 묘사하였지만, 의관(衣冠)은 대조적으로 몇 개의 선으로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이 초상에 있는 글은 “비록 채색이 가해져 있지 않다 하더라도 선생의 풍골(風骨)은 오래도록 후학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라는 내용을 담고있다.
- 소치(小癡)란 호는 완당 김정희는 격조 있는 남종문인화의 세계를 지향했던 소치를 매우 높이 평가 하여, 원말사대가 중 한 사람인 대치(大痴) 황공망(黃公望)을 염두에 두고 허련에게 '소치'라는 호(號)를 직접 지어 주었다.
허련, <완당탁묵첩> 중 수선화부, 1877년 이후
- 허련은 김정희가 가장 아꼈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 역시 스승을 가장 각별히 모신 제자였다.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를 갔을 때, 먼 길을 마다않고 세 번이나 스승을 찾아뵈었다. 허련은 김정희의 그림 주문을 전달하는 중개인 역할도 했는데, 김정희는 초의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날마다 허련에게 시달림을 받아서 병든 눈과 팔로 애써 바구니 가득 그림을 그립니다. 다 자기 빚이거늘 나에게 대신 갚게 하고 있습니다.”라며 한탄 아닌 한탄을 남기기도 했다. 허련은 스승의 글씨를 목판에 새기고 이를 인쇄하여 책으로 만들어, 김정희의 서체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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