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궁궐지킴이
사도행전 제4과 묵상과 생활 본문
제가 쓴 내용이 여러분의 성경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특히, '묵상과 생활'의 경우에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정리해 보세요.
- 서호 이경환 라파엘(고촌 본당) 드림
사도행전 제4과 묵상과 생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사도행전 6,1-8,3
1) 봉사자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가르치는 성경 말씀에 비추어(참조 사도 6,3.5; 1코린 7,7; 1베드 4,10-11) 사도직에 관하여 묵상합시다. 내가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이 묵상에 대한 복음 말씀으로 사도 6,3.5; 1코린 7,7; 1베드 4,10-11에 있는 내용을 읽으며 사도직에 관하여 묵상해 보았습니다.
(사도 6,3.5)
3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5 이 말에 온 공동체가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테파노, 그리고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또 유다교로 개종한 안티오키아 출신 니콜라오스를 뽑아,
(1코린 7,7)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런 은사, 저 사람은 저런 은사, 저마다 하느님에게서 고유한 은사를 받습니다.
(1베드 4,10-11)
10 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
11 말하는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봉사하는 이는 하느님께서 주신 힘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 무슨 일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영광과 권능을 누리십니다. 아멘.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와 마찬가지로 평신도들은 세례와 견진을 통하여 바로 주님께 사도직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하느님의 구원 소식을 사람들과 온 세상에 알리고 받아들이게 하는 일을 수행할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실 평신도들은 교회 생활의 최전선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에서 평신도들의 활동은 매우 필요한 것이며 이들의 자발적이고 긍정적인 활동이 없다면 사목자의 사도직 활동은 완전한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평신도들은 사목자의 협력자로서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하도록 소명을 받거나 또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내 자신이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과 특별한 은사에 따라, 예를 들면 독서하는 일, 가르치는 일, 봉사하는 일 등 교회 공동체의 활동과 성장을 위해 어떠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면, 이는 주님께서 나에게 나누어 주신 일이므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책임을 다해 그 임무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 교회에서의 작은 봉사가 곧 기쁨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 온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 뒤늦게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였기에 그간에 얻은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가르침을 받은 대로 주님의 진정한 말씀을 계속 공부하며 지키려고 기도하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야 제 나이에 알맞은 건전한 가르침으로 젊은 세대들을 칭찬하고 격려해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이제는 다른 신앙인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나이인데도 남을 험담하거나 싸우는 일이 있어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항상 모든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온화한 처신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사도직의 은사를 맡은 사람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무엇보다도 겸손한 자세로 열성으로 그 직분을 다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 저로서는 오늘이 ”모든 평신도는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신 대로‘(에페 4,7) 자기에게 주어진 그 은혜로써 바로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살아 있는 도구이며 증인이다“(교회헌장, 33항)라는 가르침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어 기쁜 날이었습니다. 이런 기쁨을 베풀어 주신 주님께 감사 기도합니다. 아멘!”
- 서호 이경환 라파엘
2) 스테파노를 해치려는 사람들을 살펴보며(사도 6,9-14) 우리 생활 중에 신앙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잘못이나 분쟁의 예를 들고, 그 잘못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봅시다.
저는 이 묵상에 대한 복음 말씀으로 사도 6,9-14에 있는 내용에서 스테파노를 해치려는 사람들을 살펴보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사도 6,9-14) 스테파노가 체포되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11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우리는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2 또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을 부추기고 나서, 느닷없이 그를 붙잡아 최고 의회로 끌고 갔다.
13 거기에서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이런 말을 하게 하였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합니다.
14 사실 저희는 그 나자렛 사람 예수가 이곳을 허물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준 관습들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이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위의 복음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스테파노와 유다인들이 논쟁을 벌였으나, 유다인들은 스테파노의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였다고 모략하고, 나아가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을 부추긴 다음, 그를 붙잡아 최고 의회로 끌고 가서 의회에서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스테파노가 " 이 거룩한 곳(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였다(6,13)”고 고발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 나자렛 사람 예수가 성전을 허물고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준 관습들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6,14). 이와 같이 모략에 의해 스테파노가 체포되고, 거짓 증언에 따라 고발되어 결국 순교하기에 이르렀다는 그 과정과 원인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의 우리 생활 중에도 신앙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잘못이나 다툼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회 현실만 보더라도 지역, 정치, 종교의 갈등, 빈부 격차에 따른 다툼, 세대 간의 갈등이나 성별, 학벌, 직업, 인종에 따른 차별 등 해결해 나가야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도 일부의 정치인들은 오히려 낡아 빠진 이념 분쟁이나 동•서 간의 지역 갈등을 선거에 이용하여 표를 얻는 데만 급급한 것이 참으로 서글픈 현실입니다.
2007년부터 ’주말걷기의 생활화‘를 16년 동안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한사모”라는 걷기 모임이 있습니다. 이제는 회원들이 나이가 들어 걷는 속도가 느려지는 세월의 흐름은 있으나, 그래도 매주 만남을 통해 건강, 배움, 사랑을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부산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 동기 한 사람이 저에게 질문을 해 왔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하길래 그 걷기 모임이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가? 과연 그 비결이 무엇인지 좀 가르쳐 주면 좋겠네.“ 이 이야기에 저는 선 듯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 모임에서는 회원들이 만나면 ’정치‘, ’지역‘,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가 자제하고,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가 배려하며 따뜻한 정을 나누는 것이 아마도 비결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제 이야기에 공감한 바 있어 여기에도 다시 소개해 보았습니다.
성경 말씀에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6).“는 여덟째 계명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행동에서 일부 측면을 왜곡하여 그를 헐뜯으려는 빈정거림, 거짓 증언, 비방과 중상은 이웃의 명성과 명예를 해치는 것이 됩니다. 결국 이러한 거짓 증언은 상대방에 대한 정의와 사랑의 덕을 모두 손상시키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우리의 걷기 모임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은 서로가 말하지는 않고 있지만, 그것은 바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29-31).“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혹시 엉뚱한 예를 들었다고 생각하실런지 모르겠으나, 우리의 생활 중에 신앙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잘못이나 다툼이 일어나고 있는 그 잘못의 진짜 원인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과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여덟째 계명을 망각하고 있거나 이를 지키지 않는 데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을 늘 되새기면서, 서로가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들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서호 이경환 라파엘
3)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치유와 놀라운 말씀의 역사를 알려줍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받는 고통과 박해와 순교를 전합니다. 스테파노의 순교에서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상황이나 말씀은 무엇이며, 왜 그러한지 묵상해 봅시다.
저는 이 묵상에 대한 복음 말씀으로 사도 7,59-60에 있는 스테파노의 순교 내용에서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상황이나 말씀이 무엇인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사도 7,59-60)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테파노는 이 말을 하고 잠들었다.
이 복음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스테파노에게 돌을 던질 때에도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7,59)"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7,60)" 하고 외쳤습니다. 이러한 스테파노의 순교 장면은 예수님의 수난 장면과 서로 같은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께 자기 영을 위탁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 이것이 스테파노가 예수님께 보여드린 믿음의 고백이었고, 죽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죽었기 때문에 더욱 진하게 일치할 수 있는 통공이야말로 스테파노가 후대 신앙인들에게 보여준 신앙의 목표였다고 합니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지금도 활약하고 있는 신앙의 순교자 스테파노들의 얼굴은 여전히 천사의 얼굴처럼 빛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스테파노가 보여준 섬김과 사랑의 리더십은 죽음의 처형장에서조차 빛났던 것처럼 역사 안에서도 빛나게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스승 예수님께서 겪으신 수난의 길을 스테파노를 위시한 모든 복음 선포자가 따라 걸으며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입니다.
저는 외손자의 세례명을 지을 때 ’스테파노‘라고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제시한 일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큰딸과 사위, 그리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사돈네 가족 모두가 좋다고 했습니다. 저로서는 무엇보다도 얼마 전에 먼저 가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섬김과 나눔의 정신을 본받아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달라는 소망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외손자의 이름도, 세례명도 추기경님과 같이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항상 믿음을 지니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나간다면 자기가 지닌 큰 꿈을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외할아버지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할머니를 따라 어릴 때부터 놀이터를 성당으로 알고 지내며 견진성사까지 받은 아이가 이제는 고등학교 2학년으로 대학입시 준비에 한참 고달픈 시기를 지내고 있지만, 항상 큰 꿈을 지니고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나갈 수 있도록 하느님의 크신 은총이 늘 함께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주님,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하느님의 크신 은총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서호 이경환 라파엘
일용할 양식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사도 6,3).
기도 지향
교회 봉사자들을 위하여
<스테파노>
스테파노는 초대교회에서 처음으로 순교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사도로까지 부르심을 받은 열두 제자들이 아직 스승의 부재로 인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것 같은 무렵에 그는 올곧게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를 반대하는 유다인들의 돌에 맞아 죽을 것을 각오하고 그는 그 위험을 피해 비겁하게 처신하기 보다는 오히려 용감하게 치명을 해서 스승의 곁에 가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이 그를 따라서 후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선종할 때에 남기는 말이 되었습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사도 7,59).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 이것이 스테파노가 예수님께 보여드린 믿음의 고백이었고, 죽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죽었기 때문에 더욱 진하게 일치할 수 있는 통공이야말로 스테파노가 후대 신앙인들에게 보여준 신앙의 목표였습니다.
본시 스테파노는 해외 디아스포라에서 살던 유다인이었습니다. 민족적 정체성이 흔들리기 쉬운 처지라서 그는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와서 당대 최고의 율법 학자인 가말리엘 밑에서 유다 민족의 전통적 율법을 배웠습니다. 이때 같은 스승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하던 벗이 훗날 바오로 사도가 된 사울이었습니다. 사울도 스테파노도 똑같이 해외 디아스포라 출신이었으나, 사울은 유복한 집안 출신의 엘리트로서 바리사이파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대열로 들어선 반면에 스테파노는 가난하여 차별받는 그리스계 그리스도인들 편에 섰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스테파노는 초대교회 시절 사도들이 신설한 부제 직무를 맡아 하도록 선발된 일곱 부제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직무는 초대교회의 복음선포 활동의 결과로 신자들이 늘어나고 그중에 해외 디아스포라에서 온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들어오면서 빵 배급을 둘러싸고 그 과부들에게 차별이 생겨나서 불평이 퍼졌기 때문에 제정되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자신들이 기도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 성령이 충만한 신자들 가운데서 스테파노를 포함한 일곱을 뽑아 그 일을 따로 맡겼었던 것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재정과 사회복지를 전담하면서 사도들을 보조하는 역할이었는데, ‘은총과 능력이 충만하여’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는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스테파노는 강론의 직무는 물론 복음선포의 직무까지도 수행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직무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사도들이 예수님 없이 성령께 기도해서 스스로 내렸던 자율적 결정 1호였습니다.
그는 생애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기 전에 자신의 직무로 인한 영적 현실을 맨눈으로 보는 뜻밖의 기적까지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즉, 스테파노는 하늘이 열려 있고 예수님께서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사도 7,56). 이는 지상의 존재와 천상의 존재가 서로 통교하는 통공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이었는데 하느님을 위해 교회가 제정하고 수행하는 직무의 품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 안에서 스테파노가 지녔던 카리스마와 믿음은 매우 놀랍게도 스테파노의 처형에 찬동하던 사울에 의해 고스란히 계승되었습니다. 바오로가 코린토에서 복음을 전했던 대상이 유력한 가문 출신이거나 부유한 이들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가난한 이들이었다는 사실(사도 1코린 1,26-27),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러 새로운 곳을 개척할 때마다 유다인들의 회당을 먼저 찾아감으로써 해외 디아스포라에서 차별받으며 민족 정체성의 소외감을 겪고 있던 동족에게 하느님 자녀로서의 정체성까지 찾아주려 애를 썼다는 사실(사도 13,13-52), 그리고 그가 과거의 동지였던 바리사이들에게 박해를 받게 되자 그가 가지고 있던 로마 시민권을 활용하여 로마 황제에게 상소함으로써(사도 25,1-12) 로마에까지 진출해서 오늘날 서양이 그리스도교화될 수 있는 선교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사실 등이 그렇습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천막 만드는 노동을 자청함으로써 보수를 받지 않고 사도직을 수행하는 것을 자신의 명예로 삼았다는 사실(사도 18,2-3.26; 1코린 9,18)은 명예를 존중하는 보수파 지식인 출신으로서의 자존심과 아울러 스테파노에게서 배우고 성령께서 섭리하신 영향이라 할 수 있는데, 사회적 약자를 돌봄으로써 진보파 선교사로서의 사회의식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든 신앙인들에게는 믿음을, 특히 그중에서도 교회 안에서 직분을 받아 봉사하는 이들에게는 열정을, 또 그중에서도 선교하는 이들에게는 통공의 신비를 사는 모범을 보여준 스테파노를 기억하면서 아울러 십여 년 전 스테파노를 주보성인으로 삼아 한 생애를 풍운아처럼 살아갔던 한국 최초의 추기경도 기억합니다. 그도 스테파노 순교자처럼 나라 안에서나 나라 밖에서나 존경을 받던 아이콘이었습니다. 일제의 치하에서 해방되자마자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룩해야 했던 한국 사회의 격동기를 이끌어주던 나라의 어른이었고, 군사독재 시절 정치가 캄캄한 어둠으로 뒤덮이거나 외환위기 시절 경제가 곤두박질쳤을 때 나라가 아무리 혼란스러웠어도 가톨릭 신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도 든든하게 기댈 수 있었던 언덕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갈라진 겨레를 화해와 일치로 나아가야 할 향후 민족의 파스카 여정에서도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전구해 달라고 청하고 싶습니다.
* 편집 : 西湖 李璟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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