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궁궐지킴이
우리 손으로 훼손한 한양도성 - 2 본문
장충단공원에서 N서울타워까지 / 무너뜨리고, 묻히고, 옮겨지고, 갈 수 없고 조급함이 이뤄낸 국적불명 복원 /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위대한 유산
한양도성 순성(巡城)길을 걸으며... "한양도성, 600년 서울을 품다."
(7) 우리 손으로 훼손한 한양도성 - 2
지난 번에 이어서 "(7) 우리 손으로 훼손한 한양도성 - 2" 편을 게재합니다.
남산성곽의 성벽 아래 성을 쌓은 사람과 책임자, 지역을 적어놓은 '각자성석'이 보인다.
- 안이토리가 쌓은 남산성곽 도청감관조정원오택윤상후(都廳監官趙廷元吳澤尹商厚) 변수안이토리(邊首安二土里) 기축팔월일(己丑八月日) “숙종35년(1709) 8월에 도성 개축 임시 책임자인 조정원, 오택, 윤상후가 함께 공사를 감독하고 전문 석수 ‘안이토리’가 공사에 참여했다.” 국립극장과 남산순환도로 차량진입통제초소를 지나 남산으로 오르는 차도에서 오른편 순심로로 접어들어 조금만 올라가면 성돌에 석수 안이토리(安二土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안이토리’, 한 번 들으면 잊지 않을 정도로 특이하다.
안이토리라 쓰여진 한자가 명확히 보인다.
명지대 홍순민 교수는 그의 저서 '한양읽기 도성'에서 도성을 쌓은 수많은 민초들 가운데에서 안이토리를 소개한다. 홍순민 교수는 국가의 공식 기록물인 ‘승정원일기’ 숙종 37년(1711) 4월 8일 자에서 “안이토리가 도성의 광희문을 공사하다 돌에 깔려 사망했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안이토리는 평범한 석수였지만, 왕실의 공식기록물과 도성성벽에 자신의 이름 을 남겼다. 그의 나이가 얼마인지 가족관계가 어떠한지, 그의 인생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는 어디에도 남아 있을 것 같지 않다. 그저 도성 쌓는데 전력하다 목숨까지 바친 일꾼 안이토리. 그는 각자로 남고 ‘승정원일기’에도 이름이 올라 갔지만 한양도성을 쌓고 고치는데 이름 없이 땀과 노동을 바치고 사라진 백성 들은 얼마나 많을까? 도성은 누가 쌓았는가? 임금이 결정하고 관료와 장수들도 큰일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몫은 돌을 떠서 나르고, 쪼아서 모양을 만들고, 땅을 파고 다지며 성돌을 쌓아 올린 민초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조선의 명목상 주인은 임금이었지만, 한양도성은 백성의 노고가 만든 것이다. 600년이 지난 지금도 한양도성은 이름없이 헌신한 수많은 안이토리의 몫이다.
태조 당시 초축한 성곽 형태가 잘 남아있는 남산 동편 성곽길
- 남산 성 밖 나무계단길 안이토리 안내문을 지나 남산 전망대를 향해 오른다. 동쪽 능선인 나무계단 오른쪽으로 태조 시기의 성벽은 축성된 지 이미 600여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초축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 편마암으로 쌓은 성돌 하나하나를 살피며 98일 만에 완성한 한양도성 초성(初成)의 흔적을 되돌아본다.
성곽의 배부름 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조치욱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성곽의 배부름 현상 “여기 성벽은 마치 배가 부른 것처럼 불룩 튀어나와 있죠?” 남산성곽길을 오르던 조치욱 학예연구사가 성벽의 한쪽 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한양도성은 600년이 넘은 구축물이다. 오랜 세월 성벽 안쪽으로 물이 스며들 면서 토질과 잡석이 바깥 성돌을 밀어내며 ‘배부름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며 “성벽에 유리판 같은 것들을 부착해 놓았는데 이것은 거리 높이 등을 측정하는 ‘광파기’ 등 첨단 장비가 측정할 수 있도록 설치 놓은 것이다. 장비를 이용. 성벽 전체의 높이 변화를 확인한다. 경사계를 달아 성벽 각도를 확인하고 성돌 사이 이격을 정밀하게 측정해 성벽구조물의 안전을 진단한다." 고 상세히 설명했다. 현재 한양도성에서 배부름, 석재 균열, 수목 생장 등으로 각종 변형이 일어난 구간은 총 10여 곳에 이른다.
미군 통신부대 초입의 바리케이드/ 한양도성에서 유일하게 접근이 불가한 구역이다.
- 마군 통신부대 안이토리의 생각에 잠겨 남산 성곽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순성길은 중단된다. 한양도성 18.6㎞ 가운데 유일하게 답사가 불가능한 지역이다. "'주한미군방송 (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 : AFKN)'이 있으니 우회하라"는 안내판이 있다. 광화문 쪽에서 남산을 볼 때 가장 왼쪽의 송신탑이 있는 곳이다. 주권국가 의 수도 한 복판에 외국군대 시설이 주둔하고 있다. “‘제한구역 경고’ 1950년 통과된 국내보안법 제21절의 규정에 의거 1954년 8월 20일자 국방장관 지시에 의거하여, 사령관의 명에 따라 이 지역은 제한구역으로 선포되었음” 도로 입구에 설치된 바리케이드에 붙어있는 문구이다.
앞에 보이는 성벽의 끝부분부터는 더이상 접근이 불가한 '금단의 성벽'이다.
동서고금에 군사적으로 점령된 상태가 아닌 나라의 한복판에 외국군대가 주둔 하는 것은 한국의 서울이 전무후무할 것이다. 아직 미군통신부대가 그 자리에 앉아 성곽길을 따라 걸을 수도 없는데 서울시는 ‘남산예장공원’ 개장 식장에서 “2009년 시작한 ‘남산르네상스 사업’이 12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이 순성길은 송림이 우거져 남산구간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밀스런 성곽길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금단의 땅, 도로 건너편 성 밖 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남산 정상까지 불과 200여m로 짧은 구간이지만 소나무와 어우러진 성곽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남산 정상에 위치한 '서울중심석'
- ‘서울의 중심점’ 표석 서울 한가운데는 어디일까. 위성항법장치(GPS)로 측량한 결과 서울의 지리적 중심점이 남산 정상부에 있음을 확인하고 이 자리에는 서울의 중심점임을 표시 하는 조형물을 설치했다. 정확히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산5-6 위도 37도33분 06.8904초, 경도 126도59분30.664초 해발높이 267m 지점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지리적 위치 결정을 위한 측량의 출발점인 대한민국 최초의 경위도 원점이 있던 곳으로, 국가기준점(서울25 삼각점)과 지리적삼각점으로서 측지와 지적 측량에 쓰이는 기준점이 된다. 종로구 인사동 하나로빌딩 지하에는 조선 고종 때(1896년)에 설치된 화강암으로 만든 서울의 중심점 표지돌이 있다.
남산 정상에 오르면 시원한 서울 전경이 한 눈에 펼쳐진다.
- 남산 정상에 오르다 남산은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서울의 상징으로 해발 270m이다. 본래 이름은 경사스런 일을 끌어들인다는 ‘인경산(引慶山)’이었으나 조선 초 태조 이성계가 남산 산신에게 목멱대왕이란 벼슬을 내리고 제사를 지내면서 ‘목멱산(木覓山)’ 이란 이름으로 봉하였다. 그러다 조선시대 한양의 남쪽에 있는 주작(朱雀)에 해당한다는 의미의 ‘남산(南山)’으로 자연스럽게 불리어졌다. 일제 식민통치가 일제 식민통치가 극에 달한 1940년 3월에 남산 일대가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많은 건물과 시설이 들어서면서 본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다. 전쟁과 성장기를 거치며 훼손이 이어지다 1991년부터 10년간 ‘남산 제 모습 가꾸기’ 사업을 통해 훼손된 지형을 복원해 나가고 있다.
N서울타워 야경/ 남산 정상에 우뚝 솟은 전망 탑으로 해발 480m 높이에서 360도 회전하면서 서울시 전역을 조망할 수 있는 명소이다.
- N서울타워(N Seoul Tower)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2가 남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전파 송출 및 관광용 타워이다. 1969년에 착공하여 1975년 7월 30일 완공되었다. 높이는 236.7m, 해발 479.7m이다. 수도권 지상파 방송사들이 이 타워를 이용 하여 전파를 송출한다. 전망대에서 서울 시내 전역을 내려다 볼 수 있으며, 맑은 날씨에 찾는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다. 남산에 있어서 보통 남산타워라고 널리 부르고, 서울에 있어서 서울타워라고 부르지만, 행정안전부에 등록된 정식 명칭은 "YTN서울타워"이다. N서울타워 전망대 2층(T2)에서 서울 한양도성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남산 정상 아래 성 밖 순성길/ 태조 당시 초축 형태와 숙종 때 개축한 네모 반듯한 성돌로 쌓은 성곽이 확연히 구분된다.
[글, 사진 : kukinews의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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