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궁궐지킴이
“나는 생명의 빵” 본문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4.30)
“나는 생명의 빵”
자신에게 주어진 일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분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런 분들의 공통점은 모든 것을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하는 것도 ‘일’,
집에서 하는 것도 ‘일’, 성당에서 봉사하는 것도 ‘일’, 친구 만나는 것도 ‘일’입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으니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꼭 ‘일’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싶었습니다.
직장은 우리 가족이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재정을 도와주는 곳이고, 가정은 사랑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고, 성당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위로와 힘을 얻는 곳입니다. 따라서 일이 아니라 행복으로 나아가는 장소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나는 평생을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 재미있는 놀이였다.”라고 말합니다.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놀이라고 생각하니 평생 발명에 몸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일’을 떠올리면, 동시에 따라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쉬고 싶다.’ 아닐까요? 그러나 ‘놀이’를 떠올리면, 동시에 따라오는 것이 없습니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계속’이 아닐까요? 즉, 계속 놀고 싶다는 것이지요.
자신이 하는 것을 ‘일’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어서 스스로를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일보다는 놀이로 계속하고 싶은 무엇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하는 것이 감사이고, 가정에서 하는 것이 사랑이며, 성당에서 하는 것이 행복임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나는 생명의 빵”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냥 한 번 해도 충분할 것을 연속해서 말씀하시며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주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식은 ‘쌀’이지만, 이스라엘에서 주식은 ‘빵’입니다. 그만큼 주님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반드시 함께해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을 단순히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분으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즉, 이 필요가 채워지면 없어도 되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 하나의 ‘일’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무조건 함께해야 할 분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함께 해야 할 분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주십니다. 이를 위해 생명의 빵으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언제 어디서나 주님과 함께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관점을 채워줄 주님이 아니라, 당연히 함께해야 할 주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서 참 행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직장은 우리 가족이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재정을 도와주는 곳이고, 가정은 사랑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고, 성당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위로와 힘을 얻는 곳입니다. 따라서 일이 아니라 행복으로 나아가는 장소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나는 평생을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 재미있는 놀이였다.”라고 말합니다.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놀이라고 생각하니 평생 발명에 몸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일’을 떠올리면, 동시에 따라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쉬고 싶다.’ 아닐까요? 그러나 ‘놀이’를 떠올리면, 동시에 따라오는 것이 없습니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계속’이 아닐까요? 즉, 계속 놀고 싶다는 것이지요.
자신이 하는 것을 ‘일’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어서 스스로를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일보다는 놀이로 계속하고 싶은 무엇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하는 것이 감사이고, 가정에서 하는 것이 사랑이며, 성당에서 하는 것이 행복임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나는 생명의 빵”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냥 한 번 해도 충분할 것을 연속해서 말씀하시며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주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식은 ‘쌀’이지만, 이스라엘에서 주식은 ‘빵’입니다. 그만큼 주님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반드시 함께해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을 단순히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분으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즉, 이 필요가 채워지면 없어도 되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 하나의 ‘일’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무조건 함께해야 할 분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함께 해야 할 분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주십니다. 이를 위해 생명의 빵으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언제 어디서나 주님과 함께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관점을 채워줄 주님이 아니라, 당연히 함께해야 할 주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서 참 행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가치 있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방향이 되어야
한다.
열정을 쏟을 대상을 찾고 그것을 열의 있게, 꾸준히 추구해 나갈 때 그렇게 될 수 있다(에리히 프롬).
주님은 생명의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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