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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9-한밤의 사진편지 제2789호('에펠탑' - 장주익/'20/4/15/수) 본문

한밤의 사진편지

2789-한밤의 사진편지 제2789호('에펠탑' - 장주익/'20/4/15/수)

불꽃緝熙 2020. 4. 15. 10:09

 

 

한밤의 사진편지 제2789호 ('20/4/15/수)

[한사모' 공식 카페] - '한밤의 사진편지 romantic wal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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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익의 건축 이야기]


 

"에펠탑(Tour Eiffel)"


 


 

 

어느 건물, 어느 건축물 하나로

어느 나라 또는 어느 도시를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그런 건물은 대개 국명이나 도시명 (인천공항, LA공항)

또는 유명 인물의 이름(세종문화회관, 링컨센터)을 따서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설계자나 건축가의 이름을

따르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에펠탑은 설계자인 에펠

(Alexander Gustave Eiffel 1832 - 1923, 프랑스 태생 )의

이름으로 탑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1886년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혁명 100주년 인 1889년 을 기념하기 위하여

파리에서 만국박람회를 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만국박람회를 상징해줄

장엄한 기념물을 원했습니다.


프랑스 산업부는 당시의 기술적 진보와 산업발전을

자랑하고 보여줄 높이 300미터, 폭 114미터의 철제 구조물을

세우기로 하고 설계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파리의 “샹 드 마르스” 공원에 세워질 철제 구조물 공모전에는

700여개의 설계도가 모였으며 그 중에서 교량 기술자인

“에펠”의 설계도가 당선됩니다.


 

 

 

지금으로 부터 133년 전인 1887년 1월 28일

기공식이 거행되는 날의 파리는 몹시 추웠다고 합니다.


당선작이 발표되고 기공식하는 날까지도

뜨겁게 반대론이 들끓었다고 합니다.


철제 구조물이 “괴물” , “기린을 가두는 우리” ,

“추악한 해골” , “침몰하는 배를 바라보는 등대”라느니...

더 나아가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수치“ ,

”고전주의 법칙과의 비극적인 단절“ , ”건축예술에 대한 전례없는 죄악“

이라고 까지 떠들어 댔었답니다.


 

 

 

1987년 2월 14일에는 “모파상”, “에밀졸라”, “뒤마” 등

당대 내노라 하는 파리의 작가, 화가, 조각가, 건축가 등이

“르땅(Le Temps)” 誌에 “예술가의 항의”라는

항의서까지를 발표합니다.


“파리에 쇳덩이 조각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삭막한 철구조물을 세우는 것은 파리의 수치”라고

항의 하기 까지에 이르렀답니다.


300미터의 에펠탑은 어느 교수의 진단으로는

200미터 높이에 이르면 붕괴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샹 드 마르스” 주민들은 탑이 자신의 집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급기야

정부와 시를 상대로 소송까지 벌이게 되었습니다.


 

 

 

정부 관료들은 머뭇거리고

있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군요.


이에 설계자인 “에펠”은 당당히 나서서

“만일 탑이 중도에 무너지면

모든 손해를 개인 비용으로 보상하겠다” 고

자신있게 약속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공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에펠”은 이미 마리아 피아교橋, 뛰이에르교橋 등의

다리에서 150m 에 달하는 철골아치를

성공적으로 설치한 바 있습니다


그 철골아치는 압연강壓延鋼을 대형 못(리벳)으로

접합하여 조립하는 구조라고 합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질 좋은 압연강재壓延鋼材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어서

저렴한 가격에 공급이 가능했었다고 전해집니다.


철도교량을 수없이 많이 건설한 기술자인

“에펠”의 입장에서 보면, 에펠탑은 가로로 놓인 철도교량을

세로로 바꿔 세워 놓은 것 일 뿐이었다고 말합니다.


개개의 부재를 삼각형으로 서로 이어서 트러스를 만들어

나가는 트러스 공법으로 1,700여장의 설계도면과

3,700여장의 부문도면이 말해주듯 한치의 오차도

허용 하지않는 단단한 철제구조물을 탄생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에펠”은 탑의 설계에 있어서, 바람에 견디도록

구조계산으로 결정된 4개의 바깥쪽 기둥을 두며

그 기둥의 커브가 매우 힘차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을

주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었다고 합니다.


에펠탑은 300명의 인부가 26개월 만에 완성합니다.

1만 5,000개의 강철조각과 105만개가 넘는

대형 못(리벳)이 사용되었고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면

10센티정도 흔들리도록 설계 되었습니다.


 

 

 

예측된 재난은 일어나지 않았고

탑은 1889년 3월 31일 공식적으로 준공되었습니다.


탑이 준공되자 많은 찬사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당시 에펠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습니다.


“에펠”은 자랑스레 외쳤습니다

“프랑스 말고 과연 세계 어느 나라가

자기네 국기를 하늘 높이 300미터나 되는 깃대위에서

펄럭이게 할 수 있는가 ! ” 라고.


 

 

 

에펠탑이 완공된 이후 앞에서 언급한

“모파상”이 에펠탑 내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자주 목격 되었다고 합니다.


극렬한 반대론자였고 항의서까지 발표했었던 사람인지라

어느날 기자가 “왜 여기서 자주 식사를 하는가?” 라고 묻자

모파상은 “파리 시내에서 빌어먹을 놈의 탑이

보이지 않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라고 답하여

한동안 유명한 이야기로 전해지게 됩니다.


 

 

 

원래 계획된 수명은 20년이었지만

120년 넘게 서 있는 에펠탑은

높이 324미터 (건물로 치면 81층 높이) 로서

41년후(1930년)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이

완공 되기전 까지는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 했었습니다.


탑의 유지관리를 위하여서는 주로 녹을 방지하는

조치로 매 7년마다 50 내지 60톤의 페인트로

도색작업을 새로이 하고 있습니다.


1985년 야간 조명장치가 설치되어

파리의 밤하늘을 밝히고 있기도 합니다.


 

 

 

2002년 11월 28일에는 에펠탑에

2억명째 관람객이 방문을 했다고합니다.


1886년 프랑스 정부는 신생 미합중국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하여


뉴욕 앞 바다 허드슨강 입구에 있는 리버티섬에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어 선물을 하게 됩니다.


여신상의 발끝에서부터 오른손에 든 횃불까지의

높이가 약 46m이고 기단부분은 약 48m 인데

그 내부의 철제 골격을 “에펠”이 설계했습니다.


* 참 조 : 세상을 바꾼 건축 (예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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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이미지

 

* 편집 : 西湖 李璟煥

 

-<I Dreamt I Dwelt in Marble Halls / Eny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