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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6-한밤의 사진편지 제2786호('평화의 문' - 장주익/'20/3/29/일) 본문

한밤의 사진편지

2826-한밤의 사진편지 제2786호('평화의 문' - 장주익/'20/3/29/일)

불꽃緝熙 2020. 3. 29. 15:28

 

 

한밤의 사진편지 제2786호 ('20/3/29/일)

[한사모' 공식 카페] - '한밤의 사진편지 romantic walking'

< cafe.daum.net/hansamo9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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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문 "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평화의문 (World peace gate)

 

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 공원 입구에 세워져 30년

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문이 자리하고 있는 올림픽 공원은 1984년 착공하여

1986년 완공된 45만평 규모의 도심공원 입니다.

 

공원중심부에는 몽촌토성을 복원했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6개의 올림픽 경기장 ( 싸이클경기장,  역도경기장,  펜싱경기장,

체조경기장,  테니스경기장,  수영장) 들이 반원형으로 배치

 

 

되어있으며 주변에 200여점의 조각작품들이 곳곳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문은 우리의 대문을 상징하면서 전통과 현대건축의

만남이 이루어 지고 있으며 처마형태의 지붕이 있습니다,

 

단청의 개념이 도입된 처마는 비약과 상승의 이미지라고 합니다.

높이 24m 로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45억의 공사비가 들었다고 합니다.

 

수직선이 강조된 기둥의 직선과 이에 반해 지붕은 매우 유연한

곡면으로 둔함과 경쾌함이 매우 강한 대조를 이루며

조화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중업(1922-1988) 이 설계했습니다   


천장이기도 하고 양쪽 날개이기도 한 부분에는 

 백, 청, 적색으로 단청형태의 사신도(四神圖) 가 

 그려져 있는데 아래  연못에 비칠라 치면 마치 살아있는

듯한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우측에 그려진 현무(玄武, 거북과 뱀의 모양을 한 북방의 神)

와 주작(朱雀, 붉은 봉황을 형상화한 남방을 관장하는 神),

 

좌측에 그려진 청룡(靑龍, 푸른빛을 띄는 용으로 동방의 神) 과

백호(白虎 흰털을 가진 범의 모습으로 서방의 神)는

고구려 장군총  벽화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합니다. 

  

(사신도는 서양화가인 성균관대학 백금남교수의 작품)

 

 평화의 문 좌우 양쪽으로는 30개씩 60개의 청동으로 구성된

"탈" 이 열지어 서 있습니다.

 

 (이승택 조각가의 작품)

 

 

金重業(김중업)


해방후 서양식 건축이 도입된 이후 1세대 건축가이며

평양에서 출생, 일본에서 1941년 요코하마 공업고등학교

(현 대학)를 졸업하고 실무경험을 하던중 해방후, 고국으로 돌아와

1947년부터 1952년까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 조교수로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학생들에게

 “자연에 대해 눈을 떠라, 자연을 사랑하고

깊이 관찰하고, 자연에 대해 사색하라, 자연은 디자인의 스승이다,

자연속에 디자인의 모든 것이 있다” 라며

 

진정한 건축은 무엇인가를 선동하는

 마치 혁명지도자 같었다고 안병의 (1927 -2005) 건축가는

회고합니다.

 

 

1952년 프랑스로 건너가 근대

 “건축계의 피카소이자 아인슈타인” 이라는 

 "르 코르뷔지에 (1887-1965)"  건축연구소 에서 4년간

연구를 한후 1956년 귀국하여 홍익대 건축미술과

교수를 지낸바 있습니다.

 

 

그는 세속에 묻혀 살기에는 정신이 너무 고고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꼿꼿한 선비정신과 비타협적 작가의식 탓에

1971년에는
정부의 도시계획 및 건축등 정부시책을

너무 신랄하게 비판한 나머지
정부 고위층의 미움을 사게되고,

그해 11월 반강제적으로 출국을
하게 되며

1979년 까지 귀국을 못하고 해외를 떠돌게 되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서강대학교 본관(1958) 과 주한 프랑스 대사관(1960),

제주대학 본관(1964), 부산 유엔묘지 정문(1966), 삼일빌딩(1969)

육군박물관(1982),
중소기업은행 본점(1983)과 평화의 문

그리고 KBS국제방송센터(1988)등이 있습니다.

 

 

서구의 모더니즘을 한국건축으로 승화시킨 최초의 건축가이며,

서양건축의 한국화, 한국건축의 현대화, 즉 "한국적" 인 것을

서구적인 건축언어로 소화한 건축가라며

딱딱한 건물에 혼 을 불어넣는 건축가라고 정인하 (1964년생)

한양대 건축과 교수는 평하고 있습니다. 

 

 

 

삼일빌딩은

1985년, 63빌딩이 서기까지 서울에서 제일 높은 빌딩

(110m, 지하2층, 지상31층) 으로 16년 동안 청계고가도로와 함께

근대화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 했었던 것을

많이 기억할 것입니다.

 

 

그의 1964년 작품인 제주대학 본관,

건물이 선지 29년이 지난, 1993년 2월 의 일입니다.


한국건축계와 제주의 지방문화계가 합동으로 보존운동을 펼쳤고,

서울에서 80여명의 건축가가 제주로 내려와 지역문화계

인사들과 함께 한국현대건축사의 주요사료 이며 제주도의 문화유산인

제주대학 본관 건물은 보존해야 한다는 공동성명까지 발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대학 본관은 너무 노후되었다 하여

1995년 5월 결국 헐리고 맙니다.


 

1960년도 작품인,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경우는 당시 저명한 프랑스 건축가  

 7명과 경합하여 프랑스 정부가 선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서대문구 아현동의 언덕에 자라잡고 있으며,

정문을 들어서면  언덕을 따라 오른쪽에 2층의 사무동과

가운데 약간 높은 터에  2층의 대사관 그리고 제일 높은 언덕위에

대사관관저.

이렇게 세 건물이 나란히 언덕의 높이에 따라 차분하게

가라앉듯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지붕은 건물에 속하면서도 하늘을 거부 하지 않는

건물과 하늘을 이어주는 연결자라고 하겠습니다.

한국의 전통건물을 ‘지붕의 건축’ 이라 하는데 프랑스 대사관은

그 특성을 현대감각으로 풀어냈다는 것입니다.

 

건축은 빛과 그림자의 교향시라는 김중업의 건축철학,

 

 한국 현대 건축의 대표작인 주한 프랑스대사관에는 김중업의

이러한  모습이 한국적 정서로 아름답게 종합되여 있으며

 그의 건축은 한국 문명을
아름다운 상형문자로 기록한

우리 시대의 역사적유산 이라고 그의 후학인

김석철 (1943 -2016 , 예술의전당 설계) 건축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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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적 외 : 현대건축의 기수들

                      20세기 건축 (김석철)

        Pro Architect

     Naver.com

                      평화의 문 현장 안내문

 

-<James Last(orchestra) - Romance (Beethoven)/ 사랑의 음악산책 5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