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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사진편지 제2517호(이경환의 동유럽, 발칸 여행기(6) -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17/7/27/목)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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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사진편지 제2517호(이경환의 동유럽, 발칸 여행기(6) -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17/7/27/목)

불꽃緝熙 2017. 7. 26. 22:13

 

 

 

한밤의 사진편지 제2517호 ('17/7/27/목)

[한사모' 공식 카페] - '한밤의 사진편지 romantic wal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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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26(금)에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를 둘러보았습니다.>

 

 

[점만 찍으며 바쁘게 둘러 본 동유럽, 발칸 여행기] (6)

 

아드리아 해(海)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 2017년 5월 26일(금) *


 

첨부이미지

 

   * <해안선의 길이가 20km 정도인 '보스니아'의 해안도시 '네움'에서 1박을 하였습니다.>

 

   * <'보스니아'의 '네움'에서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로 넘어가는  국경경비 초소입니다.>

 

   * <위의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두브로브니크는 보스니아에 둘러싸인  외딴 섬과 같습니다.>

 

 

아드리아 해에 연해 있는 해안선의 길이가 겨우 20km에 불과한

보스니아의 해안도시 네움의 Hotel Sunce에서 숙박한 우리 일행은


국경선에서의 여권검사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오늘은 3번 통과 예정)

닷새째 날(5월 26일, 금) 아침 8시 30분부터 버스로 이동하였습니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를 관광하려는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은

거의 대부분이 네움에서 숙박하고 아침에 출발한다고 합니다.

 

'꽃보다 누나' 방송 덕분에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동양사람은 대부분 한국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 <육로로  두브로브니크는  보스니아와의 국경을  통과하여야  도착할 수 있습니다.>

 

   *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지  지도입니다.>

 

 

크로아티아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브로브니크(Dubrovnik)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리는 환상적인 풍경을 지닌 도시입니다.

 

중세시대에는 아드리아 해에서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크게 성장했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다 1358년 라구사(Lagusa)라는 도시 국가로

변화하여 인근의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있는 외교 정책으로 독립을

유지하면서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척해 나갔습니다.

 

13세기 베네치아 사람들이 쌓은 구시가지의 성벽(Stari Grad)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라구사 공화국은 1667년 대지진으로 경제적 기반이 쇠퇴해 지고, 1808년

나폴레옹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독립 국가로서의 지위를 상실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로 편입되었다가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끝난 후, 크로아티아 영토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를 침공한 세르비아 군대가 두브로브니크를 포위하고

포격을 가해 도시의 건물 상당수가 파괴되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전 세계의 학자들이 이곳으로 달려와 인간 방패(두브로브니크의 친구들)가 되어

두브로브니크를 지켰으며 전쟁 후 유네스코 등의 지원을 통해 복원되었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파편과 총탄 자국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성벽으로 둘러쌓인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에 들어가기 위해

필레 성문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두브로브니크 수호 성인 성 블라이세의

조각상이 기념 사진찍기에 열중하는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성문 안에 들어서니 1448 년에 20km 떨어진 산에서 끌어오는

수로 설치에 성공한 후 오노프리오가 제작한 16면 분수대인

오노프리오 분수(Velika onofrijeve Fontana)앞에 여행자들이 바글거립니다.

 

 

 

 

 

 

하얀 대리석이 깔려있는 중앙로 플라차 거리(Placa-Stradun)를 걸어

종탑과 작은 오로프리오 분수가 있는 성 블라시우스 교회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늘은 크루즈여객선이 4척이나 한꺼번에 들어와 무척 붐비는 날이라고 하네요.

아차! 여기서 좀 더 주의를 해야 하는데 사진찍느라 정신이 어디 팔렸나 봅니다.


소매치기들은 현금을 많이 지니고 다니는 한국 사람들을 특히 좋아한다는데

가이드는 성벽을 둘러본 후 종탑 앞에 11시까지 모인다는 것만 강조합니다.

 

 

 

 

 

 

구시가지의 건물 사이로 난 계단식 골목도 기웃거려 보고,

쿠르즈여객선을 타고 왔다는 여행객들 구경도 합니다.


슬라브족은 크게 셋으로 나눈다고 합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및 벨로루시가 동슬라브족이고,


폴란드와 체코, 슬로바키아는 서슬라브족이며

세르비아와 여기 크로아티아는 남슬라브족으로 나눕니다.


특히 처녀와 어린이들은 인형 처럼 예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내가 이들을 감상하는지 이들이 우리를 구경하는지 구분이 안되네요.

 

 

 

 

 

 

 

 

두브로브니크는 작은 숲(dubrava)을 뜻한다고 합니다.


성벽 안에서는 자동차 통행이 금지되어 있으며,

스트라둔을 제외한 구시가지는 대부분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좁은 길들만

나 있어 도시 전체가 그림 같은 미로를 이루고 있습니다.

 

달마치야 건축의 걸작이라고 하는 렉터 궁전도 쳐다보고

성 블라시우스 성당과 성모 승천 성당에도 들어가

성당 안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기도 하였습니다.

 

 

 

 

 

 

미로같은 구시가지를 거쳐 다시 오노프리오 분수 앞으로 왔습니다.

아침에 들어올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인 성 블라이세의 조각상이 있는 구석의

티켓 오피스에서 70쿠나 (1만 4천원) 하는 "성벽걷기 티켓"을 끊고

가파른 계단을 지나 성벽으로 오르니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습니다.


성벽걷기는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백미라고 하는 데 두께 3미터,

높이 6~ 25 미터, 길이 2km 의 성벽 위를 1~ 2 시간을 걸려 걸으며


붉은색 지붕 일색의 중세 마을이 만들어 내는 스카이라인과

저녁 노을이 에메랄드 빛의 바다와 어울려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경치를

구경하며 여행객들은 크로아티아의 멋진 매력에 푹 빠져든다고 합니다.

 

 

 

 


 

 

 

성벽에는 대포도 몇 문 보이고 크고 작은 붉은 지붕들을 구경하다가

또 눈을 들어 푸른 바다에 떠가는 요트며 배들도 구경하였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92년작 “붉은 돼지(紅の豚)”는

바로 이곳 바다인 아드리아해 달마치야 해변이 무대이었습니다.


바이런이 두브로브니크를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표현했다고 하고,

버나드 쇼는 "당신이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라는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말을 1929년에 남겼다고 합니다.


이 크로아티아의 성벽걷기에서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짐작컨대, 위 사진 속 코로아티아 국기가 보이는 보카루 성루에서

성벽으로 오르는 약간 가파른 좁은 길 사이로 짐작이 갑니다.)


집사람이 가지고 있던 현금과 카드를 모두 소매치기 당하는

어려운 일을 당하였습니다. 집사람을 다독이는 의미로 외국에 나와서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적선공덕(?)을 베풀었다고 위로하였습니다.

 

 

 

 

 

 

 

바로 위 사진을 찍은 후, 함께 여행 중인 안사돈께서

집사람이 뒤로 멘 가방이 열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깜짝 놀란 집사람이 가방을 점검해 보니 제일 깊이

넣어둔 현금(어제 저녁에 제가 쓰라고 준 한화 현금 포함)과


큰 딸이 쓰라고 준 국민은행 카드, 집사람의 농협 비자카드가

깜쪽같이 없어졌으나, 천만다행으로 여권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시간이 오전 10시 40분(현지시간)이니까 한국시간으로 오후 5시 40분,

아이들에게 전화해서 먼저 은행카드를 분실신고하고 정지시키도록

조치하였습니다.(은행 전화를 어떻게 걸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여권이 있다는 것이 고마워 슬슬 집사람에게 농담을 하였지요.


"우리가 평소에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까짓

돈이야 괜찮아, 내가 다 줄테니..."라고 말하며 허세를 부렸습니다.


우리는 성벽걷기를 그만두고 서둘러 집합장소로 내려왔습니다.

여행사 가이드에게 도난 사실을 이야기하였으나 여권을

분실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찌 누굴 탓하랴, 잊어버리고 스르지산 전망대로 올라갔습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자기네 나라가 넥타이의 원조라고 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넥타이를 처음으로 착용한 것은 루이 14세를

호위하기 위해 1660년에 프랑스 왕궁으로 간 크로아티아 용병들이었고,

그들이 착용했던 비단 천 조각의 이름은 크라바트(cravat)였습니다.


당시에는 크라바트가 크게 유행했으며, 황제 역시 형형색색의

넥웨어에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크라바트는 크로아티아 사람을

의미하는 ‘크로아트(Croat)’가 와전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신세대들은 크로아티아는 축구를 잘하는 나라로 알고 있지요.

요즘 전적은 별로이지만, 1988 월드컵에서 3위를 한 나라입니다.

 






석회암이 드러나보이는 스르지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두브로브니크는 에메랄드 빛의 아드리아 해와 어울려

왜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하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1991년 유고 내전 시에 프랑스 학술원장이던 장도르메송이

"유럽 선진국들이 유럽문명 과 예술의 상징적 도시인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포격 하나 막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는가?"


라고 외치면서 프랑스 지식인 13명을 이끌고 포격을 막기 위해

두브로브니크로 달려와 여기 앞 바다에 범선을 띄우고 선상에서

세계여론을 환기시켰다는 사실은 무엇을 일깨워주고 있는가?


잃어버린 본전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여유를 갖고

다시 찾아보고 싶은 아름다운 두브로브니크입니다.

 

 

 

 

 

 

 

 

다음에는 다섯째 날(5/26) 오후와 여섯째 날(5/27) 일정으로

로마 유적지 스플릿과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 <다음에 소개할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입니다.>

 

첨부이미지

 

-<Sweet Music Andre Gagn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