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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사진편지 제2513호(이경환의 동유럽, 발칸 여행기(5) - 보스니아의 모스타르, 메주고리예/'17/7/15/토) 본문
한밤의 사진편지 제2513호(이경환의 동유럽, 발칸 여행기(5) - 보스니아의 모스타르, 메주고리예/'17/7/15/토)
불꽃緝熙 2017. 7. 15. 00:46
한밤의 사진편지 제2513호 ('17/7/15/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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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25(목) 오후에는 보스니아의 '모스타르'와 '메주고리예'를 둘러보았습니다.>
[점만 찍으며 바쁘게 둘러 본 동유럽, 발칸 여행기] (5)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와 메주고리예
* 2017년 5월 25일(목), 오후 *
* <'보스니아'는 3년 8개월의 보스니아 내전(1991-1995)으로 널리 알려진 나라입니다.>
우리가 '보스니아'라고 하는 나라는 정식 국가 명칭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입니다.
나라 이름은 북부의 보스니아 지역과 남부의 헤르체고비나 지역이 합쳐진 지명이지만, 민족은 보스니아인(48%), 세르비아인(37%), 크로아티아인(14%) 등 3대 민족이 이 나라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1945년에 티토(Tito)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연방)'을 수립하였으나 1980년 티토 사망 이후 연방이 와해되면서 이 나라도 1991년 국민투표에서 독립이 가결되어 1992년 3월 독립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유고연방이었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등이 독립하는 그 와중에서 보스니아의 크로아티아계(카톨릭), 보스니아계(이슬람교)와 세르비아계(세르비아 정교) 세력 간에 유혈 민족 분규가 발생하여 43개월 동안 많은 사상자와 난민이 생긴 보스니아 내전으로 발전하였습니다.
1995년 12월 14일 파리에서 공식 조인한 보스니아 평화 협정에 따라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 중심의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연방(국토의 51%)과 세르비아인 중심의 스릅스카공화국(48.5%)으로 사실상 갈라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세에 따라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국경에서는 아직도 여권검사를 하며 우리 일행도 크로아티아의 자다르에서 보스니아의 모스타르까지 관광버스로 이동하는데 대기 시간을 포함하여 4시간 이상이 소요되었습니다.
보스니아의 모스타르에 도착하니 총탄 자국, 파괴된 건물 등 보스니아 내전의 잔흔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어 가슴이 무거웠습니다. 모스타르는 헤르체고비나 지역의 가장 큰 도시로 아드리아 해로 흐르는 네레트바 강을 끼고 있으며, 사라예보 다음으로 잘 알려진 주요 관광지입니다. 신시가지는 상당히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조금 걸어서 구시가지로 넘어오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 <보스니아 내전을 잊지말자(Don't Foget '93)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15세기부터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았고, 19세기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의 지배를 받아온 지역으로 이슬람과 가톨릭의 유적이 공존하며 특히 터키의 영향이 커서 리틀 터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물건을 파는 가게와 모스타르 다리 입구에는 [Don’t forget '93] 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잊지말자! 6.25', 우리나라 동족상잔의 비참한 비극 6.25전쟁을 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에서 되새겨 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을 중심으로 보스니아인이 거주하는 지역과 크로아티아인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두 지역을 이어주는 유서깊은 아름다운 다리가 '스타리 모스트' (Stari Most '오래된 다리')이며 현재는 '모스타르 다리'라고 불립니다.
강 위에 기둥 없이 아치 하나만으로 만든 단순하고 우아한 다리는 모스타르의 심벌이 됐으며, 수도사들이 양 쪽에서 다리를 지켰기 때문에 도시 이름도 [모스타르(Mostar)‘다리의 파수꾼']이 되었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들은 크로아티아인(카톨릭)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래의 사진들은 보스니아인(이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중세의 다리 '스타리 모스트'는 1993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 군의 공습으로 파괴되어 본래의 모습을 잃었지만 유네스코와 EU 국가의 지원으로 2004년 7월 찰스 황태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재개통 되었으며 2005년에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다리 입구에는 [Don’t forget 93] 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다리를 사이에 두고 수 백년을 함께 살아온 이들은 어느 날 서로에게 총칼을 들이대고 살상을 하였으니 풀리지 않은 앙금은 서로에게 또 하나의 불씨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성모님이 발현한 메주고리예로 떠납니다. 모스타르에서 버스로 40분정도 산골마을로 이동을 하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광이 그리스 여행 때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메주고리예'는 헤르체고비나 지역의 서남부, 치트룩 시에 속한 카톨릭 교회의 소교구 명칭이자, 교구 내에 속한 마을 이름입니다. 유명하지 않은 한적한 농촌이었으나, 1981년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전 세계 카톨릭 신도들의 순례지이자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안사돈과 집사람이 이번 여행에 함께 하게 된 것도 성모님이 발현하였다는 이 '메주고리예' 성지를 순례한다는 여행사의 패키지 일정 때문이었습니다.
참고로 메주고리예 성지를 순례할 목적으로 여행을 한다면 이 지역과 가까운 곳에서 숙박을 하고 미사에도 참여하면서 성모 발현지와 예수 청동상도 둘러보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여행 일정에 따라 주어진 1시간 내에 성모님 발현산, 메주고리예 성 야고보 성당, 치유의 예수 청동상을 둘러보고, 기념묵주까지 산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허겁지겁 서둘러 예수 청동상, 성 야고보 성당을 둘러보고 기념묵주까지 구입하였다는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1981년 6월 헤르체코비나의 메쥬고리예 작은 산골마을에서 6명의 청소년들에게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다는 것입니다.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에 대한 조사를 수행한 심사위원단의 권위있는 전문가들과 관련돤 성직자들은 1981년 6월 24일부터 7월 3일 사이에 일어난 초기 7일 간의 발현에 있어서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있었던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맨 앞에서 제시한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보스니아에는 20㎞의 길지 않은 해안선이 크로아티아에 둘러싸여 있는데, 오늘 숙박할 호텔도 휴양도시 네움(Neum)에 있었습니다. 메주고리예에서 네움으로 오는 길도 국경선을 통과하여야 해서 여권검사를 하였으며 네움의 석양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다섯째 날(5/26) 일정으로 세계유산 '크로아티아의 드브로브니크'를 찾아가 보겠습니다.
* <다음에 소개할 아드리아 해의 진주 '드브르브니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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