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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의 남미 여행기] (7)
잉카, 그리고 마츄픽추의 수수께끼
글,
사진, 편집 :
김소영(한사모 사진위원, soyoung213@hanmail.net )
안데스 산맥을 가진, 남미에서 세번째로 큰 나라 페루는
영원한 비밀 잉카 문명의 나라이다.
지구상 가장 큰 그림 '나스카'의 지상화와 바다 같은 강과 호수가 있는 나라,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며 국토의 50%가 아마존의 열대 우림지역이며
한국의 13배의 크기인 나라이다.
전날 아르헨티나에서 18:15에 출발, 항공으로 4시간 45분 이동하여
페루의 수도 리마Lima에 도착하여 Sheraton Lima Hotel에서
편히 쉰 덕에 아침도 생생하다.
9일째인 오늘은 잉카문명을 만나러 간다. .
잉카문명의 대표인 '마츄픽추'를 보기 위해서 안데스 산맥에 있는
페루의 옛 수도인 잉카 도시 '쿠스코Cusco'로 가야한다.
잉카의 슬픔을 간직한 쿠스코는 해발 3,400m로
고산병 체험장이며 마츄픽추 가기 전 기지이다.
조식 후 09:50 리마를 출발하여 항공으로 1시간 20분 소요,
11:10 페루의 옛 수도 쿠스코 도착하여
조금 이른 시각에 페루 현지식으로 중식 후 고대 잉카유적지를 답사한다.
코스코 공항에 내려 버스로 이동하는데 허락없이 촬영해 놓고
돈을 받는 상술은
중국 뿐만 아니라 이곳 코스코에도 있다.
거절하지 않고 선뜻 받아 들고 보니
활기차게 걷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페루에서 받은 첫 선물이다.
제법 훌륭한 Restrant에 들어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전통복장의 건장한 악사들이 우리 주변에 몰려든다.
금세 아름다운 선율이 우리의 귀를 호강시켜 준다.
우리나라의 아리랑 만큼이나 슬픈 매력이 있는
'엘 콘도르 파사 El Condor pasa'
전쟁없이 행복하게 살던 잉카는 1,533년 스페인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잉카제국의 후손들이 스페인에 대항하며 독립전쟁을 벌이다
실패했던 영웅을 추모하며 부른 우수에 찬 선율의 전통노래,
'콘도르Condor'는 매의 일종으로
'무엇에도 억매이지 않는 자유' 라는 뜻이 담겨있는
안데스산맥 등지의 고산지대를 훨훨 나르는 독수리를 의미한다.
이 음악을 통해 잉카인들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콘돌처럼
자신들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듯하다.
정복자의 칼날을 피해 마지막 은거지 마츄픽추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잉카인들의 슬픈 운명을 담은 그들의 팬플룻 선율에
나도 모르게 목에 메어온다. 참으로 우리와 닮은 꼴의 음악이다.
오, 하늘의 주인이신 전능한 콘도르여
우리를 안데스 산맥의 고향으로 데려가 주오.
잉카 동포들과 함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나의 가장 간절한 바람입니다.
전능하신 콘도르여, 쿠스코 광장에서 나를 기다려 주오.
우리가 마츄픽추와 와이나픽추를 거닐수 있게 해주오.
가슴 깊이 스며드는 팬플룻의 선율 '엘 콘도르 파사',
우리들은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가사말로 알고 있는 이 노래는
페루의 국가문화유산으로 제 2의 국가로 여겨지고 있다.
마야 문명이 멕시코의 정글 지대를 중심으로 번성했다면,
잉카 문명은 안데스 산맥의 고산 지대에서 발달했다.
잉카 인들은 태양신을 섬겼으며
자신들의 나라를 태양의 제국이라 불렀으며
왕은 태양의 아들이라고 여겼다.
페루의 고대문화는 스페인-잉카 도시들에서 뿐만 아니라
쿠스코에서 80km 떨어진 해발 2,450m의 고지에 있는잉카 제국의
잃어버린 도시 마츄픽추의 유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쿠스코는 1,200년대 부터 1,532년 까지 잉카제국의 마지막 수도였다.
인근 수 천 Km의 영토를 지배하던 대 제국의 수도로 잉카인들이
신성시한 퓨마의 형상을 한 도시다.
쿠스코 공항이 해발 3,400m 고산지대로 우리 관광객은
몸의 움직임을 천천히 최소화하여 고산증을 극복해야 한단다.
그들은 더위와 쓰나미를 피해 고산에 장착하고 거주했던 사람들이다.
고산에 적응하고 고산에 동화되어 살고 있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목이 굵고 짧으며 몸도 비대한 편으로
고산지대에서 생활하는데 적절하게 진화된 모습이다.
잉카제국의 행정, 정치, 군사의 중심이 이뤄졌던 잉카 문명의 중심지 쿠스코는
안데스 산맥의 고원에 있는 위치하며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세계에서 가장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문명의 하나인 잉카문명의 보고이다.
제일 먼저 잉카문명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쿠스코의 중심지
'아르마스 Plaza de Armas' 광장이다.
이곳에는 스페인 식민시대의 관청들과 성당들이 잉카의 주춧돌 위에서
그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쿠스코여행의 출발지이며 잉카 제국의 중심지였던 '아르마스'광장은
그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 중 하나이다.
아르마스광장은 잉카의 태양신 축제장소 였는데 스페인이 점령 후
군인광장으로 변했으며 가운데 큰 분수와 대성당이 있다.
잉카제국 기반 아래 스페인식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도시 광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마침 전통복장을 한 이 나라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페루의 관광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어느 마을 주민들의 단체 관광인지 아이와 어른들로
오지에 살던 사람들이 처음 서울 구경 나온 것 처럼 보인다.
별로 추운 날씨가 아닌데도 털실로 짠 옷과 모자로 치장한 게
덥고 불편해 보이나 그들은 그들의 멋진 복장으로 한 껏 멋을 내고 있다.
당시 번영하던 잉카 제국의 상징이었던 황금궁전은 온통
금으로 덮여 있었다고 하는데
잉카 제국에 침입해 궁전을 본 스페인 사람들이 그걸 그냥 두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무엇보다 잉카 인들이 현대인들을 궁금증에 빠뜨리게 한 것은
바로 건물을 만들기 위해 돌을 깎고 다듬는 석공 기술이다.
잉카 인들은 금속으로 만든 도구를 사용하지도 않고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을 잘라 정확하게 쌓았다.
쿠스코는 그러한 잉카 대 제국의 성스러운 수도이자
심장이었고 태양신을 숭배하는 황금도시였다.
하지만 이러한 제국의 중심을 황금을 찾아 나선 몇 안되는
스페인 군대에게 허망하게 빼앗겨 버리고 지금은 어렴풋한 잉카의 흔적과
식민지 시대의 화려한 건축물들만이 남아있다.
신전과 궁전의 벽을 황금으로 장식할 정도로
화려했던 문명을 꽃피웠던 잉카 문명도 마야나 아스텍 문명처럼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건물도 길바닥도 돌의 예술로 영원히 남아있다.
좁은 골목 군데군데에 수공예품 가게가 손님을 기다리지만
돌의 예술에 심취해서인지 물건을 흥정하며 사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12각돌은 쿠스코의 상징이고 잉카의 상징이다.
각 모서리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 있는 12개의 모퉁이 돌이 자리하고 있다.
종이 한 장 들어갈 틈이 없는 정교함으로
그 당시의 돌을 가공하는 기술을 상상해볼 수 있다.
잉카인들이 돌을 다루는 기술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12각의 돌이 박힌 잉카의 돌벽을
토대로 해서 세워진 종교 예술 박물관이나
잉카제국의 황금 궁전 터에 세워진 산토도밍고 성당 말고도
많은 근대식 건물들이 잉카 유적의 흔적 위에 서 있다.
특히 산토도밍고 성당이 세워진 곳은 잉카 제국의 전성기 때
'코리칸차' 궁전의 터였다.
스페인 식민 시대의 건축물인 '산토도밍고' 성당은
지진으로 그 모습이 사라졌지만 돌로 만든 잉카 제국의 건물 토대는
그대로 남아 있어
잉카 건축의 견고함을 증명해 주고 있다.
잉카의 목욕탕이라 불리는 '톰보마자이'와 붉은 요새 '푸카푸카라',
잉카 석벽의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식사이와만 '요새와
미로로 불리는 켄코 관광은 나에게 버거운 코스다.
고산병 증세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여 신비의 잉카 흔적도
귀찮은 존재가 된다. 기압이 낮은 탓에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은지
구토증세에 맥이 빠진다.
평소 건강하다고 생각한 나의 의지와 다르게 나약하기 그지없는
나의 모습에 당황하기 시작하고 남에게 누가 될까봐 걱정이 앞선다.
처음 접한 고산 쿠스코에서 고산증세로 어려운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3시간 버스로 이동해서
20:00에 우루밤바 Agusto Hotel에 도착하니
쿠스코 보단 낮은 2,800m
라니 다행이다.
아늑하고 조용하며 마음을 편하게 하는 호텔의 모습에
고산병증세가 나아지리라 마음이 놓인다.
정원의 빨간 제라늄은 이방인들을 쌍수 들어 환영해 주건만
얼른 쉬고 싶은 마음 뿐이다.
우주 천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어 별박사로 통하는 S님이
신이 나서 뜰로 불러 내신다.
은퇴 후 작은 천문대를 만들어서 청소년들에게 천체교육을 하고 싶은 소망에
목말라 하시더니 남십자성을 찾아 볼 거라며
고개가 아프게 하늘의 별을 뒤지신다.
밤 하늘은 온통 별꽃들로 찬란하다.
포인트 레이져 불빛이 하늘을 꽤뚫고 별자리를 명중한다.
우리나라 하늘에서는 보기 힘든 귀한 별자리들,
교과서에서만 보아온 별자리들이다.
마츄픽추에 가려면 우루밤바에서 자고
기차로 갈아탄 후 '올란타이탐보Ollantaytambo'역에 도착해서
다시 잉카 트레일을 타고 가야 한다.
여전히 속이 거북해서 아침식사 대신
산소를 한 바가지 마시고 마츄픽추로 향한다.
열차로 2시간을 달려 Aguas Calientes 에 간다.
낯선 산들이 휙휙 뒤로 물러난다.
고산지대라 나무도 풀도 없는 메마른 산이다.
주변 경관을 알뜰하게 볼 수 있게 배려한 열차는
안데스산맥에 얹혀있는 만년설도 보여주고 길 옆의 계곡과
파란 하늘을 원 없이 보여준다.
열차여행에서는 찐 계란이 주요 메뉴인데 여긴 옥수수가 대신한다.
우루밤바의 옥수수 알은 실하기 그지없다.
찰옥수수로 맛도 좋아서 간식으로 훌륭하다.
두 시간 차창 관광을 하며 Aguas calientes 역에 도착하니
마츄픽추로 가는 전용 버스가 기다린다.
계곡의 순수 자연적인 풍경을 감상하며 아슬아슬하게 곡예하는 버스로
지구상에서 60년 동안 잃어버렸던 공중 도시 마츄픽추 입구에 도착하니
이상하게 마음이 경건해 진다.
페루의 대표적인 명소를 꼽자면 누가 뭐래도 마츄픽추다.
더 나아가 남미대륙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며
페루에서 잉카 문명의 흔적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 있는
세계 7대 불가사 유적이다.
안데스 산맥 해발 약 2400m 산 정상, 새들도 접근하기 힘들다는
안데스산맥 꼭대기에,험준한 계곡과 가파른 절벽에 기대어 숨어있는
신비의 공중도시 마츄픽추는 풀리지 않은 신비한 수수께끼를 간직하고 있다.
그 누가, 왜, 언제 이곳을 지었는지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열대 우림에 숨겨진 체 유유자적함을 고이 간직한 모습은
여행객의 가슴을 벅차 오르게 한다
그 당시의 지붕 모습은 이러하리라 하고 재현해 놓은 집 한채가
우리를 맞이한다. 관리인의 집이 아닌가 한다.
마추픽추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아주 높은 산꼭대기에 환상적인 잉카 도시가 있다는 오래된 기록을 보고
1911년 미국의 '하이람 빙검'이라는 청년이 찾아 나섰다가 발견한 거라고 한다.
원래의 뜻은 '나이든 봉우리'라는 뜻이며 산과 절벽, 밀림에 묻힌 체
비밀스럽게 고지대에 숨어 있어서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기에
'잃어버린 도시' 또는 '공중도시'라고 하며
잉카인들이 외부의 침입을 피해 이곳에 자리 잡았다는 설과
홍수의 피해를 막기위해 고지대에 둥지를 틀었다는 설,
잉카제국의 9대왕 '파차쿠티'가 건설한 여름 별장도시라는 설, 등이 있으나
어떠한 설도 이 거대한 수수께끼를 풀지는 못한다.
마추픽추는 가운데 있는 대광장을 중심으로
상부와 하부로 크게 나누어져 있고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 도시 못지않게 여러가지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궁전이 있고, 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고 의식에 사용되는
의례품을 저장하는 저장소가 있고,
또 학교와 공장, 사람들이 살던 집, 묘지, 산을 계단식으로 깎아
옥수수와 약초를 재배하던 경작지도 있고,
천체 관측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건축물도 빼놓을 수 없다.
마츄피추 도시의 절반을 차지하는 계단식 밭은그야말로 장관이다.
정교하게 돌로 쌓아 올린 잉카의 밭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고 건재하다.
마츄픽추를 두고 사람들은 많은 의문을 품고 있다.
마츄픽추는 잉카제국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수 십톤은 되어 보이는 돌들을 잉카인들은 어디서 어떻게 옮겨 왔는지,
산꼭대기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무얼 먹고 살았는지 말이다.
워낙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보니 한때는 마츄픽추가
외계인의 지구기지였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었다고 한다.
금속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정교하게 돌을 잘라
건축자재로 사용한 것도 외계인이 레이저로 잘랐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찬란한 문화유적은 남겼지만 문자의 기록이 없으므로
의문투성이다.
이렇게 귀한 곳에 왔으니 한 마음으로 뭉치자며
안내자의 도움으로 뒷편의 와이나픽추를 배경으로 단체인증샷을 한다.
와이나픽추는 ‘젊은 봉우리’라는 뜻과 잘 어울리게 해발 2,700m의 높이로
기세좋게 솟아 있다.
와이나픽추 정상에서 내려다 보며 환상적인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
아슬아슬한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 2시간 이상의 트레킹을 하는
용감한 도전자도 있으나 대개의 관광객들은
마츄픽추에 오른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듯하다.
날씨가 좋아서 마츄픽추에다 와이나픽추까지
잘 볼 수 있는 운이 있는 우리다.
마츄픽추 정문
잉카인들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집회를 갖고 운동을 하는
집단 생활을 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한 대광장에서
평화롭게 노니는 야마 무리,
마추픽추에서 유일하게 2층으로 설계된 왕녀의 궁전
마츄픽추의 심장이라 부르는 태양의 신전
콘도르의 부리와 머리 모양을 본 따 만든 콘돌신전
왕실의 미라를 안치했던 거대한 돌을 쌓아 만든 왕의 무덤
마추픽추 유적지 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해시계 '안티와타나'
장례용 바위와 묘지 ㅡ 처음 발견 당시 170여구의 여성유골이 있었던 곳
돌을 자르고 다듬었던 채석장 작업장
살짝 무너진 세 창문의 신전
마추픽추의 높은 산꼭대기에는 과학적으로 잘 만들어진 수로와
17군데나 되는 양수장도 보인다.
높은 산에서는 물이 귀하기 때문에 한 방울의 물도 헛되이 버려지지 않도록
물길을 잘 정비했으며
식수로 사용할 물과 농사짓는 데 쓸 물을 나누고 재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어 잉카인의 지혜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마추픽추가 주는 의문은 또 있다.
마추픽추에서 170구의 미이라가 발견되었는데 모두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남자들은 공중 도시 마추픽추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산 아래에서 스페인 군대와 싸우다 전사하고,
사제로 선택된 ‘태양의 처녀’들만 남아 마츄픽추와 운명을
같이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다.
해발고도가 2400여m가 넘는 화강암 산꼭대기, 그 고산지대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정교하고 치밀하게 계획된 도시가 140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혀를 내두르게 되는 마츄픽추다.
한 건축가는 마추픽추를 이렇게 노래했다.
'깊고 깊은 계곡 위에 세워진 이 도시는 자연의 우주적 광경이다.
의례 같은 우아함, 그 돌들이 토해내는 영원의 표현 속에 성스러운 장소로서의
중요한 역할이 반영되어 있다.
안데스의 고봉들이 펼치는 환상적인 세계에
보석처럼 꼭 끼워진 잉카인들의 가장 위대한 유물이다.'
호텔을 출발하기전에 산소를 흡입하고 비아그라의 효능이 있는 약을
미리 먹어서인지 마츄픽추는 제대로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고산병 증세는 멀미로 구토를 하거나,
근육통으로 허벅지가 아파서 걷기 힘들고,
두통, 피로감, 위통 등인데 고도가 높을수록 산소가 희박하여 더 심하게 된다.
일행들의 증세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개개인의
체질이 다르기 때문인 듯하다.
선배들은 모두 짱짱한데 나이가 적은 순서로 고산증세로 고생을 하니
건강은 나이가 아니고 자신의 체력임을 속일 수 없다.
산비탈이나 계곡을 따라 집을 짓고 사는 주민들의 모습이
넉넉지 않게 보이지만 천진한 어린이의 눈망울에선 광체가 난다.
참 건강하고 행복해 보인다.
기차역 앞 마을에서의 자유시간이 황금같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줄지어 있는 상가를 기웃거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게 앞에서는 리마가 손님을 맞고
각종 기념품들이 넘쳐나게 많다.
이제
아침에 온 길을 다시 되돌아 가서 어제 묵은 호텔에서 쉬고
다음날 쿠스코로 가서
수도 리마를 둘러 볼 일정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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