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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카터 대통령의 정직과 겸손

불꽃緝熙 2025. 2. 1. 09:01

카터 대통령

 

  지난해 12월 29일에 지미 카터 미국 39대 대통령이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1월 9일에는 생존하는 모든 전직 대통령과 곧 취임할 트럼프가 참석한 가운데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는 미국의 모든 대통령 가운데 가장 도덕적이고, 가장 겸손했으며, 퇴임 후에도 세계 여러 지역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인 전직 대통령으로 전 세계인의 칭찬과 존경을 받았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역사에도 그만큼 정직하고 겸손하게 인류의 평화와 안전, 정의와 인권을 위해서 노력한 국가 원수는 드물었지 않나 한다.

 

  대통령으로서도 그는 정직, 정의, 평화, 자유, 평등 등의 보편적 가치를 누구보다 더 열성적으로 추구했다. 그는 가난하게 자랐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남부 출신인데도 인종차별을 줄이는 데 힘썼다. 1978년 그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뤄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미국의 이익이 아니라 평화 그 자체를 위한 그의 집념을 반영했고, 중동 평화에 크게 공헌했다. 한국의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을 줄이기 위해서 미군 철수를 지렛대로 이용하려 했으며, 1979년에 보수주의자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막대한 돈을 들여 건설하고 운영하던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파나마에 양도한 것은 그의 정치적 이상을 잘 반영한다. 그 때문에 트럼프는 카터가 미국의 모든 대통령 가운데 바이든 다음으로 가장 나쁜 대통령이라고 공격하면서 파나마 운하 반환을 요구하고 있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카터는 퇴임 후에도 갈등이 심한 나라의 선거를 감시하고, 여러 평화회담을 중재했으며, 인질 석방에 공헌했고, 환경보전에 힘썼다. 남북한의 긴장 완화를 위해 북한에도 방문했고, 해비타트 (Habitat)란 단체를 만들어 14개국에 4천여 채 이상의 집을 건축하거나 수리했다. 다른 대통령은 모든 기회와 자원을 백악관에 들어가는 데 이용했는데, 카터는 오히려 다른 목적을 위해서 백악관을 디딤돌 (stepping-stone)로 이용한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런 공로로 2002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퇴임 후 그는 방이 2개뿐인 낡은 집에 살았다. 우리 돈으로 3억 원짜리였는데, 그 집조차도 공익을 위하여 기부하고 떠났다. 다른 전직 대통령들은 엄청난 액수의 강사료를 받고 강연을 해서 떼돈을 벌었는데, 그는 땅콩 농장 실패로 큰 빚을 졌는데도 돈 생기는 강연을 일절 사절했다. 여러 나라 학자들의 모임에서 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노트 하나 없이 수많은 사실과 수치를 인용하면서 유창하고 설득력 있게 연설했고, 여러 당면한 국제적 사건들에 대한 질문에 막힘없이 그리고 깊이 있게 대답하는 것을 듣고 깊은 인상과 감명을 받았다. 그 정도의 강연이라면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도 거액의 강사료를 받을 가치가 충분했다. 그는 부자들이 제공하는 자가용 비행기를 다 사양하고 이코노미석을 이용했으며, 사용한 짚 팩을 씻어서 다시 쓸 정도로 절약하면서도, 전직 대통령에게 제공되는 국비보조금은 다른 전직 대통령들의 1/3밖에 받지 않았다. 장례식 조사에서 바이든 현 대통령이 카터의 '인품 (character)'을 특별히 칭찬했는데, 앞에 앉아 있는 트럼프를 의식한 것이라고 기자들이 꼬집었다.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그 두 사람의 인품만큼 극과 극으로 대조되는 경우는 드물 것 같다.

   카터는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신실한 기독교인이었고, 그의 신앙은 매우 건전하고 정통적인 것으로 "하나님은 나의 개인적인 하인이 아니다. … 하나님은 개인적인 욕망을 충족시켜 주시거나, 성공을 보장해 주시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기복신앙을 철저히 배격하면서도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제게 위로와 확신, 만족과 용기, 희망과 평안을 주신다"라고 하며 성경이 강조하는 정의와 사랑(아가페)을 삶의 핵심 과제로 삼아 일관성 있게 실천했다. 기독교인이 아닌 언론인들조차도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그가 가장 드러내놓고 기독교적 정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존경스러운 인물이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대패하여 연임에 실패했다. 경제 사정도 나빴고, 이란에 잡힌 미국인 인질 구출에 실패했기 때문으로 알려졌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인 2/3가 그에게 등을 돌리고, 교회에 가 보지도 않았던 레이건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온갖 비기독교적 행적으로 구설에 오르고 재판까지 받은 트럼프 후보에게도 2016년에는 복음주의자들의 80 %, 2024년에는 65%가 지지를 보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기독교 신앙이나 기독교적 정치 이상이 아니라 돈과 정치적 이념이란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민주주의의 암이라 할 수 있는 인기영합주의가 왜 욕망으로 가득 찬 정치인들에게 그렇게 큰 유혹으로 작용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 상당수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걱정된다.

 

  한 카터 전문가는 비록 재선에는 실패했지만, 카터로 말미암아 미국은 더 강해졌고 세계는 더 안전해졌다고 평가했으며, 세계 여론도 그런 평가에 동의하고 있다.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와 와이오밍주에 걸쳐 있는 러쉬모어산에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인정받는 워싱턴, 제퍼슨, 링컨, 루즈벨트의 상이 새겨져 있는데, 어떤 언론인은 카터가 거기에 끼이지는 못하지만 바로 그 밑에는 설 수 있다고 했다.

 

  비록 지금 전 세계, 특히 미국과 한국의 정치계는 뒤죽박죽이지만, 그래도 정의, 정직, 박애, 검소, 절제 등의 미덕은 정치에도 결코 무력하지 않으며, 그것들에 충실하면 언젠가는 인정받고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카터 대통령은 증명해 주었다.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카터 같은 분이 대통령으로 당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쓴이 : 손봉호 / 서울대 명예교수]

                                                                                                                    

 

 

-< The Power Of Love (사랑의 힘)/Vienna Symphonic Orchestra>-

 

 

* 편집 : 西湖 李璟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