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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입문 [3] 본문
* 제가 이사야서를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참조하였던 책을 소개합니다.
- 고촌 성당 이경환 라파엘
이사야서 1-39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1)
전체 66장인 이사야서는 한 권으로 내기엔 분량이 너무 많아 두 권으로 나누어 출간한다. 이번 책이 그 첫째 권으로 1-39장을, 다음에 나올 둘째 권은 40-66장을 다룬다.
첫째 권은 이사야서 입문과 이사야서 주해로 구성되며, 입문 부분에서는 이사야서의 전반적 특징을 설명하고, 주해 부분에서는 이사야서 1-39장 본문 전체를 제시하며 각 장과 절마다 자세한 각주를 붙여 놓았다. 뒷부분에는 참고 문헌과 성경 찾아보기를 실었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로는 『시편 1-41편』, 『신명기』에 이어 세 번째 출간이다. 앞으로 이사야서 두 번째 권, 에제키엘서, 시편 두 번째 권이 나올 예정이다.
대부분의 성경 번역본에서 예언서들 가운데 첫 번째로 나오는 이사야서는 분량도 방대하고 신학적으로도 성경의 다른 책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신약성경의 여러 중요한 부분에서 이사야서를 인용하고 있으므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관계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사야서 각 장의 특징
19세기 말에는 이사야서를 제1이사야서(1-39장), 제2이사야서(40-55장), 제3이사야서(56-66장)로 나누는 이론이 형성되었다. 이 세 부분을 구분하는 기준은 역사적 · 문학적 · 신학적 동기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이점은 시대적 배경이다.
이 책에서는 이사야서의 부분들을 가리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제2이사야’, ‘제3이사야’보다 ‘이사야서 제2부’, ‘제3부’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한편 ‘제2이사야’, ‘제3이사야’라는 표현은 그 부분의 저자로 가정되는 인물을 지칭할 때에 사용하는데, 그 인물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 성경 본문이 화자로 설정한 인물일 경우도 있다.
문체상으로 본다면 1-39장은 장중하고 절제가 있으며 간결하고, 40-55장은 더 많은 수사학적 기교를 사용하여 격정적이고 강렬한 문체를 보이며 반복과 열거를 즐겨 사용한다. 51,17의 “깨어라, 깨어라”와 같이 동사를 겹쳐서 사용하는 것도 이사야서 제2부의 특징이다. 56-66장의 문체는 40-55장과 비슷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시적으로 제2이사야만 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한다.
신학적으로는, 앞부분에서는 예루살렘의 죄에 대한 고발과 심판 선고가 지배적인 반면, 40장 이후에서 심판은 이미 과거의 일로 나타난다. 40,1의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이라는 선포가 전환점이 되어, 이제는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 강조된다.
그 밖의 특징으로 이사야서 제2부에서는 다른 신들이란 존재하지도 않으며 주님께서 유일한 하느님이심이 계속해서 강조되고, 이와 더불어 창조 신앙이 나타난다. 이 두 주제는 구약성경의 여러 책들 가운데 특히 이사야서 제2부에서 뚜렷하게 부각된다. 또한 1-39장에서는 9장이나 11장 등에서 다윗 왕실의 임금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는 반면, 40-55장에서는 “주님의 종”이, 56-66장에서는 집단적인 개념인 “종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이사야서의 세 부분에서는 서로 다른 인물들이 연속성을 가지면서 하느님 약속의 담지자가 된다.
한 권의 책인 이사야서
근래의 연구에서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과 같은 편집 단계를 거쳐 완성된 이사야서라는 책의 단일성에 새롭게 관심을 기울이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19세기 이전에는 이사 1-66장이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한 책이라고 생각했다가 점차 그러한 믿음이 무너지고 여러 저자를 생각하게 된 것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이었다면, 근래에 이르러서는 비록 여러 저자와 편집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해도 최종적으로 편집된 이사야서는 ‘단 하나의’ 책이라는 점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의 연구는 아직까지 모색 단계에 있지만, 지금까지 설명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19세기 이후의 이사야서 연구는 ‘저자의 단일성에서 책의 단일성으로’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이사야의 출생지나 가문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그의 문체는 높은 교육 수준을 드러내고, 그가 임금이나 고위 관리들과 어렵지 않게 접촉하며 많은 정치적 활동을 한 것이나, 신학적으로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에 대한 하느님의 선택을 크게 중시하는 것을 보아 그는 예루살렘 출신의 귀족 계층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사야는 결혼을 했고 적어도 두 아들이 있었다(이사 7,3; 8,3 참조).
이사 1-39장의 구조와 내용
이사야서 각 부분의 단락 구분은 『성경』을 따르고, 전체 구조에 대해서는 『주석 성경』의 이사야서 입문을 따랐다.
이사 1-12장, 이스라엘과 유다에 관한 예언들
1-12장에서는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 특히 윤리적 타락을 고발하면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는데, 대개 이 부분에는 기원전 8세기에 살았던 이사야 예언자 자신의 선포 내용이 비교적 많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1-12장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선고와 구원의 예고가 계속 교차된다. 이 단락은 12장에 실린 구원된 이들의 감사 노래로 끝난다.
이사 13-23장, 이민족들에 대한 신탁들
13-23장 가운데 몇몇 본문은 이사야 자신의 것일 가능성도 있으나 이방 민족들에 대한 대부분의 신탁들, 특히 바빌론을 대상으로 하는 13-14장의 경우는 분명 유배 중 또는 유배 후에 작성된 것이다. 실제로 이 부분에서는 아시리아의 멸망뿐 아니라 바빌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귀향, 그리고 필리스티아, 모압, 다마스쿠스, 이집트 등 여러 민족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고 있는데, 이러한 선포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흥망도 오직 주님의 결정에, 그분의 손에 달려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다(이사 14,24-27).
이사 24-27장, 이른바 이사야의 묵시록
이 부분을 일컬어 이사야의 묵시록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리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이 장들은 이사야가 쓴 것이 아니라 이사야서 가운데에서도 거의 가장 늦은 시기에 첨가된 부분이고, 종말론적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묵시문학이라는 문학 유형의 고유한 요소들이 많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어떤 구체적인 민족에 대한 임박한 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지배하시는 하느님의 최종적이고 전체적인 심판을 이야기한다.
이사 28-33장,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약속과 위협을 담은 신탁들
이사 34-35장, 또 다른 묵시록적 단편들
28-33장의 문학적 특징은 불행 선언이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이집트와 동맹을 맺으려는 이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아시리아의 불행을 선언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장들 모두가 불행만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34-35장은 ‘이사야의 소묵시록’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민족들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35장은 주제로나 사용된 어휘로나 이사야서 제2부와 밀접하게 연결되며, 본문이 작성된 시기도 기원전 8세기는 분명 아니다. 아마도 이 장은 이사야서의 첫 부분에 둘째 부분(40-55장)을 덧붙이면서 그 두 부분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사 36-39장, 산헤립의 침공 당시 이사야의 활동
36-37장은 아시리아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하던 시기에 관한 설화적 자료로서, 히즈키야의 찬미가(이사 38,9-20)를 제외하고는 2열왕 18-20장과 거의 일치한다.
이 장들을 이해하는 열쇠는 “네가 무엇을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하단 말이냐?”(이사 36,4)라는 랍 사케의 질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대답은 바로 히즈키야의 믿음에 있다. 7-8장에서 하느님을 믿지 못했던 아하즈와 달리 히즈키야는 하느님을 신뢰했다. 히즈키야의 발병과 치유를 이야기하는 39장 역시 하느님께 충실했던 히즈키야가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사야서 제1부의 신학적 의미
이사야서가 접근하기 어려운 책이라는 인상을 주는 이유는 무엇보다 분량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서의 신학은 매우 일관된 편이기 때문에 하나를 풀고 나면 전체를 풀어갈 수 있다. 그 출발점은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을 때 만났던 하느님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호칭은 이사야서 제1부뿐만 아니라 이사야서 전체에서 20회 이상 사용되고 이사야서 이외의 책들에서는 드물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사야서의 특징적인 신학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그분의 높은 길을 남김없이 깨달아서 예언자가 된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촉구한 것은 인간의 계획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당신의 백성을 구원으로 이끄는 거룩하신 그분,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후대에 작성된 이사야서 제2부와 제3부까지 전체를 읽고 나면, 이사야의 선포를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후대의 관점에서 보면, 심판을 통한 구원이라는 역사의 흐름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사야와 함께 떠나는 구약 여행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로, 지난 첫째 권 1-39장에 이어 둘째 권 이사야서 40-66장이 나왔다. 전체 66장인 이사야서는 한 권으로 내기엔 분량이 너무 많아 두 권으로 나누어 출간했다. 이사야서 40-66장 본문 전체를 제시하며 각 장과 절마다 자세한 각주를 붙여 놓았고, 뒷부분에는 참고 문헌과 성경 찾아보기를 실었다. 앞으로 에제키엘서, 시편 세 번째 권이 나올 예정이다.
대부분의 성경 번역본에서 예언서들 가운데 첫 번째로 나오는 이사야서는 분량도 방대하고 신학적으로도 성경의 다른 책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신약성경의 여러 중요한 부분에서 이사야서를 인용하고 있으므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관계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1권에서 언급했듯, 19세기 말에는 이사야서를 제1이사야서(1-39장), 제2이사야서(40-55장), 제3이사야서(56-66장)로 나누는 이론이 형성되었다. 이 세 부분을 구분하는 기준은 역사적 · 문학적 · 신학적 동기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이점은 시대적 배경이다.
이 책에서는 이사야서의 부분들을 가리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제2이사야, 제3이사야보다 ‘이사야서 제2부’, ‘이사야서 제3부’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이사야서 제2부와 제3부의 특징
문체상으로 본다면 40-55장은 더 많은 수사학적 기교를 사용하여 격정적이고 강렬한 문체를 보이며 반복과 열거를 즐겨 사용한다. 56-66장의 문체는 40-55장과 비슷하지만 전반적으시적으로 제2이사야만 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한다.
신학적으로는, 앞부분에서는 예루살렘의 죄에 대한 고발과 심판 선고가 지배적인 반면, 40장 이후에서 심판은 이미 과거의 일로 나타난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40,1)이라는 선포가 전환점이 되어, 이제는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 강조된다.
그 밖의 특징으로 이사야서 제2부에서는 다른 신들이란 존재하지도 않으며 주님께서 유일한 하느님이심이 계속해서 강조되고, 이와 더불어 창조 신앙이 나타난다. 이 두 주제는 구약성경의 여러 책들 가운데 특히 이사야서 제2부에서 뚜렷하게 부각된다. 또한 1-39장에서는 9장이나 11장 등에서 다윗 왕실의 임금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는 반면, 40-55장에서는 ‘주님의 종’이, 56-66장에서는 집단적인 개념인 ‘종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사야서 제2부에서 처음으로 ‘종’이라는 호칭이 나타나는데, ‘종’은 이사야 예언서 제2부를 특징짓는다고 할 만큼 중요한 개념이다. 이사야서 제2부에서는 ‘종’이라는 인물이 중심이 되었다면, 이사야서 제3부에서는 ‘종들’이 중심이 되는데, 제2부에서 제3부로 건너가는 위치에서 다윗과 맺으신 계약이 ‘너희’라는 집단으로 옮겨짐으로써 ‘종들’은 하느님의 충실하심이 실현되는 대상이 된다.
이사야서 제2부 개요
이사야서 제2부의 저자는 기원전 8세기에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선포했던 말씀들을 기원전 6세기의 상황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선포한다. 이사야가 말했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하느님께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유일한 하느님이고, 그분 외에 다른 신들은 있지 않으며, 키루스를 통해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해방 또한 그 하느님의 업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제2이사야’로 일컬어지는 저자의 메시지다. 이사야서 제2부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창조 신앙도 세상 만물을 지배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고백이다.
이사야서 제2부는 위로의 책이라고 불린다. ‘위로’라는 말은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언급되지만, 특히 40,1의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라는 말씀은 심판 선고가 주류를 이루던 1-39장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이사야 예언자가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멸망을 향해 가던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경고했다면, 이제 유다는 이미 멸망했고 바빌론 유배도 거의 끝 무렵에 이르렀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사야서 제2부의 앞부분에서 말하는 위로는 무엇보다도 유배지로부터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는 귀환을 의미한다. 이는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황제 키루스의 칙령으로 실현되었다.
바빌론 유배지에 끌려와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이스라엘인들에게 구원이 선포된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나의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들었을 때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 누구의 위로보다도 큰 위로를 받았으리라. 예언자를 통하여 하느님 말씀을 듣는 신앙인들에게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위로가 되었으리라.
이사야서 제3부 개요
이사야서 제3부의 구조는 명확하지 않다. 근래에 몇 가지 의견들이 제시되었지만 어느 한 가지를 일반적인 견해로 말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예루살렘의 구원을 선포하는 60-62장이 이사야서 제2부의 내용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사야서 제3부 가운데 가장 먼저 형성된 부분이라고 본다.
56-59장에서는 선포된 구원이 실현되지 않는 이유가 이스라엘이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63-64장은 구원을 바라는 탄원 기도이고, 65-66장에서는 하느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심을 알린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주님께 충실한 이들에게는 구원이 약속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심판이 선고된다는 것으로, 56-59장과 연결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이든 이방인이든 하느님을 공경하고 정의를 실천한다면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이스라엘이라 하더라도 정의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구원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 이사야서 제3부에서 강조하는 내용이다.
* 편집 : 西湖 李璟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