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궁궐지킴이
사도행전 입문 [2] 본문
아래에 제시한 내용은 사도행전 개강에 대비하여
제가 인터뎃 등에서 찾아본 "사도행전 입문" 자료입니다.
2023년 3월 23일 (목) 20:00 / 고촌 본당 이경환 라파엘
사도행전 입문 [2}
Ⅰ. 사도 행전의 중요성
초대 교회가 남겨준 책 가운데 가장 흥미있고 매력있는 글은 아마도 사도행전일 것이다. 성령의 기백으로 가득찬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세기를 두고 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사도행전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원시사(原始史)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서 이후 교회사관(觀)에 중대하고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만일 사도행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형성되던 시기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밖에 갖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복음서와 바울로의 서간 사이에 끼여 있는 사도행전은 두 책 사이를 밀접하게 연결시켜주는 교량의 역할을 하면서 신약성서 연구의 관건이 되고있는 책이다.
Ⅱ. 사도행전이라는 표제
원래 제3복음서(루가복음)와 사도행전은 한 작품의 상․하권으로 이루어진 한 권의 책으로서, 저자는 신약성서 가운데 가장 두꺼운 책 하나를 썼는데 그것이(신약성서전체의 ¼의 양) 곧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인 것이다. 이 두 작품이 한 권의 책이었다는 것은 어휘나 문체, 구조가 비슷하고 상권인 제 3복음서의 핵심이 하권의 머리말에 요약되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으로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 권의 책이었기에 사도행전이란 표제는 원래 없다가 2세기 중엽에 복음서들을 하나로 엮을 때 두 분으로 나누어지면서 사도행전(acta apostoli)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프락세이스(praxeis)란 낱말은 고대 세계에서 특히 통치자의 탁월한 행적을 의미하였으며 역사서의 제목에 많이 사용되었던 희랍적 문학 표현 양식의 하나이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명장 한니발 같은 위대한 인물의 전기에 붙여진 것이 그 예다. 곧 사도행전이란 사도들의 위대한 행적을 기록한 책이란 뜻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잘 보면 사도들의 명단이 제시되는 곳(1, 12-14)외에는 베드로와 바울로의 활동과 복음 선포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다른 많은 이들의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로는 사도행전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오히려 그 내용으로 보면 초대 그리스도 교회의 성장과 조직, 발전상을 비교적 정확하게 보도한 원시 그리스도교 교회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Ⅲ. 저자, 저술 연대
사도행전의 저자는 루가복음의 저자와 동일한 “루가”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2세기까지 올라가는 교회 전승(무라또리안 단편)은 루가가 자기 복음서 다음에 사도들의 행적을 저술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루가는 희랍계 출신의 개종자로서 의사이며(골로사이 4,14) 바울로의 제 2차 전도여행 때부터 동행한 순회 전도사이기도 했다. 사도행전 16, 10 이하에 바울로가 제 3차 여행을 거쳐 마지막으로 로마로 호송되어 가는 여행기에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 주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16,10 ; 21,5 ; 21,1 ; 28,16) 이것은 더욱 확실해진다. 아무튼 사도행전의 저자 루가는 상당한 문학적 재능과 함께 높은 교양과 풍부한 인간미의 소유자로서 그의 온갖 재능과 열성을 다하여 예수의 행적을 기록하고 또 계속해서 사도행전을 저술하였다. 사도행전의 집필 시기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다.
22-28장에서 바울로의 로마에서의 최후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몇몇 학자들은 기원 후 62-63년 경이라고 본다. 그러나 제3 복음서의 집필 연대가 빨라도 기원 후 70년 이후라고 볼 때, 이런 견해는 개연성이 없다. 오히려 사도행전의 끝부분이 갑자기 중단된 것은 바울로 개인의 생애 보다는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는 데에 관심이 있었던 루가에게 있어서 “땅끝”이란 로마를 의미하고 그래서 그의 목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로마야말로 당시 세계의 중심지였고 비록 수인의 몸이었지만 바울로가 로마의 땅을 밟고 거시서 이방인들에게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복음을 선포하게"(28,31) 됨으로써 루가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루가는 더 이상 계속 글을 쓸 필요가 없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사도행전은 제 3복음서가 쓰여진 이후인 80-85년 경에 저술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Ⅳ. 사도행전의 성격
1. 역사서이다
사도행전은 그리스도교의 태동기에 관한 역사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저술하고 있는 역사서(historiography)이다. 사건을 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예술적 천성과 역사가적 안목을 가진 루가는 여러 가지 전승, 특히 원시 교회사, 베드로의 역사, 그리고 바울로의 역사를 한데 집성함으로서 도대체 그리스도 교회 자체가 어떻게 생겨나고 확장되었는지를 서술하였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엽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자들의 현지 답사와 고고학적 조사는 사도행전의 모든 기록이 사실이라는 것을 판명함으로써 이 책의 사건 기록이 오류가 없는 역사적 기록이라는 것을 밑받침해 주고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단순히 정확한 사건보도가 목적인 서술적 역사 기록이 아니다. 사도행전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전해 주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일어난 사건의 내적 의미를 깨달아 알도록 하고, 그 사건에서 하느님의 능력이 나타났다는 진리를 독자들의 인상에 깊이 새겨주고자 신앙의 빛 아래에서 역사를 해석한 내용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말씀, 즉 구원의 기쁜 소식이 어떻게 해서 세상 끝까지 전파되었는지를 보고한다. 즉 사도행전은 단순한 연대기사 아니라 하느님이 개입하시는 역사, 구원사, 포교사, 교회사로서 기원 후 33-65년 사이의 약 38년 동안의 교회건립, 조직 등 그리스도 교회의 외적인 발전상과 내적으로 충실해져 가는 모습을 서술한 것이다.
2. 성령의 역사를 확증하는 책이다.
사도행전은 하느님의 기쁜 소식이 어떻게 당시 세계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던 로마에까지 전파되었는지를 서술하면서 복음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었다는 결론을 맺는다. 이러한 복음 전파의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강조되는 것은 성령의 끊임없는 활동이다. 하느님께서는 예수의 사명을 위해 세례 때에 성령을 주셨듯이, 부활하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셨고(1,5) 말씀하신 대로 사도들은 곧 성령을 받았다. 성령으로 충만된 그들은 완전히 내적으로 변화되어 힘차게 복음을 전하였으며 공동체를 건설해 나갔다. 사도들로 하여금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하신 성령의 능력과 이끄심으로 인해 갖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말씀은 줄기차게 전파되고 교회는 놀랍게 성장해 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한 기록인 사도행전을 가리켜 흔히들 “성령의 복음”이라고 부른다. 사도행전이 때때로 연대기에 별 관심이 없는 듯이 불규칙적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사도행전이 비록 역사적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순수한 역사책이라기보다, 오히려 “역사”의 양식(樣式)으로 된 “복음”, “성령의 복음”이라는데 그 이유가 있다.
Ⅴ.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연관성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이 쓰여진 독립된 책이 아니라 서로 밀접히 연결된 전․후편의 책이므로 루가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도행전을 고려해야 하고 사도행전을 잘 읽기 위해서는 루가복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세례자 요한이 출생한 때부터 바울로가 이방인 세계의 수도인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때까지 이룩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서술하고자 한 루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즉 전편인 루가복음은 갈릴래아 → 예루살렘까지 : “예수”안에 “하느님 나라”가 임하였으며 그분이 “성령”을 약속하셨다는 것을, 후편인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 로마까지 “사도들” 안에 “성령”이 충만하여 그들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단계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묘사한다.
그리하여 루가는 예수 안에서 구약에 예언된 하느님의 모든 예언이 이루어졌으며, 이 예수를 선포하는 그리스도교야말로 유대교의 합법적 계승자로서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계속한다는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Ⅵ. 사도행전의 신학적 특징
루가는 그리스도교의 초창기의 원초적인 신학을 소박하게, 그러나 신빙성 있게 서술한다. 무엇보다도 사도행전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시어 당신 계획을 이루시는데, 이 계획은 “말씀”에 의해 실현되고 이 말씀이 인격화한 분이 예수이시다.
사도행전은 이 인격화한 말씀이 사도들의 사명 수행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과정을 전한다. 또한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인들의 예수께 대한 신앙 고백의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신 예수께 드린 고백은 키리오스(kyrios), 주님이라는 칭호였다. 즉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하느님은 그에게 성령을 부여하셨고, 그를 주님이요, 기름 부음 받은 자로 만들었다(2, 23; 5, 32) 예수는 부활하심으로써 생명의 근원이 되었고(3, 15) 승천으로 하느님 오른 편에 높임을 받으시는 주님으로 고백한다(2, 34-36).
이제 예수는 교회의 주님으로서 교회와 함께 하신다(5, 14 ; 10, 24). 이러한 고백과 함께 사도행전에 나타난 설교들은 초기 교회가 직면한 문제, 곧 이교도들을 받아들이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는지를 알려 준다. 논쟁의 해결점은 믿음을 통한 구원,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이다(15장). 그리고 이 구원은 이스라엘에서 오기에 복음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전파하고 난 다음에 이방인들에게 전파된다.
사도행전은 또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생활에 관한 중요한 내용을, 공동생활과 교회의 조직, 세례, 성찬례 등의 전례의 원천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사도행전은 성령의 끊임없는 활동에 대한 진술이다. 성령은 예수의 영이며(16, 6, 7) 아버지의 약속으로 새 계약을 이루어 준다. 이 성령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세례시에 받는 선물이며(1,5. 8. ; 2,4. 38),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어떤 특정한 과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특히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무장시켜 주는 역동적인 힘으로 드러난다.
Ⅶ. 사도행전에 반복되는 주요 주제
1. 하느님의 말씀은 어떠한 반대와 시련 속에서도 줄기차게 뻗어 나간다(6,7).
2. 구원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유대인의 기대는 부활하신 예수와 그의 성령 강림으로
완전히 이루어졌다. 즉 예수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이루신 분이다(2,23. 36 ; 4,12).
3. 예수의 복음은 유대교의 굳은 껍질을 벗고 인종과 민족을 초월하여 만인에게 전파된다
(8,5 ; 8-40. ; 10장).
4. 예수는 성령으로 충만한 그의 제자들을 통해 계속 활동하신다.
5. 사도행전은 또한 치유 사건들을 구원 표지라는 것을 강조한다(8장, 16장).
6.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합법적인 완성이며 12사도들은 하느님 백성을 위한 새로운
지도자들이다.
Ⅷ. 구조
사도행전은 루가의 집필 목적에 따라 구성되었다. 즉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 아니라 땅 끝까지 예수의 증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다음에 이방인에게 전해진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주로 1-12장은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여 유대인들에게 말씀이 선포되어 가는 과정을 취급하고, 15-28장은 바울로를 중심으로 하여 이방인들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13-15장은 과도기적인 상황을 알려준다. 루가는 이러한 신학적 의도와 함께 지리학적 순서에 따라 사료를 배열한다. 즉 1장-12장은 팔레스티나를 배경으로 예루살렘에서부터 안티오키아까지, 13-28장은 이방인 지역을 배경으로 즉 안티오키아에서부터 로마로 향하여 전개한다.
서언 : 출발점 - 성령의 약속과 사명 1, 1 …
1부 : 유다인들에 대한 복음 선포
1,12-5,42. 성령을 통한 예루살렘 교회의 탄생과 성장
6,1-12, 26.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의 선교
2부 : 이방인등에 대한 복음 선포
13,1-15, 35. 안티오키아에서 바울로와 바르나바의 설교(과도기적 상황)
15,36-21, 14. 바울로의 선교 여행
21,15-28, 31.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홈페이지에서>
2023년 3월 23일 (목) 20:00 / 고촌 본당 이경환 라파엘
* 편집 : 西湖 李璟煥
'가톨릭 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행전 제1과 배움 (0) | 2023.03.31 |
---|---|
사도행전 제1과 읽기 (0) | 2023.03.31 |
사도행전 입문 (0) | 2023.03.31 |
요한복음 제14과 묵상과 생활 (0) | 2023.03.31 |
요한복음 제14과 배움 (1) | 2023.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