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궁궐지킴이
요한복음 제13과 배움 본문
제가 쓴 내용이 여러분의 성경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특히, '묵상과 생활'의 경우에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정리해 보세요.
- 서호 이경환 라파엘 드림
요한복음 제13과 배움
1. 예수님의 수난(18,1-19,16)
㉠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잡으러 온 무리를 어떻게 맞으셨으며,
군인들이 보인 반응은 무엇을 의미합니까?(18,4-8)
*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잡으러 온 무리를 어떻게 맞으셨습니까?
☛ 4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닥쳐오는 모든 일을 아시고 앞으로 나서시며 그들에게,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5 그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요.”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6 예수님께서 “나다.” 하실 때, 그들은 뒷걸음치다가 땅에 넘어졌다.
7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요.” 하고 대답하였다.
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다.’ 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들은 가게 내버려 두어라.”
➞ 유다가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알려준다고 말하는 공관복음서와 달리, 요한복음사가는 예수님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으로 묘사하는데, 여기서 예수님이 체포되시는 사건의 고유한 의미가 드러난다. 즉 그들 손에 넘겨지는 것은 예수님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한층 명확히 한 것이다. 공관복음서에서 수난을 겪으시는 예수님은 육화하신 분으로서 인간적 고뇌를 겪으면서도 온전한 자유의지에서 나온 선택과 결단으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시는 모습이다. 반면에 요한복음서에서 수난능 겪으시는 예수님은 아버지를 계시하며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명을 완수하시는 분으로서,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당신 자신을 적대자들의 손에 내주심으로써 아버지와 일치하시는 모습이다. 친히 단신을 드러내면서 당신을 잡아 가도록 하는 이는 바로 '나자렛 사람 예수' 아버지 아들 자신이다.
* 군인들이 보인 반응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 4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닥쳐오는 모든 일을 아시고 앞으로 나서시며 그들에게,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5 그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요.”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6 예수님께서 “나다.” 하실 때, 그들은 뒷걸음치다가 땅에 넘어졌다.
7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요.” 하고 대답하였다.
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다.’ 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들은 가게 내버려 두어라.”
➞ 제자들과 함께 모여 있던 무리에서 앞으로 나와 군인과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누구를 찾느냐?"(티나 제테이테) 이 장면은 1장 38절에서 당신을 따라오는 이들에게 "무엇을 찾느냐?"(티 제테이테) 하고 물으시던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두 장면에서 가까이 온 그들이 찾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요"하고 대답한다. 예수님은 "나다"하고 말씀하셨다.
"나다"는 그리이스어로 '에고 에이미'인데, 신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관용적인 자기 계시 표현이다.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표현은 그들을 보낸 이들이 알려 준 이름이다. 나자렛 예수라는 호칭이 7절에 한 번 더 언급되고, 에고 에이미는 5-8절에 세 번이나 연이어 나타난다. 이 구절들에서 에고 에이미의 반복은 로마인, 유다인, 적대자인 '세상' 앞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강조하여 부각시키는 효과를 일으킨다. '세상'은 이에 놀라고 당황하여 '그들은 뒷걸음 치다가 땅에 넘어졌다.' 군인들과 경비병들의 반응에서 '나다'라는 말씀의 깊은 의미가 드러났음을 확인하는데, 예수님의 말씀에서 '내가 나자렛 예수다'라는 의미보다 '에고 에이미'가 표상하는 것, 신적 이름이 더 크게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놀라고 당황하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요한복음 제13과 배움
1. 예수님의 수난(18,1-19,16)
㉡ 한나스는 어떤 사람이며, 예수님께서는 한나스의 신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18,19-22)
* 한나스는 어떤 사람인가?
☛ 12 군대와 그 대장과 유다인들의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결박하고,
13 먼저 한나스에게 데려갔다. 한나스는 그해의 대사제 카야파의 장인이었다.
14 카야파는 백성을 위하여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유다인들에게 충고한 자다.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제자는 대사제와 아는 사이여서, 예수님과 함께 대사제의 저택 안뜰에 들어갔다.
➞ 군대와 그 대장과 유다인들의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결박하고, 먼저 한나스에게 데려갔다. 한나스는 그 해의 대사제 카야파의 장인이었다. 카야파는 백성을 위하여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유다인들에게 충고한 자다. 한나스는 10년 가까이 대사제직을 수행하였고, 그의 다섯 아들과 사위도 대사제직에 있었던 까닭에 현직에서 물러났을 때에도 영향력이 매우 컸던 인물이다.
* 예수님께서는 한나스의 신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 19 대사제는 예수님께 그분의 제자들과 가르침에 관하여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언제나 모든 유다인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다. 은밀히 이야기한 것은 하나도 없다.
21 그런데 왜 나에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이들에게 물어보아라.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다.”
22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곁에 서 있던 성전 경비병 하나가 예수님의 뺨을 치며, "대사제께 그따위로 대답하느냐?" 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잘못 이야기하였다면 그 잘못의 증거를 대 보아라. 그러나 내가 옳게 이야기하였다면 왜 나를 치느냐?”
24 한나스는 예수님을 결박한 채로 카야파 대사제에게 보냈다.
➞ 한나스 대사제는 예수님께 그분의 제자들과 가르침에 관하여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언제나 모든 유다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다. 은밀히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왜 나에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이들에게 물어보아라.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곁에 서있던 성전 경비병 하나가 예수님의 뺨을 치며 "대사제께 그 따위로 대답하느냐?" 하였다. 예수님게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잘못 이야기 하였다면 그 잘못의 증거를 대보아라. 그러나 내가 옳게 이야기하였다면 왜 나를 치느냐?" 한나스는 예수님을 결박한 채로 카야파 대사제에게 보냈다.
요한복음 제13과 배움
1. 예수님의 수난(18,1-19,16)
㉢ 유다인들은 왜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며
총독과 어떤 대화를 나눕니까?(18,28-32)
* 유다인들은 왜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 28 사람들이 예수님을 카야파의 저택에서 총독 관저로 끌고 갔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그들은 몸이 더러워져서 파스카 음식을 먹지 못할까 두려워,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29 그래서 빌라도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나와, “무슨 일로 저 사람을 고소하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 사람들이 예수님을 카야파의 저택에서 총독 관저로 끌고 갔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그들은 몸이 더러워져서 파스카 음식을 먹지 못할까 두려워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요한 특유의 감각으로 축제 의식의 관습을 전하는 이 구절이 공관복음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파스카를 준비하는 때라는 사실이 강조되었고, 유다인 자신들은 부정타지 않기 위해 총독관저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러한 축제 시기에 예수님을 그곳에 밀어넣는 행위에서 그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철저하게 배척하는지가 드러나며, 또한 부정을 타는 것이 어떤 행위인가를 역설적으로 알려 준다.
* 총독과 어떤 대화를 나눕니까?
☛ 29 그래서 빌라도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나와, “무슨 일로 저 사람을 고소하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30 그들이 빌라도에게, “저자가 범죄자가 아니라면 우리가 총독께 넘기지 않았을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31 빌라도가 그들에게 “여러분이 데리고 가서 여러분의 법대로 재판하시오.” 하자, 유다인들이 “우리는 누구를 죽일 권한이 없소.” 하고 말하였다.
32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어떻게 죽임을 당할 것인지 가리키며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 빌라도가 그들 유다인이 있는 곳으로 나와 "무슨 일로 저 사람을 고소하는 것이오?"하고 물었다. 그들이 빌라도에게 "저자가 범죄자가 아니라면 우리가 총독께 넘기지 않았을 것이오."하고 대답하였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여러분이 데리고 가서 여러분의 법대로 재판하시오."하자 유다인들이 "우리는 누구를 죽일 권한이 없소."하고 말하였다.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어떻게 죽임을 당할 것인지 가리키며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렇게 된 것이다.
요한복음 제13과 배움
1. 예수님의 수난(18,1-19,16)
㉣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는 죄목은 무엇입니까?(19,7)
*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는 죄목은 무엇입니까?(19,7)
☛ 7 유다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소. 이 율법에 따르면 그자는 죽어 마땅하오.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이오.”
➞ 유다인들은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계시하였기에 죽이려 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라서 죽는다. 이것이 5장에서 10장에 이르기가지 줄곧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이유다. 유다인과 예수님 사이에 존재하는 적대감의 진짜 이유가 전면에 부각되며 그것이 유다인들의 입에서 발설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요한복음 제13과 배움
1. 예수님의 수난(18,1-19,16)
㉤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죄를 알면서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유다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입니까?(19,12-16)
*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죄를 알면서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유다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입니까?(19,12-16)
☛ 12 그때부터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 줄 방도를 찾았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그 사람을 풀어 주면 총독께서는 황제의 친구가 아니오. 누구든지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것이오.” 하고 외쳤다.
13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리토스트로토스라고 하는 곳에 있는 재판석에 앉았다. 리토스트로토스는 히브리 말로 가빠타라고 한다.
14 그날은 파스카 축제 준비일이었고 때는 낮 열두 시쯤이었다. 빌라도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여러분의 임금이오.”
15 그러자 그들이 외쳤다.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빌라도가 그들에게 “여러분의 임금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이오?” 하고 물으니, 수석 사제들이 “우리 임금은 황제뿐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16 그리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 줄 방도를 찾았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그 사람을 풀어주면 총독께서는 황제의 친구가 아니오. 누구든지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것이오."하고 외쳤다.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리토스트로토스라고 하는 곳에 있는 재판석에 앉았다.
유다인들은 로마 황제의 권위를 빌라도에게 상기시키고,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것인데, 그를 풀어주면 황제의 친구가 아니라는 정치적인 발언으로 결국 빌라도가 재판정에 앉게 만든다. 황제의 친구가 아니라는 표현은 정치적 출세를 원하는 사람에게 매우 치명적인 말이다. 권력을 잡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출세할 수 있는 좋은 호칭은 '카이사르의 친구'라는 것이다. 유다인들은 이 구절에서 사실을 위조하고 왜곡시켜 예수님이 항상 거부하셨던 정치적인 임금이라는 죄목으로 예수님을 최종 고발한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만나며 예수님에 대해 어렴풋이 갖게 된 인식, 그분의 무죄, 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정치적 안위에 대한 위협 앞에 일순간 사라졌다.
'가톨릭 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제13과 묵상과 생활 (0) | 2023.03.31 |
---|---|
요한복음 제13과 배움 [2] (0) | 2023.03.31 |
요한복음 제13과 읽기 (0) | 2023.03.31 |
요한복음서 제 12과 묵상과 생활 (0) | 2023.02.07 |
요한복음서 제12과 배움 [2] (0) | 2023.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