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궁궐지킴이
요한복음서 제 12과 묵상과 생활 본문
제가 쓴 내용이 여러분의 성경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특히, '묵상과 생활'의 경우에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정리해 보세요.
라파엘의 2022 온라인 성경공부 "요한복음서 제12과 묵상과 생활"
[요한복음서] 제12과 묵상과 생활 1. 당신은 ‘하느님의 영광’을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내고 있습니까? 저는 이 묵상에 대한 복음 말씀으로 요한복음 17장 22-24절에 있는 내용을 다시 읽고 ‘하느님의 영광’에 대하여 묵상해 보았습니다. 22.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4.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중에서 22절, 24절에 있는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이라고 하신 말씀이 제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이러한 복음 말씀을 살펴볼 때, 예수님의 삶의 기본방향 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부여하신 직무를 완성하는 것이며, 영원한 생명은 오직 한 분이신, 참된 하느님을 알고 그분이 파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성서에서는 '하느님', '하느님의 영광', '하느님의 임재'라는 말은 모두 거의 같은 말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영광’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이것이다’하고 이야기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청하시는 ‘영광’은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구원을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 에 참여케 하는 생명의 약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17,17) 라는 요한복음 말씀에 따라 하느님과 말씀과 진리는 동일하다고 믿으며, 저로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꾸준히 공부해 나가는 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제 삶에서 구체적 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혼자 성경 말씀을 공부한다고 성서를 읽고 쓰기를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으나 제대로 끝까지 성공하지도 못하였는데, 이제는 '가톨릭성서모임'에서 주관하는 ‘성서사십주간’, ‘그룹공부’를 고촌성당의 형제자매님들, 그리고 성실한 봉사자님 들과 함께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며,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주님께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큰 은총이고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6년 동안 성서사십주간은 두 번 공부하게 되었으며, 그룹공부는 ‘창세기’를 시작으로 ‘탈출기’를 공부하였고,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비대면 영상 수업이었지만 더 열심히 ‘마르코복음서’와 ‘요한복음서’를 함께 읽고, 배우고,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참으 로 큰 은총이었습니다. 이렇게 성서를 공부하면서, 하느님을 알고 말씀을 믿으며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라는 사실도 깨닫고 기도하며 내 자신이 스스로 배우는 기쁨을 얻게 되었다는 이 일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나의 삶에서 드러내는 하나의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여 감사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향기나는 삶으로 거듭나기 위해는 성경 공부를 끊임없이 하는 것이 바로‘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라 생각하면서 앞으로 연이어서 ‘사도행전’ 등 성경 말씀 공부를 계속해 나가고자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배우며, 그 말씀에 담긴 뜻을 깨달아 아버지 말씀인 진리를 배우고자하는 저희를 더욱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서] 제12과 묵상과 생활 2. 나는 진정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합니까? 지금 청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 묵상에 대한 복음 말씀으로 요한복음서 16장 23-24절에 있는 내용을 다시 읽으며 내가 아버지께 청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주님의 친구들과 제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믿는 이들의 기도는 주님의 뜻에 맞기만 하면 다 받아질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의 기쁨이 충만하고 완전토록 스승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탄원하도록 격려 하시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 질 것이다“(24절). 이 말씀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이 완전한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는 이들이 완전한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면서 과연 나는 진정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청하고 있는지 되돌아봅니다. 저는 진정 주님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저는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중동이나 유럽 에 있는 여러 성지를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말씀을 조금 더 공부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알고 난 후, 나중에 가려고 미루어 둔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이탈리아 성지순례입니다. 물론 로마 교황청도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로마 교황청도 방문하고, 교황님도 만나 뵈올 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 주어 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서 그 기쁨에 아이들 마냥 제 가슴이 설레 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이탈리아의 성지 순례를 통해 주님과 주님 말씀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청합니다. 주님께서는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라고 믿는 이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을 사랑하시니까 저의 이 간청도 꼭 들어주실거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제가 직접 가서 본 성지순례 중 가장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는 성지는 고촌 본당 주임신부님과 함께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둘러본 이스라엘의 성지 순례 이었습니다. 당시의 이용옥 요한보스꼬 신부님의 인도로 예수님의 여정에 따라 이루어진 이스라엘 성지순례(2011.11.3.~11.11, 8박 9일)는 다시 가보고 싶은 감동의 여행이었으며, 지금도 신약 4복음서를 공부하는데 너무나 큰 도움을 준 멋진 성지순례였다고 하겠습니다. 아마도 이탈리아 성지순례도 이스라엘과 마찬 가지로 감동을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간청해 봅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 질 것 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성경 말씀을 공부를 하며 주님의 말씀을 살펴볼 수 있도록 이탈리아 성지순례의 기회와 건강을 저에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주님께 청해 봅니다. 아멘!“
[요한복음서] 제12과 묵상과 생활 3. 신자 공동체 안에서 일치를 방해하는 요인은 무엇이며, 일치를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저는 이 묵상에 대한 복음 말씀으로 요한복음서 17장 20-23절에 있는 내용을 다시 읽으며 '신자 공동체 안에서의 일치'에 대하여 묵상해 보았습니다. 20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22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데 무엇보다도 구성원들 사이에 먼저 일치와 조화를 이루고 깊은 통교를 이룰 수 있는 은혜를 청하시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표현은 21-23절까지 세 번이나 나오며, 23절에서는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제자들 사이의 일치는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일과 관련된 중요한 주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에도 신자 공동체의 일치를, 그것도 완전히 하나됨을 강조 하셨는데, 그렇다면 신자공동체 안에서 일치를 방해하는 요인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과의 일치를 전제로 신자 상호 간의 일치가 존중 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마땅히 존중되어야야 할 동등한 권리가 침해받아 일어나는 상호작용에 의한 요인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먼저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앞서야 하는데 나를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앞서는 것이 부정적인 요인이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서로를 비교하는 열등의식이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서로의 신체적 조건, 고향, 가문, 학교 등과 같은 출신 배경, 서로의 직업과 직위의 비교 우위, 재산, 지식, 기술 등의 개인적 능력이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비평, 비난, 판단, 불만, 시기, 교만, 우월감 등이 신자공동체 안에서 일치를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내 신앙이 더 깊다고 생각하는 우월감, 내가 교리를 좀 더 잘 안다는 교만심, 성당에 다닌지 얼마라고 다닌 햇수로 비교하는 우월감, 성당 내에서 봉사 활동의 직책에 대한 우월의식 등 찾아보면 수없이 많은 사례들이, 일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신자 공동체 안에서 일치를 위해 과연 나는 어떤 노력과 실천을 하고 있는지를 곰곰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신자 공동체 안에서 ‘하나’ 되기 위해서 나는 항상 하나님과의 일치를 전제로 늘 기도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를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일치를 위해서는 언제나 말과 행동에 좀 더 신중해야 하는데, 신앙 공동체의 주인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이시지,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특정 지도자가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공동체를 배려하는 마음가짐,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기도하는 생활이 몸에 배이도록 하여야 하겠고 이런 일들을 실천하는 삶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 신앙공동체에서 사랑하는 우리들이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게 해주십시오.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게 해주시고, 저는 우리 공동체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심을 믿습니다. 아멘!” (고촌 李璟煥 라파엘)
[기도 지향] ; 사제들을 위하여 * 주님, 진리로 저희를 거룩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일용할 양식]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16,33).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17,11).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17,22-23).
* 글, 편집 : 西湖 李璟煥
|
'가톨릭 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제13과 배움 (0) | 2023.03.31 |
---|---|
요한복음 제13과 읽기 (0) | 2023.03.31 |
요한복음서 제12과 배움 [2] (0) | 2023.01.31 |
요한복음서 제12과 배움 - [1] (1) | 2023.01.28 |
요한복음서 제11과 묵상과 생활 (0) | 2022.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