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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5-한밤의 사진편지 제2805호('시드니오페라하우스(1) - 장주익/'20/6/23/화) 본문

한밤의 사진편지

2805-한밤의 사진편지 제2805호('시드니오페라하우스(1) - 장주익/'20/6/23/화)

불꽃緝熙 2020. 6. 23. 15:43

 

 

한밤의 사진편지 제2805호 ('20/6/23/화)

[한사모' 공식 카페] - '한밤의 사진편지 romantic wal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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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익의 건축 이야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1)


 


 

 

유네스코는 2007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이 건물을 이렇게 말합니다.


“20세기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이며 건축형태나 구조 미학에서

극한의 창조성을 발휘했으며, 주변 경관과 어울리는 탁월한 도시

조각이기도 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걸작으로서

20세기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 전체를 관통해서

의심할 나위 없는 최고의 인류창조물로서 존재한다.”

라고 말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는 피라미드, 만리장성,

인도의 타지마할 등과 함께 서울의 종묘

(석굴암 등과 함께 1995년 지정) 등 등이 있습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오래된 역사 속의 건물이 아니고,

준공(1973년)된지 34년 만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최연소 세계문화유산이 됩니다.


 

 

 

지금부터 60여년 전인 1956년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스 주지사(Joe Cahill)는

시드니항 베네롱 곶(Bennelong Point) 1만 8천평 대지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기로 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하여 국제현상설계 경기를 제안합니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200여 작품이 도착하여

경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심사위원 4명중 한명인 유로 사리넨

(Eero Saarinen 1910-1961 핀란드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이

심사장에 다소 늦게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는 최종 결선 대상에서는 이미 제외되어 옆으로 치워져 있는

(어떤 글에서는, 휴지통에 버려진) 제출안 중에서

하나의 스케치를 발견하고 소리칩니다.

“이거다! 이게 바로 당선작이다, 야! 이건 천재다.”라고.


그 스케치는 결국, 심사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설계 당선작으로 뽑히게 됩니다.


 

 

 

1957년 1월 29일 이른 아침,

전화벨 소리에 웃죤Utzon은 아침 잠을 깹니다.


요른 웃죤 (Jorn Utzon 1918-2008)은

당시 38세의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덴마크의 젊은 건축가로서

멀리 호주로부터 그의 제출안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국제 현상 설계에 1등으로 당선되었다는 전화 통보를 받습니다.


웃죤Utzon은 어느 날, 오렌지 껍질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그 형태에 자극을 받아 몇 가지 스케치를 하여

국제 현상 설계에 응모했다고 전해집니다.


웃죤Utzon 은 설계안이 당선된 이후

호주로 날라와 "건축총책임자" 가 됩니다.


공사를 위한 상세 설계로부터 시작해서

공사는 하나하나 시작되었습니다.

1년, 2년, 3년, 공사는 진행되어 갔습니다.


 

 

 

예정된 5년이 지나지만 공사는 아직 진행 중이었습니다.

기단 부분은 거의 완료 단계이지만

문제는 윗부분인 둥근 형태가 문제였습니다.


형태를 보고, 돛이나 조개껍질을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상하는 새 같다느니 또는 수녀모자 같다고도 하고,

누구는 얼어붙은 얼음 파도에 비유하는가 하면,

심한 경우 화분이 너무 작아 뿌리가 삐져나오고 있는

백색 식물이라느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식으로 지붕과 벽이 일체형으로

둥글게 연결된 대형건물은 당시 50년대, 60년대까지는

세계적으로 건설해본 적이 없는 형태라는 겁니다.


세계적으로 내노라 하는 많은 구조 전문가나 엔지니어들이

공사방법과 자재, 장비 등에 대한 토론과 실험과

또 그에 따른 시행착오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됩니다.


 

 

 

부풀어 오른 듯한 돛 같은 모양은 섬유나 천이 아니라

단단한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져야 하고

이러한 종류의 지붕이나 벽의 형태는

지어진 적이 없었던 터라 공사비용 추정이나 공사 기간을

미리 예정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 50~60년대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공사비가 예산안을 너무나 초과하게 되고

공사 기간은 계속 연장되어 가면서 결국은

공사 발주처인 주정부와 "건축총책임자" 이자 "설계자"인

웃죤Utzon 간에 알력이 생기게 됩니다.


공사비는 당초 700만 호주달러를 예상했지만

어느새 열배가 훌쩍 넘는 1억 호주달러를 넘어 서고

5년으로 예정되었던 공사 기간도

결국, 2배 이상 이상으로 연장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공사 시작 8년이 지난 1965년 선거에 의하여

새로운 주지사(Robert Askin)로 바뀌게 됩니다.


새 주지사에 의해 임명된 담당 장관(David Hughes)은

공사 스케쥴이나 공사 금액 등 더 나아가서는 둥근 지붕

형태의 디자인 등에 대하여 의문을 갖게 되었답니다.


또 당시 호주 국영방송은 오페라 관중보다 콘서트 관중이

더 많다는 이유로 이제 와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대극장을 오페라 전용 극장이 아니고 콘서트 전용 극장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끈질기게 하는 중이었습니다.


둥근 지붕 밑은 공연장이라 내부에 기둥을 세울 수도 없었고,

60년대 초에 이미 기단 부분은 완성되었으나

조개껍질 모양의 지붕이자 벽체인 구조물 10개를 세우는 일과

그리고 그밖에도 여러가지 내부공사가 남아 있었습니다.


조개껍질 모양의 제일 높은 곳은 바닥에서 68미터에 달하고

껍질 지붕과 대형 유리 부분이 벽의 기능을 하여야 하니

공사방법이 더 어려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사방법을 연구, 개발하고 시험하는 시행착오에

8년이나 소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둥근 지붕을 덮게 되는 자기로 된 타일을 개발하는데도

3년이나 소비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Shell(조개 모양의 껍질)이 완성된 후

곰팡이가 슬지 않아 청소가 필요 없는

스웨덴제 타일 100만장으로 그 Shell 표면을 덮게 됩니다.


급기야 1966년 2월,

새로운 주정부에 의하여 모든 공사비의 지출은 중지되고

웃죤Utzon은 발주처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시드니 시내에서는 호주 건축가나 작가 등이 나서서

주정부의 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었습니다.


 

 

* 다음 "시드니 오페라하우스"(2)를 기대해 주세요.


첨부이미지

 

* 편집 : 西湖 李璟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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