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릉 계곡에서 다시 내려와 삼불사 방향으로 소나무 숲길입니다.
망월사를 지나 '배동석조여래삼존불상' 앞에서 해설을 들었습니다.
이 세 불상은 삼릉가는 길 답사에서 만날 수 있는 유물 중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럴까?
삼존석불 모두 4등신의 신체 비율을 지니고 있어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는 듯 한데 몸은 거칠고 뭉특하지만 부드러우면서 정교합니다.
넓적한 얼굴엔 명랑하고 천진한 웃음을 머금고 있고 도툼한
눈두덩이와 빰에는 화사함이 피어나기만 합니다.
삼존석불은 해의 기울기에 따라 다른 분위기의 신비한 미소로 유명
하다고 하며 가운데 있는 불상은 조각 솜씨가 더욱 빼어나다고 합니다.
이제 경주 남산 지구에 조성해 놓은 생태공원 태진지를 지나
포석정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나무데크와 지붕이 있는 정자, 벤취가
곳곳에 있어 잠시 앉아 풍경을 감상하며 쉬어가기에 좋았습니다.
시간에 쫓기듯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또 바쁘게 지내려 하는가 봅니다.
가을 낙엽이 신라의 종말을 알려주는 것 같은 포석정에 다다랐습니다.
포석정은 지금까지는 신라 멸망의 상징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경애왕은 후백제 견훤의 군대가 턱밑에 까지 닥쳤는데도 신료들과
포석정의 돌 홈 사이에 물을 흐르게 하고 그 위에 술잔을 띄워 연회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사치와 향락으로 나라를 멸망케 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포석정은 군사적인 성격 또는 국가 제례적인
성격의 공간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포석정이 남산신성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과 1989년에 발견된 화랑세기 필사본에서는
고신라시대부터 제례의식을 행해온 기록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정숙 선생님의 해설과 경주남산연구소의 자료에서 이를 알 수 있어
차제에 이를 인용하여 '한밤의 사진편지'에 실어 보았습니다.
포석정의 구불구불한 곡수거의 구조는 63개의 다듬은
화강암을 조합하여 6m의 인공적인 물길을 조성한 것으로
물을 흐르게 하여 술잔을 띄우면 대략 12곳 정도에서 술잔이 머물어
신라 사람들의 우수한 과학성을 보여주기도 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대부분 소나무가 울창한 남산에서 포석정은 활엽수가 많아
넓은 그늘을 주어 쉬어가기 좋은 곳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오늘과 같은 가을에는 울그불긋한 단풍 옷으로 갈아입은
아름다운 풍광에 더욱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후 4시가 지나 여기서 버스를 이용하여 나정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유정숙 선생님께서는 창림사지와 남간사지를 지나 나정까지 걸어 가기를
권해 주셨으나 시간관계로 창림사지를 못보게 되어 죄송스러웠습니다.
특히 이 자리를 빌려 오늘 하루종일 참으로 정성껏 해설해 주신
유정숙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훌륭하신 분을 추천해
주신 경주남산연구소의 김구석 소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16:40 월정교에서 유 해설사님을 내려드리고 저녁식사와 뒤풀이를 위해
버스를 타고 숙소인 더케이호텔로 이동하였습니다.
둘째 날 오후 남산 삼릉계곡을 올라가 주신 그 용기와 인내심에
감사드리며 더욱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어서 둘째 날 뒤풀이의 후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둘째 날 오후 걷기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