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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3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제2독서 (1요한4,7-16) 본문

가톨릭 교회

2017년 6월 23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제2독서 (1요한4,7-16)

불꽃緝熙 2017. 6. 23. 17:24

 

pieta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0)

 

 

 

'이렇습니다', '여기 있습니다'로 번역된 '엔 투토'(en tuto)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단어로서 사랑의 출처와 기원, 사랑의 본질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한 전치사구를 이끌고 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의 기원과 출저가 하느님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랑의 본질이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사실을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이 먼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사랑을 베푸셨는데, 그 사랑은 바로 우리 인간을 위해 독생성자를 대속의 제물로 보내신 사건을 통해 분명히 입증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안에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의 기원이 된 하느님의 사랑은 세상에 나타난 사랑의 본질이요, 모든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모범이다(1요한4,11).

 

사도 요한은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부정적인 내용을 먼저 언급하고, 뒤에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라는 긍정적인 내용을 언급함으로써 긍정적인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의 출발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구현된 하느님의 계획과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지극히 작은 응답일 뿐임을 알 수 있다.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절의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는 말씀과, 로마서 5장 10절의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에 나타난 사상이 여기에 들어있다.

 

이제 '속죄제물'로 번역된 '힐라스몬'(hilasmon ; as an atoning sacrifice ; to be the propitiation) 원형 '힐라스모스'(hilasmos)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분리된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드려지는 제사를 말한다.

 

'속죄제물'에는 피의 희생이 필요하다. 이 피의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구약시대에는 '양'이나 '염소'의 피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제사는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지 못했으며 따라서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가 드려지기 전까지 계속적으로 반복되어야 했다.

 

이러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위한 온전한 속죄 제사를 계획하시고 속죄 제물을 준비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죄인의 모든 죄를 속죄하셨을 뿐만 아니라 화해의 제물이 되셔서 하느님와 원수였던 자들을 그와 화해시켰던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의 속죄 제물에 대한 사도 요한의 이같은 진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사실성과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을 간접적으로 경계한 표현이다.

 

역사의 예수를 믿음의 그리스도로 여기지 않던 자들을 향하여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설파하면서 속죄 제물로 바치신 십자가 구속 사업속에 하느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 제물로 보내신 사건과 그로 인한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는 하느님의 사랑에 기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