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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달(閏月) · 결혼식 풍경 본문
한밤의 사진편지 제2166호 (14/10/30/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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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달(閏月) · 결혼식 풍경
10월 24일부터 11월21일까지가 182년만에 돌아 온 음력 윤달 9월입니다.
대개는 윤2월, 윤3월 등인데 윤9월은 어렵게 오는 윤달입니다.
다음 윤9월이 오려면 95년 후, 2109년이 되어야 한답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우리 풍속에, 날수를 따라 네 방위(方位)를 돌아다니면서 사람이 하는 일에 훼방을 놓거나 해코지 하는 귀신을 `손`이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손`없는 날을 택하여 이사를 하는 등 집안의 큰일을 치르었습니다.
`손`없는 날은 음력 날수 끝자리가 9와 0으로 끝나는 날입니다.
9. 10. 19. 20. 29. 30일입니다. 사람의 일에 훼방을 놓거나 해코지를 하는 귀신들이 1일부터 8일까지는 일을하고 9일과 0일은 쉬기때문에 열흘 중 이틀간이 `손`없는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1일부터 8일까지도 날수의 끝자리가 1일과 2일은 동쪽방위이고, 3일과 4일은 남쪽방위이며, 5일과 6일은 서쪽방위, 7일과 8일은 북쪽방위에 `손`이 있어,
실제적으로는 열흘 중 여드레가 `손`없는 날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년 중 달(月)에도 `손`없는 달이 있습니다. 바로 윤달(閏月)입니다.
평년보다 한 달이 더 있는 달이라 하여 `공달` `덤달` `여벌달` `빈달`이라고도 불립니다.
귀신들도 1월부터 12월까지는 사람의 일에 대하여 정상적으로 훼방활동을 하지만,
썩은 달과 같은 `빈달`에는 귀신도 쉬기 때문에 사람들에 대한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고 할 만큼 무탈한 달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불경스러운 일을 해도 부정(不淨)을 타거나 액(厄)이 끼지 않는다고 믿어,
집수리, 이사도 하고, 혼인(婚姻)도 하고, 평상시에 꺼리던 무덤을 옮기고, 수의(壽衣)도 만들었습니다.
윤달에 치성을 드리면 죽은 후에 극락에 간다고 믿어 윤달 내내 부녀자들이 사찰을 찾아 불공을 드리는 관습이 전해 내려 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중국에도 윤달의 풍속이 있는데 우리의 풍속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우리가 긍정적이라면 중국은 부정적입니다.
중국에서는 윤달에는 온갖 일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윤달이 되면 왕은 조정(朝廷:나랏일을 행하는 곳)에서 나와 침문(寢門:잠자는 침전)에 머물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閏(윤달 윤)`자는 `門(문)`자 가운데 `王(왕)`자를 넣어 `침문에 왕이 있다.`는 뜻으로 만들어 진 것이라고 전합니다.
결국 중국에서의 윤달은 왕이 침문 안에만 있고 나랏일을 돌보지 않는 달을 의미합니다.
백성까지도 일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념때문에 모든 일을 기피하고 근신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손`없는 윤달》이라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풍속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인륜대사인 결혼도 하고, 이사도 집수리도 하고, 수의를 만들기도 하고, 무덤을 옮기는 일도 부담없이 해 왔습니다.
역법에 따라 정해지는 윤달이 중국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 전해졌지만, 우리조상님은 이것을 밝고 긍정적인 우리의 정서에 맞게 개선하여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이로운 풍속으로 이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윤9월을 두고 시중에 떠도는, <`땅(移葬:이장)과 수의(壽衣)는 웃고, 식장(結婚:결혼)은 땅을 치고`>는 우리의 윤달 풍속을 알지 못하는 무관심에서 빚어지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없는 윤9월이라해도 `말이나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는` 근신(謹愼)과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앞세우지 않는` 겸손(謙遜)으로
늦가을과 초겨울을 보내고 맞이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5년 전 6월에 보내진 함수곤 전, 대표님의 글,
`한밤의 사진편지 제1037호 <결혼식 풍경>`을 오늘 소개하려고 합니다.
쉽고도 지키기 어려운 `기초 기본`인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꼭 메일 아래 `표시하기`를 클릭 후, 그때 올려놓은 음악도 함께 들으시면서 그동안 변한(?) 나의 모습도 챙겨보시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0월의 마지막 전 날 30일 오늘,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날이 되시기를 빕니다.
김태종 드림.
함수곤의 한밤의 사진편지 제 1037호 (09/6/7/일)
글, 편집, 음악 : 함수곤
'결혼식 풍경'
옛날 동료의 장남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예식은 12시 30분에 올리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약 30분전에 식장에 도착했습니다.
식장에 옛 동료들이 많이 와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상하게 별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조금 후 한 동료가 말하기를 많이들 왔는데 지금 모두 피로연 식당에 가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그곳으로 빨리 가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혼례식은 지켜 본 후에 그곳으로 가야 기본 도리일 것 같아서 였습니다.
12시 30분, 예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귀엽게 잘 생긴 신랑이 웃으며 힘차게 입장했습니다.
신부의 아버지가 배우같이 예쁜 딸의 손목을 잡고 음악에 맞춰 천천히 입장했습니다.
그런데 식장에는축하객이 얼마 없어 빈 좌석이 많이 보였습니다.
제가 앉아 있는 줄에도 6개의 의자가 있었는데 저 혼자 앉아 있었고 다섯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혼인서약, 성혼 선언문 낭독, 그리고 주례사가 있었습니다. 주례는 광고홍보학과 교수님이라고 했습니다.
주례사는 어느 예식에서 들어도 언제나 많은 공부가 됩니다. 주례사가 끝나길래 저는 식장을 빠져나와 친구들이 와 있다는 피로연 식당으로 갔습니다.
막 식권을 내고 제가 입장하려고 할 때, 이미 식사를 마치고 무리를 지어 나오고 있는 옛 동료들과 출입구에서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이제 왔느냐"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일찍 왔지만 예식을 보고 오느라고 이제 들어오는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식사를 마쳤기 떄문에 돌아갔습니다. 저는 식당 안에서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러한 결혼식장 풍경은 언젠가 제가 '한밤의 사진편지'에 이미 한 번 쓴일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독자님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글입니다.
이러한 우리 결혼식장 풍경에 관하여 두 번씩이나 글을 올리는 것은 적어도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때문입니다.
결혼식 청첩장을 받으면 그댁의 큰 경사를 직접 축하해주고, 자식 같은 젊은 한 쌍의 새 출발의 증인이 되어주고, 그리고 약간의 부주로 혼주도 도와주고,
그러기위해서 시간과 돈을 마련해 우리는 결혼식에 참석합니다.
그런데 축의금봉투를 전달하고 혼주에게 축하한다는 인사하기가 무섭게 바로 피로연장으로 직행해서
아직 예식도 시작하기 전부터 끼리끼리 모여 앉아 밥 먹고 소주나 마시고 가 버리는 이런 행태,
이처럼 무례한 결혼식 문화를 학식과 덕망과 경륜이 있을 만큼 있고 나이도 든 사회의 지도층이 서슴없이 만들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고 우리 사회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미 저는 한국에서 약 1년간 거주한 경험이 있는 가까운 일본 친구로부터 이런풍경에 대해서 조소와 경멸에 가까운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기초, 기본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해 외국인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게 그 당시 너무나도 분하고 창피했습니다.
배고픔에 허덕이는것도 아니고, 화급한 업무에 쫓기는 것도 아니라면 당연히 혼례식장에 참석해서, 이날의 주인공들의 얼굴도 보고, 부모의 모습도 지켜보고,
신랑, 신부 혼인 서약의 증인이 되어 주고, 진심으로 박수치며 축하도 한 다음에 혼주가 베푸는 혼례 음식은 천천히 들어도 될 것 아니겠습니까?
예식장은 다 비워놓고 식당으로 먼저 몰려가 일찍부터 식사를 하고 음주를 한다면 과연 결혼을 축하해 주기위해 온 것인지 밥을 먹으러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축하한다며 악수를 나눈 사람들은 많았었는데 어디론가 다 사라져버리고 빈자리가 많은 썰렁한 식장에서 쓸쓸하게 혼례를 치루어야 하는 혼주의 그 착잡한 기분을 한 번 생각해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식을 경건하게 마친후에 피로연장으로 신랑,신부와 부모가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려고 찾아 왔는데 하객들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다 떠나버린 후이니 인사도 못하는 이날의 주인공들의 그 허탈한 기분을 생각해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자기 자신들의 자식 결혼식이 이렇게 된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겠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아들이 둘 있는데 작은애가 먼저 결혼하였고, 큰애는 아직도 제짝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저의 큰애 결혼식에 만일 그런 기초, 기본이 안 된 분이라면 참석하는 것을 삼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진심으로 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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