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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사진편지 제2863호(한양도성 순성길 [8-2] '21/12/9/목) 본문

한밤의 사진편지

한밤의 사진편지 제2863호(한양도성 순성길 [8-2] '21/12/9/목)

불꽃緝熙 2021. 12. 8. 21:55

 

 

한밤의 사진편지 제2863호 ('21/12/9/목)

[한사모' 공식 카페] - '한밤의 사진편지 romantic walking'

< cafe.daum.net/hansamo9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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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8) 일제가 할퀴고 우리가 덧낸 남산 [2]" 편을 게재합니다.

 

 

한양도성 순성(巡城)길을 걸으며...


"한양도성, 600년 서울을 품다."

 

(8) 일제가 할퀴고 우리가 덧낸 남산 [2]

 

첨부이미지

 

       남산 국사당 터에서 통감관저 터(기억의 터)까지/ 순성길에서 만난 국치길과 인권길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백범광장공원 전경

 

        - 백범광장공원과 안중근 기념관

        남산공원을 올라가는 산 중턱의 공원 넓은 잔디밭 주변으로 백범 김구 선생과 성재

       이시영 선생 동상,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동상 등 항일 독립운동가를 만날 수 있다.

 

       김구 선생 동상

 

       이시영 선생 동상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 조선신궁이 있던 곳으로, 일제 식민지배의 상징을 항일 독립

       운동의 혼과 정신으로 대체한 것이다. 백범광장 일대 한양도성은 일제 조선신궁을

       건축하면서 철거되거나 흙 속에 묻혔다가 100여년 만에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훼손된 구간은 '흔적표시'로 이곳이 한양도성이 지나간 자리임을 알린다.

 

        지형 훼손이 심해 원형을 살릴 수 없는 구간에는 성벽이 지나던 자리임을

       알 수 있도록 바닥에 흔적 표시를 했다.

 

남산초입에서 백범광장공원에 이르는 성곽 야경


        - 남산자락(회현구간) 서울성곽

        백범광장공원에서 SK남산빌딩까지 복원된 한양도성 성곽길이 이어진다. 힐튼호텔에서

       남산방향으로 오르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한양도성 성곽에 대한 설명과 함께 태조,

       세종, 숙종 시 초축과 개축한 성돌 모양과 함께 상세히 내용이 쓰여져 있다.

        하지만 안내판 맞은편에 복원된 성곽 형태는 아무리 보아도 어느 시대 성곽을 복원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시대와 국적 불명이다. 전문가들 사이에는 한양도성 복원이

       아니라 ‘서울성곽’, ‘신축성곽’ 정도로 표현하는게 맞을 것 같다고 말한다.

 

 

        여하튼 백범광장 아래로 S라인을 그리는 성곽과 함께 바라보는 도심야경은

       연인들이 즐겨찾는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 스팟’이다.

 

 

        ▷ 국치길

        국치길 역사 현장에는 ‘ㄱ’ 모양의 1910cm의 스탠드형 안내 사인이 설치되어 있다.

       나라를 잃은 1910년을 의미한다. 1.7km 국치길 보도블록 곳곳에는 아픈 역사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한글 자음 ‘ㄱ’ 모양의 로고 동판에 ‘1910’ ‘1945’ 숫자가

       박혀있다. 국치에서 광복까지 기간을 뜻한다.

 

       조선신궁 배전 터/ 한양도성 남산 구간은 1925년 일본의 식민통치를 상징하는 조선신궁 건립으로

       크게 훼손되었다. 건물지는 조선신궁 내 배전(拜殿)의 기초 구조물로 성벽 발굴조사 때 함께 발견

       되었다. 일제가 한양도성을 훼손하고 그 위에 조선신궁을 세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조선신궁 터

        일제는 조선의 왕이 살고있는 궁궐이 한눈에 내려 보이는 남산 자락에 경성신사나

       노기신사보다 격이 높은 신궁을 1925년 완공한다. 조선신궁은 아마테라스오미카미

       (天照大神)와 메이지천황을 신으로 모시면서 우리 민족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신궁 컬러사진

 

        이처럼 남산은 일제가 기획한 식민 통치의 실체이며 상징 공간이었다.

       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에서 항복한 일본은 바로 이튿날, ‘신성한 신을 하늘로

       돌려보낸다’는 승신식(昇神式)을 가진 후 그들의 손으로 신궁을 소각했다.

 

       위안부기림비/ 일제 침탈의 아픔을 간직한 서울 남산의 조선신궁터 부근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투쟁, 용기를 기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동상이 세워져 있다.

 

        - 위안부 기림비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실태는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할머니의 증언을 시작으로 동아시아 국가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연대하며

       진실을 밝히게 된다. 기림비는 시민들과 친숙히 만날 수 있도록 동상의 단을 없앴다.

       손을 잡고 선 한국, 중국, 필리핀의 세 소녀를 김학순할머니가 바라보는 조형물이다.

 

       한양공원 비석/ 한양공원 조성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비석으로 전면에는 고종황제가

       쓴 한양공원이라는 명칭이 새겨져 있다. 한양공원은 조선신궁 건설되면서 문을 닫았다.

 

        - 한양공원 비

        한양공원비는 남산케이블카 승강장에서 100여m 올라간 지점에 위치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1908년 남산 기슭 30만평을 무상임대 받아 조성한

       위락시설이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10년 공원입구에 표지석을 세웠다.

        서울미래유산으로지정된 한양공원비의 비문은 고종의 친필로 전해진다.

 

       한양공원비 뒷면/ 무참히 쪼인 비석 뒷면을 놓고 말이 많았다. 친일 부역자의 명단이라는

       설이 난무했으나 일본인 경성거류민단장이 쓴 평범한 ‘한양공원기’임이 후일 밝혀졌다.

 

        비석 뒷면은 누군가에 의해 정으로 쪼아 놓은 듯 훼손되어 판독이 불가능하다.

 

       경성신사터(숭의여자대학교 내) / 일본거류민단이 창건한 신사이다.

       1925년 조선신궁이 완공되기 전까지 식민정권의 국가제사를 대행했다.

 

        - 경성신사 터

        경성신사는 일제가 우리나라에 만든 최초의 신사다. 1898년 일본거류민단이

       이세신궁에 모셔져 있던 신체일부를 옮겨와 남산대신궁으로 창건 후 1916년

       경성신사로 개칭했다. 현재는 터만 남았고, 숭의여자대학교 내에 위치한다.

 

       경성신사 해방이후 모습/ 학교의 건물 일부로 사용했다.

 

        청일전쟁에서 승전한 뒤 일제가 세운 ‘갑오역(갑오전쟁)기념비’ 터도 학교 내에 있다.

 

       노기신사터(남산원 내)/ 일본 메이지시대 러일전쟁의 영웅으로

       군신으로 추앙받는 노기 마레스케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신사

 

        - 노기신사 터

        일본은 신사를 지어 천황은 물론 전범영웅도 신으로 섬기는 문화가 있다.

       노기신사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노기마레스케 장군을 모셔놓은 신사로 신사 입장 때

       손을 씻었던 수조와 석재 일부가 현재 남산원 초입에 있다.

 

       한국통감부·조선총독부 터/ 1910년 강제병합 이후 통감부가 폐지되면서 조선총독부가 설치됨.

       1926년 경복궁 신청사가 신축되면서 이전. 1950년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 통감부·조선총독부 터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대한제국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1905년 을사늑약을

       맺고, 1906년 통감부를 세웠다. 통감부는 강제병합 이후 조선총독부로 바뀌었으며,

       1921년 독립운동가 김익상의사가 폭탄을 던진 곳이다. 조선총독부는 1926년 경복궁

       안에 새청사를 지어 옮겨졌으며, 남산의 통감부 건물은 1950년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

       서울애니메이션 센터 앞 정류장에는 한국통감부·조선총독부 터였음을 알리는 표석만

       세워져 있고 현재 발굴 작업 중이다.

 

       남산예장공원/ 예장자락은 조선시대 무예훈련장(예장)이 있던 장소다. 일제 때 통감부와 일본인

       거주지가 조성됐고 1961년 중앙정보부 건물이 들어섰다. 시는 이 자리에 있던 중앙정보부와

       TBS교통방송 건물을 철거하고 서울광장 2배 규모인 1만3천여㎡ 크기 녹지공원을 만들었다.

       예장공원을 개장하면서 2009년 시작한 ‘남산르네상스사업’이 12년만에 결실을 맺게 되었다.

 

        - 남산예장공원

        남산 예장자락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시민의 쉼터, 명동 등 인근 지역과

       연결되는 관광허브로 복원돼 '남산예장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6월 9일 개장했다.

       남산예장공원은 크게 지상 녹지공원과 명동~남산을 보행으로 연결하는 진입광장과

       이회영기념관, 친환경 버스환승센터 등 공원 하부 지하 시설로 조성됐다.

        서울시가 남산의 자연경관을 가리던 옛 ‘중앙정보부 6국’ 건물과 TBS교통방송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7천 평 규모의 녹지공원을 조성했다. 공원 조성과정에서 발굴된

       조선총독부 관사 터의 일부를 그대로 보존한 유구터도 있다.

 

       이회영기념관 내부 전시실/ 서울시는 개관특별전으로 독립군 연합부대가 거둔 불멸의 승전인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기념하는 ‘체코무기 특별전’을 열고 있다.

 

        예장공원 하부 지하공간에는 온 집안이 전 재산을 들여 독립운동에 나섰던

       우당 이회영과 6형제를 기념하는 ‘이회영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후손이 기증한 유물과 100년 전 우리 독립군의 봉오동·청산리 대첩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체코군단의 무기가 처음 공개되는 특별전도 열리고 있다.

 

       남산자락의 중앙정보부 건물들 /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중앙정보부 서울시 본부 사무동

       (현 소방재난본부)이고 오른쪽 아래 빨간색 둥근 시설물이 고문으로 악명 높았던

       중앙정보부 6국이 있던 곳이다. 왼쪽 건물은 중앙정보부 본관(현 서울유스호스텔)이다.

 

        - 인권길

        남산예장공원 내 ‘중앙정보부 6국’이 있던 자리에는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역사를 기억하는 ‘기억6’이라는 공간을 조성해 현재 전시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기억6/ 빨간 우체통 모양의 메모리얼 홀 '기억6'은 인권유린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공간으로 지하 1층에는 옛 중앙정보부의 지하고문실을 재현해 놓았다.

 

        ‘기억6’ 뒤로 보이는 건물인 소방재난본부(중앙정보부 서울시지부)와 현 유스호스텔

       (중앙정보부 본관), 서울시청 남산1별관(중앙정보부 5국)으로 사용 중인 건물들이

       군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 건축물이다. 40여동의 중앙정보부 시설물은 서초동 국가

       정보원으로 이전하면서 국가중요보안시설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해체되었다. 중앙

       정보부 6국 터에서 중앙정보부 5국에 이르는 900여m 구간을 ‘인권길’이라 부른다.

 

       한국통감관저 터 / 기억의 터

       1906년 통감관저로 설치되었으며 1910년~1939년까지는 조선총독관저로 쓰였다.

       1910년 8월 22일 이곳에서 강제병합조약이 체결되었다.

 

        - 통감관저 터/ 기억의 터

        1906년 지어진 통감관저는 1910년부터 1939년까지 조선통감과 총독의 관저로 쓰였다.

       그 터에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기억의 터’가 자리한다. 기억의 터는 초등생부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단체, 노조 등 2만 여명이 3억5천만원을 모금해 조성했다.

       임옥상화백이 지휘한 <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 등 두 개의 작품이 설치돼있다.

       이곳에는 ‘거꾸로 세운 동상’도 눈에 띈다.

 

       거꾸로 세운 비석 /

       고종을 겁박하여 을사늑약의 발판을 삼은 하야시곤스케의 동상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웠다.

 

        일제는 을사늑약을 체결한 공을 세운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통감관저 앞에

       세웠는데, 해방 후 동상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워 당시의 치욕을 되새기고 있다.

 

       대지의 눈 조형물

 

        <대지의눈>에는 고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끌려감’과 함께 피해 할머니 247명의 이름과

       증언이 시기별로 새겨져있다. <세상의 배꼽>은 어머니의 자궁, 배꼽을 형상화해 새

       생명의 탄생을 상징한다. 배꼽 위치인 작품 중앙에는 모성으로 세상을 보듬는다는

       뜻에서 윤석남화가가 그린 손그림이 새겨졌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글귀가 한글과 일본어, 영어, 중국어로 함께 적혀있다. 작품 주변에는 전 세계에서

       마음을 모은 할머니들과 시민들을 뜻한다는 메시지의 바위들이 놓여 있다.

 

       남산골한옥마을 전경

 

        일본헌병사령부가 자리했던 남산골한옥마을에서 8번째 순성길을 마무리한다.

 

 

[글, 사진 : kukinews의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 Relaxing Christmas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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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 : 西湖 李璟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