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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사진편지 제2846호 (베트남전 참전용사 추모 기념비 / 장주익 '21/5/28/금) 본문

한밤의 사진편지

한밤의 사진편지 제2846호 (베트남전 참전용사 추모 기념비 / 장주익 '21/5/28/금)

불꽃緝熙 2021. 5. 28. 21:59

 

 

한밤의 사진편지 제2846호 ('21/5/28/금)

[한사모' 공식 카페] - '한밤의 사진편지 romantic walking'

< cafe.daum.net/hansamo9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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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이돕사 장주익의 이야기 건축]


"미국의 월남전 참전기념비"

 

*“Maya Lin” / '용서', '인정', '응원'을 받는 건축가 *

 

첨부이미지

 

 

           2021년 5월 18일, 프랑스 파리4구 세느강변에 있는

         “프랑스군 6.25전쟁 참전 기념비”에 6.25전쟁에서 전사한 프랑스군

         “292명의 이름”을 새긴 동판을 기존에 있는 참전기념비에 붙이고

         제막식을 하였습니다.


           또, 금년 5월 21일(현지시간) 오후에는 미국 워싱톤에 있는

         “미국의 6.25전쟁 참전기념비” 에도 전사자 명단을 추가로 새겨넣기

         위하여 "미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착공식을 하였는데 21일~23일,

         한미정상회담에 참석하는 문재인 한국대통령이 참석하였습니다.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났던 뉴욕의 무역센터 자리에도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월남전은 1960년 시작되여 1975년 끝났습니다.

         1960년 케네디 정부때 남베트남 즉 월남에 900명의 비전투요원이

         파병된 이후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인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주재

         미대사관 옥상에서 헬기가 떠나면서 미국의 패전으로 끝난 월남전.

         미군은 케네디, 존슨, 닉슨, 포드 4명의 대통령 재임중에 55만3천여명이

         파병되어 그 중 58,260 여명이 전사했습니다.


           1979년 4월, 월남전에서 부상당한 퇴역군인 Jan Scruggs가 중심이

         되어 “월남전 참전기념비” 를 건립 하고자 비수익단체인 Vietnam

         Veterans Memorial Fund Inc.(VVMF)를 설립하고 모금운동을 벌여,

         8백4십만불(약 90억원 이상) 의 모금 실적을 올렸다고 합니다.


           다음해 1980년 7월, 미의회로 부터 기념비 설립허가 및 워싱턴

         링컨기념관 옆 대지 약 2,500평의 사용승인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1980년 12월, 5만불의 상금을 내걸고 Vietnam Veterans Memorial의

         설계안을 공개모집 합니다.


 

           설계조건은

         1. 묵상적일 것

         2. 주변 조경과 조화를 이룰것

         3. 죽은 병사들의 이름이 반드시 어딘가에 들어갈 것

         4. 비정치적일 것 등 이었습니다.


           심사위원은 건축가, 조각가, 조경가 등 8명으로 구성되었으나

         심사위원 중에 월남전 참전 군인 출신은 없었다고 합니다.

         1981년 3월까지 1,441개의 설계안들이 도착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이 설계안들을 워싱톤 외곽 앤드류스 공군기지내

         대형 격납고에 펼쳐놓고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우선 232개안으로

         1차로 추린 다음, 39개안으로 압축하고, 최종 심사한 결과 전원

         만장일치로 “설계안 번호 1026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습니다.


 

           1981년, 당시 21세 이며 예일대학 건축학부에 재학중이던

         동양계 여성인 “Maya Lin” 이 설계안의 주인공으로 밝혀집니다.


           설계안은 단순하다면 단순합니다. 반사되도록 광택이 나는

         두 개의 “검은 대리석 옹벽” 이 넓게 벌린V자 형태로 125도의 각을

         이루며 만나고, 각 247피트 (약 75m) 길이의 왼쪽, 오른쪽 양쪽 검은

          대리석 옹벽 벽면에 월남전에 참전하여 전사한 58,260 명의 미군

         “전사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음각으로 새겨진다는 아이디어입니다.


           이름들은 전쟁터에서 죽어간 순서대로 새겨지게 됩니다.

         이 기념물은 지면에서 땅밑 으로 걸어 내려가도록 만들어졌으며

         지면으로부터 점점 낮아져서 가장 낮은 곳은 지면에서 3m 정도

         깊이가 되었다가 다시 점차 지면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이 기념물의 한쪽 끝은 링컨기념관을 향하고

         다른 한쪽 끝은 워싱톤 기념탑을 향한다고 합니다.


 

           미국 역사의 연결선상에 위치한 Vietnam Veterans Memorial은

         현재 미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고있는 공공 예술품의 하나로

         “죽은자들과 전쟁의 아픔”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길 수 있는

         탁월하고도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전체적으로 겸손한 모습으로 관람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며, 현재는 대단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1981년

         당시에는 당선작으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다른 기념비나 기념물들이 오랜 시일이 지나고 나서 계획되고

         건립된데 비해 이 경우는 전쟁이 끝난지 겨우 “5년”밖에 지나지 않아

         상처들이 채 아물지 않은 시기였으며, 그 전쟁이란 것이 15년동안

         2,000억 달러 이상을 쏱아 붓고도 패배한 전쟁이요, 명분없는 전쟁이

         아니었던가 하는 점입니다.


           명예롭지 못한 패배로 초강대국 미국의 영광과 권위는 땅밑으로

         실추된 채 국론이 분열되여 있었고 많은 상처들이 아직 봉합되고,

         치유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반대론들이 크게 일어나는데, 우선 “인종차별”적인

         시각입니다. 당선자가 미국인 백인 남자가 아니다 보니까, 기념비가

         “초 강대국 미국의 자존심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참전용사들을 모독했다”라는 거센 항의들이 쏟아집니다.


 

           다음은 당선자가 “여성”(중국계 이민자인 오하이오대학 교수

         부부의 “딸” ) 이다 보니까 “여성차별”적 시각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기념비란 모름지기 男根으로 상징되듯 높이솟아 남성적인 강하고,

         영웅적인 기상을 나타내고, 멀리서도 보이도록 하늘 높이 우러러

         보이게 해야 하거늘, 높이 솟기는 커녕 오히려 땅밑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너무 여성적이고 패배주의적'이라는 항의가 잇따르게 됩니다.


           거기에 더하여, "왜, 검정 대리석이냐? 흰색으로 바꾸라 !" 는

         주장들 입니다. "검정색은 '슬픔과 수치의 상징' 아니냐?"


           또 멀리 원거리에서 보면 기념물 전체 모양이 “상처 (Scar)같다"거나

         아니면 “부머랭”형태인데 외국의 전쟁에 나가서 그 조그만 나라 하나

         지키지 못하고 돌아와 생긴 국론분열의 형상이라는 주장들이었습니다.


           특히 미국내 유력한 압력단체에 속하는 재향군인회는 앞장서서

         “당선을 취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미국내 언론매체들의 과장보도와 과잉경쟁까지 가세하다보니

         국론이 양분되는 사태에 다다르게 되었고, 너무나 거센 항의에 결국

         미의회까지 나서게 되었고, 전통적 양식의 기념비를 따로 건립한다는

         타협안이 나왔습니다.


           설계자 '마야 린 Maya Lin'은

         “전쟁에 있어서 생명의 소중함은 항상 명확하게 기억되어야 한다.

         기념물 디자인에 있어서 근본적인 목표는 죽음에 대하여 정직해지자

         는 것이다. 기념물에 새겨질 이름들이 '기념물'이 될 것이다.

         디자인에 더 이상의 장식은 필요없다.“ 라고 말합니다.


 

           결국은 맞은편에 3인의 군인 동상을 세우게 되었고, 후일

         여성단체들의 요구로 여군 동상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1982년 1월 3명의 군인 동상(기념비 설계안의 3등 당선자인

         Frederic Hart의 디자인으로 백인, 흑인, 히스패닉계 등 3명의 병사)의

         디자인이 결정되고, 1982.3.11 최종적으로 전체 디자인이 확정됩니다.

         그리고, 그해 3월 26일 공사가 착공 되었습니다.


           Vietnam Veterans Memorial은 1982.11.13, 미국 재향군인의 날,

         수천명의 참전용사들이 제복차림으로 참석하여 제막되었습니다.


           방문객들은 반사되는 검은 대리석 앞에 그들이 서게 되면 그들의

         모습이 전사자 명단, 또는 사랑했던 이의 이름과 “함께” “반사” 되어

         보이게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가 같이 반사되며 진하고,

         깊은 울림들을 가슴속 깊이 느끼게 된다고도 말합니다.


           사람들은 아는 이들의 이름을 찾아, 손으로 어루만지고, 이름에

         입맞추기도 하고, 이름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문질러 탁본하듯이

         이름을 간직하거나, 이름 옆에 꽃을 붙여놓거나, 죽은이들에게 주고

         싶은 물건들을 바치듯이 갖다 놓기도 합니다.


 

           3명의 병사 동상은 1984년 11월 제막되였습니다.

         그 이후 1993년 11월 Vietnam Women,s Memorial 이라고 하여

         부상 병사를 도우며 하늘을 향하여 절규하는 여 간호병사를 다룬

         동상이 추가로 제막되게 됩니다. (현재 방문객들중 이 군인 동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합니다.)


           Vietnam Veterans Memorial 이후 유명해진 “마야 린”은 건축가,

         조각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계속 활동 중이며 현재 60대입니다.


           “만약 설계안이 <일련번호> 로 표기되지 않고 이름이 표기된 채

         심사되었다면 결코 당선되지는 못했을 것이다”라고 회상합니다.

         설계안 당선 후 큰 홍역을 치루었으나, 기념물이 제막된 이후에는


           거세었던 반대론자들로부터도 용서와 인정과 응원을

         받는 건축가로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 하루 평균 1만명 이상이 찾는다고 합니다.


 

           * 참조 : 김원 건축가 의 2006년 강연 <현대건축> NAVER.com

           * 글 : 장주익(건축의 이해를 돕는 사람)

           * 편집,정리 : 西湖 이경환


 

 

-< Hymne A L'amour (사랑의 찬가) / Andre Ri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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