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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인물에게는 목표가 있다. 본문

가톨릭 교회

위대한 인물에게는 목표가 있다.

불꽃緝熙 2020. 4. 26. 15:45

 


 


위대한 인물에게는 목표가 있다.


  누구보다도 이 세상을 자신 있게 살아간다고 자부하고 있는 저입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도무지 자신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이용한 강의를 들을 경우가 있으면 얼른 이 자리를 도망가려고 합니다. 이 부분은 바로 미술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그림 숙제를 내주셨고, 저는 밤늦게까지 흰 도화지에 정성껏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선생님께 제가 그린 그림 때문에 혼이 났습니다. 그림을 성의 없이 그렸다는 이유였습니다.

  억울했습니다. 당시에는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라는 멘트가 저녁 9시면 나올 때였습니다. 이를 무시하고 더 늦은 시간까지 그림을 정성껏 그렸는데, 선생님은 성의 없이 그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뒤 저는 어떤 그림도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못 그린 것을 성의 없다는 말로 바뀌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런 모습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못하는 것을 정성이 없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쉽게 말합니다. 그 결과 할 수 있는 것도 못 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모습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함께 하는 공동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공동체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복음이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절망과 좌절로 향하는 소식이 아니라,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나의 이웃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있습니까? 힘이 되어 주는 말이 아니라 힘이 빼는 말을, 함께 하는 말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을 거부하고 구원의 길에서 멀어져 단죄를 받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주님을 전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주 중요해집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주님의 뜻을 충실하게 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나의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베드로 사도의 충실한 협력자였던 마르코 복음 사가 축일입니다. 그는 주님의 뜻을 받아들여서 충실히 따르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쓰면서 참된 회개와 복음의 기쁨을 지금 이 시대에까지 전해주십니다. 주님의 충실한 도구로 자기 자신을 봉헌하면서 복음서를 쓰셨던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를 기억하면서, 지금을 사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며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위대한 인물에게는 목표가 있고, 평범한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을 뿐이다."
                                                                          (워싱턴 어빙)





마르코 복음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