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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

참 기쁨을 만들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할 때가 아닐까요?

불꽃緝熙 2020. 4. 24. 16:35

  1890년, 프랑스 파리에 사는 한 노인에게 이웃에 사는 화가가 손수레 가득 수백 점의 그림을 싣고 찾아왔습니다.
이 화가는 노인에게 돈을 빌렸는데 도저히 갚지 못할 것 같다면서 자신의 그림을 수레에 담아 와서 빌린 돈 대신
그림을 받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이 그림이야 내게 짐만 될 거야. 도저히 받을 수 없네.”라면서
거절했습니다. 이 노인의 아내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수레라도 받아 놓지 그랬어요?”

  이 화가의 이름은 여러분도 잘 아는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그의 작품은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러나 지금 그의 작품 가격은 어마어마합니다.  1990년에 그의 작품 ‘가세 박사의 초상’이
8,250만 달러(한국 돈으로 약 980억)에 팔릴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노인은 이 작품의 가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단순히 쓸모없는 짐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때 그 그림을 받아들였다면 후손대대 큰 부를 누리면서 살게
되었겠지요.

  지금 자신의 판단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판단이 나중에 큰 후회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늘 한 번 더 생각하고 판단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따르는데
갈등이 참 많이 생기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세상의 것들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돈도 생기지 않고,
명예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먼 훗날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어떠할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혹시 하지 않았던 일들이 후회되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은 하느님 사랑의 지극함을 보여 줍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아버지께서 세상에 주신 대단히 귀한 선물
입니다. 세상에 당신 아들을 주심으로써 아버지께서는 생명 자체, 곧 죽음을 쳐부술 수 있는 제일 유익한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한 것이었지만, 두 번째 오심은 심판하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회개하지 않고 불신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대신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만을 따르려고 하면서 주님께서 원하는 행실을 따르지 못합니다. 빛을 거부하는 모습입니다.

  물론 이 세상 안에서는 남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떵떵거리면서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앞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뜻과 정반대로 나아가면서 빛이 아닌 어둠을 따르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선물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이제는 후회를 만들어가는 삶이 아닌, 참 기쁨을 만들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할 때가 아닐까요?



  불안에 먹이를 주지 마라. 과대망상에 먹이를 주지 마라. 이 둘 모두 고요를 가로막는 방해물이다.
자신감을 찾아야 한다. 당신은 이미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라이언 홀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