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궁궐지킴이
목월과 지훈의 우정, 지금 우리에게도 가능할까? 본문
목월과 지훈의 우정, 지금 우리에게도 가능할까?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나그네’
1916년 오늘은 변영로의 호 수주(樹州)에서 목(木),
김정식의 호 소월(素月)에서 월(月)을 따서
멋진 필명을 지은 목월(木月) 박영종이 태어난 날입니다.
목월의 쩍말없는 절창 ‘나그네’는 지훈(芝薰) 조동탁의 시 ‘완화삼’에 화답한 시이죠.
두 시인은 1939년 《문장》지에 함께 등단했지만,
서로 필명만 알고 있다가 1942년 3월 지훈이 경주에 여행 가면서 처음 만납니다.
목월은 경주에서 보자는 지훈의 전보를 받고
‘박목월’이라고 써 붙인 깃대를 들고 역으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둘은 월성여관에서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눴고,
불국사와 석굴암 등을 여행합니다.
네 살 연하의 지훈이 서울 과 문단 이야기를 많이 했고,
목월이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고 합니다.
지훈은 목월에게 ‘완화삼(玩花衫)’을 씁니다.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그해 10월 일제가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켜 국어학자와 문인들을 핍박할 때
지훈이 월정사로 몸을 피하며 편지를 보내자,
목월이 ‘완화삼’을 떠올리며 보낸 답시(答詩)가 바로 ‘나그네’이지요.
두 시인의 시에서 거목의 담백한 우정이 오가는 게 느껴지지 않나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그윽한 존경이 흐르는 우정,
지금은 너무 보기 힘들어서, 더 아름다워 보이는 우정!
여러분에게는 그런 친구가 있나요, 아니, 그런 친구가 되고 있나요?
*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380호 (2020-01-0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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