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2020년 새해가 왔다. 새해란 인간에게만
있는 시간관념이다. 인간에게 새해가 없다면 나이 한 살도 안 먹을 수 있지만,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아보겠다는 새 출발의 기회 또한 갖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는 대나무의 마디와 같다. 대나무가 마디와 마디를 이어가는 것으로 성장하듯이, 사람은 해마다 나이 한 살을 더 먹으며
성숙한다.
하지만 사람은 나이를 더 많이 먹는다고 해서 그만큼 더 성숙해지진 않는다. 어느 시점부터는
성장을 멈추고 늙어가기 때문에 새해를 기대와 기쁨보다는 걱정과 비애로 맞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것 가운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질서에서 무질서의 상태로 변해가는 엔트로피(entropy)가 우주 보편의 법칙이다. 생명은 이런 엔트로피라는 조건에
대응해서 나타난 진화의 산물이다.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물질대사를 하고, 자신의 정보를 남기는 생식이라는 자기 복제를 할 수 있는 유기체가
생명이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년~1882년)이 세운
진화론(Evolutionary theory)은 생명체의 생존방식 일반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변하기에 생존 공간으로서
환경은 바뀌며, 거기에 적응하여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이(variation)가 일어나야 한다. 따라서 진화란 생명체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고, 생명체가 그런 진화를 할 수 있는 조건은 궁극적으로는 열역학 제2법칙을 낳은 우주의 비대칭성에서 기인한다. 『최종 이론은
없다』(조현욱 옮김, 까치, 2010)의 저자 마르셀로 글레이서(Marcelo Gleiser)는 우주의 대칭성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실제라기보다는 기대에 가깝고,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측면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대칭성이라기보다는 비대칭성이다."라고 했다. 비대칭성으로부터
불균형이, 불균형으로부터 변화가, 그리고 변화에서 생성이 나오는 것으로 우주는 진화했다. 최신의 물리학은 "우리 우주는 약 137억 년 전
진공에서, 일종의 무시간적 영역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무작위적 양자 요동의 결과"라고 빅뱅을 설명한다.
생명체도 빅뱅 이후 탄생한 별들에서 유래한 원소들의 집합이란 점에서 다른 물질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생명이 우리가 아는 한 유일하게 지구에서만 생겨난 현상이란 점이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생명체의 특성은 모든 물리 법칙들에
종속돼 있으면서도 자신의 의도를 추구하고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류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지적했듯이,
'이기적 유전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로 태어났다는 자각을 하는 한편,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인위적인 허구 세계를 창조했다. 그 세계에서
인류는 개체로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창조하고 그것을 후세에도 전승시킬 수 있는 '문화유전자'를 진화시켜 나가는 삶의 방식을 추구했기에 문명을
건설했다.
이렇게 인간이 '문화유전자'로 인간의
무늬를 새기려는 노력으로 성립한 학문이 인문학이다. 인간은 물질적으로는 지구에 떨어진 별들에 붙어있었던 원소들의 결합으로 생겨난 생명체지만,
인문주의(humanism)는 인간을 우주의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로 격상시켰다. 인문주의에 따라 설정된 시간질서인 2020년 새해란 과학이
알아낸 우주의 차원에서 보면 난센스다. 하지만 누가 과학을 하는가? 결국 과학도 인간이 하는 짓이다. 인간 없는 과학은 성립할 수 없고, 인간은
의미 없이는 살 수 없는 실존적 존재이기에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인문학은 삶의 등불로 존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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