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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사진편지 제2661호('한사모' 2018 가을철 진주지역 걷기 첫째 날 후기 - 오준미/'18/11/7/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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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사진편지 제2661호('한사모' 2018 가을철 진주지역 걷기 첫째 날 후기 - 오준미/'18/11/7/수)

불꽃緝熙 2018. 11. 7. 16:06

 

 

 

 

한밤의 사진편지 제2661호 ('18/11/7/수)

 

[한사모' 공식 카페] - '한밤의 사진편지 romantic walking'

 

< cafe.daum.net/hansamo9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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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째 날에는 산청 목화시배지,  남명 조식 유적,  청학동 삼성궁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대한민국 U자걷기 3,800리 완주'  5주년 기념



'한사모' 2018 가을철 진주지역 걷기 첫째 날 후기



[남명 조식 유적 → 청학동 삼성궁] : 5km 걷기



< 2018.10.30, 화요일 시행>

 


첨부이미지

 


    

 


글 : 오준미 (한사모 회원, tjunmi@hanmail.net )


 

안내 : 김용만 (한사모 고문, facefull-kim@hanmail.net )


안내 : 정정균 (한사모 부회장, taxjjk@hanmail.net )


 

사진 : 김민종 (한사모 사진위원, mjmjk123@hanmail.net )


사진 : 윤현희 (한사모 사진위원, heeyoon82@gmail.com )


사진 : 이규선 (한사모 사진위원, dnfldjajsl@daum.net )


사진 : 이창조 (한사모 회원, lc191@hanmail.net )


 

 


    


    

 

 


"한사모 2018 가을철 진주지역 걷기 참가자 "


 

김옥연, 김정희, 나병숙, 엄명애,


윤삼가, 윤현희, 이복주, 최경숙,



권영춘, 김동식, 김민종, 박남화,


박찬도, 이흥주, 조규향,



김용만.이규선, 김재광.남궁금자, 박화서.신애자,


신원영.손귀연, 윤종영.홍종남, 이경환.임명자, 이달희.박정임,


이성동.오준미, 이창조.정광자, 임병춘.이정수, 정전택.김채식,


정정균.임금자, 진풍길.소정자. 함수곤.박현자, 허필수.장정자.


 

* 최종 참가 회원 : 총 45명 참가(여 23명, 남 22명)


_ 부부 회원 : 30명, _ 여학생 단독 : 8명, _ 남학생 단독 : 7명



 

 




    

 


2018.10.30.(화)

양재역 1번 출구 앞 100여m 지점에서 오전 8시 정각 출발 예정


양재역이 혼잡한 관계로 미리 오셔서 인사와 담소를 나누며 준비한

간식 배부를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익숙한 45인승 관광버스가 도착하였다.


관광버스는 계획대로 정확히 8시에 출발하였고

45인승 좌석은 빈 자리 하나 없이 꽉 찼다.


임금자 회원님이 준비한 간식봉지에는 큰 사과 두 개, 귤 여러 개,

두유, 계란, 호두과자 등과 더불어 회원님의 애정과 배려가 듬뿍 담겨있어

간식봉지를 받는 회원님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버스에 오르자 여러 번 뵌 양영경 기사님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양영경 기사님의 선물인 생수와 박화서 신애자표 인절미를 나눠주었다.

생수는 기사님께서 100병이나 준비하셨다고 한다.


말랑말랑 심지어 따뜻하기까지 한 인절미를 준비해주신

박화서, 신애자 회원님의 따스한 배려 때문에 아침식사를 거른

회원님들께서 든든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새로운 얼굴의 조규향 총장님과 박남화 대기자님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조규향 총장님은 한사모의 대한민국 U자 걷기 5구간 때(2010.4.5~4.11)에

부산동아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한사모 회원들에게 동아대 박물관을

구경시켜 주시고 맛있는 저녁 만찬을 베풀어주신 분이라고 소개하였다.

 

한국교육신문사와 교육과정평가원에 근무하셨던 박남화 대기자님은

2007년 3월 한사모 창립을 이끌어 주신 초대 운영위원으로서 지금도

1년에 1번은 주말걷기 안내를 맡아 인천지역 걷기를 이끌어 주신답니다.

 

 


    


 


 

 


출발 후, 이경환 회장님께서 이번 걷기의 업무분담 사항과 일정에 대한

개요를 이야기하였다. 당초 47명이 참가신청을 하였으나 송경희, 김소영 회원님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불참하게 되어 최종적으로 45명이 참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참가 회원들이 맡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홍단풍이 아름다운 산청의 밤머리재는 굴곡이 심해서 이 코스 대신에

목화시배지를 잠깐 들르는 것으로 변경하고, 식당 주인이 병고가 있어

저녁식사 장소를 하동 이화가든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변경된 부분은 유인물로 철두철미 하신 회장님께서 새로 작성해서 나눠주셨다.

사진위원 외에도 사진을 찍으신 회원은 카톡이나 화보로 전송하고,

안전에 대한 조심과 음주 후 걷기 조심 등 여러 가지 유의사항이 있었다.

 

허필수 고문님께서 안전과 건강과 멋진 여행을 위한 대표기도를 하셨고

우리 모두는 아멘으로 화답을 했다.

 

 


 


 

 


이윽고 한사모의 장점인 여행 시작 전의 소감 발표가 있었다.

밝고 유쾌한 표정으로 여행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씀을 많이 했다.


윤종영 고문님은 정사에는 논개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논개의 신분은 기생인 듯 하다는 말씀이 있었다.

 

홍종남 회원님은 혈압관계로 입원했을 때 지난 주 주말걷기를 안내하신 분이

병문안 오셔서 눈물짓는 모습을 보고 한사모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임이라는

딸들의 이야기가 있었다고 하셨다.

 

대한민국 337박수를 시작으로 함수곤 대표님은 대한민국 U자 걷기 5구간 때

당시 동아대 조규향 총장님이 박물관 견학, 저녁식사, 기념 선물 등을 베풀어

주신 것을 되새기며 이번에 총장님과 함께 동행하게 되어 기쁘다고 하셨다.

 

많은 분들이 여행에 대한 기대와 준비하고 애쓰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하셨고, 노래로 분위기를 띄워주신 회원님들도 계셨다.

 

위의 소감발표를 요약하면, 1. 준비하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2. 행복하고 건강하게 유익한 시간을 보내겠다. 3. 여행지에 대한 기대가 된다.

등으로 정리해볼 수 있었다. 한사모 회원님들은 말씀도 잘한다는 것을 알았다.

 

목적지인 산청까지 2회 휴게소에서 정차가 있었다.

목적지 도착 후 처음 방문한 곳은 문익점의 면화시배지이다.

 

 


 


 


 

 


문익점과 면화시배지


고려말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엔 목화가 없었다. 공민왕12년(1363) 문익점이 원나라에

가서 붓뚜껑 속에 숨겨온 목화씨 가운데 한 톨이 온 나라에 퍼져 누구나 무명옷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가히 의류의 혁명이라 할 만한 이 일로 문익점은 후에

남명 조식으로부터 농사를 시작한 옛 중국의 후직에 견줄 만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지리산의 천왕봉을 바라보고 동구 밖에는 경호강 물줄기가 흐르는 전형적인

산골 단성면 사월리는 목화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고장이다. 처음 목화씨가

뿌려지고 싹튼 곳으로 배양(培養)마을 또는 면화시배지(始培地)라고 불린다.

 

고국에 돌아왔으나 벼슬을 빼앗긴 문익점은 목화씨 열 톨을 갖고 낙향하였다.

장인인 정천익과 함께 목화씨를 뿌려 이듬해 가을 한 그루의 목화를

키우는 데 성공하여 100여 개의 씨를 얻었다.

 

 


 


 


 

 


목화 재배에는 성공했지만 문익점과 정천익은 목화의 씨를 빼내고

실로 만들어 옷감을 짜는 법을 알지 못했다. 하루는 원나라의 승려

홍원이 찾아와 자기 나라에 있는 목화를 보고 매우 좋아하였다.


마침 그가 직조술을 알고 있었기에, 장인 정천익이 그에게서 기술을 배워

씨 빼는 기계[取子車]와 실 잣는 기계인 물레를 만드는 데 성공하여,

무명 한 필을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실 잣는 기계를 문익점의 손자 문래가 만들었기에 ‘물레’, 처음

베를 짠 사람이 손자 문영이었기에 ‘무명베’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해마다 씨가 불어나 3년째 되던 해에는 향리에 두루 나누어줄 정도가

되었다. 이로부터 10년도 채 못 되어 목화 재배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불과 36년 뒤인 조선 태종 때에는 백성이 두루 무명옷을 입게 될 만큼

면업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였다. 1980년대에 이르러 정씨문중에서

교과서에 문익점 선생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자 정천익도 넣어달라고

해서 힘들었던 교과서 편찬에 관한 뒷이야기도 있었다.

 

 


 


 

 


점심식사는 보현갈비식당에서 한우정식을 먹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고기와 야채, 짜지 않은 된장찌개,

산초와 계피 김치, 각종 절임, 다양한 나물과 찐 땅콩과 밤,

한 방 차까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멋진 식당이었다.


건배사는 김용만 고문님의 영원하라 한사모! 한사모!


점심식사 후 남명 조식 선생 기념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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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선생 기념관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 선생은 산청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태어난 곳은 이웃 합천군 삼가면 토동이지만, 61세에 산청군 덕산으로 옮겨와

산천재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72세이던 1572년 2월

산천재에서 운명했다. 11년간 지역 사람으로 살면서 이곳에 묻혔다.


남명 조식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청에 자리한 남명 조식 유적지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산천재다.

조식선생이 61세 때인 1561년 산청군 덕산으로 내려와 산천재를 지었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으로 1818년에 고쳐 지었다.

산천재에서 갈고 닦은 학문을 제자들에게 전수하다가

1572년 2월 8일 72세의 나이로 이곳에서 운명하게 된다.


남명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도학자로서 동시대의 학자 퇴계 이황에

버금가는 학문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이 부각되지 못했다.


벼슬을 일체 사양하고 지리산에 은둔하여 학문에만 전념하였던 것이

큰 이유였지만,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원인으로 조식의 족적은 소외되었다.

 

 


 


 


 

 


이웃한 고을 삼가(지금의 합천군 삼가면) 태생인 남명이 지리산 밑의

덕산에 자리 잡은 것은 61세 때였다. 젊은 날 정통 유학과 노장학 등

제자백가를 섭렵하여 박학하였지만,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장원급제하여 한양에서 공부하였으나, 기묘사화 때 숙부인

조언경이 조광조의 일파라 하여 비명에 가고 아버지도 파직되어 집안이

쑥밭이 되자 고향인 삼가로 내려왔다. 남명은 생계가 어려워지자


중종 26년(1531) 살림이 넉넉한 처가를 찾아가 김해의 탄동에다

산해정(山海亭)을 짓고 18년간 학문과 제자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38세인 중종 34년(1539)에 이언적의 추천으로 헌릉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몇 년 뒤 이언적이 경상도 관찰사로 와서 만나기를


청하여도 “대감이 벼슬자리에서 물러난 뒤에 만나 뵈어도 늦지 않을 것이오”

하며 거절하였다. 그 뒤에도 몇 차례 천거되었으나 번번이 사양하였고,

1554년에는 벼슬길에 나아가라는 이황의 권고도 물리쳤다.

 

관직을 단호히 물리고 지방에 은거하여 학문에만 전념하였음에도

그의 명성은 자자하여 제자가 되길 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정구·곽재우·정인홍·김우옹·이제신·김효원·오건·강익·문익성·

박제인·조종도·곽일·하항 등이 그들이고, 모두 지리산 지역을 중심으로


문풍을 일으킨 유학자들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특징은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 활동에 직접 참여한 선비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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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은 일상생활에서도 철저히 절제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특히 경의(敬義, 마음이 밝은 것을 ‘경’이라 하고 외적으로 과단성이 있는

것을 ‘의’라 함)를 중시하여 ‘경’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써

외부생활을 해나간다는 생활철학을 실천하였다. 학문을 익히는 것 못지않게


실천을 중시했던 스승의 정신은 그 제자들에게 이어져, 제자들은 임진왜란

같은 나라의 위기상황에서 적극적인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회갑을 맞은 남명은 지리산 가까이로 찾아들었다. 이 곳 덕산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10년 동안 그는 자신의 학문을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하였다.


일반 유학자들이 주자학 일변도의 성리학만을 고집하였던 것과 달리

남명은 폭넓은 성리학을 공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방적인 태도로

 

노장학까지 섭렵하였다. 학문의 폭이 넓기도 했지만

그 넓은 학문을 집약하여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경지를 더욱 높였다.


그는 “모든 사물을 환히 내려다보는 고명(高明)이 있고서야 행함이

도에 어긋나지 않고 세상에 쓰임이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으며,


또한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이는 배우지 않음만 못하고,

오히려 죄악을 범한 것이 된다.” 고 하였다.

 

 


 


 


 


 

 


청학동 삼성궁


하동의 북쪽에 위치한 지리산 정기를 받는 청학동에 위치하고 있다.

삼성은 3인의 성인을 말하는데 한인, 한웅, 단군이다.

과거 종교시설과 수련시설이 합쳐진 곳이 수려한 관광지가 되었다.


입장료는 단체인데도 6,000원으로 비싼 편이었다.

마고성, 삼성궁의 둘레길을 1시간 정도 걸었다.


돌담길과 호수, 단풍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호수에 비친 나무들은 또 다른 용궁속의 세상을 보는 것 같다.


우리 한사모 회원들은 혼자서, 여럿이서 함께 사진도 찍으며

돌탑, 조각 등 자연과 어우러진 인공의 미에 감탄하셨다.


 


 


 


 


 


 


 


 


 


 


 


 


 


 


 


 


 


 


 


 


 

 


저녁식사는 하동 현대가든 배 밭 속에 있는 집이라는 이화가든 식당을

이용하였다. 주 메뉴인 '참게가리장'은 섬진강의 민물 게를 볶아서


들깨, 볶은 참깨, 콩 등 곡물 12가지와 볶은 민물 게를 껍질 채 갈아

체에 쳐서 채소와 찹쌀, 견과류를 넣고 끓인 죽이다.


독특한 맛으로 하동에서만 맛볼 수 있다고 한다.

가리는 가루의 사투리이며, 봉지를 봉다리 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가!


제첩회, 제첩국, 각종 반찬 등 모두가 섬진강과 관련된 반찬이라고 한다.

집에서 만든 막걸이로 건배를 하였다. 건배사는 조규향 총장님의

“훌륭한 모임의 참여를 가문의 영광으로”,


"이 모임이 더욱 발전하고 만수무강하고, 오래 지속되도록, 아끼어도

주시고..."라는 의미에서 “모두의 건강과 연속과 발전을 위하여”였다.


흥겨운 뒤풀이 시간을 통하여 노래하며 하나 되는 시간을 가진 후

숙소인 아시아호텔로 이동을 하였다.

 

 


 


 


 


 

 


아시아호텔은 진양호 호반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그림과 같은 호텔로 2인 1실로 배정되었다.


그동안 한사모가 묵었던 숙소와 비교해 보면

상당히 고급스럽게 업그레이드 된 기분이다.


침대가 무척 편했고 많은 회원들이 잠자리가 좋아서 숙면을 하였다고 한다.

 

 


 


 


 

첨부이미지

 

* 편집 : 西湖 李璟煥

 


-<향수의 팝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