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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사진편지 제2638호(이규석.이영례의 바이칼호 여행기 2 /'18/9/2/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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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사진편지 제2638호(이규석.이영례의 바이칼호 여행기 2 /'18/9/2/일)

불꽃緝熙 2018. 9. 2. 23:15

 

 

 

한밤의 사진편지 제2638호 ('18/9/2/일)

[한사모' 공식 카페] - '한밤의 사진편지 romantic wal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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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석, 이영례의 바이칼호 여행기] (2)

 

"시베리아 첫걸음 이르쿠츠크와 바이칼호 여행"

 

* 제 2일 : 2018년 8월 4일(토) *


 

첨부이미지

 

글 : 이규석 (한사모 회원,  ksyesks@naver.com )


편집 : 이영례 (한사모 회원, varvar@naver.com )


 

      * < 3일 동안 묵은 호텔 >

 

      * < 숙소에서 바라본 버스정류장 >

 

 

       [ 제 2일 - 8월 4일(토) ]

 

       아침 식사는 6시30분부터 가능하고 9시30분에 출발하기로 되어있다. 서울 집에서의

     밤은 더워서 잠을 깼는데 이곳에서 어젯밤은 추워서 긴팔 옷을 찾아 입고 자느라고 깼었다.

     그때가 4시 반인데 날이 밝았고 창밖으로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위도가 높아질수록 밤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다시 잠을 자다가 일어났어도 여유

     있게 8시에 식당으로 갔다. 여느 호텔과 같이 여러 종류의 음식이 준비된 뷔페여서 괜찮은

     아침식사가 되었다. 오늘의 여행지는 딸찌 민속촌이다.

 

       이에 앞서 이르쿠츠크에 대해 알아본 바로는 다음과 같다. 즉, 이르쿠츠크시는

     이르쿠츠크주의 주도로 인구는 현재 65만명, 1652년 ‘자유인’이란 뜻의 카자크(Kazak)족

     (또는 코사크족이라 부름)이 처음 이주하였다고 한다. 중심가 인근에 있는 ‘안가라강’가에

     있는 카자크 용사의 청동상이 용감한 모습으로 시내를 바라보고 있다. 바이칼호 서쪽,

     안가라강과 이르쿠츠크강의 합류지점에 있고, 상류에 수력발전소가 있어서 시베리아의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는 안가라강이 시가지를 관통한다.

 

 

      * < 토프족이 지내던 숙소 >

 

      * < 짐승들로부터 식품을 보호하기 위한 저장고 >

 

 

       1661년에는 목조 성채가 지어져서 이후 러시아, 몽골, 중국과의 교역로의 중심지로

     모피와 금 거래가 활발하였고 현재 동시베리아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그리고 이르쿠츠크주는 면적이 약768천㎢로 남한의 7.7배, 인구는 약260만 명으로

     인구밀도는 3.2명/㎢, 러시아인 약90%, 부랴트인 3.1%, 기타 7%로 구성되어 있는데

     러시아정교회 신도가 90%정도가 된다. 부랴트인의 DNA가 우리민족과 같다고 하여

     한국인의 시원이 이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1992년 1월1일자로 러시아를 비롯한 각 공화국은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었다. 2000년 푸틴이 제3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연임한 후, 총리로

     있다가 2016년 현재 제7대 대통령으로 다시 집권하고 있다. 러시아는 다당제 국가이지만

     현재 46개주 중 45개 주와 국회위원의 3/4이 통합러시아당에서 차지하고 있으며

     이르쿠츠크주는 공산당이 유일하게 당선되었는데 이는 선거유세 때 방송이 끊기는 등

     탄압받았다고 생각하는 선거구민의 동정표를 얻었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니 우리나라

     60년대 전 후 선거판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기억나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같은 민주주의로 가는 여정에 있구나 생각했다.

 

 

      * < 식품-동물-건조대 >

 

      * < 묘지 >

 

 

       아침식사 후 9시30분 호텔을 떠나 리스트비얀카 근처에 있는 딸찌민속박물관을 향해

     갔다. 이곳은 버스로 약 1시간거리였는데, 박물관이라기보다는 그냥 민속촌이라 불러도

     좋을듯하다. 민속촌까지 가면서 타이거 침엽수의 대표 격인 적송으로 이루어진 숲과 그

     사이에 가끔 자작나무 숲이 있는 울창한 숲속 길이 이어졌다. 자작나무는 물에 강하고

     불에 약한데 불에 타지 않으면 천년을 간다고 한다. 천마총의 천마도가 바로 자작나무에

     그린 그림이다. 수중미인이라는 자작나무숲을 말로만 듣다가 직접보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하는 일행도 있었다.

 

       이 길은 세계 제2차 대전 때 일본군 포로들이 닦아놓은 도로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국민들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 본토에 끌려가 위험한 환경에서 도로를 만들고, 악조건

     아래 있는 탄광에서 일을 했었다는 생각이 났다. 후에 일본의 수상이 된 모리의 조부가 이

     길을 닦을 때 작업반장을 했고, 아이젠하워 미국대통령과 흐루시초프의 바이칼회담을 위해

     이 도로를 급하게 포장하게 되어 요철과 커브가 심한 도로로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정작 일본은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 문제로 관광객도 뜸하여 직항노선을 없앴고

     우리나라는 대한항공이 주 3회 다른 항공이 주 2회 운항하고 있으나 중국인 관광객이

     제일 많다고 한다.

 

 

      * < 예벤카족의 솟대 >

 

      * < 발달된 묘지 >

 

 

       민속촌에 들어서서 오른쪽으로는 바이칼 지역의 옛 주인이었던 토프족과 예벤키족의

     흔적들을 재현해놓았다. 토프족은 지금 거의 멸족되어 사얀산맥 깊은 숲속에서 1000여명이

     문명과 담을 쌓고 살고 있고, 예벤카족은 사정이 다소 나은 편이지만 비슷한 사정으로

     예르바가촌이란 작은 도시 주변에 분포한다. 민속촌 한가운데 망루와 연필을 세워놓은

     모양으로 세워져 있는 목책은 카자크 원정대가 시베리아에 진출하면서 그 군영지가 있었던

     것을 수력발전소용 댐으로 수몰될 위기에 처해 이동해 재현해 놓은 것이다.

 

       부랴트족의 주거 양식까지 추가하여 민속촌의 면모를 갖추었다. 너와집처럼 지붕을

     엮기도 했으나 그 위에 자작나무 껍질을 깔고 흙으로 덮은 ‘유르따’가 있다. 그 옆

     샤먼의 집 한가운데는 자작나무가 솟아있다. 우리나라의 샤먼은 복숭아나무나 대나무로

     접신하고 시베리아는 자작나무를 이용한다. 이곳에서는 자작나무가 신목인 셈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모습의 장승에는 자작나무 껍질로 몸통부분을 둘러주어 이채로웠다.

     딸찌 민속촌에 있는 러시아정교 교회에서 합창소리가 들려서 들어가 보니 5~6명이

     기타 반주에 따라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여기 정교회는 의자 없이 서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민속촌 장터에서 손자들과 친인척에게 줄 민예품 선물을 샀다.

 

 

      * < 마을의 수호신 - 장승 >

 

      * < 부랴트족, 카자크 원정대의 집을 수몰지에서 옮겨놓은 촌락 >

 

 

       민속촌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리스트비얀카로 이동하여 현지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생각보다 양은 많았지만 음식에 향신료를 사용하지 않아 우리 입맛에 맞았다. 바이칼 호수

     인근에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으나 아담하고 아름다운 목조건물로 리스트비얀카에서 유일한

     교회인 성 니콜라이 정교회가 있어서 구경을 했다. 이 교회는 19세기에 이곳 상인이

     바이칼을 항해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위험에 처했을 때 성 니콜라이에게 구원을 빌어

     무사히 귀환한 감사의 뜻으로 1846년 공사를 시작했으나 완공 전에 죽고 그의 부인이

     이어서 공사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인근에 샤먼광장이 있고 바이칼 호수와 안가라강 사이에 샤먼바위가 있다.

     화려한 전설에 비해서는 너무 작아 보이지만 댐을 건설해서 일부가 수몰되기 전에는

     당당한 바위섬이었다고 한다. 이 바위섬인 샤먼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늙은 바이칼에게는 크고 작은 아들 336명이 있었지만 딸은 고명딸 안가라 뿐이었다.

     안가라는 호수 같은 푸른 눈과 자작나무 같은 하얀 피부를 지닌 뛰어난 미인이었다.

     안가라의 혼처를 알아보던 바이칼은 이웃 동네에 사는 사얀이라는 영감에게 건장한 청년

     이르쿠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 사돈을 맺기로 약속을 한다. 가까운 곳에 딸을

     두고 싶었던 바이칼과 훌륭한 가문과 사돈을 맺고 싶었던 사얀의 생각이 쉽게 통했다.

 

 

      * < 이 지역 원주민의 솟대 >

 

      * < 민속촌에 위치한 작은 러시아정교회 >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의 생각이었을 뿐이었고 딸 안가라의 생각은 달랐다.

     안가라에게는 늘 찾아와서 말벗이 되어주고 세상 이야기를 전해주던 새들이 있었다.

     시베리아대륙 한 가운데 갇혀 살던 안가라의 꿈은 바다를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버릇처럼 바다를 맘껏 구경시켜주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의 소원을 들은 새들은 그런 청년을 찾으려 수소문을 하였다. 그러던 중 멀리

     크라스노야르스크에 사는 예니세이라는 청년이 매일 북극 바다를 보러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만남을 요청한다.

 

       예니세이를 몰래 만난 안가라는 첫눈에 사랑에 빠졌고 장래를 약속한다. 문제는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예니세이와의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안가라의 요청은

     일언지하에 거절되었다. 예니세이는 안가라를 기다리느라 눈이 빠질 지경이었다.

     사랑은 가끔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닫게 한다. 결국 안가라는 야반도주를 결심했다.

     대문을 열고 막 집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안가라가 밤 봇짐을 쌌다는 소식은 즉각

     바이칼에게 전해졌고 바이칼은 급한 마음에 옆에 있던 돌을 집어던졌다. 그 돌은

     불운하게도 안가라의 뒤통수를 쳤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절명하였다. 그 돌이 바로

     바이칼 문지방 앞에 있는 샤먼바위 이다. 예니세이를 향한 그녀의 눈물은 오늘도

     어김없이 북쪽을 향해 흐르고 있다(2018, 비케이투어).’

 

 

                  * < 성 니콜라이 정교회 >

 

      * < 샤먼바위  >

 

 

       이 전설을 현실에 비추어보면 샤먼바위는 바이칼호와 안가라강의 경계가 되며,

     336개의 크고 작은 물줄기가 바이칼호로 들어오지만 단 1개의 물줄기인 안가라강만은

     흘러나간다. 그런데 안가라강은 북쪽으로 흐르다가 예니세이강과 합류하여 함께

     북극해로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바이칼 호수 박물관으로 갔다. 이 박물관의 정식 명칭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호소학연구소이다. 사진과 모형 그리고 지도와 도표를 통해서

     바이칼호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다. 바이칼호는 남북 2천km, 동서 500~600km,

     면적은 약 31,500㎢로 남한의 약 3분의 1이며 세계 4위, 최고 수심이 1967m이고

     담수호의 담수량은 세계 1위이다. 2004년에 개설된 수족관에는 바이칼 호수에 청어

     종류인 오믈, 시크, 하리우스, 민물 물개인 네파 등을 기르고 있다. 이후 바이칼

     전망대로 올라가는 리프트가 있는 곳까지 버스로 이동했다. 두 명씩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바이칼 전망대에서 확 트인 바이칼호를 감상하고 걸어서 내려왔다.

 

 

      * < 바이칼 호수를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정상으로 가는 리프트 >

 

      * < 유람선상에서 보이는 리스트비얀카  >

 

 

       다시 버스로 이동하여 리스트비얀카에 있는 점심식사 장소 앞으로 갔다. 그곳

     도로 건너에 있는 선착장에서 선상 유람을 위해 배를 탔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까지

     27명인데 작은 배라서 16명과 11명으로 나누어 두 척의 배에 승선했다. 나는 11명이

     타는 배에 올랐는데 오믈을 구운 것과 보트카를 여행사가 제공해주어 이것으로 잠시

     선상 파티를 했다. 1시간을 타고 내린 후 하루 종일 햇볕으로 달궈진 호수물이

     어떠한지를 알아보려고 물에 손을 담가보니 차다.

 

       모래도 아닌 자갈로 된 호변에 자리를 깔고 일광욕을 하지만 물에는 다리만

     담그는 정도이고 우리나라처럼 풍덩 물에 뛰어드는 사람은 없었다. 걸어서 이동하여

     리스트비얀카 노천 시장을 둘러보았다. 규모가 제법 컸는데 딸찌에서 구입한 후

     더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김치식당이라는

     이름의 한식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메리어트호텔로 돌아왔다.

 

 

      * < 선상에서 먹은 오믈구이와 보트카 >

 

      * < 이름이 ‘김치’인 한식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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