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역시 겨울이 시작되는 달인가 봅니다.
멀쩡한 가을 날씨가 지난 금요일 아침 전국에 걸쳐
비를 내리더니 겨울바람이 불고 기온이 뚝 떨어져 버렸습니다.
입동立冬이 겨울 문턱에 떡 버티고 앉아서
서민庶民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네요.
그까짓 초겨울 추위쯤이야
우리 한사모 회원會員들이 눈 하나 껌벅거릴 리가 있나요.
오늘 우리 한사모 회원들이 모여 출발出發하는 이곳 구로동은
과거에는 구선동(九仙洞)이었답니다.
구로동이 경기도에서 편입되기 훨씬 전, 허허 벌판인 이곳에 동네 이름을
짓기 위하여 하늘에서 신선 아홉 분이 내려와 회의를 했답니다.
밤 내내 결론을 내지 못하고 날이 밝아오자, 어쩔 수 없이
신선들은 하늘로 올라가 버린 후에 다시 내려오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 감히 “신선 선仙” 자를 붙일 수가 없어
(하늘의 신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참작)
구로동九老洞이라고 작명作名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동네입니다.
60 년대만 해도 쪽방들이 죽 늘어서 있었고요.
가발공장을 비롯하여 수 많은 크고 작은 공장들이
밤낮으로 분주하게 돌아갔었지요.
덕수상고에서 한 10년쯤 근무하고 싶은 마음으로 출퇴근을 했는데
(그 때만 해도 실업학교는 희망교사가 적어 본인이 희망하면
근무할 수가 있었습니다) 어찌어찌 해서 구로동에 공립고등학교가
신설되었을 때 저도 아침이면 공장으로 출근하는 큰 애기들과 함께
만원 버스 안에서 4년 간 비지땀을 흘린 적이 있었습니다.
2호선 전철이 개통되기 전에 구로동을 떠나게 되었지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잘 알고 있는 소설가 형 한 분이 구로동에 거주하면서
6-70년대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잘 묘사해낸 “구로동의 봄” 이라는
소설을 써서 인세를 좀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론이 좀 길었나요. 오후 2시 30분,
구로디지털 역사 안에 우리 일행 42 명이 모여
오늘의 목표지점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제가 늘 즐겨 걷고 있는, 신대방역으로 가는 숲 길은
도심 한 복판에 전나무와 벚나무 그리고 느티나무가
길 양쪽에 늘어서 있어서 봄과 가을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이용, 심신을 단련하고 있습니다.
신대방역에서 보라매공원까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입니다.
서울 시민이면 누구나 다 아시다시피 보라매공원은
과거 공군사관학교가 있었던 곳입니다.
봄철이면 서울시내 고3 학생들이 공군사관학교를 찾아
소풍 겸 대학 진학에 대한 학습을 하러 참 많이들 찾았답니다.
지금은 610 미터짜리,
서울 시민의 걷기 운동장이 된 이곳은
공군사관학교 운동장(연병장)이었답니다.
계단에 앉아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잠깐 휴식시간을 가진 후에
각자 가지고 온 물과 간식을 즐겼습니다.
오랜만에 “박화서표” 인절미가
옛 공군사관학교의 운동장에 등장했네요.
참으로 맛있게 꼭꼭 씹어 먹었답니다.
쉬는 시간에는 김창석 회원의 하모니카 전주에 맞추어
다같이 “과꽃”을 비롯한 몇몇 곡의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과거 공군사관 생도는 물론,
6.25 전쟁 당시 실지로 전투에서 사용했던
비행기들의 실물 전시장을 관람한 후에
보라매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 길은 보라매 병원으로 이어지는 길로,
(동작구)지방자치 단체에서 돈을 투자하여
판자 마루를 깔아 잘 단장한 길입니다.
숲 속에 이런 길을 조성하여 준 단체장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길이기에
시민 여러분 참으로 고맙습니다.
숲길의 남쪽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서울 시립 보라매병원으로 운영은
서울시에서 하고 있고 의사 분들은 주로 서울대 의대 출신 분들이라서
시민들이 서울대병원으로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확실히 인지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예정된 5시 저녁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우리는 610 미터짜리 트랙을
한 바퀴 도는 것을 포기하고 곧장 식당으로 갔습니다.
가끔 이곳을 걸으면서 점심시간에 서너 번 들렸는데
살짝 익힌 미꾸라지를 갈아 채에 걸러 뼈를 추려낸 후에
양념과 시래기 부추를 넣어 손님들이 직접 끓여 먹는 방식이라서
조금은 새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배사는 “청바지”로 했습니다.
“청춘은 바로 지금”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르신들! 그때 그 젊은 시절로 돌아가
잠깐이라도 향수에 젖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11월12일, 오후 2시 30분) 제497회 주말걷기 안내를
맡으신 임명자, 이경환 회원님께 한사모 깃발을 인계하였습니다.
다음 주에는 창덕궁 돈화문 매표소 앞에서 모입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나와서 현대 사옥을 지나
한 4분 정도 걸어 오시면 창덕궁 돈화문이 보입니다.
서울 도심에서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창덕궁 후원(비원)을
말없이 조용히 산책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입장권을 구입할 수
없을 경우에는 창경궁을 돌아 나오겠다고 합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신림역을 향하여 걸었습니다.
식당에서 역까지는 약 10분 정도면 충분한 거리입니다.
한사모 회원님들은 물론 가족분들 모두가
항상 건강하시기를 빌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 관악문협에서 11월 30일까지 관악산 입구에서 시화전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금년에 게시된 작품을 소개합니다.
"테라스(Terrasse)에 앉아" / 권영춘(시인, 수필가)
-그리움은 항상 꿈결에서만 이루어지는 것-
도시 한 모퉁이가 하얀 침묵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적한 테라스의 구석진 곳에 앉아
반세기 전쯤에 이별했던“렌의 애가”를 다시 만났다.
어느 핸가 성탄聖誕의 은방울 소리를 들으며
세상과 마주했다는 설희雪姬
책장 너머에서“렌”의 미소를 짓고 있다.
작디작은 햇빛에도
기쁨을 잃지 않고 흐르고 있는 도심의 냇물.
벽에 부딪치는 차가운 삶들이
방향을 잃은 채 몸을 흔들고 있다.
난로의 열기熱氣가
주인을 잃고 사위어 가는 시간
저 멀리 종탑에서 내려오는 발저욱 소리와 함께
백설白雪은 낮은 하늘을
마음껏 유영遊泳하고 있다.
설화雪花로
단장한 테라스의 계단을 천천히 내려온다.
그날 밤의 눈길을 다시 함께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