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오름 일대는 70년대 산림녹화 수종으로
선택된 삼나무가 심어져서
지금은 삼나무 군락지로 삼림욕에 좋은 곳이 되었습니다.
제일 높은 곳은 456m로
버스 정차한 곳이 350m 고도이니 많이 올라온 것은 아니지만
날씨가 좋으면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이 잘 보인다고 합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함수곤 대표도 '할 수 있다'는 집념과
도전정신으로 용기를 내어 456m의 거문오름 정상에 올랐습니다.
함 대표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금년도 송년의 밤(12월 22일)
행사에는 꼭 참석하겠다는 의지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상에서 분화구로 내려오면서 거문오름의 또 다른 특징을 들었습니다.
이곳은 원래 곶자왈 이었는데 분화구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곶자왈은 산소 공급을 하니 제주도에게는 허파와 같고, 빗물이 요철이
많은 크고 작은 암석을 통과하여 바다에 이르는데 20~30년이 걸리니
지하수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여 삼다수 같은 좋은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곶자왈의 암석 틈으로 들어간 공기로 인하여
따뜻한 기온이 유지되기도 합니다.
분화구에 들어가자 용암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동굴의 천정이 무너져 만들어진 용암협곡이 있습니다.
이 일대에는 붓순나무 군락지와 식나무 군락지가 있습니다.
거문오름에서는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붉은색의 암석을
볼 수 있는데, 이를 제주도 방언으로 ‘송이’라고 합니다.
분화구에서 분출될 때 높이 올라갔다가 회전하면서
굳어진 것으로 화산탄이라 하며 대부분 물에 뜹니다.
우리 일행이 지나가는 분화구를 둘러싼 능선은 9개여서
구룡이라고 부르고 알오름은 여의주로 불립니다.
알오름 전망대 일대는 기가 세다고 합니다.
알오름을 지질학적 용어로 말하면
이중화구구로서 화구 안에 있는 화구를 말합니다.
알오름을 지나면 일본군이 파놓은 굴이 보입니다.
이 굴은 10여m 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천정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기분이 별로입니다.
이 일대 분화구에는 2차 대전 말기에 6천여 명의 일본군이 주둔하여
10여 개의 갱도를 팠고 능선에는 포대를 설치했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숯가마터가 있는데 외형은 갱도 입구와 비슷합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수직 동굴이 있습니다.
보통 용암 동굴은 수평으로 발달하는데
이곳은 독특하게 35m 깊이의 수직 동굴이 되었습니다.
만들어진 과정은 철망으로 막은 동굴 입구에
그림과 글로 잘 설명해 놓았습니다.
곳곳에 땅 속에서 바람이 불어나오는 구멍인 풍혈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해설사는 가고 곧 개활지가 나오니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거문오름 옆으로 난 길로 아침에 출발한 탐방안내소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점심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버스에서 엄명애님과 동생 엄명자님이 준비한
오메기떡을 주셔서 식 전 간식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낭뜰에 쉼팡’이란 프랑스어 같은 멋진 제주도 말인
음식점에서 낭뜰정식인 쌈밥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낭뜰에 쉼팡’은 제주도 방언으로 '나무(낭)뜰이 있는
쉼터(쉼팡)에서 쉬었다 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식사 전 건배사는 이흥주고문님께서
덕담과 함께 ‘한사모 - 최고야’를 선창해 주셨습니다.
오후에는 한남리 ‘머체왓숲길'을 걸었습니다.
제주도의 진목면을 보려면 아니 제주도의 속살을 보려면
이곳을 보라는 말이 있답니다.
음식점에서 약 20분 이동하여 유의 사항을 듣고
잘 훈련된 유격대 교관 스타일의 진풍길고문님의 선도로 체조를 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에구구’ 소리가 들립니다.
준비운동이 잘 되고 있다는 소리이겠지요.
‘머체왓’이란 ‘돌밭’인데 제주도에 돌밭 아닌 밭이 있을까마는
이곳은 특히 말을 닮은 지형이라 이런 말을 썼다고 합니다.
오후 1시 반에 안내소를 출발하여 정말 자연산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언덕을 조금 올라서 쉬면서‘오빠 생각’,‘가을바람’,
‘꽃밭에서’등 동요를 동심으로 돌아가 불렀습니다.
대자연 속에서 동요를 부르는 회원님들의 얼굴마저
천진무구한 어린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따금 설치된 길 안내판 외에는 컴컴한 숲이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넘치는 원시림 같은 이 길은 2012년 12월 24일에 개통된 길이라 합니다.
세월과 사람이 이 길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기를 기원했습니다.
방사탑쉼터에서 햇빛이 차단된 숲 속 공기를 느끼며 쉬었습니다.
옛올레길을 걸어 움막쉼터를 지나면서 쉬어가자는 일행이 있었지만
머체왓 편백낭쉼터도 지나 편백낭 치유의 숲에서 쉬었습니다.
돌무더미탑이 많이 있었고 쉴 수 있는 평상과 긴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아름드리 편백이 숲을 이루었다. 조금 전 소롱콧 옛길을 지나왔는데
소롱콧이란 이곳의 지형지세가 작은 용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서중천 습지를 지나 정말 모두들 열심히 걸었습니다.
편백나무, 소나무, 삼나무, 잡목들의 삭은 가지와
잎사귀들이 마치 부드러운 융단을 밟는 것처럼 길에 깔려 있었습니다.
내리막길이 계속되는 길의 왼쪽으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와 교차하며 묘한 소리를 냅니다.
혼자 걷기에는 무서울 것 같은 숲길이 계속되다가
갑자기 시야가 트였습니다.
그 틈으로 서중천에 물이 흐르고 멋지게 침식되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바위가 보입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가 바위로 가서 사진을 찍었고
어제 밤 이후 갑자기 유행하게 된‘오빠’라는 소리가 많이도 들렸습니다.
누가 묻습니다. 왜 이 바위는 표면에 구멍도 안보이고
색깔도 옅은 색으로 보이냐는 것입니다.
이런 호기심과 탐구심이 있는 한 마음은 항상 젊게 살 것입니다.
이 질문의 답은 제주도에서 이곳만은 현무암질용암이 아닌
조면암질용암이 분출해서 암석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곳의 암석은 현무암이 아니라 조면암이다.
바위에 구멍이 많아 물이 고여 있기 힘든 제주도이지만
이곳 서중천에는 가끔 깊은 연못이 있습니다.
서중천 숲길을 걷다가 ‘올리튼물’이란 팻말의
아래를 보면 시퍼렇게 보이는 꽤 큰 연못이 있습니다.
‘올리’는 오리를 ‘튼’은 뜨다의 제주도 말이라 합니다.
가믐에도 물이 풍부하여 원앙새, 오리 등이 둥지를 틀어
물 위에 한가롭게 떠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안내센터에 다다르니 오후 4시15분이었습니다.
2시간 반 걷기로 하였는데 15분이 더 소요되었습니다.
이 시간은 서중천 냇물 속의 큰 바위에서 사진 찍으며
오빠라고 부르던 시간과 거의 일치합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시간은 곧 조정되어 정시에 움직이게 됩니다.
마치 제주도의 돌담이 크기를 달리한 돌들 사이의 여유가
태풍에도 굳건히 유지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50분 달려 숙소인 '디아일랜드 마리나호텔’로 가서
여장을 풀어 사흘만에 부부 합방이 가능해졌습니다.
방 배정 후 짐을 풀어놓고 저녁식사 장소인
식당 '옛날옛적에'(064-784-2252)로 향하였습니다.
‘옛날 옛적에’라는 제주 토속음식점에서 저녁을 했습니다.
이달희 고문님께서 희수(양력 11월 3일 - 음력 10월 4일)를 이곳
제주 걷기에 와서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행운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달희 고문님, 박정임 단장님 제주에서 맞이하시는
이 뜻깊은 희수를 진심으로 축하하오며 오래오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이복주 부회장님과 윤정자 단장님이 제주에 와서 미리 준비한
꽃을 두 분께 달아드리고 케이크에 촛불을 밝혀 참석한 회원들이
생일축하 노래를 다함께 정성껏 불러드렸습니다.
함수곤 대표님의 축하 말씀이 있었는데 예전과 같은 포스가 느껴졌습니다.
함대표는 동기동창인 이 고문님의 학창 시절도 회고하시면서
제주에서 희수를 맞이하게 된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많이 건강해지셔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달희 고문님은 답사로 10년 전 한사모가 제주도를 일주할 때의
모습과 지금을 비교하고 세월의 무상함을 말씀하신 후 건배사는
‘우리는 - 한사모, 한사모는 - 영원하다’로 했습니다.
오늘의 저녁식사는 희수를 맞이하신 이달희 고문님과 박정임 단장님께서
제주걷기에 참여하신 회원님들을 위해 크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제주토속한정식,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내일은 아침 6시에 일어나고, 7시 40분까지 짐을 챙겨 버스에 실은 후
세화에 있는 '연미정' 식당에 가서 전복죽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용눈이오름, 비자림, 산굼부리를 둘러 볼 예정이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멋진 걷기코스를 한사모회원님들과 함께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이 행사를 위한 답사, 기획, 진행하는 여러분께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오늘 하루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내일은 더 좋은 일들이 가득하시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