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 한 가닥 남겨둔 채 병산서원으로 떠납니다.
차창으로 보이는 경관이 하나같이 새롭습니다.
김호태 대표님이 차 안에서 구수한 입담으로 안내를 해주십니다.
많이 알고
,
세세히 알고,
잘도 잘도 말씀하십니다.
개그맨 뺨치는 개그도 일품입니다.
명함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경북북부권문화정보센터 이사장
, 영남권역문화재지킴이 대표
, 안동문화지킴이 대표
.
경북 도청을 뒤로한 여자지
(女子池
) 못을 지날 때
사람들이 공연히 박장하며 대소합니다.
무엇이 그토록 웃기는지요?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는 묘한 심성을 지닌 모양입니다 그려.
아버님이 알려줘 알게 됐다는 풍산평야를 지나도록 해설은 끝이 없습니다.
입술 마르고 지칠 법도 한데 신명나듯 마이크를 놓지 않는 건
‘
가방끈 긴
’
사람들 앞에서 혹여 안동 소개 잘하려는 마음 아닐는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풍광 아름답기로 이름 난 곳 병산서원입니다
.
빗줄기는 굵기를 더해갑니다.
우산을 쓰고 비옷을 입고...
병풍을 두른 듯한 앞산에선
초록의 정령들이 낙동강을 건너 하늘하늘 다가옵니다
.
비 개이면 잎들은 또 한 뼘 쯤 훌쩍 커져 있을테지요만
.
병산서원
(
屛山書院
)
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 유성룡이
후학을 가르쳤고 그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널리 알려졌지요
.
병산서원의 만대루(晩對樓)는 특별 초청 인사가 오셨거나
.
또는 특별 강연, 세미나 등이 있을 때에만 개방을 합니다.
.
우리는 김호태 대표님 강연을 들으러 만대루에 오릅니다
.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는 설명이 없더라도
“
기둥 사이로 보이는 낙동강과 병산의 모습"이 장난이 아닙니다
.
해질녘 가을 단풍을 보는 멋이 일품이라는 말에 인증샷을 날립니다
.
이곳에 오르는 특권을 얻은 것 역시 해설사의 힘 덕분이었지만요
.
그때 분들은 양반과 상민의 신체구조가 다르다고 여긴 걸까요
?
양반 뒷간과 상민 뒷간이 따로 있었다니 말입니다
.
꾸적꾸적 내리는 비 때문에
마음 또한 울적해 둘러보기를 줄였습니다
.
하회마을로 가는 길
.
나무 밑에서 비맞으며 하는 준비운동은 색다른 감흥입니다
.
예정대로라면 진풍길 님의 쩌렁쩌렁한 구령소리 들었을 텐데
아쉽게도 해설자 님이 간단한 발운동으로 끝내었습니다
.
하회
(
河回
)
마을로 가는 길
.
현재시간
10
시
5
분
.
걷기가 시작됩니다
.
거리가
10 km
쯤 된다니
2
시간
30
분쯤 걸리겠지요
.
구닥다리 만보기는
18,490
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
어제부터 지금까지 걸은 수치입니다
.
병산서원의 잔영을 떨치지 못해 황금철 님에게 솟을대문에 걸려있던
복례문
(
復禮門
)
에 대해 물었습니다
.
헌데 마치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기나 한듯
망설임도 없이 말씀하십니다
.
'극기복례
(
克己復禮
)’.
나를 이기고 예
(
禮
)
로 돌아간다는 유교 본질을 함축하고 있는 뜻이랍니다
.
인
(
仁
)
이야 말로 공자의 대표적인 사상이니 그럴밖에요
.
풀
,
나무에 대해 해박한 지식 지녔다는 건 알고 있던 터지만
한학에도 조예가 깊은 줄 예전엔 미쳐 몰랐던 사실입니다
.
‘
사람들이
仁
좋아하기를
色
좋아하듯 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
* < 비 내리는 병산서원 복례문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 < 배롱나무꽃 필 무렵에는 병산서원의 아름다움에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고 합니다.>
불쾌지수 높은 날
.
좁은 흙길이 마음을 다독여 줍니다
.
쑥이며 풀잎이며 잔디가 발 아래 밟힙니다
.
김소월 선생님의 말씀대로 사쁜히 즈려밟고 갑니다
.
시골길은 역시 흙길이어야 제격이고
.
산길 또한 이래야 어울리지요
.
설령 질퍽거리는 진흙탕 길인들 무슨 대수겠는지요
?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로 넘어가는 이 '유교문화의 길'은
김호태 선생님이 잔디, 소나무, 돌 등 주위 환경과 어우러지게
자연을 그대로 살려가며 심혈을 기우려 개발한 명품길이라고 합니다.
토도독 토르르 토도톡 톡
....
마늘 밭의 하양 비닐하우스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천상의 소리로 들립니다
.
산과 땅이 온통 초록인데
길옆엔 우술이며 쑥
,
달맞이풀 따위가 지천입니다
.
그들도 빗방울 드럼소리 들었을까요
?
얼굴만 봐도 즐거운 사람들
.
목소리만 들어도 즐거운 사람들이
재잘재잘
,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습니다
.
그들에겐 이야기가 노래고 웃음이 악기인게지요
.
관광은 눈에 담는 것이고
여행은 가슴에 담는 것이라고 했지요 아마
?
우린 지금 가슴 속의 진솔한 삶은 들여다보고
또 보여주기 위해 걷고 또 걷고 있습니다
.
비탈길 오를 때는 씩씩거리고
평지를 만날 때는 긴 숨 들이마십니다
.
산에서 들이마시는 건 맑은 공기만이 아니라
산의 정기도 있습니다
.
산길 걸으면 머리 맑아지고
,
힘이 나고
,
기분 좋아지고
,
또한 마음 차분해지고
,
피곤한 눈 풀리는 건
순전히 초록색
,
나뭇잎 때문이겠습니다
.
초록색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하지않던가요
?
우리가 산을 찾는 이유이겠습니다만
.
흥얼흥얼 콧소리가 들립니다
.
요즘 도자기빗기에 심취한 최경숙 님이
빗소리를 가마의 불꽃소리인양 가락에 흥겨워하십니다
.
그렇게 즐거우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비맞으며 걷는 재미가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언제 또 비맞으며 이런 길을 걷겠냐"며 오히려 반문하십니다
.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
언제부터 길이 났을까요
?
산길
,
오솔길 걸을 때마다
누가 처음 이 길을 걸었는지 궁금했습니다
.
헌데 누가 그러더군요
.
길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라고
.
길은 처음부터 거기 있었고
.
그것을 찾아냈을 뿐이라는 게지요
.
어느 조각가의 말도 같은 맥락이겠습니다
.
조각이란 돌 속에 숨어있는 모양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
<안동지역 걷기 둘째 날 후기(2)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