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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

제 38일 많지 않은 말

불꽃緝熙 2015. 4. 1. 14:29

엘리야와 함께 걷는 40일

제 38일  많지 않은 말

엘리야는 그곳을 떠나 길을 가다가 사팟의 아들 엘리사를 만났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열두번째 겨릿소는 그 자신이 부리고 있었다.

 

그때 엘리야가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주었다.

그러자 엘리사는 소를 그냥 두고 엘리야에게 달려와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다녀오너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구운다음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

 

그런 다음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서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

 

<1열왕 19,19 - 21>

이 부분을 읽으면 엘리사가 마치 한 모퉁이에서 엘리야만 기다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성경 저자는 '결과물'만 기록합니다.

 

성서학자들이 하느님과 백성이 만난 장소인 시나이 산이 어디 있는지,

또 엘리야가 이런 경험을 한 호렙 산과 동일시 해도 되는지 완전히 의견일치를 본 건 아닙니다.

 

그러나 시나이 광야에서 다마스쿠스로 돌아가는 길,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는 길이 멀다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은유적으로 볼 때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만나기 전에 몇 주를 걸었는지, 그때 엘리야 예언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성경 저자는 침묵합니다.

 

엘리야가 당시 겪은 일들을 기록할 가치가 없었던 걸까요?

엘리야는 사람들에게 가는 동안 묻고, 골똘히 생각하고, 명상하고, 기도하면서 하느님과 함께했을 겁니다.

 

엘리야를 변화시킨 건 바로 믿을 수 없는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사람들에게로 되돌아가는 이 길인 것 같습니다.

 

엘리야는 하느님과 감동적인 경험을 한 장소에 머물지 않습니다.

엘리야는 돌아갑니다.

 

가는 길에 기진맥진했지만 엘리야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후계자로 임명하라는 하느님의 임무를 받아들이는 걸 배웁니다.

카르멜 산에서의 엘리야라면 저항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호렙 산을 경험한 엘리야는 하느님께 대한 순명이, 하느님의 뜻과 자기 삶이 때로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뜻일 수도 있음을 받아들입니다.

이런 깨달음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인식은 성장하고 또 시간도 필요합니다. 깨달음에는 길이 필요한가 봅니다.

가장 긴장감 넘치는 부분은 다시 행간에서 찾아야 할 모양입니다.

 

성경의 설명은 아주 인색합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만나 아무 말 없이 자기 겉옷을 걸쳐줍니다.

 

엘리야는 말도 걸지 않습니다.

엘리사에게 표징을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엘리야는 이 상황에서 말없는 예언자입니다.

 

혹시라도 엘리야는 하느님이 주신 사명에 불만을 품은 걸까요?

은퇴할 마음이 없었던 걸까요?

엘리야는 그저 해야할 일을 할 걸까요? 원하지도 않으면서?

 

하느님의 임무를 이행하는 데는 극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엘리야 자신은 후계자를 원치 않았지만 호렙 산에서의 하느님 체험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엘리야는 하느님의 임무를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이 없을 때는 표징을 찾게 마련입니다.

2500년 전에도 오늘날과 다르지 않습니다.

 

장미 한 송이도 그냥 장미가 아니라 메시지를 갖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자기 겉옷을 엘리사에게 말없이 걸쳐주었다는게 바로 표징입니다.

 

이 순간 엘리야는 관직과 위엄을 버리고 놓아버리고 내어줍니다.

바로 이것이 시나이에서, 호렙에서(지리적으로 정확히 어딘지 관계 없이) 돌아가는 길에

엘리야에게 일어난 변화입니다. 엘리야는 변했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고, 도를 넘지 않고, 마음을 비울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예언자로서의 외적인 상징을 내어줍니다.

이 겉옷이 하느님을 뵈었고, 엘리야를 보호했고, 엘리야의 몸을 숨길 수 있었습니다.

이 겉옷은 도전과 보호, 임무와 수락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이 겉옷은 사람들을 당신의 임무에 초대하는 하느님의 요구를 나타냅니다.

돌아가는 길은 엘리야가 이 표징, 이 임무를 전할 수 있을 만큼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엘리사도 아무 말 없이 표징의 뜻을 알아듣습니다.

 

엘리사는 요구를 받아들이고 승낙합니다.

엘리사는 나서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고 , 여지를 남기지 않습니다.

엘리사는 작별하고, 떠나고, 밭을 걸던 겨릿소를 잡고, 고기를 구운 뒤 따라나섭니다.

 

엘리야는 훌륭한 후계자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열정에서만큼은 엘리야 못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누군가에게 뭔가 원하실 때는 많은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행위가 훨씬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