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29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곳 / 윤 성희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곳 독서:다니 7,9-10.13-14 복음: 요한 1,47-51
그때에 47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 외에 우리가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성경 본문은 흔히 ‘야곱의 사다리’로 알려진
창세기 28장이다. 이 장면에서 야곱은 형 에사우를 속이고 도망치던 중에, 어느 곳에서 밤을 지내게 된다.
야곱은 돌 하나를 가져다 베고 잠을 자는데, 꿈에서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것을 본다.
그리고 층계 맨 위에 계시던 하느님으로부터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다급한 여행과 불안한 마음에 지쳐있던 야곱은
이 체험에서 커다란 위로를 받고, 꿈을 꾼 이 장소에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을 지닌 ‘베텔’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렇게 해서 구원에 목마른 사람이 하느님을 만나고 위로를 받는 장소가 생겨나게 된다.
슬프게도 ‘베텔’은 하느님을 만나고 위로를 받는 장소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리자,
북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은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베텔에, 다른 하나는 단에 두고 이곳에서
하느님도 만나고 위로도 받게 했다. 겉으로는 백성의 편의를 생각하는 듯했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여전히
예루살렘에 가고 그곳을 그리워하여 자기 권력이 약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결국 절박했던 야곱처럼
힘없는 이들이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고 위로받던 그곳이, 힘 있는 자들의 볼모가 되어 우상숭배의 아이콘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제 하느님을 만나고 위로를 받는 장소, 곧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곳이 당신 자신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마리아 여인과 나누셨던 대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이제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영적인 예루살렘에서 하느님을 만나라고 가르치신다. 물론 육신을 가진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성전이 없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다른 하느님 백성을 만나고 친교를 나눌 곳이 필요하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게 중심이 진정한 ‘하느님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베텔’은 언제든지
하느님이 아닌 이를 하느님으로 모시는 곳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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