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궁궐지킴이

사제 성화의 날 (이동 축일) 본문

가톨릭 교회

사제 성화의 날 (이동 축일)

불꽃緝熙 2014. 6. 30. 15:47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 예수 성심 대축일

- 사제 성화의 날 (이동 축일) ‘예수 성심 대축일’이자 ‘사제 성화의 날’이다.

 

예수 성심 대축일은 최후의 만찬 때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당신을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마음[聖心]을 공경하는 날로,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낸다.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중세 때 교회 내 신비가들에게서 시작되어 점차 확산되며 보편화되었다.

1856년 비오 9세 교황 때 로마 전례력에 도입되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축일로 지내게 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5년부터 예수 성심 대축일을 ‘사제 성화의 날’로 기념하도록 권고했다.

한국 천주교회는 1995년부터 해마다 예수 성심 대축일을 ‘사제 성화의 날’로 지내 오고 있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축성되어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인 미사를 봉헌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교회는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날에 사제직의 거룩한 소명을 되새기고,

사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살아가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 성심 대축일과 사제 성화의 날 : 사제의 맘은 예수 맘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마음은 알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 자연의 어떤 사물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쉽게 헤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속내를 잘 모르기에 서로 오해도 하고,

단순히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여 편협한 생각을 갖기도 한다.

이처럼 누구의 마음을 알고 헤아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을 배워 닮을 수 있다면,

주님과 더 가까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믿는 이들은 자기의 마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도 특히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자신의 전 존재를 투신하는 봉사자, 곧 사제들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여러 가르침과

당신의 삶을 배우고 자신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다.

 

온유와 겸손, 소외되고 작은 이들에 대한 봉사, 자기를 희생하는 생활,

잃어버린 양을 되찾으려는 깊은 사랑의 마음을 배우고 그렇게 사는 이들이다.

 

신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사랑하는 사제의 마음과 삶을 그리스도에게서 배우기에,

교회는 예수 성심 대축일을 ‘사제 성화의 날’로 지정하였다.

 

이날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에 감사드리고

예수님의 상처받으신 마음을 묵상하는 날이다.

 

이 축일의 의미를 되살려 사제들이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의 삶으로 채우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더욱 닮으며, 복음 선포의 직무를 되새기고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도록 하려고 여러 행사를 갖기도 한다.

 

그렇다면 예수 성심 대축일은 어떻게 지내게 되었을까?

중세 때 일찍부터 예수님의 성체께 대한 신심은 널리 퍼졌지만,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성심)에 대한 공경은 늦은 13세기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17세기에 와서 예수 성심께 대한 공경이 보편화된다.

 

결정적으로는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콕 수녀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축일 미사를 이때부터 봉헌하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에 와서는 성령강림 다음 셋째 주 금요일로 축일이 지정되었으며,

20세기에 와서 오늘처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첫 금요일로 고정하였다.

또 1995년부터 이날을 사제 성화의 날로 지정하게 된 것이다.

 

이날에 말해주는 예수 성심의 신심은,

첫째 한없이 풍요로우신 성심께 감사드리는 일이다.

 

“가장 작은 나에게 사도의 은총을 주셔서

이방인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풍요하신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에페 3,9 참조)

는 바오로 사도의 표현 그대로이다.

 

둘째는 우리의 잘못으로 상처받은 성심을 통회의 마음으로 묵상하는 일이다.

 

아무 잘못도 없으시면서

“친히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골고타로 올라가 처형되신 것”(요한 19,17-18 참조)을

통회의 심정으로 묵상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래서 복음도 예수님의 거룩하신 마음을 잘 설명해 준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시기에,

고통받는 이들을 모두 멍에를 가볍게 해주시는

당신께 초대하시는 말씀(가해, 마태 11장),

 

아울러 우리를 대신하여 고통과 죽음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심장이 창에 찔리어 거기서 피와 물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믿는 이들(교회)이 그리스도께 속해있다는 말씀(나해, 요한 19장),

 

잃었다가 되찾은 양의 비유 이야기를 통해

목자의 사랑 깊으신 마음을 일깨워주는 말씀(다해, 루가 15장)을 들려준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인간의 속죄를 기억하고(본기도),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나왔듯이,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교회와 성사와 구원이 나온 것을 선포한다(감사송).

 

이날은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기억하는 축일이다.

그 거룩한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백 분의 일이라도

헤아린다면 효자 소리를 듣게 되듯이,

미약하지만 주님의 깊으신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헤아리도록 노력해 보자.

 

사랑의 마음에 대해 감사드리고,

충실하게 기억하고 넉넉하게 보답해 드리지 못하여

불편을 끼친 것을 기억해 보자.

 

또한 사제 성화의 날이므로

그리스도의 사제로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성덕을 위해 노력하는 그들을 마음으로 돕도록 하자.

 

그들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오늘 이 시간에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기정 다니엘 신부, 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경향잡지, 2002년 6월호>

-cbck 2010년 보도자료

 

 

사제들을 위한 기도

 

○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

주님을 본받으려는 사제들을 지켜주시어

어느 누구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소서.

 

● 주님의 영광스러운 사제직에 올라

날마다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이루는 사제들을

언제나 깨끗하고 거룩하게 지켜주소서.

 

○ 주님의 뜨거운 사랑으로 사제들을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 사제들이 하는 모든 일에 강복하시어 은총의 풍부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 저희로 말미암아 세상에서는 그들이 더없는 기쁨과 위안을 얻고

천국에서는 찬란히 빛나는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사제 성화의 날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사제 자신은 물론

모든 교회 공동체가 사제 성화의 중요성을 되새기며

사제들이 성화에 매진할 수 있도록 기도와 희생을 바쳐 줄 것을 당부하면서

사제 성화를 위해 이 시대에 요청되는 자세가

무언지를 짚어본다.

 

사제 성화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제직 자체를 은총의 삶으로 여기는 자세이다.

물론 사제직이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에 의한 것이고

또 그 은총의 힘으로 지탱되고 있음을 부인하는 사제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실 생활에서 드러나는 것은 다르다.

한국 교회에서 사제 생활과 관련하여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되는 것이 이른바 '권위주의'이다.

 

권위주의는 권위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데서 비롯한다.

사제의 권위는 그리스도의 권위를 드러낼 때 참다운 권위가 된다.

 

사제들이 이런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제직을 은총으로 여기고

그 은총에 부합하려는 삶을 살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 길은 바로 예수 성심을 본받는 길이다.

 

사제들이 자신들의 성화 소명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서는

또한 세속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물론 사제는 세속을 초월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또 세상 사람들의 실 생활과 그 조건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면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도 없다.

그러나 지상 생활과는 다른 삶의 증인과 관리자가 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봉사자가 될 수 없다(사제생활교령 3항 참조).

 

사제 생활과 관련하여 불거지는 적지 않은 문제들은

바로 이 점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데 있다.

 

사제 성화를 위해서는 사제 개인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교회 공동체 전체 협력과 뒷받침이 절실히 요구된다.

 

주교는 사제들이 겪는 개인적 어려움이나 사목상 문제들에 대해

기꺼이 듣고 자부적(慈父的) 사랑으로 배려해야 하며,

동료 사제들은 형제적 일치와 협력을 통해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사제직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제 성화에 있어서 평신도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사제들을 불필요하게 세속의 삶에 끌어들이거나

세속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사제 성화를 저해하는 첩경이다.

 

그보다는 자녀다운 사랑으로 사제들을 따르면서

사제들이 어려움을 더 쉽게 이겨내고 더욱 효과적으로 직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걱정을 함께 나누며 기도와 활동으로 힘껏 도와야 한다(사제생활 교령 9항 참조).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사제직을 당신 교회에 주신 예수 성심을 찬미하며

사제 성화를 위해 모든 하느님 백성이

열심히 기도하고 희생을 바쳐주기를 다시 한번 당부한다. -평화신문

 

 

사제성화의 날은 왜 제정되었나

 

사제성화의 날 제정 배경 의미

 

사제성화의 날 제정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특별한 제안에 의해 이루어졌다.

 

95년 3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주의 탄생 예고 대축일을 기해 회칙 「생명의 복음」(Ecangelium Vitae)과

「사제들에게 보내는 성 목요일 교황 서한」을 인준 발표한 바 있다.

 

이때 교황은 사제들에게 보내는 성 목요일 교황서한을 통해

사제성화의 날 거행을 제안했으며 사제들의 성화를 위한 기도의 날을

예수성심대축일이나 다른날에 지낼 것을 당부했다.

 

이같은 사제성화의 날 거행은 삼천년기를 앞두고

「새로운 복음화」「사제들의 착한 목자의 삶 증거」

「모든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촉구하기 위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요청이라는 측면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92년 3월 25일 반포한 교황권고 「현대의 사제양성」

(Pastores davo vobis) 18항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교황은 「새로운 복음화」의 필요성을 밝히고

그에 적합한 사제들의 자세에 대해 『오늘날은 특히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사목활동이 그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모든 백성이 함께 여기에 참여하는 것이 요구되며

복음을 전하고 증거할 수 있는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방법 및 새로운 표현 또한 필요로 하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깊이 그리고 철저하게 완전히 물들어

사목생활에서 새로운 방법을

구현할 수 있는 사제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맥락으로 사제성화의 날은

또한 현시대 안에서 사제들에게 착한 목자의 삶을 증거토록 하는

교회의 요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제의 직무와 생활지침」에서는

『새로운 복음화 안에서 사제는 희망의 사절이 되기로 부름받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대를 사는 사제들은 시대의 표징들을 무시하는 유혹,

외적 활동주의, 기능주의, 쾌락주의, 관능주의 등에 의해 착한 목자로서의

삶을 증거하는데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교황은 「사제들에게 보내는 성 목요일 교황 서한」에서

사제성화의 날 제정 이유를 사제들에게

「성덕의 봉사자들」이 되어야 할 의무를 상기시켜주기 위함이라고 전한바 있다.

 

교회내 관계자들은 성화의 의무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볼 때

이러한 사제 성화의 날은 결국 모든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향한 교회의 염원이라고 밝힌다.

 

교회 사제직의 목적이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기 위한 신자들의 성화』라는 면에서 볼 때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