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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9 - 안중근의사 유묵 본문
한밤의 사진편지 제2079호 (14/3/27/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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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 유묵(遺墨)
밤이 깊어갑니다.
어제가 3월 26일이었습니다. 104년 전, 안중근 의사(義士)가 처형된 날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음력)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한학과 무술을 배웠습니다.
항일을 위해 가족들과 이별하고 북간도로 들어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앙촌에서 의병장 이범윤을 만나 창의회(倡義會)를 조직하고,
1908년 대한의군 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장, 그리고 아령지구 사령관 자격으로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두만강 연안 신아산에서 일본군을 격퇴시켰으나
회령부근의 영산에서 패퇴하고 다시 연해주의 연추로 돌아가 김기렬, 백락길 등 ‘7인 단지동맹(斷指同盟)’을 맺고 손가락을 잘라 ‘대한독립’ 이란 혈서를 써 항일투쟁을 굳게 다짐하였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하얼빈 역에서 한국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고, 5개월 후 1910년 3월 26일 사형이 집행되어 31세의 나이로 순국했습니다.
저는 오늘 의사 안중근의 유묵(遺墨)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 많은 글씨를 남겼습니다.
이중 《보물 제569호》 `안중근의사유묵(安重根義士遺墨)`으로 지정된 제569-1호 부터 26호 까지의 글씨를 회원님과 함께 알아보면서,
안중근 의사의 나라사랑과 그 뜻을 가슴과 가슴, 마음과 마음에 새겨 보고자
안중근 의사의 유묵과 자료를 하나하나 모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회원 여러분에게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물 제569-1호.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입니다.
'백 번 참는 집안에 큰 평화가 있다'라는 뜻입니다.
인내를 강조한 내용으로 선현들의 구전 글귀중 하나입니다.
"한결같이 부지런히 일하는 세상에는 어려움이 없다(一勤天下無難事)"와 짝을 이루는 말입니다.
1910년 2월 옥중에서 남긴 글씨입니다.
말미에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2호.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입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속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뜻입니다.
말미에 "경술3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평생의 경구가 될 만한 말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속에 가시가 돋을 것`이라는 지극히 쉬운 얘기를 순국 전에 조선민족에게 남겼으니 배움에 대한 철저한 사상을 보여주는 명구입니다.
보물 제569-3호. 년년세세화상사세세년년인부동 (年年歲歲花相似歲歲年年人不同)입니다.
'해마다 계절따라 같은 꽃이 피건만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고 변하네'
`자연의 섭리는 그대로이나, 세월따라 사람들은 변하고 있다`는 당시의 암울한 현실을 걱정하는 구절입니다.
1910년 2월 옥중에서 남긴 글씨입니다.
말미에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4호.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입니다.
'궂은 옷, 궂은 밥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라는 뜻입니다.
가난하고 천한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 안의사의 인생관이 반영된 말입니다.
1910년 2월 옥중에서 남긴 글씨입니다.
말미에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5호. 동양대세사묘현유지남아기안면화국미성유강개정략불개진가련 (東洋大勢思杳玄有志男兒豈安眠和局未成猶慷慨政略不改眞可憐)입니다.
1910년 3월 옥중에서 남긴 글씨로 `칠언절구`의 자작시를 쓴 것입니다.
"암담한 동양의 대세를 생각해보니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기개있는 남아가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가 없구나,
게다가 아직 동양 평화의 시국을 이루지 못한 것이 더욱 개탄스럽기만 한데, 이미 야욕에 눈이 멀어 정략 즉 침략정책을 버리지 못하는 일본이 오히려 불쌍하다"는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보물 제569-6호. 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입니다.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치라`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견리사의(見利思義)와 견위수명(見危授命)은 여순 감옥에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자신의 철학과 심경을 피력하였던 간절한 마음이 읽혀지는 내용입니다.
견리사의(見利思義)는 이익 보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익을 얻는 과정이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따져보라는 뜻입니다.
이익이 된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쫓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1910년 2월 옥중에서 남긴 글씨입니다.
말미에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7호. 용공난용연포기재(庸工難用連抱奇材)입니다.
`서투른 목수는 아름드리 큰 재목을 다루기가 어렵다`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생각하지 못하고 설쳐대는 사람에게 경계가 되는 말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겸손이 미덕이던 시대에는 자신을 낮출 줄 알았는데 세월이 갈 수록 겸손함이 바보처럼 여겨지는 세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경계하는 문구입니다.
1910년 2월 옥중에서 남긴 글씨입니다.
말미에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8호. 인무원여 난성대업(人無遠慮 難成大業)입니다.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라는 뜻입니다.
논어 위령공편에서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필히 가까운 근심이 있게 된다'는 구절을 응용한 듯합니다.
즉, 먼 장래를 내다보는 원대한 계획이 없이 그저 눈앞의 것만을 생각하면 필히 아침저녁으로 급박한 걱정이 생길 것이며,
그러면 결코 대업을 이루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좌씨전 양공편에 '군자는 멀리 생각하고 소인은 가까운 것을 쫓는다'라는 구절도 있듯이 먼 장래를 생각하는 군자의 도리를 언급한 것입니다.
1910년 2월 옥중에서 남긴 글씨입니다.
말미에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9호. 오로봉위필청천일장지삼상작연지사아복중시 (五老峯爲筆靑天一丈紙三湘作硯池寫我腹中詩)입니다.
1910년 2월 옥중에서 남긴 글씨로 자작시 `오언절구`를 쓴 것입니다.
시에 나오는 오로봉(五老峯)은 다섯 명의 노인이 나란히 서있는 듯한 중국 여산 근처의 산이며,
삼상(三湘)은 중국 남부의 양자강·상강·원강의 세 강을 말합니다.
`오로봉.청천.삼상과 같은 광대한 자연을 필기도구로 삼아 마음속의 시를 쓰겠다'는 포부입니다.
당나라 이백의「망여산오로봉」이란 시에서 차용한 것이지만 대한 남아의 기개를 꺾지 않았던 안 의사의 활달한 기개와 원대한 흉금을 느끼게 하는 시입니다.
말미에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10호. 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歲寒然後知松栢之不彫)입니다.
"세밑 추위를 지난 뒤에야 소나무·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라는 뜻입니다.
1910년 3월 옥중에서 남긴 글씨입니다.
말미에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11호.
(思君千里望眼欲穿以表寸誠幸勿負情)입니다.
1910년 2월 옥중에서 쓴 시로서
"천리나 먼 그대를 생각하니 바라는 마음이 꿈길을 뚫고 가네
말미에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12호. 장부수사심여철의사임위기사운 (丈夫雖死心如鐵義士臨危氣似雲)입니다.
'장부는 비록 죽더라도 마음은 쇠와 같으며, 의사는 위태로움에 닥치더라도 기운은 구름과 같다'라는 뜻입니다.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염원하는 자신은 죽는다 하더라도 쇠처럼 단단한 마음을 가질 것이며, 어떤 곤란과 위험에 처한다 하더라도 구름처럼 초연할 것이라는 스스로의 다짐이었을 것입니다.
1910년 3월 옥중에서 남긴 글씨입니다.
말미에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경술삼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13호. 박학어문 약지이례(博學於文 約之以禮)입니다.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요약하라`는 뜻입니다.
이 글은 박학어문 약지이례(博學於文 約之以禮)여덟 글자이며 가로 약 33cm, 세로 약 138㎝ 크기의 족자로 되어 있습니다.
글 왼쪽에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어여순옥중 대한국인안중근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14호. 제일강산(第一江山)입니다.
가볼 수 없는 조국강산에 대한 그리운 심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안중근이 금강산을 비롯한 조국강산을 천하제일의 강산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엿 볼 수 있습니다.
1910년 2월 옥중에서 남긴 글씨입니다.
말미에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2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15호. 청초당(靑草塘)입니다.
“못가에 파란 풀이 돋아난다.”라는 뜻입니다.
암울한 일제치하에서도 `못가에 봄풀`이 돋아나듯 우리나라가 독립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과 염원을 담은 글입니다.
크기는 가로 34.4cm, 세로 66.7cm 입니다.
말미에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2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16호. 고막고어자시(孤莫孤於自恃)입니다.
`스스로 잘난체 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라는 뜻입니다.
폭 74.9cm, 길이 39.7cm. 평소 남에게 과시하지 않는 안의사의 겸손한 성품이 표현된 휘호입니다.
말미에(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2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17호.
'어질고 지혜로움의 집'이라는 당호입니다.
말미에(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2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18호. 인내(忍耐)입니다.
'참고 견뎌내라'는 안중근 의사의 좌우명입니다.
인내(忍耐)는 1910년 3월에 옥중에서 남긴 글씨입니다.
말미에(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2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19호. 극락(極樂)입니다.
더없이 안락해서 아무 걱정이 없는 경우와 처지 또는 그런 곳을 바라는 마음으로 "극락(極樂)"을 쓴 것으로 보여집니다.
1910년 3월에 옥중에서 쓴 글씨입니다.
말미에 "경술3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20호. 운재(雲齋)입니다.
'운재(雲齋)'는 구름이 걸려있는 누정(樓亭,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의미)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름날 비온 뒤에 가끔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모습입니다.
조국을 그리면서 아름다운 모습중에 하나인 운재(雲齋)를 늘 마음속에 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미에 '경술3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이 찍혀있습니다.
보물 제569-21호. 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 (欲保東洋先改政略時過失機追悔何及)입니다.
“동양을 보존하기를 바란다면 우선 침략정책을 버려야 한다. 때가 지나고 기회를 잃으면 후회한들 무엇하랴!”라는 뜻입니다.
일본 집정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내용입니다.
1910년 3월에 옥중에서 남긴 글씨입니다.
말미에 “경술삼월(庚戌三月) 여순옥중(旅順獄中)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서(安重根書)”라고 쓴 글씨와 왼손 장인(掌印)이 찍혀 있습니다.
보물 제569-22호. (國家安危 勞心焦思)입니다.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라는 뜻입니다.
오른쪽 위에 '증안강검찰관'이라 쓰여 있듯이 자신의 취조를 담당했던 '야스오카 세이스로'검찰관에게 1910년 3월에 써준 글씨입니다.
말미에 "경술년 3월 어여순 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이라 낙관하고 왼쪽 손바닥 장인을 찍었습니다.
보물 제569-23호.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입니다.
'나라를 위해 몸바침이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뜻입니다.
공판정을 왕래할 때 경호를 맡았던 일본헌병 '치바 도시치'간수에게 써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낙관·장인은 앞의 것과 같고 다만 낙관 말미에 '삼가 올림'을 덧붙였을 뿐입니다.
보물 제569-24호. 천여불수반수기앙이(天與不受反受其殃耳)입니다.
'하늘이 주는데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라는 뜻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의지를 나타내는 글씨입니다.
말미에 "경술년 二월 어여순 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이라 낙관하고 왼쪽 손바닥 장인을 찍었습니다.
보물 제569-25호.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입니다.
'말이 성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행실이 돈독하고 경건하면 오랑캐(야만)나라에서도 행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말미에 "경술삼월(庚戌三月) 어여순옥중(於旅順獄中)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서(安重根書)"라 썼으며, 그 밑에 왼쪽 손바닥 도장(左手掌)을 찍었습니다.
보물 제569-26호. 임적선진위장의무(臨敵先進 爲將義務)입니다.
"적을 맞아 앞서 나가는 것이 의무다"라는 뜻입니다.
장수의 자세를 가르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910년 3월 옥중에서 쓴 글씨입니다.
말미에“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경술삼월 어여순옥증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라는 낙관과 왼손바닥으로 찍은 장인(掌印)이 있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매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추념식에서 부르는 ‘안중근 의사 추념가’(김향운(김락영이란 기록도 있음) 작사, 계정식 작곡)는 학교에서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실정이다.
일제는 안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정확히 5개월이 되는 이듬해 3월 26일,
그것도 이토 사망과 같은 시간인 10시에 맞춰 사형을 집행했다. 침략자는 분초까지 되새기며 보복 처형을 했는데
피해자의 후손인 우리는 그 영웅을 기억하는 노래조차 제대로 몰라서야 되겠는가.]-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삼각단추 클릭 후 열린화면 "You Tube에서보기"를 클릭 함>-
3월 26일 어제는 안중근 의사와 함께, 천안함 폭침으로 산화 한 영혼을 기리는 아픔의 4주기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이 영원한 안식과 영원한 빛을 얻도록 기도하며
어제의 아픔과 슬픔을 떨쳐버리고 기쁘고 즐거운 오늘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안중근 의사 추념가’를 배워야겠습니다. 어제는 부끄러운 하루 였습니다.
김태종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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