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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에 첫 미국 출신 ‘레오 14세(LEO XIV)’…“평화가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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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에 첫 미국 출신 ‘레오 14세(LEO XIV)’…“평화가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길”

불꽃緝熙 2025. 5. 28. 18:04

교황 레오 14세 공식 즉위 "평화가 지배하는 세상 만들자"

교황 레오 14세가 18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즉위 미사 후 환호하는 군중에게 답례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18일(현지 시간) 교황 레오 14세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공식 복장을 갖춘 채 즉위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바티칸=AP 뉴시스

 

“세상엔 너무나 많은 불화가 있습니다. 평화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듭시다.”

 

사상 첫 미국인 교황인 267대 교황 레오 14세의 즉위 미사가 18일 오전 10시(현지 시각)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됐다. 전 세계 180여 나라에서 대표단이 참석했고, 20만 신자가 운집했다.

즉위 미사에 앞서 교황은 전용 의전 차량인 ‘포프모빌’을 타고 성 베드로 광장을 지나며 군중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바티칸=AP 뉴시스

 

레오 14세는 이날 오전 9시경 흰색 무개차(無蓋車) ‘포프모빌(Popemobile)’을 타고 광장에 나섰다. 지난달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도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즐겨 탔던 이동 수단이다. 레오 14세도 전임 교황의 이런 친근한 행보를 이어받은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암살 시도가 있었던 1981년 이래 주로 쓰이던 방탄차를 ‘통조림 같다’며 거부했었다.

 

포프모빌을 탄 레오 14세는 즉위 미사를 위해 성 베드로 광장에 몰려든 신도들에게 직접 인사를 했다. 광장 밖으로 빠져나가 바티칸으로 뻗어 있는 콘칠리아치오네 대로를 따라 늘어선 군중과도 인사를 나눴다. 갓난아이를 들어 올려 보이는 부모 앞에서 멈춰서서는 아이를 건네받고 직접 축복을 했다.

 

미사는 성 베드로 대성전 내 베드로 사도(초대 교황)의 무덤에 바치는 기도로 시작됐다. 약 200명의 추기경들이 일제히 늘어서 흰색 교황의 관과 제의를 걸치고 목장(牧杖, 고위 성직자의 지팡이)을 든 레오 14세 교황을 맞이했다. 새 목장엔 예수가 못 박힌 모습의 철 십자가가 달렸다. 무덤 앞에 선 그는 관을 벗고, 동방 가톨릭 총대주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서 분향과 기도를 했다.

교황 레오 14세가 18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즉위 미사에서 이탈리아의 마리오 제나리 추기경으로부터 팔리움을 받고 있다. /AFP 연합뉴스

 

레오 14세는 곧이어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다’는 가사로 유명한 ‘왕의 찬가(Laudes Regiae)’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미사가 열리는 대성당 앞 야외 제단을 향했다. 교황을 상징하는 팔리움(제의 위에 걸치는 띠)과 복음서, ‘어부의 반지(교황의 인장)’를 든 이들이 앞장을 섰다. 양털로 만든 흰색 띠 팔리움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선한 목자’로서 교황의 직무를, 복음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교황의 사명을, 어부의 반지는 베드로 사도의 권위를 이어받았음을 상징한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새 팔리움과 어부의 반지 전달이다. 레오 14세는 이날 선 채로 마리오 제나리 추기경(이탈리아)이 전하는 팔리움을 받아 걸쳤다. 팔리움을 앉아서 받은 전임 교황들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이어서 루이스 타글레 추기경(필리핀)이 레오 14세의 오른쪽 손 약지에 어부의 반지를 끼웠다. 반지 또한 전임 교황과 달리 서서 받았다. 즉위식에 쓰인 반지는 교황 클레멘스 4세(1265~1268년 재위)가 쓰던 것으로, 제작 시점은 1200년대 즈음이라고 추정된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자 레오 14세는 가볍게 눈물을 훔치곤 하늘을 바라봤다. 그는 마지막으로 복음서를 건네받아 축복하며 교황직의 공식 시작을 선언했다.

 

교황은 이어진 강론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름을 이어받은 레오 13세(1878~1903년 재위)의 뜻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는 “우리는 증오·폭력·편견·차이에 대한 두려움 등 너무나 많은 불화, 또 지구 자원을 착취하고 가난한 이를 소외시키는 경제 논리로 인한 많은 상처를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이들을 지배하려는 유혹에 굴복하지 말고, 사랑으로 돌봐야 한다. 평화가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걸어가자“고 했다.

교황 레오 14세가 18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즉위 미사 이후 J. D. 밴스 미국 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그는 미사 말미에 별도로 “전쟁으로 고통받는 무고하고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말자. 협상자들이 나서서 평화를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와 미얀마를 지목해 언급하기도 했다. 레오 14세는 진전이 없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협상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알려졌는데, 이날도 전쟁의 종식을 바란다는 뜻을 확실히 했다. 그는 기대를 모았던 16일 러시아·우크라이나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직후 “바티칸을 협상 장소로 제안한다”고 하면서, 종전 협상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었다.

 

레오 14세의 즉위 미사에선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 때와 달라진 모습도 보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 전 성 베드로 광장 안만 돌며 인사했지만, 레오 14세는 광장 밖까지 나가 신도들을 만났다. 또 금색 십자가가 달렸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목장과 달리 레오 14세는 철로 만든 십자가를 택했다. 전임자는 성 베드로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과 달리 레오 14세는 서서 기도를 했다. 흰색 바탕에 붉은색 십자가가 새겨졌던 팔리움은 이번엔 검은색 십자가의 더 단순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미사는 라틴어로 진행됐다. 다만 성경 말씀은 스페인어와 영어로, 복음서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읽었다.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은 저마다 출신국 국기를 흔들며 새 교황의 즉위를 축하했다. 교황 모국인 미국 국기가 가장 많았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국기도 눈에 띄었다. 사상 첫 남미 출신 교황이었던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 때는 출신국인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남미 국가들의 국기가 많았다.

 

이날 행사에는 J D 밴스 미 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교황은 미사 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의 상징인 붉은색 어깨 망토(모체타)를 걸치고 각국 대표단과 인사를 나눴다. 모체타를 아예 걸치지 않으려 했던 전임 교황과 달리, 레오 14세는 공식 석상에선 전통 예복을 착용하고 있다. (조선일보 2025년 05월 19일(월) 파리=정철환 특파원)동아일보 2025 05 19()김기윤 기자, 파리=조은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