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궁궐지킴이
나를 비워야 남이 들린다… 세종의 소통 본문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매우 독선적인 리더였다. 그 자신이 항상 표준이고 최고였다. 그래서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잡스의 이런 성향은 다른 경영진과의 마찰을 초래했고 1985년 그가 애플에서 쫓겨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1997년 애플에 복귀한 후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에게 자신을 “Chief Listening Officer(CLO)”라 불러 달라고 주문했다. ‘최고경청자’란 의미다. 변방을 떠도는 과정에서 깊은 성찰이 있었고 그것이 그러한 자기반성 겸 선언으로 이어졌다. 지시하는 리더에서 듣는 리더로, 잡스의 리더십 반전이 있은 후 애플은 실리콘밸리의 또 다른 신화를 써 내려갔다. 청각에 이상이 없는 한 모든 사람은 듣는다. 그러나 듣는다고 해서 다 듣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말만 골라서 듣는 경향이 있다. 귀에 거슬리는 말은 대체로 흘려듣는다. 그래서 입으로는 “그래, 알았어”라고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알았으니 그만해”라고 장벽을 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정치권에서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소통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여 듣는 것이다. 그래서 경청(傾聽)이다. 경청의 조건은 비움이다. 수납장이 가득 차면 더 이상 물건을 집어넣을 수 없듯이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잡다한 지식이나 경험, 자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은 타인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다. 다 아는 걸 굳이 들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리더는 조직을 경직되게 만들고 퇴화시킨다. 스티브 잡스가 깨우친 것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채우기 전에 먼저 비워야 한다. 세종은 지식이나 학식에서 신하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 역사와 철학, 음악, 과학 등 다방면에 걸친 독서와 학습으로 스스로 문리를 터득했다. 그러나 세종을 조선왕조 최고의 성군으로 만든 것은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지식이나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자신을 비운 후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경청의 리더십이었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동아일보 제30692호 2020년 4월 27일 월요일(DBR(동아비즈니스리뷰) 295호에 실린 ‘귀 기울이려면 먼저 비워라’ 내용을 요약한 것임)/ 이영일,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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