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궁궐지킴이

"교육과정 중심으로 편수행정을 되살려야 한다." 본문

교육과정, 교과서

"교육과정 중심으로 편수행정을 되살려야 한다."

불꽃緝熙 2020. 1. 16. 19:23

“교육과정 중심으로 편수행정을 되살려야 한다”

 

                                                                                                         이 경 환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 회장)


1. 우리는 학교 교육을 통하여 어떠한 사람을 기르려 하는가?


    혹시 여러분들은 현재 우리나라 초·중등학교 교육의 기본 방향이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알고 계시는지요?

  그렇다면 조금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교육을 통하여 어떠한 사람을 기르려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지요?

  기본적인 질문인지, 모호한 질문인지 구분이 잘 안됩니다만, 물론 여러분의 실력을 테스트 해 보고자 질문을 던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보통교육이라 하는 초·중등교육이 ‘방향도 없이  헤매고 있는

   배’ 처럼 이리 저리 휩쓸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우려 섞인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교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에서 교과 교육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을 반갑게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서로 나누다가 “옛날에는 교육법에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각 급 학교의 교육 목적이 있었는데 요즈음은 그게

   어디 갔는지 교육의 방향이 없어 큰일이야.” 라는 걱정의 말씀을 듣고 한참을 망설였던 일이 있었습니다.


    해마다 각 학교에서는 학교 나름대로 그 학교의 실정에 알맞게 학교교육과정을 편성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지원하는 부서에서는 국가에서 제시한 인간상이 교육 현장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한번쯤은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각 학교의 실정에 알맞게 그 학교의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할 수 있는

  자율․재량의 권한이 학교에 주어져 있음을 침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학교 수준의 교육과정을 편성하려면, 나라

  에서는 또 지역 교육청에서는 어떠한 사람을 기르고자 하는지를 검토하여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국가수준에서 제시한

  교육과정은 학교교육과정 편성․운영의 기준이고, 바탕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에는 학교 교육의 방향이 뚜렷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학교 교육을 통하여 기르고자

  하는 인간상과 각 급 학교의 교육 중점, 교육목적도 이 교육과정에 분명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21세기의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인 육성’을 위하여 각 급 학교에서는 기초․기본 교육을 충실히 하여야

  함을 매우 강조하고 있음도 교육과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자라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어떠한 교육목표를 가지고, 어떠한 교육내용과 방법을 통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이를

   평가할 것인가” 하는 것은 학교 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일입니다. 분명히 교육은 국가경쟁력을 기르는 일입니다.

   “어떠한 사람을 기를 것인가” 라는 교육과정 행정은 바로 한 나라의 교육경쟁력을 좌우하는 일이기 때문에 국가 수준의

   교육내용 기준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것입니다.


      현재 프랑스, 일본, 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 국가에서는 교육의 질을 바르게 관리하고, 개선하고, 조정하기 위하여

   ‘교육내용에 관한 기준’(교육과정) 설정권을 국가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교육과정 정책을 다루는 전문적인

   인력과 관련 부서를 확대, 보강하고 있습니다.


 2. 교과서를 보는 눈은 어떻게 바뀌어져 있는가?


    우리는 흔히 ‘교과서적이다’ 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말 속에는 ‘획일적이고, 딱딱하고, 틀림이 없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교과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 가에 매우 큰 관심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과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교과서가 어렵고 재미없다.’, ‘학습 분량이

   너무 많다.’ 등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더구나 해마다 학기 초가 되면 신문에는 으레 ‘무슨 교과서에 오자,

   탈자 등 오류가 많다.’, ‘잘못된 표현이 많다.’ 등의 비판이 제기되어 해당 교과의 담당자도 제대로 없는 교육과학기술부

   에서는 장관이 답변해야하는 곤혹을 치루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교과서에는 과거처럼 단순하고 평면적인 지식이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보를 모으고, 분석․종합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지식을 찾고, 새로운 지식을 생성해 보는 활동 중심의 지식들이 들어

    있습니다. 요즈음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가치 있는 지식을 많이 외우도록 잘 설명해 주는 일에 힘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사고력, 창의력, 비판력, 판단력 등 고등 정신 기능을 가지고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교과서는 기본적으로 교육과정에 담겨져 있는 교육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학습 자료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교육과정의 정신이 충실히 반영되도록 만들어집니다. 교육과정에는 어떤 사람을 기르고자 하는지, 초․중등학교 급별로

    교육목표와 교육중점은 무엇이지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과정 내용을 구체적으로 반영하기 위하여 국어,

    수학, 과학, 사회 등과 같은 각 교과별로 교과목표, 교육내용, 교육방법, 교육평가에 대한 것이 교과서에 담겨져 있습니

    다. 그래서 교육과학기술부에는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고, 친절하며, 활용하기에 편리한 좋은 교과서를 만들 것인가’

    를 연구하고 편찬하는 전문적인 편수담당자가 있는 것이고 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한 번 살펴보십시오. 과거 어른들이 배웠던 관점에서 생각하던 교과서와는 전연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림 몇 장 밖에 없는 교과서를 보고 ‘교과서가 뭐 이런가?’, ‘아니 이걸 어떻게 가르치

    라는 말인가?’ 라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지식정보화 사회가 진행될수록 교육수요자의 다양성,

    개별성, 창의성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제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읽고 생각할 수 있는 교과서”, “토론 중심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까 하는 노력을 꾸준히 하려고 해도 오랜 경험을 지닌 전문 편수인력이 없으니 이를 어떻게 해야 좋을 것

    인가요?  만약 교육내용행정이 중시되지 않는 조직이라면 교육과학기술부가 존재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를 되새겨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3. 편수행정이 교육과정 중심 체제로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부 기구가 개편, 조정될 때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수행하여야 할 본질적인 업무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교육부의 기구 개편, 조정의 역사는 ‘교육과정 정책’을 기획하고 개선하는 교육전문직의 축소 조정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보건 과목을 신설하고 또 영어 교과의 수업 시간 수를 증배한다고 해서 교육과학기술부에 들어가 본 일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제대로 소화할 수 있다면 교과목이나 수업 시간 수를 더 늘인다고 해도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교사나 학부모 또는 각종 단체에서는 ‘교과목 수가 많다’, ‘수업시간수가 너무 많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과중하다’

    등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모순입니까? 수시 개정 체제로 바뀌었다는 핑게로 툭하면

    ‘교육과정의 시간배당기준’을 멋대로 바꾸어도 되는 것입니까? 특히 특정 단체가 교육에 가해질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이나 편향된 교화, 선전 등을 방지하여 교육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기준’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영어 교과의 교육과정을 바꾸는데 교육과정담당부서에 “영어담당 편수관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음악교과 담당자 혼자서 체육, 음악, 미술 교과와 체육․예술 계열의 전문교과를 모두 담당하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프랑스, 일본, 영국 등 선진 국가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초․중등학교의 교육목적과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교육 내용에 관한 전국 공통의 일반적인 기준을 국가가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기준”

    이며, 우리나라 교육의 “기본설계도” 로서의 중요한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은 초․중등교육법

    제23조에 이거하여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결정합니다. 따라서 이 교육과정은 우리나라 각 급 학교교육의 교육목표와

    교육내용, 교육방법, 교육평가의 기준이 되며, 이를 바탕으로 학교교육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교육행정, 교육법규, 교육재정․예산․투자, 교원양성․연수․수급, 인력개발, 입시제도, 교육시설․

     설비 등과 같은 일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공부를 더 잘 가르치기 위한 교육의 지원관리 기능입니다. 이러한 교육 기능

     들에 대한 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기준인 것입니다.

       가까운 일본의 문부성에는 교육과정과 교과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조직과 기구가 과연 어떠한지 살펴보십시오.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 공교육을 되살리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자질과

      국민성을 제대로 기르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행정”을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이 교육과학기술부가 해야 할 본질적인 기능

      입니다.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공적인 국가 교육과정 정책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일이 교육과학기술부의 기본적

      인 업무이기 때문에 이를 민간단체의 기초연구기능과 혼동하거나 이용하는 잘못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아니 되겠습니

      다.  민간의 연구기관은 국가의 교육과정 행정을 직접 수행하는 기구가 아닙니다. 단지 국가의 교육과정 정책 결정을

      도와주는 기초적인 연구 기능을 담당할 뿐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본질적인 업무가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고 교육과정 중심체제로 하루빨리 확대,

      개편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가 발전의 원동력은 교육입니다. 그 교육의 기본은 교육과정이기에 공교육을 살리고

      국제경쟁력에 이겨 나가기 위해서 교육과정 중심으로 국가가 수행하여야 할 편수행정을 되살려야 하겠습니다.

        학업성취도 평가 때문에 한 동안 시끄러웠던 일들을 되새겨보면서 교육과학기술부의 편수 행정과 장학 행정이

      고도로 숙련된 교육전문가에 의해 바르게 이루어지고 강화되어지기를 기대합니다.


                                                ( 1982 - 2002 : 문교부 교육과정 담당 교육연구사, 교육연구관,

                                                                        교육부 교육과정 담당 장학관, 교육과정정책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