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궁궐지킴이
동방박사의 봉헌 예물 본문
제3이사야서로도 불리는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56-66장)은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의 상황을 겨냥한다.
특히 오늘 독서에서,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하느님의 도성인 시온
또는 예루살렘은 참다운 예배의 중심이 될 것이며(60,4-7),
주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확장된다(60,3-14)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사야 40,1-2의 "위로"가 이 장에서 성취되고 있다.
이사야 49,6에서 약속된 "빛"이 이 장에서 비추어지기 시작한다.
에즈라기 7장과 느헤미야기 2장이 그 배경을 알려준다.
바빌론의 유대인 사회는 페르시아 행정부의 영향력있는
유대인 관료들을 통해 황제의 관심을 얻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과거에 키루스와 다리우스1세가 제의적 의식들과
신전 도시들에 대해 성공적으로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정책들을 사용한다.
그래서 그는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노력을 뒤에서 지원하기로 동의했다.
하느님께서 아르타크세르크세스를 후원하시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하느님과 하느님의 성을 인정한 결과로
예루살렘이 재건되고 또 복권되고 있었기 때문에,
기쁨과 빛과 아름다움이 이 장에 넘친다.
이 장의 핵심은 과거의 어두운 절망과 극도의 빈곤과 버려진 폐허의 혼돈을
활동의 중심지, 상인들과 기술자들, 노동자들의 바쁜 시장,
빛과 아름다움과 기쁨의 장소로 바꾸기 위한
정치, 경제, 종교적 결정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결정들은 바빌론으로부터의 유대인들의 귀환, 외국 자본의 유입,
그리고 예루살렘의 문예부흥에 기여하는
여러 국가들의 갑작스러운 관심이 포함된다.
에즈라기 7장 1-28절을 이 장과 나란히 둘 때, 여러 조각들이 제 자리를 찾게 된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특히 예루살렘의 성전이 다시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
에즈라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그는 예루살렘의 하느님께서 자신을 좋아하기를 바랬다.
이런 목적으로 그는 왕가의 자금을 넉넉히 지원했다.
그는 강 건너펀의 다른 백성들과 관리들에게도
돈과 목재와 노동력을 기증하라고 명령하고,
만일 그들이 거부하면 제국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는 자신의 명령들이 실행되는가 알기 위해
에즈라에게 군대의 호위를 제공했다.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 보아라.그들이 모두 모두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다.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60,3-6절)
하느님은 못하실 일이 없으시다.
남부 유다가 멸망하고 바빌론으로 유배를 갔다 하더라도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를 통해
남부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에 빛을 비추어주며 영광을 돌려주고,
민족들이 우러러 보게 만들어 준다.
죄악과 어둠과 혼돈이 만연한다 해도
이 세상과 교회 안에서 악이 승리하지 못한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시간표대로 진행될 것이고,
하느님께서 하느님다운 방법으로 당신 뜻과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다.
예루살렘 위에 비추어지는 빛과 주님의 영광의 이사야 60,1-6의 말씀이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에 선포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온 세상과 이방인을 대표하는 동방 박사에게 이 세상의 구원자요
빛으로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의 모습이 공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공현 ; 公顯 ; Epiphany).
여기에다가 예수님 세례 사건 때에 성삼위가 계시된 사실에 근거하여,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이 공적으로 선포됨과 동시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공생활이 시작된 사건과,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첫번째 기적을 베풀어 신성(천주성)을 드러낸 카나의 사건,
이 세가지를 함께 기념하는 것이 공현의 의미이다.
그중에서 오늘은 특별히 동방의 점성술가들이
구세주의 탄생 장소로 인도하는 성령을 상징하는 별의 인도로,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과 신성을 상징하는<유향>과
인류를 구원할 죽음을 상징하는 <몰약>을
베틀레헴 마굿간 구유의 예수님께 드린 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성령의 별빛을 받아 신앙을 갖게 된 우리 자신들도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무엇을 봉헌해야 주님이신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거할 수 있는지를 묵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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