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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사랑의 인사'

불꽃緝熙 2019. 2. 12. 18:26

가을하늘처럼님의.. 사랑과 존경으로 함께 한 엘가부부와 '사랑의 인사'가 탄생하기까지






Elgar, Salut d'Amour, Op.12


Edward Elgar

1857-1934

Sarah Chang(장영주), violin

Andrew von Oeyen, piano

KBS 1TV Classic Odyssey

2012.04.25




      


 

    밝고 아름다운 엘가의 '사랑의 인사'는 들으면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오래전일이다.

    부부가 교회 장로와 권사인 친구의 아들 결혼식을 가게 되고

    내겐 신부의 미모라든지 결혼식장 관찰은 별로 관심이 없는데 

    축가가 무슨 곡인지엔 참 관심이 많다.

    교회에서의 결혼식은 성스럽기도 하고 아름다웠는데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에 그만 반해버렸다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멋드러지게 연주하는데 내 맘속엔 울 아들 결혼식에도 꼭 이 곡을 넣고 싶다...라고

    그 후 또 다른 축가로 슈만의 '헌정'을 피아노연주로 듣고 반해 둘 중 하나로 하고 싶었는데...


    며늘애는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의 곡을 넣고 싶어했고 슈만의 헌정은 피아니스트를 초빙해오지 않으면

    넘 어려운 곡이라 칠 수 있는 사람들이 드물었고, 아들축가로 하면 좋겠다 생각했던 이 곡은 그저

    통과해버렸다. 그래선지 들을때마다 그 친구아들 결혼식이 떠오른다

 

    유난히 이 곡은 사라 장(장영주)의 연주를 즐긴다

    그녀는 한참 연주로 바빴던 청소년시절, 혼자서 드레스 골라입고 스스로 화장도 하면서 독립적으로 연주회를 임했다

    당시만 해도 뛰어난 우리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많지 않아 TV에선 그녀의 근황을 자주 소개해주곤 했는데

    다른 연주자들과 달리 학교에서 하는 동아리도, 체육수업도 철저히 즐기면서 평범한 우리네 학생같은 생활을

    하는 모습이 색달랐다. 그래서였을까... 내겐 인상적으로 비춰진 명 바이올리니스트의 모습이었다

 

 

                                                                       

엘가는 9년 연상인 약혼자 캐롤라인 앨리스와 사랑에 빠졌고 1888년, 30세로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엘가는 가난한 평민, 앨리스는 귀족의 딸이었고 앨리스 집안의 반대도 이겨냈다.

그해 여름, 앨리스는 'Love’s Grace'라는 시를 써서 엘가에게 보냈고 엘가는 곡을 붙였다. 엘가가 악보에 붙인 곡의 제목은 독일어 ‘Liebesgruss(사랑의 인사)’였다. 표지에는 약혼녀인 앨리스에게 바친다는 헌사가 쓰여 있었고 두 사람은 1889년 5월에 결혼식을 올린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랑의 인사(Salut d'amour)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원래 피아노곡으로 작곡되었으나 이듬해에 관현악곡으로 편곡되고 바이올린, 첼로 등 여러악기로 편곡되어 연주된다. 3분 정도의 짧은 곡이나 아름답고 달콤해서 신랑 신부를 위한 축가로도 많이 연주되고 앵콜곡으로도 사랑받는다 독일어 제목 ‘Liebesgruss’가 왜 프랑스어 제목 ‘Salut d'amour’으로 바뀌었을까.. 엘가가 처음 곡의 제목을 독일어로 쓴 것은 앨리스가 독일어에 유창해서였다고 한다

독일어 제목 그대로 악보를 출판. 악보가 잘 팔리지 않자 출판사는 작곡가의 동의를 얻어서 제목을 프랑스어로 바꾸었다. 똑같은 '사랑의 인사'라는 뜻이지만 프랑스어로 바꾸자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많은 나라에서 출판을 희망했다. 당시 프랑스어 선호 풍조가 가져온 행운이었다는 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즐겨 듣는 이유는 멜로디가 매우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서.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엘가에게로 왔던 앨리스는 헌신적으로 남편을 내조. 엘가의 음악에 영감을 주는 뮤즈였고 작곡에 대한 비평가이기도 했다 영국 귀족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작곡가 엘가, 심하게 내성적이고 대인기피증까지 보였던 남편을 돌봐주고 격려. 결혼 후 엘가는 생계를 위한 바이올린 연주자에서 벗어나 조금씩 작곡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늦었지만 42세 때인 1899년에 런던에서 수수께끼 변주곡을 초연하고 이어 1901년 런던 프롬나드 콘서트에서 위풍당당 행진곡을 초연. <위풍당당 행진곡>은 엘가에게 대중적인 인기와 큰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오랫동안 무명 음악가였다가 마흔 살이 넘어 성공을 하고 엘가는 기사 작위를 받는다 아내 앨리스의 내조 덕분이었고 엘가는 아내 앨리스를 무척 사랑하고 깊이 존경했다 앨리스가 아니었다면 헨리 퍼셀 이후 200년 만에 영국 음악을 다시 일으켜 세운 엘가가 존재했을까? 1919년 재클린 뒤프레의 연주로 유명해진 <첼로 협주곡 e단조>를 세상에 내놓았다. <첼로 협주곡 e단조>가 초연되고 다섯 달 뒤인 1920년 봄에 아내 캐롤린 앨리스가 세상을 떠난다. 엘가의 나이 63세. 엘가는 그 후 14년을 더 살다가 1934년에 77세를 일기로 타계한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런던 근교 햄스테드에 있던 대저택을 팔고 고향으로 내려가 거의 은둔하다시피 하고 몇 곡의 소품을 제외하곤 작곡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

Elgar, Salut d'Amour, Op.12

Ion Marin, conductor

Berliner Philharmoniker

Berliner Waldbüh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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