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궁궐지킴이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제19번 K.459 전곡 본문
산기슭 아래 살다 보니 산보를 자주 다니는데 역시 늦가을이 걷기에 좋다. 한참을 걷다 집에 와 모차르트를 올렸다. 며칠 전부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곡을 다시 쭉 들어보고 있는데 오늘은 우선 제19번부터 들었다. 피아노 협주곡 제19번은 1784년에 쓴 6곡의 피아노 협주곡들 중 마지막 작품으로 그해 12월 11일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곡이 피아노 협주곡 제26번과 함께 프랑크푸르트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로 연주되던 1790년 당시, 그곳에서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이 열렸기 때문에 피아노 협주곡 제26번엔 <대관식>이란 부제가 붙게 되었고, 함께 연주된 제19번은 가끔 “제2의 대관식 협주곡”이라 불리기도 한다. 모차르트의 이 연주회가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든 아니든 타이밍 상으로 모차르트의 실황연주 축하를 받으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레오폴트 2세는 불과 재위 2년 만에 44세로 사망하고 말았다니 인생사는 늘 그토록 허망한 것이다. 레오폴트 2세는 유럽 최고 권력자였던 그 유명한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자)의 아들이자 프랑스 대혁명으로 37세 꽃다운 나이에 처형된 마리 앙뜨와네트 왕비의 오빠... 당시의 사정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나 혼자 막 해보는 소리지만, 레오폴트 2세가 1792년 3월 갑자기 사망하지만 않았다면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의 지위를 최대한 활용해 프랑스 대혁명에 휘말린 여동생 마리 앙뜨와네트의 목숨만은 구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여동생은 오빠가 죽은 이듬해인 1793년 10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피아노 협주곡 제19번은 모차르트 자신이 연주하기 위해 만든 곡이라고 하며, 전체적으로 우아하면서도 활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쌍두마차 또는 눈썰매의 질주가 연상되는 제1악장 서두의 당당한 선율이 가장 인상적이며, 천상의 메시지를 전하듯 꿈결 같은 제2악장도 무척 좋아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마리 앙뜨와네트, 단두대 등의 얘기가 나온 김에 시중의 이런저런 읽을거리를 바탕으로 몇 마디를 사족으로 덧붙이면,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에게 대역죄를 뒤집어씌워 단두대로 처형한 공포정치의 대명사 로베스피에르 역시 무리한 적폐청산과 반 시장 정책(또는 지나친 시장 개입)의 후유증으로 반대파에 의해 불과 36세의 나이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가 루이 16세를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연설에서 “왕은 사실 무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무죄라고 선언하는 순간 우리가 일으킨 혁명이 유죄가 된다. 이제 와서 혁명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혁명이 죽을 수는 없기 때문에 왕을 죽여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얘기다. 로베스피에르의 이 야릇한 한마디에 따라 과거는 모조리 제거 대상이 되어 프랑스는 한동안 수만 명이 죽는 피바다가 되는데, 들리는 얘기로, 루이 16세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나의 죄상을 조작한 사람들을 용서한다. 이 땅에 두 번 다시 무고한 피가 뿌려지지 않도록... 하느님이여, 굽어 살피소서!”라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자료를 보면, 낭비에 의한 왕실 재정의 파탄 초래, 아들과의 근친상간 등 혁명세력에 의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다분한 죄목으로 머리카락이 잘린 채 사형대에 오른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 역시 시종 꿋꿋한 자세였다고 한다. 죽을 만큼의 죄가 있어 죽는 게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죽는다는 생각에 떳떳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사형집행인의 발을 밟고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사과까지 했다고 하니 죽는 순간까지 품위와 평정심을 유지했던 것 같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의 재정 파탄은 기존 국가 부채가 많았던 데다 미국 독립전쟁을 지원하느라 재정 지출이 많았던 게 원인이지 왕비의 사치와는 큰 관계가 없었다고 하며, 아들과의 근친상간 혐의는 당시 7세 아들과 무얼 했다는 것인지 너무 어이없는 혐의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엉터리 죄목이 통했을 정도로 광기의 시대였으며,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 존재인지 알게 된다. 아무리 혁명이라고는 해도 내란이나 외환의 중죄를 범하지 않은 왕을 처형하는 일은 법리에도 맞지 않고 심히 부담스러웠던 모양으로 국민공회의 투표에서도 격론 끝에 박빙의 차이로 겨우 사형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혁명세력이 작은 사안을 어용언론을 통해 확대재생산하고 홍위병들을 동원해 백성들의 분노를 자아낸 후 사법처리 수순을 밟는 건 역사적으로 시대와 족속을 초월해 인간세상 어디에서나 벌어져온 일이다. 죄의 경중을 떠나 왕과 왕비가 죽어야 한다고 결정되었으므로 그에 부합하는 죄목들이 만들어졌으리라... 변호사 출신인 로베스피에르는 자신과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덕(德)이 부족하다”며 가차 없이 제거했다고 하며(마치 우리의 TV 드라마에서 궁예가 관심법(觀心法)으로 사람들을 막 죽인 것과 비슷),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함께 혁명조직인 자코뱅파를 이끌던 동지들인 마라와 당통도 암살과 단두대 처형으로 생을 마감했단다. 당통은 두 손이 묶인 채 단두대로 향하다 로베스피에르의 집 앞에 이르자 “다음은 네 놈이 죽을 차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롤랑 부인이라는 사람이 단두대에서의 최후 진술에서 남겼다는 “오! 자유여, 그대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를 범할 것인가!”라는 말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며 찬찬히 음미해볼 만하다.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로베스피에르가 죽는 순간에 대한 기록이 눈에 띄었는데, 이렇게 적혀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1794년 7월 28일, 이날 태양은 유난히도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 뙤약볕 아래에서 한 사나이가 두 손이 묶인 채 혁명광장에 높이 솟은 단두대의 계단을 올랐다. 두 명의 집행관이 그의 목을 구멍 안으로 집어넣었고, 잠시 뒤 40kg에 달하는 칼날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순간 붉은 물보라가 푸른 하늘을 가렸다. 집행관들도 군중도 무덤덤했다. 그런 장면은 대략 1년 전부터 질리도록 보아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막 단두대의 제물이 된 사람도 오늘만 20번째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날이면 날마다 대낮에 펼쳐지는 살육극의 막을 올렸던 공포정치의 장본인, 로베스피에르였다는 점일 뿐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오늘날 지구촌 곳곳의 혁명세력들은(혁명도 아니면서 혁명이라 스스로 칭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놈들도 있지만) 고대 로마에서 개선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들을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는 의미심장하고 유명한 한마디를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Memento mori!" ("너도 언젠간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번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간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해라”는 말...)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제19번 K.459 중 제1악장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제26번 K.537 <대관식> 중 제2악장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제19번 K.459 전곡. 옛날에 카네기홀에서 직접 보았던 라두 루푸의 연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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