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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9일 부활 팔일 축제 내 화요일 복음 (요한20,11~18) 본문

가톨릭 교회

2016년 3월 29일 부활 팔일 축제 내 화요일 복음 (요한20,11~18)

불꽃緝熙 2016. 3. 28. 23:58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7)

 

 

'나를 붙들지 마라'에 해당하는 '메 무 합투'(me mu haptu)에서 '붙들지'

해당하는 '합투'(haptu)현재 명령형이고, '메'(me)라는 부정어가 사용되어서

현재 이미 진행되고 있는 행위를 금지시킨 것이다.

 

그리고 '합투'(haptu)의 원형 '합토마이'(haptomai)'비끄러 매다',

서로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 매다라는 매우 강한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계속해서 강하게 붙들고 있는 마리아에게

이제 그만 놓을 것을 명령한 것이다.

 

아마도 부활하기 전의 예수님과 부활하신 뒤의 예수님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마리아에게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일 것이다.

 

당시 마리아는 자신이 그토록 찾던 예수님을 만났으므로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예수님을 꼭 붙들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만져질 수 있는 상태에서

만져볼 수 없는 상태로 바뀌어야 했다.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과 계속해서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고 승천하셔서(사도1,9)

영이신 성령을 보내셔야 했기 때문에, 계속 육신을 지닌 채 머물 것을

강요하는 듯한 마리아의 행동을 자제시킨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당신의 부활이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그리고 그들이 이제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깨닫기를 원하신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며,

나머지 사명들을 그들에게 위임하신 후에 아버지께로 가실 것이라는

사실과 가신 후에는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마리아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예수님의 본질과 사명에 대해

점진적으로 깨달아 갔다.

 

특히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라는 구원사적 계시를 깨닫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 '예수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이 요한복음 20장

11~18절에서 사도 요한이 강조하는 것이다.

 

첫번째 부활에 대한 깨달음16절에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시는 부름에 의해서,

두번째 승천에 대한 깨달음17절에서 '나를 붙들지 마라'는 교훈에 의해서

암시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우리의 불완전한 지식을 말씀을 통해 조금씩 더

풍부하게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자신의 영적인 귀를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개방하지 않는다면, 신앙의 진보는 없다(묵시2,7).

 

한편, '올라간다'에 해당하는 '아나베베카'(anabebeka)'아나바이노'

(anabaino)완료형 동사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주기 위해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강조함으로써,

이렇게 당신이 마리아와 머물러 있는 것이 하느님의 구원 사업의 계획을

진행시키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까 본문은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가야 하는데, 나의 사명이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사도 요한은 여기서 예수님께서 부활과 승천을 서로 단절된 별개의 사건으로

보지 않고, 구원 사업의 연속선상에서 당신 자신이 이루어야 할 구원사업의

마지막 마무리로 보고 계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올라가다'에 해당하는 '아나바이노'(anabaino)가 미래형이 아니고 현재형으로

기록된 사실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승천할 것이라는 것이 아니고

지금 승천하고 있는 과정 중에 있다는 사실이며, 이 사실을 망각하고 당신 자신을

이 땅에 계속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17절의 마지막 문장은 '(너는)가서 ~전하라'('포류우 ~에이페' ;

poreuu~eipe ; go~say)라는 현재 명령형이다.

 

이것은 부활하심으로 끝나지 않고 이제 얼마있지 않아 승천해야 할 예수님을 붙들고만 있는

마리아에게 지금 바로 그녀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예수님 공생활 초기를 묘사하고 있는 요한 복음 1장 39절'와서 보시오'

(come and see)라는 명령과 서로 대구를 이룬다.

 

이것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의 사업은 '데리고 와서 보여 주는 일'로 시작되었고,

'내보내서 전하게 만드는 일'로 마친다고 볼 수 있다(요한20,21).

 

우리도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보고 들은 것으로 자족하지 말고,

그것을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다(사도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