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 많고 먹을거리 많은 마음의 고향 안동 - 한사모 걷기 답사기 -
늦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늦을게 틀림없다. 그러잖아도 조급증 때문에 아내에게 싫은 소리 듣는 게 이골이 났는데 그 ‘중병’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겉으론 태연한척 했지만 속은 콩닥콩닥 방망이질이다. 휴대폰 벨소리. 김민종 님. 8시 45분. 긴 숨 한 번 내쉬고 받는다. 모두 기다리고 있으니 천천히 오란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전철을 이용할 것을.... 하지만 어쩌겠는가? 후회는 늘 한 발짝 늦게 오는 것을.
서초구청 앞에서 내리자마자 빛의 속도로 뛰었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면서 휴대폰을 꺼냈다. 9시 1분 전. 이경환 회장, 장주익 사무국장, 김민종 운영위원님이 밝은 웃음으로 나를 맞는다. 그들은 뼈있는 농담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남의 잘못 탓하지 않고 가슴으로 품어주는 그 너그러움, 그 아량, 남을 위한 벼려가 ‘가슴의 철선’을 울린다. 그건 분명 연륜과 함께 쌓아온 내공이 깊은 탓이겠다.
아마 그들 중의 누군가가 ‘시간을 지켜야 하는 것이 예의다’ 거나 ‘다음부터는 이런 실수하지 말라’ 는 따위 말을 했다면 나는 그길로 바로 돌아섰을 게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피해야 하는 말이 충고니까.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소리가 그런 충고니까. 허나 미안함은 찌꺼기로 남아 내내 가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보고만 있어도 즐거운 사람, 목소리만 들어도 하루가 행복해질 것 같은 사람들과 공간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예사로운 만남은 아닐 터. 그랬다. 우린 놀러가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의 진솔한 삶을 서로 들여다보고 보여주기 위해 떠나는 거다. 누가 그런 말을 했던가? 관광은 눈에 담는 것이고 여행은 가슴에 담는 것이라고? 쌩쌩. 잃어버린 시간 벌기 위해선 마구 달려야 하건만 핸들 잡은 장주익 님은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주위 풍광을 즐기듯 유유자적, 서두름이 없다. 흔들어도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그 우람한 몸 어디에서 그런 여유와 낭만이 묻어나는 것일까? 세 시간쯤 달리고 나서야 바지 단추를 풀 수 있었다. 단양휴게소. 배설의 카타르시스를 맛본 탓일까? 하늘이 머리 위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뿌옇다. 샤갈의 고향 러시아의 하늘이 이만했을까? 당장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잿빛 하늘.
시장기를 면하기 위해 갓구운 호두과자를 먹고 있는데 장주익 님이 먹을거리 한보따리를 들고 온다. 대형 소시지가 들어있는 핫도그와 레몬주스다. 어찌나 맛있던지. 1시간쯤 더 가서 도착한 곳은 한우 전문점 황소곳간. 비바람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처도 그저 눈 한번 껌벅이고 말듯 매사 침착하고 치밀한 이경환 님이 이미 지인을 통해 예약해 두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 (사) 경북북부권문화정보센터 이사장이시며, 영남권문화재단지킴이 대표이시고, ’안동문화지킴이‘ 이신 김호태 대표님이 바로 그 지인. 금강산도식후경이요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산다고 했으렸다? 냄새 좋고, 식감 좋고, 넘기는 맛 부드러우니 이보다 더한 행복 또 어디 있으랴. 생각 같아선 그 자리에 누워 콧노래 흥얼거리다 눈 살짝 붙이면 좋으련만... 마치 임무완수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입가심도 하기 전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어선다. 그러니 눈치 보여 어찌 커피 한 모금 마시고 가자는 말 한마디 할 수 있으리.
그렁저렁 2시가 넘었다. 본격적이 답사가 시작된다. 마애마을을 거쳐 마애선사유적지전시관으로 가는 흙길이 맛있다. 인적을 느낄 수 없는 조용한 마을. 찻길이며 동넷길에 사람 모습 보이지 않는다. 차량 통행도 뜸하다. 조용하고 아늑해 산촌의 정겨움은 있으나 어쩐지 을씨년스럽다.
병풍처럼 둘러친 절벽을 등진 채 서있는 마애선사유적전시관에 들렀으나 아쉽게도 화장실 문까지 잠겨있었다. 3만~4만년 전후기 구석기시대로 추정되는 유물과 문화층이 안동지역에서 발굴됐다는데 당시의 문화상을 엿볼 수 없어 쬐끔은 아쉬웠다.
경북 민속자료 제122호인 산수정으로 가는 작은 길이 제법 정감이 있다. 가끔 눈에 띄는 폐가가 잠시 가슴을 찌언하게 한다. 꽃피고 나뭇잎 돋아나는 4월의 그림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휘고 굽은 소나무 둘러진 사이에 외롭게 서있는 석불이 멀리 보인다.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 9세기경에 만들었다는 석불을 이처럼 방치해 두다니... 천년세월 풍찬노숙에 살갗 찢기고 몸 찌든 부처님이 자못 애처롭다.
굽이굽이 낙동강 물줄기를 끼고 유교문화길 팻말 따라 좁은 길로 들어선다. 단호교 산길이다. 하지만 자동차는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할 만큼 길이 비좁다. 걷기에 이골 난 사람들이니 걸으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니겠는가? 높아 보이지 않는 산. 이쯤이야. 만만했다. 한데 이럴 수가. 15분쯤 걸으니 완만하던 길이 점점 높아진다.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아뿔사. 이럴 줄 알았다면 아예 차를 타고 먼저 갈 것을.
오는 봄 시샘하듯 강가에 숨어있던 칼바람이 온몸으로 파고든다. 이곳이 바람의 언덕길이라고 했던가? 강 건너 절벽이며 바위층이 벽돌처럼 켜켜이 쌓여있다. 3억년 전 공룡시대의 퇴적암이란다. 가파른 굽이길이 대관령 99 고갯길 닮았다. 바위틈 곳곳엔 아직도 얼음의 찌꺼기가 민낯을 삐죽 드러내고 있다.
땀이 나기 시작한다. 주위 풍경을 사진기에 담으며 자잘한 것까지 메모하느라 열심인 김민종 님도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앞서가던 장주익 님도, 뒤처져 오는 이경환 님도 말을 아낀다. 누군가가 말했다. “썩을 놈 소리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 소리에 모두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껄껄 대며 맞장구다. 정상까지 2시간 넘게 걸렸다.
안동의 진산인 학가산과 점심 먹던 풍산이 멀리 보인다. 헌데 이상한 것은 여기서도 사람 구경을 못했다는 거다. 유명한 곳, 볼거리 많은 곳인데, 그리고 사람 사는 곳일 진데 오가는 사람이 없다니.... 고작 차 한대와 자전거 주인 따라가는 개새끼 한 마리뿐이었다.
4계절 경치가 아름답고 뛰어난 건축으로 유명한 병산서원을 지나 4km쯤 떨어진 하회마을 길로 들어선다. 강을 끼고 걷는 길이 일품이란다. 활짝 핀 벚꽃 사이를 걷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죽음’이다. 하지만 갈대의 안내를 받으며 아기자기한 소로를 걸었다. 비단길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구불구불 고갯길. 이제 마지막 산을 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마침내 정상에 마련된 정자에서 한숨 돌린다. 휴식의 참맛.
하회마을 입구. 안내자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벌써 해 뉘엿뉘엿 6시 20분이다. 식당에 들러 냉수 한 컵을 기분 좋게 마시는데 수더분하고 푸근하게 생긴 식당 아줌씨가 맛이나 보라면서 보름떡 한접시를 내놓는다. 아아, 그건 떡이라기보다 포근한 인심이고 구수한 사람냄새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보름이렷다? 서울에 있는 우리 마눌님은 ‘길 떠난 님’ 그리며 저 흐릿한 달이라도 보고 있으려나? 주위는 어둡고 시장기는 돌고... 하회마을 탐사는 생략했다. 많은 이들이 한두번쯤 둘러봤을 것이므로 걷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여겼으므로. 유교 문화가 숨 쉬는 곳,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자랑스러운 곳 하회마을.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서양 사람이라면 이국적 정취에 동양의 신비감에 흠뻑 빠질만 하겠다.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정서가 살아있는 곳 씨족 마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이곳을 찾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였을 터.
띄엄띄엄 밝힌 전깃불을 뒤로 하고 부용대로 올랐다. 물에 떠있는 연꽃 모양이라는 하회마을 전경을 보기 위해서다. 해발 64m. 화천서원 주차장에서 부용대까지 450걸음이라는 말이 있지만 확인할 겨를이 없다. 어둠을 뚫고 길 찾는 것이 급선무니까. 휴대폰 라이트가 유용하게 쓰인다. 산꼭대기에서 바라본 하회마을의 밤 풍경은 특별했다. 먹물 같은 어둠 속에 둥둥 떠 있는 불빛이 도깨비불 같기도 하고... 연꽃 모양의 하회마을을 보지 못한 것은 또 하나의 아쉬움이다.
곧바로 간 곳은 한옥 스타일의 식당 풍전. 정갈하고 맛깔나고 고풍스러운 코스 요리... 마치 고급 요릿집에서 미녀의 극진한 시중 받으며 제대로 된 한식을 제대로 대접받았다는 느낌이다. 달착지근하지않고 톡 쏘는 시원함이 일품인 안동식혜의 뒷맛을 음미하며 간 곳은 숙소인 임청각.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注) 이상룡(李相龍) 선생의 생가란다. 처음엔 99칸 집이었으나 중앙선 철로 때문에 일부가 헐려 지금은 50 여칸. 임청각은 우리 나라 살림집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5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안동 고성이씨의 종택으로 이름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