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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2 - 삼짇날, 청명, 한식 본문
한밤의 사진편지 제2082호 (14/4/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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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짇날(三辰日). 청명(淸明). 한식(寒食)
밤이 깊어갑니다.
음력 3월 초이튿날이 4월1일이었습니다. 4월은 음력 삼월과 함께 갑니다.
제비가 온다는 삼짇날(음력 3월3일)이 어제였고 오는 토요일 식목일은 봄밭갈이가 시작되는 청명(淸明)입니다.
청명(淸明) 하루뒤 일요일(4월6일)이 한식(寒食)입니다.
지난 일요일(3월30일) 주말걷기 때 매화, 산수유,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이 순서없이 너도 나도 활짝 함께 어울리며 만개한 것을 보았습니다.
서울의 3월 벚꽃 개화는 1922년 기상청 관측이래 처음이라는 뉴스이니 기상변화가 염려됩니다.
날씨의 변화가 계속되고 삶의 형태도 변하면서 세시풍속도 변해 옛 시절 절기나 명절에 보았던 민속놀이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쉬움을 달래고 옛 시간 속 그리움을 되 살리고 싶어 오늘은 삼짇날(三辰日), 청명(淸明), 한식(寒食)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음력 3월3일은 삼짇날(三辰日)입니다. 강남에 갔던 제비도 이 날이 되면 옛집을 찾아온다고 하며
옛집을 찾아온 제비는 추녀 밑에 새로운 집을 짓고 새끼를 칩니다.
이 무렵이면 날씨도 온화하고 꽃들이 피기 시작합니다. 봄기운이 왕성하면 사람들은 산과 들로 나가 만발한
진달래꽃을 뜯어다가 쌀가루에 반죽하여 참기름을 발라 화전(花煎)을 만들고
또 녹두가루와 함께 반죽해서 꿀을 섞어 수면(水麵)을 만들어 먹으며 봄을 즐겼습니다.
유생(儒生)은 유생들끼리, 농부는 농부들끼리, 부녀자는 부녀자들끼리 모여, 들로 산으로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서 음식을 먹어가며 시조를 지어 읊거나 춤과 노래로 하루를 즐기는 풍속이었습니다.
이를 `화류(花柳)놀이` 또는 `화전놀이` `꽃다림`이라고 했습니다.
삼짇날 무렵이면 갖가지 나비들이 꽃을 찾아 날아듭니다.
나비를 두고 `나비점`을 치기도 했습니다.
노랑나비나 호랑나비, 범나비를 먼저 보면 대통하여 소원이 이루어 지고 하얀나비를 보면 부모의 상을 당할 흉조로 생각했습니다.
봄날 하얀나비를 먼저 보고 마음을 조렸던 어린시절이 엊그제 같습니다.
삼짇날 머리를 감으면 물이 흐르듯이 소담하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된다고 여자들은 다투어 머리를 감기도 했습니다.
금년은 지났으니 내년 삼짇날에는 꼭 머리를 감아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담밑에 나는 각시풀을 한줌씩 따다가 추려서 한쪽 끝을 실로 묶어 머리채를 만들고 나무를 깍아서 그것을 묶어 가지고 노는 `풀각시놀이`도 삼짇날에 하는 어린여자아이들의 정서적 놀이였습니다.
어린남자아이들은 물이 잘 오른 버드나무를 꺾어 손으로 껍질을 비튼 후, 껍질 속 나무를 빼어내 껍질로 피리를 만들어 불었는데 이를 `버들피리' 또는 `호드기'라 합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옛 시절 그리움입니다.
오는 토요일 식목일은 봄밭갈이가 시작되는 청명(淸明)입니다.
청명(淸明)은 보통 한식(寒食)과(6년에 한번씩) 겹치거나 하루 전이 됩니다.
그래서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매일반"이라고 말들 합니다.
청명이 되면 비로소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을 시작하는 봄밭갈이를 합니다.
천수답이나 물이 부족한 논에서는 봄철 논물을 가두었다가 물이 부족한 모내기 때 요긴하게 쓰자고 관(官)에서 독려 했으나
가두어 둔 물 대부분이 봄가뭄에 말라버려 농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논물을 가두어 두면 지력이 소진되고, 논갈이에 지장이 있어 농민들은 이를 기피해왔습니다.
현재는 저수지의 확충, 농업 용수의 개발, 양수기의 보급 등으로 논물 가두기는 사라졌습니다.
청명 때는 삐삐, 또는 삘기라 부르는 띠(牙)의 어린 순이 돋는데 군것질거리가 없던 어린시절 친구들과 함께 다투며 뽑아 먹던 기억이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청명(淸明)이란 말 그대로 온화하고 좋은 날씨가 시작되는 봄으로 농사일이나 고기잡이 등 생업 활동을 하기에 편하고 수월했습니다.
곳에 따라서는 특별히 택일을 하지 않고도 손 없는 날이라고 하여 산소를 돌보거나, 묘자리 고치기, 집수리 같은 일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겨우내 미루어 두었던 것들입니다.
청명이나 한식에 날씨가 좋으면 그 해 농사가 잘 되고 좋지 않으면 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점을 쳤습니다.
바닷가에서는 청명과 한식에 날씨가 좋으면 어종이 많아져서 어획량이 증가한다고 하여 날씨가 좋기를 기대했습니다.
반면에 이날 바람이 불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청명에 나무를 심는데, 특히 ‘내 나무’라 하여 아이가 혼인할 때 농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었습니다.
4월5일이 식목일이 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의 기록에 따르면, 이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면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고을 수령에게 나누어줍니다.
이를 ‘사화(賜火)’라 합니다.
4월6일(일)이 한식(寒食;음력3월7일)입니다.
한식은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며, 음력 2월 또는 3월에 들기도 하는데,
2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철이 이르고 3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철이 늦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2월 한식에는 꽃이 피어도 3월 한식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옛사람들의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년 3월 한식은 맞지 않는 듯 합니다.
이 날 비가 오면 '물한식'이라고 하여 그 해에 풍년이 오고, 천둥이 치면 흉년이 들고 나라에도 불행한 일이 있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4월6일(일)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주말걷기에 지장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청명과 한식은 하루사이거나 같은 날이기에 세시풍속이 거의 같이 이루어집니다.
수령들은 청명에 받는 사화(賜火)를 한식날에 다시 백성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는 불을 소중히 여기는 숭배사상의 전승이기도 합니다. 청명·한식때가 되면 바람이 심하게 붑니다.
이때 불이나기 쉬우므로 한식날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밥을 그냥 먹기도 했습니다.
한식은 절기(節氣)가 아니고 명절(名節)입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사대명절(四大名節)에 속했습니다.
사대명절(四大名節)에는 제사음식을 마련하여 제사를 지내는데, 특히 한식에는 여러 가지 음식을 당일이 아닌 전날 마련해 찬 음식으로 성묘(省墓)를 하고,
식목(植木)을 하거나 헐은 분묘(墳墓)에 떼를 다시 입히는 개사초(改沙草)를 하는데,
3월에 한식이 든 해는 사초(沙草)를 하지 않습니다.
이는 `삼구부동총(三九不動塚)`이라해서【3월과 9월에는 묘소를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는데서 연유합니다.
물론 그 이유는 3월은 이미 봄이 되어 싹이 나왔기 때문이고,
9월은 이미 겨울에 접어들어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찬밥을 먹는다》는 의미의 한식은 유래 고사(故事)가 있습니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의 충신(忠臣) 개자추(介子推)로부터 유래가 전해집니다.
진문공이 아버지 헌공의 측실인 여희의 모함으로 망명길에 올랐을 때, 항상 곁을 떠나지 않고 충성을 다하던 충신이 개자추(介子推) 였습니다.
개자추(介子推)는 진문공이 10년이 넘는 운둔과 도피 생활로 인하여 탈진하여 원기를 잃고 쓰러지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면서까지 그를 받들던 충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진문공의 무심함에 잊혀진 개자추(介子推)는 금산(錦山)으로 은둔(隱遁)하게 되고, 뒤늦게 후회한 진문공이 개자추를 부르지만 그는 내려오지 않습니다.
개자추를 내려오게 하려는 일념(一念)으로 산에 불을 질렀지만 개자추는 검은 재로 변했을 뿐이었습니다. 뉘우친 진문공은 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이 날이 되면 모든 나라에서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밥을 먹으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고사로 전해져 옵니다.
이 날을 전후하여 민가에서는 쑥탕, 쑥떡을 해 먹었습니다.
그리고 메밀국수를 한식면(寒食麵)이라 하고 한식 무렵 잡은 조기를 `한식사리`라 하여 한식날 음식으로 먹었습니다.
찬 콩국수도 한식(寒食) 음식이었습니다.
이처럼 한식(寒食)은 더운 음식을 피하고 찬 음식으로 조상의 뜻을 기리는 명절이었습니다.
한식날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음식을 그냥 먹었던 조상님의 뜻을 새겨 성묘를 갈 때 전날 준비한 찬 음식만을 차려놓고 불을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한식날은 성묘와 함께 환절기의 불조심 행사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 조성선정에 한식(寒食) 조선전통 풍습이 녹아 있어 소개합니다.
조선을 건국하면서 북으로 여진족과 남으로 고려유민 그리고 개국에 반대하는 정적들을 제거하기위해 수많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고 이를
안타까워했던 이성계는 자기가 죽으면 더 이상의 살생은 그만하라고 하면서,
“내가 죽거든 그날 만이라도 살생을 금하라.”하며,
【나의 무덤에 풀도 베지 말고 불도 피우지마라. 반드시 찬 음식으로 제를 올리라】고 유언하였습니다.
지금도 동구릉에 가보면 벌초도 않은 허름한 봉분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건원릉(健元陵)입니다.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1408년 승하하면서,
고향인 함흥에 묻히길 원했으나, 유명(遺命)을 따르지 못한 아들 태종(李芳遠, 1367-1422)이 함흥 땅의 억새로 봉분을 조성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는 4월 6일(일) 한식을 맞아 세계문화유산인 구리시 동구릉의 건원릉(健元陵) 봉분을 덮고 있는 억새[청완(靑薍)]를 자르는 의식인 ‘청완예초의(靑薍刈草儀)’ 행사를 합니다.
다른 능들은 5월부터 9월까지 5-7차례 깎지만, 건원릉(健元陵) 봉분은 한식날 단 한 차례 예초(刈草)를 합니다. 이 의식을 5년 전부터는 절향(節享, 계절에 따른 제사)인 봄 제사로 거행하고 있습니다.
아래 예초(刈草). 전,후의 사진을 참고하시기바랍니다.
주말걷기와 겹처지지 않는 한식 날, 건원릉(健元陵) 청완예초의(靑薍刈草儀) 행사에 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한사모는 2009. 9. 27(일).주재남 고문님 안내로 구리왕숙천-동구릉을 제126회 주말걷기 때 걸었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어제(4.2.)가 삼짇날이었고, 모레(4.5.)가 청명이며, 글피(4.6.)가 한식입니다.
4월의 찬란한 아침햇살을 가슴에 받으시고, 어제보다 즐겁고 행복한 오늘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김태종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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