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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 찬바람이 심하게 불어대던 날 저녁,
정년퇴직 후, 자유인이 되어 첫 발자욱을
제주도 올레길에 찍고 왔다며,
우리와의 오랜 사귐 속 영원한 청춘
박남화 회원님이,
"3월 봄날의 제주 기행문"을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 회원님께도 보냅니다.
36년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즐겁게 놀기>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박남화 회원님">이 이제는
자주 주말걷기에서도 만나게 되기를 기대하며
박남화 회원님의 정년퇴직을
축하드립니다.
김태종 드림.
아껴서 혼자 다녀온 한라산 등반과 올레길 걷기
글, 사진 : 박 남 화 (한사모 회원 <namhwap@hanmail.net
>)
여분의 시간이 허락되면 제일 먼저 떠나려고 작정했던 여행이 제주 올레길 걷기였다. 36년간의 기나긴 직장생활을 마무리할 즈음인 지난해 말부터 슬슬 "즐겁게 놀기"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등산이나 트레킹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차근 차근 모아 뒀다. 배낭이나 코펠, 아이젠, 스틱 등 등산 장비를 새롭게 구입하고 신형 미러리스카메라도 한 대 장만한 뒤, 제주항공의 할인권을 인터넷으로 예매해 뒀다.
인터넷으로 제주 올레길에 대한 기본 정보를 습득하고, 3월 3일 12시 10분 김포에서 출발하는 제주항공 비행기에 혈혈단신으로 올랐다.
남들은 바삐 일터에 내몰리는 월요일 오전, 등산복차림으로 공항을 향하는 마음이 웬지 생소하기도 하지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해방감과 여유로움까지 숨길 필요는 결코 없었다.
제주올레길은 모두 21개 코스가 있다. 올레길 가이드북이 밝히고 있는 제주올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제주올레는 걸어서 여행하는 이들을 위한 길입니다. 온전히 걷는 사람만을 위한 길. 걷고 싶은 만큼 걸을 수 있는 길이 이 아름다운 땅, 제주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끊어진 길을 잇고, 잊혀진 길을 찾고, 사라진 길을 불러내어 제주올레가 되었습니다. 차를 타고다니는 여행이 띄엄띄엄 찍는 점의 여행이라면, 제주올레는 그 점들을 이어가는 긴 선의 여행입니다.
점 찍듯 둘러보고 훌쩍 떠나는 여행에서는 보지 못했던 제주의 속살을 제주올레는 걸으면서 새로이 발견하게 됩니다.
제주올레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이 길에서 평화와 자연을 사랑하는 행복한 여행자가 되십시오.">-
한 시간 여를 날아 1시 20분경에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제주지만 이국적 풍취는 제주만이 갖고 있는 정서다.
코끝을 스치는 알싸한 봄내음이 뭍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도 하지만, 확연한 봄의 정취는 이직 이른 듯 하다.
제주는 작은 지방 같으면서 결코 작지 않다는 느낌이다. 버스를 타면 제주의 곳곳을 3시간 이내에 데려다 준다.
올레길 초행인 나는 1번 코스부터 걷기로 했다. 제주섬 동쪽에 해당하는 시흥리에서 광치기해변까지 15.5km. 가이드북에는 4-5시간이 소요된다고 되어 있으나, 나는 이 길을 오후 4시에 시작해 7시에 종점에 도달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프린트해간 자료와 실제 코스는 다소간 차이가 있었다. 시절이 이른 탓인지 올레길코스 3일을 걷는 동안 만나는 길손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적한 풍광이었다. 그 분위기가 나로서는 더욱 좋았지만...,
시흥초등학교에서 출발한 1코스는 말미오름, 종달리길, 시흥해녀의 집 등을 지나 성산 일출봉 부근에서 마무리된다.
성산 일출봉이 1코스의 랜드마크인 셈.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일출봉을 바라보며 걸었다.
제주섬 동편의 싱싱한 봄바다 빛깔과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소금냄새와 돌담에 둘러쌓인 무밭, 유채밭. 외진 무밭에서 잘 자란 무 한 뿌리를 뽑아 어적어적 베어 먹으며 한갓진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어둠이 내린 광치기해변의 식당에 들러 한치물회정식으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곁들인 한라산 소주 한잔이 뻐근한 다리 근육을 한순간에 풀어주는 듯 하다.
여행 2일째인 3월 4일. 성산 일출봉에서 뜨는 아침해를 맞이할 요량으로 어스름한 새벽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출봉 해변에 나가 십여 분을 기다리자 사위가 밝아온다. 그러나 듬성듬성 드리운 구름사이로 언제 솟았는지 해가 벌서 떠올라 있었다. 선명도 100%의 상큼한 일출을 보는 것도 그날 운에 속한다고 옆에 있던 여행객들이 웃으며 담소를 건넨다.
오늘 일정은 한라산 등반이다. 성산 광치기마을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탄 뒤, 성판악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9시 10분여. 성산에서는 아침 해맞이를 한 날씨였는데, 이곳에 오니 스멀스멀 먹구름이 끼는 모양새다.
<가끔 비>라는 일기예보를 가볍게 본 것이 오늘의 미스테이크가 된다. 곁에 입은 등산복이 방수처리된 것이라는 믿음과 접이식 우산을 준비한 것만 믿고 한라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동안 몇 번 한라산 아래까지는 왔었지만 기상 악화 때문에 번번히 입산금지의 불이익을 감수했었다. 그러나 오늘 산행은 반드시 백록담과 상면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열심을 다해 산을 올랐다.
해발 1000m부근부터 적설이 보이기 시작했고, 11시 경부터는 진눈개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표고가 높아지면서 이내 함박눈 수준으로 발전했다. 다행스런 것은 눈비가 내리고 무릎아래까지 눈이 쌓인 환경이지만 포근한 온도가 오히려 발길을 감싸주는 듯하다.
진달래휴게소에서 12시 경, 컵라면과 김밥으로 점심 요기를 하고 백록담 정상을 향한 막바지 눈길을 재촉했다. 이 코스가 가장 어려운 고비였다.
특히 백록담을 지척에 둔 가파른 능선에서는 안경조차 쓸 수 없을 만큼의 눈보라가 엄습하기를 30여분, 마침내 백록담 정상에 섰다. 표지석이 있으니 정상이란 것을 분별할 수 있지만 5m앞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도 스마트폰으로 인증샷을 찍고 서둘러 하산을 재촉했다. 성판악에 도착한 시간은 4시 10분쯤, 왕복 7시간이 소요된 셈. 점심 요기 시간과 강설량, 눈보라 등을 감안하면 준수한 기록인 셈이다.
그러나 속옷까지 온통 젓은 탓에 아픈 다리보다 밀려오는 오한이 더욱 힘들었다. 서둘러 버스를 타고 30여분 만에 제주시내에 도착해 모텔을 잡고 더운 샤워물로 반쯤 얼은 몸은 녹였다.
여행 셋째날인 3월 5일. 오늘은 다시 올래길걷기다. 제주시에서 버스를 타고 1코스를 마무리한 광치기해변으로 되돌아가 2코스를 시작한다.
2코스는 광치기해변에서 은평포구까지 16.7km거리다. 가이드북에는 석산봉과 오조리성터, 대수산봉 입구, 혼인지 등을 거쳐 온평포구까지 가는 길로 되어 있다.
나는 이 코스에서 좀 벗어나 일출봉을 뒤로하고 바닷가 해변길을 따라 걸었다. 어제의 짓궂은 날씨를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더할 수 없이 청량한 날씨다. 하늘색과 바닷빛깔이 한 통속으로 짙푸르고, 봄기운을 뒤섞은 해풍은 부드럽게 얼굴을 애무한다.
11시30분에 출발해 온평포구이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30분. 시간당 5km 이상을 걸은 속도다. 날씨가 도와주어서인지 다리 통증도 한결 가뿐하다.
내친김에 곧바로 제3코스로 들어섰다. 3코스는 온평포구에서 표선해비치해변까지 20.7km거리. 중산간 입구, 동오름정상,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신천리 해녀탈의장, 배고픈다리 등을 거쳐 가는 코스다.
제주 올래길을 걸으며 느낀 것인데, 아직 시즌이 이른 탓인지 길동무가 거의 없다는 점, 동리 마을에 들어서도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은 점, 그리고 올래코스 안내표식이 불친절한 곳이 많다는 점 등이다.
두모악쯤되는 지점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해변을 따라 걷고 또 걸어 표선해비치 해변에 도착한 시간이 깜깜 밤중인 오후 7시 40분경. 바닷가 식당에서 회무침정식에 막걸리 한잔을 반주로 늦은 식사를 한 뒤, 인근 모텔에서 피곤한 몸을 뉘이다.
여행 넷째날인 3월 6일. 올레 4코스는 표선해비치해변에서 시작해 남원포구까지 23km의 비교적 긴 거리다.
이 코스는 거의 대부분을 바다를 끼고 걷는다. 해양수산연구원, 가마리개쉼터, 토산포구, 망오름 정상, 태흥리포구를 거쳐 남원포구에 도착한다.
아침 9시에 출발해 고즈녁한 바닷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는다. 오늘도 날씨는 그만이다. 한참을 걷다 문득 그리운 사람들에게 올레길의 아름다움을 문자 전송한다.
나 혼자 즐기기에는 아까운 안타까움이 있어서다. 길 위에서 그리운 사람들이 떠오른다는 것은 나 혼자 걷는 것이 아니란 생각을 잠시 한다.
바닷가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한 ‘어부와 해녀마을’이란 긴 이름의 식당에서 성개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밥맛이 꿀맛이다. 걷고 걸어 도착지인 남원포구에 당도한 것이 오후 1시 30분.
오후 5시에 예약한 귀경 비행기 시간을 감안해, 여기서 이번 길 걸음을 마무리한다. 올 봄 올레걷기는 4구간까지 걸은 것으로 하고 마침표를 찍는다.
나머지 올레 17코스는 아껴가며 서너번 나눠 걸으면 될 듯하다.